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까야강독모임에 매번 빠지지 않는 것은
오늘 책이 나왔습니다. 문방구에 인쇄와 제본을 의뢰한 ‘원음향기 가득한 서고의 저녁’입니다. 책의 형태로 만들어 놓고 보니 모니터로 보던 것과 느낌이 다릅니다. 비록 문방구에서 임시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지만 진짜 책처럼 보였습니다. 비록 15권에 지나지 않지만 처음으로 책을 만들어 본 것입니다.
책이 나오게 된 것은 전재성박사의 니까야강독모임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후기를 작성했기 때문입니다. 2년 동안 계절이 여덟 번 바뀌었는데 강독모임이 열릴 때 마다 기록해 둔 것이 쌓이고 쌓여서 책의 형태로 된 것입니다.
책의 서문을 정평불 카톡방에 올렸습니다. 이전에 출판사를 경영했던 전문경영인 한분이 책을 유상으로 사겠다고 하면서 출간을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거절했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책으로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카톡방에서는 책을 구매하겠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비용이 꽤 들어 가기 때문에 유상으로 구매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추가로 25부를 더 인쇄했습니다. 구입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주소를 별도로 받아 택배로 보내 주고자 합니다. 먼저 도착한 15권 중의 일부를 택배로 보내 주었습니다.
책을 내게 된 것은 전재성박사의 영향이 큽니다. 니까야강독모임이 없었다면 책의 형태로 낼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2년 동안 38회 까지 기록이 쌓인 것도 큰 이유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도현스님이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도현스님은 전재성박사의 후원자이자 강독모임 멤버입니다. 스마트폰으로 보기에 불편하다고 하여 프린트 해달라고 요청했었습니다. 도현스님 한 분을 위해서 프린트 했다면 그것으로 그쳤을 것입니다. 이왕이면 더 만들어서 나누어 주고자 했기 때문에 책의 형태로 나온 것입니다.
니까야강독모임이 3년째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2016년 7월 홍제동 아파트에서 모임이 시작된 것은 어느 불자가 간곡하게 요청한 것이 시초입니다. 강독모임은 2016년 8월부터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모임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자꾸 사람들이 줄어 드는 것입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어떤 달에는 3명이 참석했습니다. 그럼에도 전재성박사는 평소와 다름 없이 열과 성을 다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마치 무명가수가 관중이 있건 없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 부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모임이 본격화 된 것은 2017년 2월 도현스님과 신도들이 합류하고 나서부터입니다. 장소도 삼송테크노밸리로 옮겼습니다. 이후 2년 동안 전재성박사는 개인 일정을 제외 하고 한번도 빠짐 없이 모임을 이끌어 갔습니다. 그러나 참석자는 좀처럼 늘지 않았습니다. 열명 안팍이 대부분입니다. 한두번 참석하다 그만둔 사람도 많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참석하고 싶어도 시간이 맞지 않아서 참석 못하는 사람입니다. 또 생업 때문에 참석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치를 아는 사람은 계절이 바뀌어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습니다. 모임이 안정화 된 것은 전재성박사와 봉사활동을 함께 했던 법우님들이 참석하면서 부터입니다. 그렇다면 전재성박사는 참석자가 열명 안팍임에도 왜 이런 모임을 유지하는 것일까?
책의 서문에 전재성박사의 자비에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쓴 이유는홍제동시절에 들은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당시 전재성박사는 ‘회향’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동안 번역하느라 너무 바쁘게 살아 왔는데 이제는 독자들을 위하여 무언가 해야 될 때가 되었다라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는 봉사활동에서 고통스런 사바세계에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전재성 박사 입장에서 보았을 때 강독모임은 실익이 없는 것입니다. 늘 번역하기에 바쁨에도 불구하고 모임을 유지하는 것은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번역을 하면 더 진도가 빠르게 나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강독요청에 거절하지 못하고 응한 것은 자비의 마음 때문이라 봅니다. 이와 같은 자비의 마음은 다름 아닌 ‘봉사의 마음’에 기인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전재성박사가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오랫동안 사회봉사활동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전재성박사는 김광하 선생과 함께 15년 동안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김광하 선생은 지금은 회향한 봉사단체 ‘작은 손길’ 대표를 15년 동안 맡은 바 있습니다. 주로 노숙자 급식봉사, 독거노인 반찬봉사, 탈북청소년 봉사에 대한 것입니다. 김광하 선생은 전재성박사의 친구이자 후원자이고 편집자입니다. 전재성박사가 실익이 없는 강독모임을 유지한 것은 이와 같은 봉사정신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6년 12월 강독모임에서 전재성박사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행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분은 다름 아닌 김광하선생입니다. 이 말에 매우 공감했습니다. 그런 김광하선생은 안면이 있었습니다. 2016년 가을에 테라가타 출간회에서 처음 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당시 테라가타 교정 작업에 참여 했는데 김광하선생도 교정 했었습니다. 김광하 선생과는 출간회 때 뵙고 인사 나누었습니다. 그때 받은 명함에 ‘사명당의 집’이라는 말이 크게 다가 왔습니다. 사명당의 집에서 노숙자음식준비나 독거노인 반찬을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사명당의 집은 봉사단체 작은 손길의 거점이었습니다.
지행합일의 행자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2017년 1월 황학동에 있는 사명당의 집으로 찾아 간 것입니다. 이날 처음으로 김광하선생과 석명용 사무총장 등과 함께 을지로 굴다리 노숙자 음식봉사에 참여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첫경험은 강렬합니다. 처음으로 접한 노숙자를 제대로 쳐다 보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보살행을 실천하는 천사들(http://blog.daum.net/bolee591/16157530 )’(2017-01-09)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이후 내리 두 달 동안 을지로 굴다리 노숙자 봉사에 매주 참여 했습니다.
전재성박사도 일요일 마다 거의 빠짐 없이 노숙자 봉사에 참여했습니다. 전재성박사 담당은 커피타기입니다. 종이컵에 봉지커피를 털어 놓고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를 만드는 것입니다. 김열권 법사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전재성박사가 강독모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자비의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15년 동안의 사회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봉사정신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자신의 한몸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15년 동안 매주 봉사단체에 참여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일신상의 편리를 위해서라면 굳이 강독모임을 이끌어 가지 않을 것입니다.
니까야강독모임에 매번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사람들은 가치를 알고 있습니다. 잘 듣는 것만 해도 크게 남습니다. 아니 그냥 듣고 앉아만 있어도 충만한 듯합니다. 그러나 듣고 흘려 버린다면 모임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뿐니야여, 수행승이 믿음을 갖추었고, 찾아와서, 가까이 앉아, 질문하고, 귀를 기울여 가르침을 듣고, 가르침을 기억하고, 기억한 가르침의 의미를 탐구하더라도, 의미를 알고 원리를 알아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때까지 여래가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다.”(A8.82) 라고.
2018-12-21
담마다사(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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