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울의 물에도 한알의 곡식에도, 정평불 하계수련회2-식사
청정한 삶은 청정한 먹거리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 중의 하나가 먹거리입니다. 어떤 이는 산해진미를 즐기는가 하면 어떤 이는 인스턴트식품으로 때우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먹는 재미를 인생삼락중의 하나라 합니다. 그래서 먹기 위해서 사는 식도락가가 있습니다. 반면 먹고 살 길이 없어서 죽지 못해 사는 자도 있습니다.
정평불회원 중에 호두마을에서 집중수행한 선생이 있습니다. 집중수행을 마치고 일반식당에 들어갔더니 피비린내가 난다고 했습니다. 집중수행으로 몸과 마음이 청정해진 상태에서 후각이 민감해진 것입니다. 또 어떤 선생은 선정체험을 하고 나서부터는 술과 고기를 끊었다고 합니다. 육류는 물론 어류도 먹지 않습니다. 눈의 건강을 위해서 달걀만 허용합니다.
청정한 삶은 청정한 먹거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고기를 즐기면 술을 찾게 되고, 술을 즐기면 고기를 찾게 됩니다. 고기는 육체를 혼탁하게 하고, 술은 정신을 혼탁하게 합니다. 심신이 혼탁해졌을 때 청정한 삶은 요원하게 됩니다.
유병화 선생의 음식봉사
정의평화불교연대, 줄여서 정평불이라 합니다. 정평불에서 이번 여름 서산도량에서 하계수련회를 가졌습니다. 모두 18명이 참가한 수련회에서 회원들은 청정한 먹거리를 접했습니다. 회원 중에 사찰음식전문가 유병화 선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병화 선생은 이번 하계 수련회에서 음식봉사를 했습니다. 미황사 금강스님의 서산도량 공양봉사자이기도 한 유선생은 1박 2일 동안 수련회 기간 동안 청정한 먹거리를 공양했습니다.
수련회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 두 번의 식사시간이 있었습니다. 8월 25일 저녁식사와 8월 26일 아침 식사가 그것입니다. 수련회 준비팀은 25일 점심식사를 해서 세 끼를 먹었습니다. 8월 26일은 승려대회가 열리는 관계로 오전에 출발했는데, 유선생은 차로 이동중에 먹으라고 주먹밥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채마밭에서 먹거리를
첫날 수련원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한 일은 채마밭에서 먹거리를 따는 것이었습니다. 서산도량 한켠에는 호박, 가지, 고추, 깻잎, 동과 등이 있는 작은 텃밭이 있습니다. 수련회 기간 동안 먹거리를 현지조달하는 것입니다. 이것 저것 따 모으니 한 바구니 가득 되었습니다.
제철에 나는 것들로 싱싱한 먹거리입니다. 수련회 카풀 제1진으로 왔기 때문에 다섯 명이서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밥을 하고 된장찌개를 끓였습니다. 반찬은 깻잎과 약초장아찌 등 몇 개 되지 않습니다. 깻잎은 일년 묵은 것이라 합니다.
제철 음식이 가장 맛 있듯이, 밥도 막 지은 것이 맛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은 밥 그 자체가 고소합니다. 그러나 20분이 지나면 맛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식당에 가면 대개 온장고에서 밥그릇을 꺼내 오는데 보관해서인지 맛이 나지 않습니다.
일년 묵은 깻잎은 맛이 그윽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된장에 재웠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간장에 재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된장에 일년 재워진 깻잎은 깊은 맛이 납니다.
약초장아찌가 있습니다. 약초라는 말이 들어가서일까 보약먹는 느낌입니다. 유선생에 따르면 집에는 갖가지 종류의 장아찌가 있다고 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약초 장아찌인데 깊고 그윽한 맛이 납니다.
오신채 없는 행복한 밥상
저녁 5시가 되자 수련회 멤버들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공주에서 S선생은 복숭아, 참회, 포도 세 박스를 가져 왔습니다. 양이 먹고도 남아서 다음 날 해산할 때 각자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습니다.
수련회 첫 날 식사시간은 오후 7시에 있었습니다. 유병화 선생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준비했습니다. 이날 저녁에 준비한 것은 채마밭에서 딴 것들입니다. 깻잎을 된장에 싸 먹도록 준비했습니다. 고추가 빠진 것은 고라니가 모두 따 먹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둥그런 접시에 조금씩 담았습니다. 밥과 깻잎과 약초장아찌, 오이 등 완전 채식입니다. 고기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화학조미료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간장과 된장, 소금 등으로 맛을 냈습니다. 또한 파, 마늘 등 오신채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막 따온 깻잎에 오래 묵은 된장과 함께 먹으니 입안 가득 씹는 맛이 납니다. 소박한 식단이지만 고급식당에서 산해진미 먹는 것 못지 않은 행복한 밥상입니다.
밥을 할 때는 밥솥을 사용합니다. 전기밥솥이 아닌 밥솥을 사용하기 때문에 누룽지가 생겨납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을 먹고 그 다음 먹는 것이 누룽지가 있는 숭늉입니다. 밥솥에 뜨거운 물을 부우면 구수한 누룽지가 들어간 숭늉이 됩니다.
이도흠 선생이 설거지 담당을
사람들은 밥과 반찬을 남김없이 다 먹었습니다. 남김 없이 먹었기 때문에 쓰레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다 먹었으면 치워야 합니다. 각자 먹은 것은 각자 치우기입니다. 그러나 비좁은 주방에서 각자 설가지 하려면 공간이 부족합니다. 정평불 상임대표 이도흠 선생이 설거지 담당을 자처 했습니다.
“이런 맛 처음이야!”
다음 날 아침에 두 번째 전체식사가 있었습니다. 회원들이 선방에서 아침예불하고 김진태 선생의 위빠사나 수행관련 강연과 실습을 할 동안 유병화 선생은 주방에서 혼자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울긋불긋 완성된 음식을 보니 경이롭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마치 도깨비망망이로 뚝딱 만들어내듯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음식 가지수는 6가지입니다. 어제 채마밭에서 따온 것이 주류입니다.
이날 아침에는 어제 저녁에 볼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죽입니다. 큰 솥에 죽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마치 전복죽처럼 걸쭉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육류나 어류가 들어 가지 않은 순수하게 곡식으로 만든 것입니다. 맛을 보니 감미롭고 부드러워서 “이런 맛 처음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한방울의 물에도 한알의 곡식에도
식탁을 마주 하고 모두 자리에 앉았습니다. 귀중한 음식을 함부로 먹을 수 없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는 감사의 마음으로 공양게를 읊었습니다. 참사람의 향기 서산도량의 공양게라 하여 유병화 선생이 낭송하면 따라 했습니다.
“한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있습니다.
정성이 깃든 이 음식으로
몸과 마음을 바로하고
청정하게 살겠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이 공양게는 미황사 금강스님 버전이라 합니다. 금강스님이 기존 공양게와 달리 새로운 버전으로 만든 것이라 합니다. 게송의 키워드는 ‘청정’입니다.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음식청정이 먼저 이루어져야 함을 말합니다. 한방울의 물과 한알의 곡식을 즐기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이 몸을 지탱하기 위해 먹는 것입니다. 이는 오관게에서 약으로 먹는다는 말과 다른 것입니다.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불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공양게송이 있습니다. 한국불교에서는 오관게(五觀偈)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오관게를 보면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라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良藥爲療形枯)”라는 문구입니다.
율장에 따르면 수행자가 아프면 약으로서 음식을 먹습니다. 율장소품에 따르면 “한때 병든 수행승이 약으로서 지방이 필요했다.”(Vin.I.200)라 되어 있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병든 수행승을 위하여 “수행승들이여, 지방약(脂肪藥) 즉, 곰의 지방, 물고기의 지방, 상어의 지방, 돼지의 지방, 당나귀의 지방을 올바른 때에 받고, 올바른 때에 조리하고, 올바른 때에 섞어 기름과 함께 사용하는 것을 허용한다.”(Vin.I.200)라 했습니다.
부처님은 돼지지방 즉, 돼지고기를 아픈 환자에게 약으로서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오관게에서처럼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良藥爲療形枯)”라고 했을 때 음식을 약으로 안다면 어떤 음식이든지 약으로 알아 먹을 것입니다.
율장소품을 보면 약이 되는 음식으로 술도 해당됩니다. 삘린다 밧차 존자가 풍병에 걸렸을 때 의사는 기름을 끓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름이 끓을 때 화주(火酒)를 섞어야 했습니다. 화주는 취기가 있는 것으로 독한 술입니다. 부처님은 풍병에 걸린 수행승을 위하여 “수행승들이여, 기름이 끓을 때 화주를 섞는 것을 허용한다.” (Vin.I.200)라 했습니다.
음식을 약으로서 간주하면 고기도 약이 되고 술도 약이 됩니다. 그러나 율장에 따르면 약으로서 음식은 환자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한역 오관게를 보면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良藥爲療形枯)”라 하여 음식을 약으로 알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는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건강한 수행승도 음식을 약으로 알고 먹는다면 환자가 먹는 것처럼 고기도 술도 마시게 될 것입니다.
수행자가 음식을 대하는 태도
한역 오관게에서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라는 말은 양약위료형고(良藥爲療形枯)를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자어 고(枯)자는 ‘팔다리의 살이 여위어서 힘이 없어 잘 쓰지 못하는 것’ 즉, 살이 여윈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일까 어느 번역에서는 “몸이 마르는 것을 막는 약으로 여겨”라 했습니다. ‘육신을 지탱하는 것’과 ‘몸이 마르는 것을 막는 것’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해석의 공통점은 ‘음식을 약으로 알라’라는 것입니다.
초기경전에서 음식을 약으로 알아 먹는 가르침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픈 환자의 경우에나 음식을 약으로 알아 먹었습니다. 음식을 약으로 알고 먹는 경우 고기도 약이 될 수 있고 독한 화주도 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초기경전에서는 음식을 어떻게 대하라고 했을까? 상윳따니까야 ‘수레의 비유에 대한 경’을 보면 일종의 빠알리 공양게라 볼 수 있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것은 놀이나 사치로나 장식이나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몸이 살아 있는 한 그 몸을 유지하고 해를 입지 않도록 하고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의 불편했던 경험을 제거하고 새로운 고통을 초래하지 않겠다. 이것으로 나는 허물없이 안온하게 살리라.”(S35.239)
이것이 수행자가 음식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그 어디에도 환자처럼 약으로 음식을 먹는다는 말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대해야 하는가? 경에서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치료가 될 때까지 상처에 연고를 바르듯, 또한 예를 들어 짐을 옮길 수 있도록 수레바퀴에 기름을 치듯”(S35.239)이라 했습니다.
음식을 대할 때는 약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난 곳에 연고를 바르듯’, ‘수레바퀴에 기름을 치듯’이라 했습니다. 육체를 지탱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이지 즐기기 위해서 또는 약으로 먹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오관계에서는 즐거울 락(樂)자를 사용하여 이를 약(樂)으로 알아 음식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주먹밥을 만들고
수련회 2일차에는 아침 식사만 했습니다. 오후에는 승려대회가 예정되어 있어서 오전 일정을 당겨서 점심전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8월 26일 오후 2시까지 조계사길에 도착하려면 밥먹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병화 선생은 주먹밥을 만들었습니다. 차로 이동중에 먹기 위한 것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주먹밥은 즉석 아이디어라 합니다. 마침 채마밭에 깻잎이 있어서 깻잎에 싼 주먹밥입니다. 밥에 여러가지 재료를 섞여 버무린 것입니다. 각자 두 개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동 중에 먹은 깻잎 주먹밥은 깻잎 특유의 향과 함께 고소한 맛이 있었습니다. 주먹만한 주먹밥 두 개를 먹으니 포만감에 저녁 때까지 배고픈 줄 몰랐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부처님의 주치의 의사 지바까는 율장에서 “약에 사용되지 못한 푸성귀는 하나도 없다.”(Vin.I.275)라 했습니다. 제철에 나는 식재료는 모두 약이 됩니다. 채마밭에서 갓 딴 것들은 최상의 음식재료입니다. 이번에 음식맛을 본 정평불 회원들은 모두 만족해 했습니다. 앞으로 수련회 하면 음식 맛 때문에 또 오게 될른지 모릅니다.
매일 밥을 먹습니다. 하루 세 끼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청정한 밥상인지 알 수 없습니다. 특히 식당에 사 먹는 음식은 온갖 조미료가 가미 되어 있어서 달달하고 맵고 짠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유병화 선생이 즉석에서 만든 오신채 없는 사찰음식은 청정 그 자체입니다. 이에 대하여 회원 중의 한 선생은 “심신이 건강토록 세세히 살피시는 손길에서 엄마의 마음도 느꼈습니다.”라 했습니다.
음식절제를 하면
청정한 자연환경에서 청정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청정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세 가지 원리를 갖추면 현세에서 즐겁고 기쁘게 지낸다고 했습니다. 또한 모든 번뇌의 소멸에 근본이 되는 원리라 했습니다. 그 세 가지 원리는 “감각능력을 수호하는 것과 음식을 먹을 때에 알맞은 분량을 아는 것과 깨어 있음에 전념하는 것”(S35.239)입니다.
번뇌를 소멸하는 세 가지 원리 중에 음식관련 항목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가르침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 탐욕으로, 분노로, 어리석음으로 먹습니다. 그러다 보니 막행막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음식절제를 하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의 바탕이 된다고 합니다. 음식청정이 청정한 삶의 조건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2018-08-28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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