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마음의 고향, 조준호선생의 ‘욕망을 넘어 행복으로’ 1강
불교인들에게 인도는 마음의 고향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인도출신인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초기경전에 생생하게 묘사된 인도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래서일까 빠알리니까야에 실려 있는 부처님 당시의 이름과 지명이 이제는 낯설지 않습니다.
문화살롱 기룬에서
문화살롱 기룬에서 인도강연이 열렸습니다. 조준호 선생의 ‘인도사상, 욕망을 넘어 행복으로’라는 주제의 강연입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시작됩니다. 9월 6일 첫 강연을 시작으로 마지막 강연은 11월 5일에 끝납니다. 3개월에 걸친 강연 10강좌를 신청했습니다. 모두 참가하여 완주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후기를 남기려 합니다. 그 첫 번째 강연이 ‘인도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제목입니다.
(사진)
조준호 선생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교계 인터넷신문이나 불교평론 등을 통해서 접했습니다. 자리를 함께 한 것은 지난 8.26 범불교도 대회가 끝난 후 저녁 식사자리였습니다. 정평불 회원이기도 한 조준호 선생과 처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조준호 선생도 필명 ‘진흙속의연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무척 궁금했다고 합니다.
기룬에서 열린 조준호 선생의 인도강연에는 참석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빌딩 2층에 마련된 문화살롱 기룬은 각종 모임이나 공연에 사용되는데 50명 이상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날 참석자는 너무나 적었습니다. 아마도 홍보부족 때문일 것입니다.
인도 델리대학에서 9년 유학
강연이나 법문을 들으면 메모합니다. 항상 노트와 필기구를 가지고 다녀서 기록해 둡니다. 후기를 작성할 때 참고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녹음은 하지 않습니다. 필기 하는 것이 녹음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날도 부지런히 받아 적었습니다.
조준호 선생의 인도강연은 한국외국어대 인도연구소에서 후원한 것입니다. 인도를 주제로 강연하는 것은 불교의 원류 인도의 가치를 널리 알기 위해서라 합니다. 그래서 전국을 무대로 대중강연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조준호 선생은 인도 델리대학에서 9년 유학했습니다. 강연 도중에 인도에서 유학시절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기후와 관련된 것은 흥미로웠습니다. 윤회의 원인이 되는 갈애(taṇhā)라는 말은 인도의 혹서기를 지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합니다.
인도의 혹서기는 3월부터 6월까지인데 기온이 40-50도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혹서기는 가장 인도다운 계절이라 합니다. 혹서기가 되면 잠시도 견딜 수 없이 덥다고 합니다. 어찌나 더운지 물을 3분에 한번씩 마셔야 한다고 합니다. 현지에서 살다 보니 갈애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저절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달(Indū)로 비유한 인도(印度)
두 시간 동안 진행된 강연의 내용을 모두 적을 수 없습니다. 한마디도 놓칠 수 없지만 인상적인 것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먼저 인도지명에 대한 것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인도는 인더스강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중국문헌에서도 신두, 신독, 현두, 천두, 천축 등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현장스님이 인도유학을 다녀 온 후에 바뀌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조준호 선생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인도의 뜻은 당나라의 달에 해당된다. 달에는 많은 이름이 있지만, 인도는 그 중의 하나를 말한다. 뜻하는 바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윤회하여 그침이 없고, 그 무명의 장야에는 새벽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해(白日)가 숨어 버리면 밤의 등불이 밝음을 계속 이을 수 있는 것처럼 달 없는 밤의 별빛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어찌 둥근 달의 밝음에 미칠 수 있으랴. 인도를 달이라 한 것도 진실로 이 같은 이치에 따라 이름한 것이다. 실제로 인도의 성현들은 전해오는 법을 이어받아 사람들을 가르치고 사물을 다스리는 법이 마치 달이 천하를 비추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인도라 한다.”
이 말은 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에 실려 있다고 합니다. 인도를 달로 비유한 것은 인두(indu)라는 말이 달을 뜻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빠알리 사전을 찾아 보니 ‘indu’라는 말이 ‘The moon’의 뜻입니다. 한역 사전을 보니 ‘Indū’에 대하여 ‘印度(大唐西域记以后)’라 되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현장 스님의 대당서역기 이후에 인도(印度)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전에는 신두, 천축 등 다양하게 쓰였습니다. 특히 천축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스님 이후 인디아는 인도로 정착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준호 선생에 따르면 인도를 달로 비유하여 설명한 것은 ‘완전한 창작’이라 합니다. 달을 뜻하는 ‘Indū’라는 말에 대하여 무명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하여 이야기를 만든 것입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현장스님이 중국불교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중국에서 불교는 현장스님 이전과 현장스님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
세계의 범어화에 대하여
조준호 선생의 첫 번째 강연 하이라이트는 인도의 세계사적 의미에 대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조준호 선생은 프린트물에서 “동아시아인은 인도불교 덕분으로 심오한 정신세계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일 유교만 있었다면 숨막힌 삶이 되었을 것이라 합니다. 불교가 있었기에 정신적 풍요도 누릴 수 있었음을 말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인도에 빚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조준호 선생은 인도가 세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범어화’와 ‘인도화’를 들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동남아시아를 예로 들었습니다. 동남아시아는 대륙부와 해양부로 나눌 수 있는데, 대륙부는 불교의 영향권에 있고 해양부는 이슬람 영향권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 세력이 들어 오기 전에는 불교와 힌두교가 대세였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범어의 잔재가 많다고 합니다. 태국의 국제공항 이름이 ‘수완나부리(수완나품)’입니다. 수완나라는 말은 범어로 황금이라는 뜻입니다. 빠알리어에서도 수반나(suvaṇṇa)라 하여 ‘gold, of good colour’의 뜻으로 황금의 뜻입니다. 놀라운 것은 바다 멀리 떨어진 필리핀에서도 범어의 흔적이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2010년 필리핀 불교에 대하여‘가톨릭에 불교의 흔적이, 마리안축제와 필리핀불교에서 발견한 놀라운 역사적 사실들(2010-03-14)’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스페인 침략 이전에 필리핀에도 불교가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에 대한 것입니다.
필리핀의 말 중에 약 25%는 산스크리트어라합니다. 타갈로그어에 ‘두카(dukha)’는 고통을 의미하는데 이는 산스크리트어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스승을 뜻하는 구루(Guru), 얼굴을 뜻하는 무카(mukha) 등이 지금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필리핀이 이정도라면 동남아시아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세계의 인도화에 대하여
또 한가지 인도가 세계사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인도화입니다. 이는 동남아시아에서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동남아시아를 ‘인도차이나(Indochina)’라 하는데 중국 보다 인도 영향이 압도적임을 말합니다. 이에 대하여 인도인들의 동남아 이주 영향도 있을 것이라 합니다. 심지어는 고대 동남아는 인도의 식민지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늘날 동남아시아는 인도화된 동남아라 볼 수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전승된 이야기에는 고대인도의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고 합니다. 동남아 유적지에서는 두 서사시에 대하여 부조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인도화는 동남아 그치지 않았습니다. 히말라야 산맥을 넘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동아시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에 대하여 조준호 선생은 대표적으로 천수경을 들고 있습니다.
천수경은 불교인들의 생활경전입니다. 법회할 때나 불교의식에서 천수경은 빠지지 않습니다. 특히 신묘장구대라니는 천수경의 꽃과 같습니다. 그런데 다라니가 힌두신을 찬양한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마 한국불교를 신봉하는 스님이나 불자들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놀랍게도 시바신과 비쉬누 신을 찬탄 하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시바신(神)과 성관자재(聖觀自在), 인도신화로 본 신묘장구대다라니(천수다라니)(2010-09-09)’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아리안 인종 우월주의
인도사람들은 스스로 인도를 세상의 중심이라고 합니다. 세계지도를 펼쳐 보면 중앙에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적도 가까이에 있는 인도아대륙(印度亞大陸)은 실제 크기 보다 작게 보입니다. 그러나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대륙과 맞먹는 면적입니다. 인도아대륙은 대륙에 준하는 넓은 땅입니다.
인도는 사대문명 발생지중의 하나입니다. 이는 인더스강 유역에서 발견된 유적으로 확인 됩니다. 그런데 이전에는 유럽인들이, 특히 독일인들이 아리안 인종 우월주의에 인도를 활용했다는 사실입니다. 언어가 인도유럽어족으로 뿌리가 같다고 하여 고대 아리안들이 인도를 식민지로 차지 했다는 것입니다. 히틀러가 아리안족의 우월성을 내세워 전세계를 정복하고자 한 것도 잘못된 인종관과 언어관에 따른 것이라 합니다.
조준호 선생에 따르면 언어의 뿌리가 같다고 하여 인종적으로 같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합니다. 인종과 어족은 정합적으로 맞지 않음을 말합니다. 아리안이 반드시 백인만 의미 하지 않음에도 독일계 사람들은 인종적으로 남용 했음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아리안 우월주의는 1922년 인더스강 유역에서 인더스문명이 발견됨에 따라 깨졌습니다. 오히려 침략자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야만적이었음이 드러났다고 합니다.
구법승이 귀국을 포기한 이유는
조준호 선생 강연에 따르면 그 옛날 인도로 구법여행 떠난 승려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한반도 출신의 구법승도 14명 가량이라 합니다. 그런데 모두 다 귀환 한 것은 아닙니다. 도중에 죽기도 하고 그곳에서 아예 눌러 앉아 버리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귀국을 포기한 것일까? 이런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인도가 살기 좋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법승이 활동하던 시기의 인도는 동아시아의 국가와는 달랐습니다. 비교적 종교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술과 고기 등 계율에 어긋나는 삶을 자제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동아시아의 전제군주들과 달리 인도의 통치자들은 수행자를 공경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은 초기경전과 율장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디가니까야 ‘수행자의 삶의 결실에 대한 경(D2)’를 보면 아자따삿뚜왕이 수행자에 대한 공경의 예를 갖추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느 하인이 출가하여 부처님 제자가 되었을 때 “그에게 인사하고 일어나 환영하고 자리를 권하고 의복, 음식, 처소, 필수약품을 마련해 초대할 것입니다.” (D2)라는 장면입니다. 왕은 수행자에게 “저는 법에 따라서 그에 대한 보호와 안전에 만전을 기할 것입니다.”(D2)라 했습니다.
율장대품에 따르면 출가해서는 안될 사람 유형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도적질을 한 자가 감옥을 부수고 나와 출가한 자가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람들은 이구 동성으로 체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여보시오,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마가다 국의 왕 쎄니야 빔비싸라께서 ‘수행자 싸끼야의 아들들 가운데 출가한 자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벌도 할 수 없다.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니, 올바로 괴로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청정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라고 명령했습니다.”(Vin.I.75)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승원은 왕의 권한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고 수행자들은 보호 받았음을 말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부처님은 “감옥을 부순 도적을 출가시켜서는 안된다. 출가시키면 악작죄가 된다.” (Vin.I.75)라 했습니다.
인도에서 수행자는 왕으로부터 보호를 받았습니다. 또한 왕도 수행자에게 예배를 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동아시아 전제국가에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존중 받는 인도에서 구법승들이 오래 머물고 싶었던 이유였는지 모릅니다.
3년을 여행한 사람이라야
보통불자에게 있어서 인도는 마음의 고향입니다. 매일 초기경전을 열어 보고, 초기경전을 근거로 하여 인터넷잡문을 쓰고 있습니다. 초기경전에 나오는 ‘제따와나’, ‘벨루바나’ 등의 지명이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바라드와자라’는 이름이 생소했으나 지금은 익숙합니다. ‘수마나’, ‘말리’ 등 수 많은 이름이 이제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일까 요즘 초기불교를 신봉하는 불자들은 경전 속에 등장하는 이름을 법명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올해 1월 초에 인도성지순례 다녀왔습니다. 인도로 보아서는 건조한냉기에 해당됩니다. 그때 당시 영상 6도 가량 되었는데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혹서기를 겪은 바 없습니다. 인도에서 9년 유학했다는 조준호 선생에 따르면 인도에서 혹서기를 겪어 보아야 인도다운 맛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혹서기의 끔찍한 생활을 들으면 인도라는 나라는 지옥입니다. 그래서 조준호 선생은 “인도를 3일 여행한 사람은 천상세계를, 3개월 여행한 사람은 지옥을, 3년을 여행한 사람이라야 비로서 세상을 다닌 것 같다.’”라 했습니다,
2018-09-07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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