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회

문명 가로지르기에 성공한 불교, 조준호선생의 ‘욕망을 넘어 행복으로’ 3강

담마다사 이병욱 2018. 9. 21. 11:03

 

문명 가로지르기에 성공한 불교, 조준호선생의 욕망을 넘어 행복으로’ 3

 

 

처음 일본에 갔었을 때

 

문화충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 전 대리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입사한지 5년 만에 일본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월급타먹기가 미안한 할 정도로 세월을 보냈는데 마침내 밥값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발된 제품의 양산을 앞두고 일본에서 생산장비를 들여와야 했습니다.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 충격 받았습니다. 도쿄와 요코하마 중간에 있는 작은 공업도시에 처음 내렸는데 그들의 질서에 충격 받았습니다. 마침 퇴근시간이라 단정하게 차려 입은 샐러리맨을 포함하여 사람들이 정류장에 줄을 서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1990년 당시 일본의 작은 도시는 모든 것이 깨끗하고 질서 있고 안정감 있었습니다. 그들의 질서와 안정적 삶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를 문화충격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처음 가본 독일에서

 

다음해 독일로 가게 되었습니다. 개발된 제품이 마침내 생산이 되어 독일시장에 처음으로 진출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현지에서 생긴 문제는 현지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이를 필드테스트라(Field Test) 합니다.

 

처음 독일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푸르렀습니다. 녹색의 도시, 녹색의 나라 같았습니다. 건물은 마치 예술품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의 삶은 극히 안정적이었습니다. 주오일제이어서 금요일 오후만 되면 주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 사는 곳에 술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처음 가본 독일에서 문화쇼크를 먹었습니다.

 

문화는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흔히 말하기를 문화는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고 합니다. 역류하는 현상은 볼 수 없습니다. 대부분 수준 높은 문화를 받아 들이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가 남아시아 문화를 받아 들인 것도 이에 해당됩니다.

 

인도문화강좌, 조준호 선생의 인도이야기 세 번째 강연을 들었습니다. 9 20일 문화살롱 기룬에서 열린 조준호 선생의 세 번째 이야기는 우리 삶에 끼친 인도 문화의 영향에 대한 것입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문화는 교섭적이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쪽이 월등하게 높은 문화라면 과연 이런 현상이 성립될까? 이에 대하여 조준호선생은 동아시아 문화가 남아시아(인도)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라며 질문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가 인도에 영향을 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케이팝(K-Pop)’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케이팝은 엄밀히 말해서 서양의 물질문명의 한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스마트폰이라 할지 모릅니다. 삼성이나 엘지 스마트폰이 세계를 석권하기 때문에 인도에 영향을 준 것이라 여길지 모릅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것은 한시적입니다. 인도인들의 문화에 영향 주지 않습니다.

 

동아시아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도로 대표 되는 남아시아에 영향을 준 것을 찾아 보기 힘듭니다. 동아시아 문화가 유럽을 포함하여, 서유럽, 아프리카 등에 영향을 끼친 것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하여 조준호선생은 동아시아가 세계에 영향을 준 것은 아직까지 없는 것 같습니다.”라 했습니다.

 

자존심 강한 중화민족도 불교 앞에서는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문화가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일은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인도문화가 동아시아에 영향을 주었지만, 반대로 동아시아문화가 인도에 영향을 준 것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는 중국에 불교를 받아 들이는 것으로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중국은 예로부터 스스로 세상의 중앙이라 했습니다. 사대문명의 발상지중의 하나인 중국인들의 문화적 자부심은 중화사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받아 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불교와 공산주의입입니다.

 

중국에서 불교를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후한 때부터입니다. 이에 대하여 최준식 교수의 글에 따르면 그 자존심 강한 중화민족도 불교 앞에서 그만 어쩔 줄 모르고 수용하기에 급급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문화에 대한 오만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중국인들이 유일하게 그것도 전적으로 받아 들인 외래사상은 불교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불교 1800년의 역사에서 800년은 경전 번역의 역사입니다. 고급문화의 보고와 같은 인도불교를 배우기에 급급한 시기였음을 말합니다. 그래서일까 수 많은 구법승들이 인도로 출발했고, 또한 인도에서 도래승이 와서 전법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인도가 문화가 중국보다 월등히 높은 위치에 있었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반대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중국문화가 인도에 수용되어 꽃을 피웠다는 이야기를 아직 들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문명가로지르기(Intercultural, Intercross)

 

인도와 중국은 사대문명의 발상지입니다. 그러나 종교로 보았을 때는 인도문화의 일방통행과도 같았습니다. 불교사상과 불교문화를 접한 중국에서는 고스란히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전에 보지 못하던 고급사상이었고 고급문화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와 회교는 중국에서 발 붙일 수 없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에 대하여 김종욱교수는 문명가로지르기로 설명합니다.

 

2009년 불교TV사이트에서 김종욱교수의 불교로 이해하는 현대철학강연을 들었습니다. 다시보기 기능을 이용하여 서양에서 불교 피울 있을까, 아리안족의 동서양 문명 가로지르기’(2009-11-22)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습니다.

 

김종욱교수에 따르면 불교가 중국에 정착하게 된 것에 대하여 ‘문명 가로지르기(Intercultural, Intercross)’에 성공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인도와 중국은 문명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또 언어학적으로 전혀 이질적인 문화임에도 불구 하고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화 되어 중국에서 불교가 꽃피었다는 사실입니다.

 

인도문화는 중국보다는 오히려 유럽과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도아리안은 유럽아리안과 뿌리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언어의 뿌리도 같습니다. 그래서일까 유럽에서 불교를 수용하는 것이 더 빠르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국은 인종적으로도 언어적으로도 전혀 이질적인인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험준한 산맥과 사막을 가로질로 자존심 강한 중국문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를 문명가로지르기라 합니다.

 

동서양의 문화의 무덤, 타클라마칸 사막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중국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후에 일어난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중국에서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정수일박사는 실크로드 견문기에서 마니교나 경교 등 서방 종교는 투르판의 고산 장벽을 넘지 못한 채 동전을 멈췄다.”라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2013년 실크로드를 여행할 때 문명가로지르기에 성공한 불교,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군에서’(2013-08-03)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긴 바 있습니다.

 

동서양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타클라마칸 사막입니다. 거대한 사막은 히말라야 산만큼이나 큰 장벽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지 못하듯이, 어떤 사상과 문화도 함부로 사막을 넘지 못했습니다. 오직 불교만이 사막을 넘어 동진해서 중국에 이르렀습니다.

 




타클라마칸 사막이 있어서 동양과 서양의 왕래를 가로 막았습니다. 그 가운데 오아시스 도시 투르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투르판은 해발보다 낮은 도시입니다. 그러다보니 가마솥처럼 더운 곳입니다. 동서로 120키로에 달하고 남북으로 60키로에 달하는 거대한 분지는 가마솥 같아서 모든 문명, 모든 인종, 모든 종교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는 곳이 투루판이라 합니다. 그래서 투루판은 온갖 문화가 융합되어 있는 곳이고 또한 각민족들이 흥망성쇠한 곳이기도 합니다. 문화의 용광로 같은 곳이 투루판지역이라 합니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동서양의 문화의 무덤이라 합니다. 동쪽의 중국문화도 타클라마칸을 넘지 못했고, 서쪽의 기독교문화와 이슬람문화도 타클라마칸을 넘지 못했습니다. 유일하게 인도의 불교문화가 타클라마칸을 넘어 동쪽으로 갔습니다. 불교는 대륙가로지르기, 인종가로지르기, 언어가로지르기, 문화가로지르기에 성공한 최초의 종교입니다.

 

한국이 인도영향을 받은 것에 대하여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타클라마칸을 넘지 못한 이유는 여럿 일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교리적으로 천박하다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이 유교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바이블에 쓰여 있는 이야기를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경을 접했을 때 상황은 달랐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 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었고 깊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그래서일까 후한시대 이래 거의 8백년간 경전번역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동아시아인들의 삶을 지배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에 불교가 들어 왔는데 한국문화는 사실상 불교를 바탕으로 한 민족문화와 다름 없습니다. 이는 엄밀히 따지면 인도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조준호선생은 세 번째 강연에서 한국이 인도영향을 받은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 예를 들어서 세세하게 설명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옹고집전, 자린고비, 고려장 등 민담이라는 불리우는 이야기가 불교경전 중의 하나인 자따까에서 유래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인은 제석천에 유래된 것이라 합니다.

 

누군가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다라고 말했을 때 이 말은 유식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가 만난 것도 전생 인연이야라고 말하는 것 역시 불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특히 내세와 전생에 대한 것은 불교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음을 말합니다. 유교나 기독교에서는 전생이라는 말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지명에도 불교에 대한 것이 많습니다. 불광이라는 지명도 불교적인 것이고, 청량이라는 지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국의 산이름에 반야, 비로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도 인도불교의 영향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자면 밑도 끝도 없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한국에서 인도에 영향을 준 것은 전무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은 중국의 문화가 인도문화에 영향을 준 것이 없다는 사실과도 일치합니다.

 

 

누구든지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면

 

선진국에 가면 문화충격 받습니다. 그들의 질서와 안정된 모습에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 외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따라 잡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문화충격은 정신적인 것에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로 나타납니다.

 

이제까지 불교를 접한 사람치고 충격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이 이것이 거룩한 진리입니다.”라며 사고와 팔고를 이야기했을 때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현재의 삶과 비추어 보아 틀림 없을 때 진리로서 받아들이게 됩니다.

 

동아시아에서 불교를 접했을 때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전에 접하지 못했던 것들로 듣도 보도 못했던 고급사상이었고 고급문화이었습니다.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부처님이 사성제를 설했을 때 이를 부정할 사람이 없었듯이, 자존심 강한 중화민족도 몇 단계 위의 고급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진리 그 자체입니다. 누구든지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면 진리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초기경전을 읽으면 감탄을 넘어 탄식을 하고 쇼크에 빠집니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사자의 경’(S22.78)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저 장수하는 하늘사람들은 아름답고 지극히 행복하고 높은 궁전에 오래도록 살아도 여래의 설법을 듣고 대부분 벗이여, 우리들은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여겼다. 벗이여, 우리들은 견고하지 않은 것을 견고하다고 여겼다. 벗이여, 우리들은 상주하지 않은 것을 상주하다고 여겼다. 벗이여, 우리는 실로 영원하지 않고 견고하지 않고 상주하지 않지만 개체가 있다는 견해에 사로잡혀 있었다.’라고 두려움과 전율과 감동에 빠진다.”(S22.78)

 

 

누구든지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면 두려움과 전율과 감동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게 사는 자에게 그 행복이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이라 말하면 두려움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해법도 제시했습니다. 부처님은 괴로움의 진리와 괴로움의 발생의 진리만 설한 것이 아니라, 부처님은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도 설했고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방법에 대한 진리도 설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았을 때 감동하게 될 것입니다.

 

불교는 미래 인류의 새로운 패러다임

 

불교가 처음으로 동아시아에 전래 되었을 때 사람들은 쇼크 먹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선진국에서 접한 물질문명에 대한 충격보다 더 강력한 것입니다. 어느 모로 보나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로서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마치 사군을 거느린 대군이 성문에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꼬끼리부대, 기마부대, 전차부대, 보병부대로 이루어진 막강한 사군을 거느린 군대가 있습니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사군을 보고서 성문을 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이 괴로움의 진리, 괴로움의 발생의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에 대한 진리를 설했을 때 누구나 진리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면 스스로 무장해제 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존 가졌던 사상을 모두 내려 놓고 가르침을 진리로서 받아 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동아시아에서 불교전래 과정에서 지켜 보았습니다. 그런데 불교의 문화가로지르기는 이제 유럽과 미국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서구사람들 어느 누구도 불교를 접하면 충격에 빠지지 않을 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최초로 문화가로지르기에 성공한 종교입니다. 서구기독교문화에 젖은 사람들도 불교를 접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경전이 매우 시시하고 천박하게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불교는 미래 인류의 새로운 패러다임입니다. 그 옛날 인종과 언어를 가로질러 타클라마칸을 사막을 넘어 동진했듯이, 이제 불교는 인종과 종교의 장벽을 넘어 서진하고 있습니다.

 

 

2018-09-2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