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성성하게 깨어 있어야 실재를 봅니다.” 김도이법사의 토요 위빠사나수업

담마다사 이병욱 2018. 12. 23. 09:31

 

성성하게 깨어 있어야 실재를 봅니다.” 김도이법사의 토요 위빠사나수업

 

 

눈을 들어 전광판을 보니 온수역입니다. 전철을 잘못 탄 것입니다. 전철 1호선 수원방향을 타야 했으나 인천방향을 탔습니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더구나 심야 마지막 전철입니다.

 

다시 마지막 전철 종착지 구로역 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자정이 넘어서 전철은 모두 끊어 졌습니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했습니다. 무려 4명을 합승한 택시를 탔습니다. 구로에서 안양 비산4거리까지 2만원 들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 가까이 되었습니다.

 

어디에서 잘못 되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자의적 판단 때문입니다. 종각에서병점행 마지막 전철시간은 11 16분입니다. 11 15분 가량 되었을 때 전철이 도착 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탔습니다. 이것이 잘 못 된 것입니다. 전광판을 확인 했어야 했습니다. 엉뚱하게 인천행을 탄 것입니다. 전철이 일이분 늦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철이 빨리 오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것을 놓친 것입니다. 1분 차이로 시간과 돈과 정력을 낭비했습니다.

 

위빠사나수업이 늦게 끝났습니다.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나자 10 30분 되었습니다. 마음은 이미 전철역에 가 있습니다. 마지막 전철을 타느냐 타지 못하느냐 그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처음 참석한 차법우님 카풀 주선을 하는 바람에 또 10분이 늦어 졌습니다. 점점 마음은 조급해져 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전철만 타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그런데 영 다른 방향입니다. 그 황당함과 낭패감, 종종 있는 일입니다. 이런 감정도 알아차릴 대상일 것입니다.

 

12 22일 위빠사나 수업 시간에 늦었습니다. 당일 4시부터 6 30분까지 불교교양대학 입학동기 송년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4년 입교 했으므로 올해로 16번째 맞는 송년회입니다. 위빠사나 수업은 7시부터 시작됩니다. 김진태선생을 아는 차법우님과 함께 장충동을 향해 전철을 탔습니다. 가락시장역에서 동대입구역까지 무려 세 번 갈아탔습니다. 도착하니 7 50분입니다. 김진태선생의 법문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김진태선생의 법문에서

 

김진태선생은 지난 몇 번의 위빠사나수업 법문을 리뷰해 주었습니다. 선생이 강조한 것을 다시 일깨워 준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 조견(照見)’에 대한 개념 같은 것입니다. 조견에 대하여 단지 비추어보다라고 단순히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 했습니다. 조견은 관찰하다()’라는 뜻이라 합니다. 사마타수행과 위빠사나수행으로 관찰하여 보다라는 뜻이라 했습니다. 반야심경을 수행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입니다.

 

김진태선생은 깨달음에 대하여 인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했습니다. 이를 해탈지견으로 설명했습니다. 해탈 했는지 안했는지는 본인이 잘 알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래서 해탈지견이라 하는데 이는 자신이 해탈했는지 스스로 알고 보는 것이라 합니다. 이와 같은 지와 견에 대하여 신호등의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여실지견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현상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앎(: ñāa)과 봄(: dassana)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앎과 봄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 만약 깨달음이 아는 것으로 그친다면 완전한 깨달음이라 볼 수 없습니다. 앎만 있고 봄이 없다면 마치 장님처럼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에서 녹색불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봄만 있고 앎이 없다면 마치 어린 아이처럼 녹색불의 의미를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녹색불이 켜지면 건너야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안심하고 건널 수 있습니다. 어느 것 한가지라도 결여 된다면 사고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과 봄()이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에 대하여‘야타부따 냐나닷사나(yathābhūta ñāadassana)’라 합니다.

 

지와 견과 관련하여 김진태선생은 팔정도에서 정견이라는 말도 잘못 번역된 말이라 합니다. 정견이 빠알리어로 삼마딧티(sammā diṭṭhi)’인 것은 맞지만 한자어로 정견(正見)’이라 하여 바른 견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지 않음을  말합니다. 정견에 대하여 바른 봄또는 바르게 알고 봄이라 하는 것이 맞다고 했습니다. 이는 바른 앎(: ñāa)과 봄(: dassana)’을 말합니다.

 

김진태선생은 마음 보는 수행에 대해서도 비판 했습니다. 어떤 수행처에서는 마음보는 수행이라 하여 심념처 수행을 강조하지만 마음을 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업을 지었음을 말합니다. 이에 대하여 요단강을 건넌 것이라 하며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지려고 환장하는 것입니다.”라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 보는 수행처에 가지말라고 합니다.

 

김진태선생은 왜 마음 보는 수행을 하지 말라고 했을까? 이에 대하여 보려거든 신념처나 수념처로 보십시오.”라 했습니다. 심념처 수행을 하여 마음을 보더라도 반드시 몸이나 느낌을 보아야 함을 말합니다. 특히 느낌을 보라고 강조했습니다. 느낌 단계에서 알아 차리지 못하면 갈애 단계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 갔을 때 요단강을 건넌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넜다는 것은 갈애와 집착으로 인하여 업으로서 태어남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요단강을 건넜다라는 말 대신 루비콘강을 건넜다라는 말도 사용합니다.

 

김도이선생의 위빠사나 지도

 

김진태선생의 한시간에 걸친 법문에 이어 좌선시간 있었습니다. 김도이선생이 지도했습니다. 좌선시간은 9시부터 10시 까지 약 한시간 가량 진행되었습니다. 만약 법문만 있고 수행이 없다면 반쪽짜리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좌선과 경행을 해야 제대로 된 것 같습니다. 법문만 들으면 무언가 허전한 느낌입니다.

 

이날 좌선은 비교적 잘 되었습니다. 늦은 밤 사위가 모두 고요했습니다. 16명 가량의 사람들은 모두 눈을 감고 김도이선생의 유도법문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10여분에 걸친 유도법문은 매우 편안하고 아늑했습니다. 마치 젊은 어머니가 아기에게 자장가를 읊어 주듯이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핵심을 가로 지르는 법문을 해 주었습니다.

 

김도이선생은 배의 호흡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마하시방법은 배에 집중합니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호흡을 관찰하는 것은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이는 코의 호흡을 관찰하면 사마타로 들어가고 배의 호흡을 관찰하면 위빠사나라 했습니다. 이곳은 위빠사나 수행처이므로 당연히 배의 호흡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배의 호흡을 관찰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강한 대상이 나타나면 관찰대상이 바뀝니다. 코끝이 간지럽다면 관찰대상은 간지러운 부위로 향합니다. 그곳에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평소 같으면 손이 올라가서 터치 해 주어야 간지로움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지켜 보고 있으면 저절로 사라집니다. 그래서 보면 사라진다라고 말합니다.

 

김도이법사는 유도법문에서 깨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배의 호흡을 관찰하는 것 자체가 깨어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호흡관찰로 인하여 더 이상 번뇌가 일어 나지 않았을 때 성성적적한 상태가 될 것이라 했습니다. 몸이 사라지고 관찰하는 마음만 남아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상태가 되었을 때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김도이선생은 성성하게 깨어 있어야 실재를 봅니다.”라 했습니다.

 




이날 좌선은 평소와 다르게 집중이 잘 되었습니다. 이는 앉는 방법이 대폭 개선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전 위빠사나 모임에서 김진태선생이 알려준 방법이 주효한 것 같습니다. 항문과 낭심의 중간을 바닥에 대고 평좌로 하여 한쪽 발을 낭심에 바싹 붙이는 자세가 된 것입니다. 포개진 두 다리가 바닥에 밀착 되었을 때 안정적 삼각대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때 방석은 포개어서 5센티 높이가 되게 해야 합니다. 허리는 곧게 펴고 고개도 펴서 엉덩이와 머리가 일직선이 되도록 했습니다. 두 손은 앞으로 모다 살며시 포갰습니다. 두 엄지는 일으켜서 닿을락 말락 했습니다. 이렇게 안정된 삼각대 상태에서 유도법문을 들으니 저절로 들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6단계 경행 듬듬 나감나감 놓음놓음

 

한시간 좌선이 끝나고 경행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날 경행은 10시가 넘어 시작 되었습니다. 이렇게 평소보다 삼십분이 늦은 것은 동짓날이라 하여 팟죽파티가 있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이번 경행시간에서는 6단계방식을 배웠습니다. 경행6단계방식은 듬듬 나감나감 놓음놓음입니다. 참고로 경행 2단계는 들어서 놓음이고, 경행 3단계는 들어서 나가서 놓음입니다. 이렇게 명칭을 붙여 경행을 하면 번뇌가 들어 올 수 없습니다.

 

김도이선생에 따르면 처음 경행할 때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명칭을 붙임으로 하여 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행 6단계 방식으로 듬듬 나감나감 놓음놓음했을 때 매우 천천히 경행이 진행됩니다. 밤중에 화장실에 갈 때 6단계 방식을 적용하면 시간이 꽤 걸릴 것입니다.

 

청정도론에도 경행하는 방식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지수화풍 사대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경행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6단계로 보이는 경행 방식에 대하여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한걸음 보행하는 경우에 1)들어올림, 2)앞나아감, 3)성큼옮김, 4)아래내림, 5)내려디딤, 6)바닥누름 여섯부분으로 나눈다.”(Vism.20.62)

 

 

청정도론에서 6단계방식은 마하시방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대단히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와 같은 6단계 방식에 대하여 한역으로는 거족, 전보, 횡보, 하족, 착족, 궐지라 합니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성큼옮김(橫步)’에 대하여 말뚝이나 가시나 뱀 등의 어떤 것을 보고 이곳저곳으로 발을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Vism.20.62)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6단계로 설명하는 것은 사대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들어올림(擧足)’에 대해서는 땅의 세계와 물의 세계의 두 세계가 열등하고 불활성적이고, 다른 두 세계는 우월하고 활성적이다.” (Vism.20.64)라 했습니다. 발을 들어 올릴 때 사대가 모두 작용하는데 그 중에서도 풍대와 화대를 주로 볼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경행 하는 것을 통하여 사대를 볼 수 있어서 몸이 물질로 이루어져 있음을 아는 것이라 합니다.

 

늘 깨어 있어야

 

201812 22일 심야의 위빠사나 수업이 끝났습니다. 올해의 경우 다음주 12 29일 한번 남겨 놓고 있습니다. 김도이선생이 법문과 수행을 지도합니다. 12 31일 미얀마로 집중수행 떠나기 이틀 전까지 지도합니다.

 

동짓날 팟죽잔치로 인하여 30분 늦게 시작되었는데 끝날 때도 30분 늦게 끝났습니다. 10시가 넘어가면 늘 불안하고 초조하게 됩니다. 그것은 마지막 전철을 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시간확인은 물로 행선지 확인도 해야 합니다. 늘 깨어 있음을 말합니다.

 

 

2018-12-23

담마다사(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