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을 오가며, 담마 마마까 선원을 향하여
올해도 끝자락에 이르렀습니다. 올 한 해를 보내면서 성과는 어떠했는지 생각해 봅니다. 게으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시간이 남으면 글을 썼습니다. 인터넷 글쓰기입니다. 법문도 논문도 아닌 잡문, 일상적 글쓰기입니다. 글 쓰는데 온 정열을 다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일까 올 한 해 600개 가량 썼습니다.
돈은 아무리 벌어도 온데 간데 없습니다. 그러나 글은 써 놓으면 남습니다. 그래서 돈보다 글을 더 좋아합니다. 조선시대 때는 선비들의 문집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선비들의 블로그입니다. 선비들의 문집을 보면 그 시대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사료로서 가치는 없을지 모르지만 한 개인의 생각을 통하여 그 시대가 어땠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블로그에 올려진 글은 한 개인의 생각과 느낌에 대한 것입니다. 매일 매일 느낌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영역이라 볼 수 있습니다. 네트워크가 서로 연결 되어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접속만 하면 모든 정보는 오픈되고 공유됩니다. 인터넷에 올리는 순간 내 손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한 개인의 생각이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글쓰기에 집착하는 것일까?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인정사정 없이 흐르는 세월에 장사가 따로 없습니다. 써 놓으면 남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비들의 문집처럼 후대 남겨질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입니다.
올해를 되돌아 봅니다. 나는 얼마나 성장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분명 변화는 있었습니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변화입니다. 욕망이 줄어 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변화는 너무 느립니다. 그럼에도 이전과 다른 모습에 스스로 대견해 합니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번뇌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했습니다. 해탈지견이라는 말이 있는데, 해탈 했는지에 대하여 누군가 인가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해탈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남아 있는 번뇌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욕망, 성냄이라는 불선법이 있습니다. 욕망이 사라졌다면 좀더 두고 봐야 합니다. 다시 발현된다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대상을 접했을 때 옛날 상태로 되돌아 간다면 속된말로 도로아미타불이 됩니다. 그렇다면 흔들림 없이 확고한 상태로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온이 생멸함을 보라고 합니다. 몸, 느낌, 지각, 형성, 의식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보는 것입니다.
오온 중에 느낌이 있습니다. 느낌에 대하여 “느낌은 무상한 것이다.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이다. 괴로운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것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써 관찰해야 한다.”(S22.15)라 했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욕망을 대입한다면 “욕망은 나의 것이 아니고, 욕망은 내가 아니고, 욕망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가 될 것입니다.
돈을 중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을 자신과 동일시한다면 유신견 정형구에 삽입했을 때 “돈은 나의 것이고, 돈은 나이고, 돈은 나의 자아이다.”라 할 것입니다. 돈과 자신을 동일시 했을 때 돈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사라지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만족감은 일시적 느낌에 지나지 않고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돈에 올인하는 인생을 살지 않을 것입니다.
이득과 손실, 행복과 불행,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은 사람 사는 곳에서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이러한 사실이 모두 조건 지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괴로운 느낌이 일어났다면 “느낌은 무상한 것이다. 느낌이 생겨나게 하는 원인도 무상한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무상한 것에 의해 생겨나는 느낌이 어찌 무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S22.18)라는 가르침을 접하면 다소 위안이 됩니다.
마음이 심란할 때, 속이 상할 때 초기경전을 접하면 진정됩니다. 괴로운 느낌이 일어 났을 때 “느낌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느낌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도 조건도 실체가 없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실체가 없는 것에 의해 생겨나는 느낌이 어찌 실체가 있을 수 있겠는가?”(S22.18)라는 가르침을 접하면 마음이 안정됩니다. 더구나 “느낌은 무상하고 조건지어지고 연기된 것으로 부서지고야 마는 것, 무너지고야 마는 것, 사라지고야 마는 것, 소멸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것이 소멸하면 소멸이라 한다.”라는 말을 접하면 느낌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올해 끝자락 12월 31일에 비행기를 탑니다. 미얀마행 비행기입니다. 목적지는 담마 마마까(Dhamma mamaka) 국제수행센터입니다. 양곤 외곽지역인 바고로 가는 고속도로 변에 있다고 합니다. 소재지는 ‘Arziwa Kyaung St., Kyungalay Village, Hlegu Township, Yangon’입니다. 미얀마의 ‘우 에인다까 사야도(U Eindaka Sayadaw)’와 한국의 혜송스님, 대성스님, 불자 및 수행자들의 힘으로 2005년에 완공된 미얀마 최초의 한국계 위빠사나 수행 센터라 합니다. 이번 미얀마행에는 한국의 불자들과 함께 갑니다. 생업이 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낼 수 없습니다. 12월 31일부터 1월 13일까지 14일 일정입니다.
아직까지 미얀마에 한번도 가 본적이 없습니다. 관광가는 것이 아니라 집중수행 떠나기 때문에 마음의 고삐를 잡아야 합니다. 선원에서는 기본적으로 팔계를 지키기 때문에 오후불식이 적용됩니다. 하루종일 명상만 하기 때문에 하루가 무척 길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큰 기대를 가지고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떠납니다. 무언가 이루려 하기 보다는 내려 놓는 것이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늘 이상과 현실을 오가며 살아 왔습니다. 매일 글을 남기며 글쓰기 삼매에서 살았지만 미얀마에 가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런 미얀마를 수행의 나라라 합니다. 해마다 수천명의 한국사람들이 나름대로 꿈을 안고 미얀마로 떠납니다. 비행기를 타면 공간이동 하듯이 전혀 다른 세계에 와 있을 것입니다. 미지의 세계로 떠남에 있어서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고 또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합니다. 이상과 현실에서 현실을 잠시 접어 두고 이상의 세계로 떠납니다. 마음 편하게 다녀 오는 것입니다.
2018-12-30
담마다사(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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