폐사지 석탑에 걸린 교교(皎皎)한 보름달, 정평불 하계수련회 4-보원사지
정평불 하계수련회 네 번째 이야기는 보원사지에서 본 보름달 이야기입니다. 8월 25일 밤 토론회를 마친 회원들은 늦은 밤에 보원사지로 갔습니다. 서산도량에서 불과 2.8키로미터 떨어져 있고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습니다.
보름달밤의 보원사지
보름달밤에 보는 보원사지가 환상적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침 8월 25일은 음력 보름으로 하안거가 끝나는 날이기도 합니다. 폐사지에서 보는 보름달은 어떤 것일까? 그것도 오층석탑만 덩그렇게 남은 폐사지의 보름달은 특별할 것 같았습니다.
거의 11시 가까이 되어서 보원사지에 도착했습니다. 보름밤이라 하지만 주변은 캄캄합니다. 특이하게도 보원사지 주변에는 농경지도 없고 사람 사는 집도 없습니다. 너른 황무지에 오층석탑 하나만 우뚝 솟아 있는 모습입니다.
하늘은 맑았습니다. 새털구름이 떠 있어서 달을 막았습니다. 싯구 중에 ‘구름에 달 가듯이’라는 말이 있듯이 조금 지나자 검은 하늘에 둥그런 달이 나타났습니다. 폐사지 석탑 위에 보름달이 걸려 있었습니다.
“달이 차면 그 보름달에
사람들이 합장하듯이,
세상 사람들은 고따마께
예배하고 공경합니다.”(M98)
불교인에게 보름달은
보름달은 사람을 설레이게 만듭니다. 꽉찬 보름달은 포만감이 있습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를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배고픔에 지친 자들은 동그란 빵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초기경전에서는 보름달과 관련된 여러 가르침이 있습니다.
맛지마니까야 ‘훌륭한 가문의 우다인에 대한 큰 경(M77)’을 보면 “외딴 거처에 지내다가 계율의 규범을 외우는 보름날 참모임에 참가합니다.”(M77)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숲속이나 외딴 거처에 지내는 수행승들이 보름날이 되면 한곳에 모여서 계율의 규범을 외운다고 합니다. 보름날은 계본(Pātimokkha)을 외는 포살일이기도 합니다.
보름날밤은 불교인들에게 있어서 특별한 날입니다. 숫따니빠따 ‘헤마바따의 경’에서는 야차가 “오늘은 보름이 되는 포살의 날, 신성한 밤이 가까웠다.”(Stn.153)라고 말합니다. 보름날밤의 포살일은 경건하고 신성한 밤입니다. 출가자들은 계본을 읽고 포살을 하며, 재가자들 역시 팔계를 지녀 청정한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오늘만큼은 지키리라
숫따니빠따 ‘담미까의 경’을 보면 재가자의 포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포살일에 대하여 “그러므로 각각 보름기간의 제14일과 제15일과 제8일에 포살을 닦으라. 그 신성한 달에 올바로 갖추어진 여덟 고리를 준수해서 청정한 마음으로 계율을 지키라.”(Stn.402)라고 했습니다. 재가자에게 있어서 여덟 가지 포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생명을 해치지 말라.
(2) 주지 않는 것을 갖지 말라.
(3) 거짓말을 하지 말라.
(4) 술을 마시지 말라.
(5) 순결하지 못한 성적 교섭을 떠나라.
(6) 밤에는 때 아닌 때의 음식을 먹지 마라.
(7) 화한을 걸치지 말고 향수를 쓰지 말라.
(8) 깔개를 깐 바닥이나 침대 위에서만 자라.
이와 같은 포살에 대하여 앙굿따라니까야 ‘포살의 덕목의 경’에서는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다섯 번째 항목인 ‘생명을 해치지 말라’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거룩한 님은 목숨이 다하도록,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몽둥이를 놓아버리고, 칼을 놓아버리고, 부끄러움을 알고, 자비심을 일으키고, 일체의 생명을 이롭게 하고 애민히 여긴다. 나도 바로 오늘 낮 오늘 밤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몽둥이를 놓아버리고, 칼을 놓아버리고, 부끄러움을 알고, 자비심을 일으키고, 일체의 생명을 이롭게 하고 애민히 여기리라. 이러한 성품으로 나는 거룩한 님을 따르며, 포살을 지킬 것이다.”(A3.70)
불살생 항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일곱 개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거짓말과 관련된 것을 보면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을 삼가고, 진실을 말하고, 진실과 관련된 것, 사실인 것, 신뢰할 수 있는 것, 세상을 속이지 않는 것이라 하여 일곱 가지를 구체적으로 나열했습니다. 이렇게 여덟 가지 포살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오늘만큼은 지키겠다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거룩한 님, 즉 아라한이 목숨바쳐 지켜온 것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보름날은 포살일 중의 하나입니다. 또 우리나라 초하루에 해당되는 신월일이 포살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름날과 신월일은 길일이라 하여 불교인들에게는 특별한 날입니다. 특히 보름날 둥그런 달에 흥분하기 쉽지만 부처님 제자들은 이날 모여서 계본을 외우고 여덟 가지 포살의 고리를 닦았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 플레시를
보원사지에 둥근 달이 떴습니다. 너른 폐사지에 오층석탑만 하나 덩그렇게 서 있는 벌판에 사람들이 모여섰습니다. 달이 구름에서 벗아나자 석탑과 보름달이 일직선이 되도록 스마트폰 카메라 플레시를 터뜨립니다. 어떤 이는 조용히 탑돌이 하기도 합니다. 폐사지에서 맞이 하는 특별한 밤이었습니다. 초기경전에서 실려 있는 보름달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빛을 비추는 태양 같은,
가득 찬 보름달과 같은,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을
아지따는 보았다.”(Stn.1016)
"보름달 밤에 떠오르는 달처럼
그대의 마음은 완전히 해탈되었으니
일어서소서, 영웅이여, 전쟁의 승리자여” (S11.17)
“그런 아는 사유가
원만함이 보름달과 같았다.
모든 번뇌 다했으니
이제 다시 태어남이란 없다.”(Vism.1.130)
“계를 성취하여 빛나는
비구는 고행의 숲에서 빛난다.
마치 보름달이 허공에서 빛나듯이.” (Vism.1.159)
“구름없는 하늘에 둥근 보름달처럼,
황금색 돌 위에 놓인 보석처럼 청정하다.
그러므로 있기 때문에, 청정하기 때문에
와서 보라고 초대할만하다.” (Vism.7.82)
낮에 본 보원사지는
밤에 본 보원사지는 캄캄해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낮에 보는 보원사지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다음 날 아침에 보원사지에서 경행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로 인하여 일정을 취소 해야 했습니다. 한달 전에 답사차 방문했던 보원사지는 폐사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낮에 보는 폐사지와 밤에 보는 폐사지는 느낌이 다릅니다. 폐사지 주변에 민가도 없고 농사짓는 땅도 없이 황무지 벌판 위에 오층석탑만 덩그러니 솟아 있습니다. 보원사지는 폐사지 중에서 가장 장관입니다. 폐사지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폐사지 석탑에 걸린 교교(皎皎)한 보름달
한때 3천명이 살았다는 보원사지라 합니다. 보원사지를 관통하는 하천이 있는데 밥을 지을 때 쌀뜨물이 하얕게 내려 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3천명이라는 숫자는 모두 스님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스님을 포함하여 신도가 3천명이었다는 말이 타당할 것입니다.
보원사지에 서면 옛날의 영화를 생각나게 합니다. 엄청나게 큰 가람에서 스님들과 신도들이 오가는 모습, 불공드리는 모습 등이 연상됩니다. 더구나 보름날 밤 오층석탑 주변에 모여 탑돌이 하며 소원을 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보원사지는 석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낮에 보원사지는 탁트인 벌판에 탑 하나만 우뚝 솟은 모습이 장관입니다. 그러나 보름날 밤에 보는 보원사지의 야경은 또 다른 장관입니다. 같은 보름달이라도 번영하는 사찰에서 보는 것과 폐사지에서 보는 것이 느낌이 다릅니다. 폐사지 석탑에 걸린 보름달은 한때 영화가 덧없음을 말해 주는 듯합니다.
“보름달 밤에 보원사지의
밤은 교교(皎皎)했습니다.
석탑 위에 달이 휘엉청 걸렸습니다.
구름에 달 가듯합니다.
구름사이에 둥근 달이 내비칩니다.
석탑만 남은 너른 절터에
달빛만 고요합니다.
달무리를 보았습니다.
무지개 같은 원이 달을 감쌓습니다.
사람들은 자정이 넘어도
달구경에 잠들지 않습니다.”
2018-08-30
진흙속의연꽃
'정의평화불교연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비는 투명하게 관리해야 (0) | 2018.09.04 |
---|---|
자기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정평불 하계수련회 5-강연 (0) | 2018.08.31 |
가르침과 계율안에서 성장하는 모임, 정평불 하계수련회3- 회칙토론 (0) | 2018.08.29 |
한방울의 물에도 한알의 곡식에도, 정평불 하계수련회2-식사 (0) | 2018.08.28 |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 정평불 하계수련회1-예불 (0) | 2018.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