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갖춘 사람만이 수행할 수 있다, 떼자사미스님의 아비담마강좌
“두 가지 원인만을 가지고 태어난 자는 이 생에서 수행을 할 수 없다.”참으로 낙담하게 하는 말입니다. 두 가지 원인을 가졌다는 것은 무탐(alobha)과 무진(adosa)을 말합니다. 탐욕없음과 성냄없음의 뜻입니다. 그렇다고 탐욕이나 성냄이 제거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가지 원인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무탐과 무진이라 합니다.
무탐과 무진이라는 두 가지 원인을 가진 자는 욕계의 인간이나 욕계의 천신으로 태어나는 조건이 됩니다. 아무런 원인을 가지지 않았다면, 즉 탐, 진, 치를 원인으로 태어났다면 축생과 같은 악처에 태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두 가지 원인을 가지고 태어난 자는 지혜가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불교의 통찰지를 말합니다. 이렇게 지혜가 결여 되어 태어난 자는 이번 생에서 수행자로 살기 힘들 것이라 합니다. 담마와나선원 아비담마강좌시간에 들은 말은 말입니다.
담마와나선원 탁발법회
요즘 매주 일요일 담마와나선원 탁발법회에 나갑니다. 먼저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부리나케 사무실로 향합니다. 어제 일어난 일을 글로 정리하기 위해서입니다. 다행히 글이 일찍 끝나면 담마와나선원 탁발법회 시간 10시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글이 늦어지면 도중에 들어가기 일쑤입니다. 지난 번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2018년 12월 23일 청파동 담마와나선원으로 향했습니다. 명학역에서 남영역까지는 전철로 38분 걸립니다. 이동시간까지 합하면 50분 잡아야 합니다. 남영역에서 내려서 약 10분 걸어가야 합니다. 숙대입구역에서 내리면 가깝습니다. 대로에서 숙대입구길로 약 사오십미터 걸어가면 작은 골목 입구에 선원을 알리는 작은 입간판이 보입니다.
담마와나선원은 한국테리와다불교의 서울선원과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테라와다불교의 위상과 비교하여 선원은 작고 보잘 것 없는 인상입니다. 차라리 누추하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일반 가정 주택을 임대하여 선원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누추하고 초라하게 보이는 것은 큰 보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봅니다. 재가자들이 십시일반 보시하여 선원을 만들었고 재가자들이 매월 일정금액을 내서 유지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담마와나선원은 재가자들이 사찰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재가자들이 선원을 운영합니다.
요즘 종교시설물을 보면 웅장하고 화려 하기 그지 없습니다. 너른 부지에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 그리고 위압감을 주는 엄청난 구조물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하게 만듭니다. 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팔작지붕에 울긋불긋 단청을 한 법당을 위용이 있어 보입니다. 법당의 부처님은 거대하고 황금색으로 빛이 납니다. 이렇게 크고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에 있으면 신심이 절로 나는 듯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창립된지 9년 밖에 안되는 한국테라와다불교에서 담마와나 선원은 다른 종교시설물과 비교했을 때 열악하기 그지없습니다.
유명하다고 하여 반드시 훌륭한 사람은 아닙니다. 반짝인다고 하여 모두 금은 아닙니다. 크고 화려한 성전을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여법한 것은 아닙니다. 비록 천막에서 법회를 가져도 여법하다면 정법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 종교의 경쟁력은 ‘청정’에 있습니다. 계행에 바탕을 둔 청정한 교단은 언젠가 크게 부흥하고 말 것입니다.
오후불식 하기 위하여
오전 일정은 10시부터 11시까지 좌선합니다. 좌선이 끝나면 11시부터 12시까지 점심공양시간입니다. 아비담마강좌는 12시 30분부터 3시까지 2시간 30분 가량 진행됩니다. 탁발법회이기 때문에 재가불자들은 각자 집에서 조금씩 음식을 가져 왔습니다. 이날 아내가 준비한 음식은 삼치조림과 두부조림입니다. 음식을 한 곳에 모아 놓으니 상으로 가득합니다.
일요일 선원에 가는 날은 팔계를 지키는 날입니다. 가장 크게 신경 쓰는 것은 오후불식입니다. 팔계중에 여섯 번째 항목을 보면 “때 아닌 때에 먹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라는 계목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 오후에는 저녁밥을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허기를 피해 갈 수 없습니다. 미숫가루를 타 마시는 것으로 허기를 때웁니다. 이렇게 팔계를 지키고자하는 것은 연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12월 31일 미얀마로 단기 집중수행 떠나기 때문입니다. 1월 13일까지 2주 일정입니다. 미얀마 ‘담마 마마까’ 국제수행센터에서도 오후불식이라 합니다.
지혜를 갖춘 사람만이
일요일 담마와나선원의 일정은 크게 오전과 오후로 나뉩니다. 오전에는 담마와나 선원장 떼자사미스님과 함께 한시간 동안 좌선합니다. 오후에는 떼자사미스님이 아비담마상가하를 강의 합니다. 교재는 초기불전연구원(초불연)의 아비담마길라잡이입니다.
이번 주 아비담마 강의는 제4장 인식과정에 대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원인 있는 마음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아비담마 공부를 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무탐, 무진, 무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헤매기 쉽습니다. 이럴 때는 늘 89가지 마음도표를 지니고 확인 해 보아야 합니다.
글의 서두에서 두 가지 원인을 가지고 태어난 자는 이번 생에서 수행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두 가지 원인이란 무탐과 무진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생에서 한수행하려면 어떤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야 할까? 아비담마에서는 분명하게 세 가지 원인을 가진 자라 했습니다. 즉, 무탐과 무진과 함께 무치를 가진 자입니다. 특히 무치가 중요합니다. 무치(amoha)라는 말은 다름 아닌 지혜를 가진 자를 말합니다. 전생에 지혜수행을 한 자가 이번 생에서도 지혜수행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 상윳따니까야에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계행을 확립하고 지혜를 갖춘 사람이
선정과 지혜를 닦네.
열심히 노력하고 슬기로운 수행승이라면,
이 매듭을 풀 수 있으리.”(S1.23)
게송에서 ‘지혜를 갖춘 사람(naro sapañña)’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빠알리어 사빤냐(sapañña)는 한역으로 유지혜자(有智慧者) 또는 구유지혜자(具有智慧者)를 말합니다. 지혜를 구족했다는 것은 다름 아닌 ‘생이지자(生而知者)’를 말합니다. 타고날 때부터 지혜를 갖춘 자를 말합니다. 이런 자가 수행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게송에서는 “지혜를 갖춘 사람이 선정과 지혜를 닦네.”라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게송은 청정도론 오프닝 테마와 같습니다.
위 게송은 청정도론 첫 머리에 나옵니다. 그리고 청정도론의 대단원의 막을 내릴때 마지막에도 나옵니다.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게송은 생이지자에 대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이지자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지혜를 갖춘 자는 세 가지 원인에 의한 업생적 결생의 지혜로 지혜를 갖춘 자이다.”(Vism.1.7)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주석을 보면 “무탐, 무진, 무치의 세 가지 원인이 있는 선업의 생겨난 이숙식인데, 존재지속의 고리(바왕가)의 흐름속에 가라앉았다가 언제든지 그것에 조건지어지고 항상 일치하는 존재지속의 고리의 계기를 통해 나타난다.”(성접협 청정도론 38번 각주)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현생에서는
세 가지 원인, 즉 무탐, 무진, 무치를 갖추지 않으면 이 생에서 수행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보통불자라면 이런 말에 주눅들 것입니다. 세 가지 원인을 갖추지 않은 자는 이 생에서 수행할 수 없는 것일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위안이 되는 글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붓다아비담마가 있습니다. 아비담마 관련 서적에는 초불연의 아비담마길라잡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광출판사의 붓다아비담마도 있습니다. 미얀마 ‘멤 틴 몬’이 지은 것입니다. 세 가지 원인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위안의 글이 있습니다.
“두 가지 원인 있는 사람은 지혜(통찰지)가 부족한 지혜와 결합하지 않은 큰 과보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과 천신을 일컫는다. 이 개인들은 제아무리 노력해도 현생에서는 선정과 도를 얻을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현생에서의 명상수행을 하려고 노력한 과보로 다음 생에는 ‘3가지 원인이 있는 개인’이 되어, 명상을 다시 하면 쉽게 선정과 도를 얻을 수 있다.”(붓다아비담마, 231p)
분명히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지혜 없이 태어난 중생도 명상을 하려고 노력하면 이번 생에는 가능하지 않더라도 다음 생에서는 선정에 들어 도와 과를 이룰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비담마길라잡이에서는 희망의 메시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아비담마상가하를 그대로 해석하여 지혜를 원인으로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해서는 “이런 존재들은 선을 통해서나 도를 통해서 본삼매를 얻지 못한다.”라 되어 있습니다.
지혜를 갖추고 태어난 자만이 이 생에서 한수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 수행한다고 했을 때 경장과 논장에 따르면 그는 전생에도 수행자였음에 틀림 없습니다. 수행자로 살면 다음 생에도 수행자로 살아 갈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말합니다. 그것은 지혜를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부들은 지혜, 엄밀히 말하면 통찰지(pañña)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생에서는 수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 말은 이번 생에서 선정에 들거나 도와 과를 이룰 수 없음을 말합니다. 그래서일까 일반사람들은 절에 가자고 해도 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법회가 있어서 함께 가자고 하지만 끌리지 않은 것은 이전 생에 전혀 지혜수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인연없는 중생은 제도할 수 없다고 하는데
흔히 말하기를 ‘인연없는 중생은 제도할 수 없다’고 합니다. 말을 물가에 까지 데려 갈 수 있으나 그렇다고 물을 먹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가르침과 인연이 없는 사람을 억지로 절에 데려가 법문을 듣게 할 수 있지만 계속 유지 되지 못하는 것은 전생에 선근공덕을 심어 놓지 않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앙굿따라니까야 ‘환자의 경’(A3.22)에 ‘약의 비유’가 있습니다. 약을 주면 약발이 먹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약을 주어도 약이 듣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세 부류의 사람으로 설명했습니다. 첫째는 약을 주어도 질병이 치유되지 않는 사람, 둘째는 약과 관계 없이 치유되는 사람, 셋째는 약을 주면 치유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약을 가르침으로 치환 할 수 있습니다.
최악은 약을 주어도 치유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무리 훌륭해도 인연 없는 중생은 제도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설령 약을 주어도 치유 되지 않는 자라도 다른 환자들을 간호 하는 것과 똑 같게 간호 해 준다면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희망 없는 환자라 하더라도 간호를 해서 섭섭하게 느끼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알려 주어도 가르침 근처에도 가려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부처님은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이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 여래를 친견하고 여래로부터 소원하지 않고, 여래가 설한 계율과 가르침을 듣고 여래가 설한 계율과 가르침으로부터 소원하지 않으면, 길을 따라 올바로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실현하는 그러한 사람을 조건으로 가르침을 설하는 것이 결정되며, 또한 이 사람을 조건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가르침이 설해질 수 있다.”(A3.22)
약발이 들지 않는 희망이 없는 환자라 하여 내버려 두면 안될 것입니다. 가르침이 먹혀 들어 가지 않는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 하여 역시 내버려 두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부처님은 희망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남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가르침을 알려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도소의 흉악범이라 하여 가르침과 인연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찾아가 가르침을 알려 준다면 그것을 인연으로 인연으로 언젠가는 가르침과 인연이 될 것입니다.
가르침을 알려 주어도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공부와 인연이 없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범죄자들이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약을 써도 약발이 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원인 없이 태어난 자와 같습니다. 여기서 원인이 없다는 것은 무탐, 무진, 무치라는 원인이 없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 사는 자를 말합니다.
가르침을 알려 주는 것과 관계없이 스스로 가르침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부잘하는 모범생 같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경전을 구입해서 보고 스스로 알아서 수행처를 찾아 다니며 수행합니다. 이런 사람은 선근이 뛰어나기 때문에 무탐, 무진, 무치라는 세 가지 원인을 가지고 태어난 자라 볼 수 있습니다.
경계선상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약을 쓰면 약발이 들고 약을 쓰지 않으면 약발이 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가르침을 알려주면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기회를 만나지 못하면 그대로 있습니다. 청소년이나 군인이 해당됩니다. 청소년에게 포교를 하면 가르침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무탐과 무지라는 두 가지 원인을 타고난 자라 볼 수 있습니다. 지혜가 결여된 자로 태어나더라도 가르침에 대한 기회를 제공하면 가르침의 길로 갈 수 있는 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89가지 마음도표를 보면
이번 생에서 선정에 들어 도와 과를 성취하려면 세 가지 원인을 가지고 태어나야 한다고 아비담마에서는 말합니다. 이런 사실이 보통불자를 주눅 들게 만듭니다. 무탐(alobha), 무진(adosa), 무치(amoha)라 하여 세 가지 원인이라 하는데, 그렇다고 하여 탐, 진, 치가 완전하게 제거 된 상태가 아닙니다.
무탐, 무진, 무치라는 세 가지 원인을 가지고 태어난 자는 전생에 선정이나 위빠사나 수행을 했던 자라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 선정상태에서는 탐, 진, 치가 억압되어서 전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정에서 나오면 다시 탐, 진, 치로 살아갑니다.
무탐, 무진, 무치라는 세 가지 원인을 가지고 태어난 자는 전생에서 선정수행자라 보면 틀림 없습니다. 이 세 가지 원인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이번 생에서 선정에 들거나 도와 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는 89가지 마음 도표로부터 확인됩니다.
89가지 마음도표를 보면 원인 항목에 원인이 2개 인자와 3개 인자가 구분되어 있습니다. 욕계의 경우 2개와 3개가 혼재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색계와 무색계, 그리고 출세간의 사과를 보면 모두 원인이 3개로 되어 있습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색계, 무색계, 사과의 존재가 되려면 무탐, 무진, 무치라는 3개의 원인을 타고난 자여야 합니다. 왜 청정도론 오프닝 테마가 “지혜를 갖춘 사람이 선정과 지혜를 닦네.”(S1.23)라 하여 생이지자로서 지혜를 갖춘 자를 언급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지혜를 갖춘 자는 세 가지 원인에 의한 업생적 결생의 지혜로 지혜를 갖춘 자이다.”(Vism.1.7)라고 추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비담마에서 원인(hetu)하면 즉각 ‘원인 있는 마음’과 ‘원인 없는 마음’을 떠 올려야 합니다. 여기서 원인이 없는 마음이란 무탐, 무진, 무치가 결여된 마음임을 말합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탐, 진, 치의 마음입니다. 대부분 탐, 진, 치로 살아 갑니다. 그런데 탐, 진, 치로 살아 가면 불선업을 짓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탐, 진, 치가 불선법이기 때문입니다.
탐, 진, 치로 살아 간다는 것은 사실상 축생처럼 사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어도 탐, 진, 치로 살아간다면 축생의 삶과 같습니다. 축생의 삶을 살면 다음 생에 축생으로 태어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아비담마 89가지 마음도표에서는 19번과 27번 ‘평온과 함께 하는 조사하는 마음’으로 설명합니다. 19번과 27번 마음이 다음 생을 위한 재생연결식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왜 함부로 살아서는 안되는가
대부분 사람들은 탐, 진, 치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자신이 탐, 진, 치로 살아 간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비담마에서 해로운 마음에 대한 설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해로운 마음은 기본적으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뿌리 박은 마음입니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은 8가지,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은 2가지,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마음은 2가지 입니다. 모두 합하면 12가지 해로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케이스가 악업을 짓는 해로운 마음일까? 붓다아비담마에서는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연습문제 하나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업과 업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즐거운 노래를 흥겹게 듣고 있는 사람에게 일어나고 있는 마음의 이름은 무엇인가?”( 붓다아비담마, 59p)
이 연습문제의 정답은 ‘기쁨이 함께한, 사견과 결합한, 자극받지 않은,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입니다. 매우 긴 답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를 부른다든지 맛 있는 것을 탐하는 것이 사실은 모두 불선업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나쁜 과보를 가져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화를 냅니다. 어떤 이는 화가 나면 화를 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비담마에서는 악처에 떨어지는 불선업을 짓는 것이 됩니다. 성냄과 관련된 연습문제 하나를 보면 “지금 어떤 어머니가 딸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어떤 마음이 일어나고 있는가?”(붓다아비담마, 62p)라 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답은 ‘불만족이 함께 한, 적의와 결합한, 자극받지 않은,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입니다. 걱정하는 것도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의 발현이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음과 관련해서는 어떤 연습문제가 있을까? 두 개 중의 하나를 보면 “업과 업의 결과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이는 ‘평온이 함께한, 의심과 결합한, 미혹에 뿌리박은 마음’이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이 어디 있고 지옥이 어디 있습니까? 죽으면 모두 끝납니다.”라고 떠든다면 이는 업과 업의 작용을 부정하는 ‘삿된 견해(邪見)’입니다. 들떠 있는 것도 어리석음에 뿌리 박은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을 내는 자들은 불선업을 짓는 것이기 때문에 악처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소짓는 마음에 대하여
이와 같이 예를 든 3가지 마음은 해로운 마음 12가지 중에 속합니다. 그런데 12가지 해로운 마음은 89가지 마음도표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떼자사미스님에 따르면 부처님이 불선한 마음 상태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열반을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89가지 마음도표에서는 해로운 마음 12가지와 해로운 과보 12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그 대신에 19번과 27번 ‘평온과 함께 하는 조사하는 마음’ 두 개를 통로로 하여 재생연결식이 일어난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 하지 않은 것은 도표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비담마 89가지 마음도표를 보면 놀랍게도 30번 항에 ‘미소짓는 마음(hasituppāda citta)’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경전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미소짓는 마음에 대하여 붓다아비담마에서는 “붓다나 아라한이 미소 지을 때 그들에게만 일어난다. 이 미소 짓는 마음은 즐거운 정신적 느낌과 함께 하는 반면, 2가지 전향의 마음은 중립적 느낌과 함께 한다는 사실에 주의하라.”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미소짓는 마음은 붓다나 아라한에게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경전에서는 “이때에 세존께서는 길을 벗어나 어떤 장소에서 미소를 지었다.”(M81)라는 식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부처님이 미소지으면 아난다가 “세존이시여, 어떠한 원인, 어떠한 조건 때문에 세존께서는 미소를 보이셨습니까? 여래는 이유 없이 미소를 보이시지 않습니다.”(M81)라고 물어 봅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비담마논장은 철저하게 경전을 근거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래 살수록 더 큰 악업을
사람들은 대체로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것 같습니다. 이는 다름아닌 탐, 진, 치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탐, 진, 치로 살면 축생처럼 사는 것이기 때문에 축생 등과 같은 악처에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마음은 제멋대로이고 기본적으로 불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항상 즐기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이 음식을 먹고, TV를 보고, 음악을 듣고, 재미를 추구합니다. 이와 같은 마음은 기본적으로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즐거움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때 화를 냅니다. 그래서 탐욕과 성냄은 조건에 따라 수시로 바뀝니다. 이와 같은 탐욕과 성냄이 불선업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음일 것입니다.
마음은 변덕이 죽 꿇듯 변합니다. 변하는 마음은 초당 수억번이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은 유익한 과보를 불러오는 마음보다 해로운 과보를 불러 오는 마음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면 살면 살수록 악업을 짓게 됩니다. 오래 살수록 더 큰 악업을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비담마 강좌를 듣는 것만 해도
탐, 진, 치로 사는 것은 동물적 삶과 같습니다. 축생들은 예외 없이 탐, 진, 치로 살아갑니다. 만약 인간이 탐, 진, 치로 살아 간다면 축생의 삶과 다름 없습니다. 개처럼 산다면 개로 태어날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 어느 외도는 개처럼 살았습니다. 개처럼 살며 고행을 하면 천상에 태어날 것이라 믿은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그는 행위한 대로 태어납니다.”(M57)라 했습니다. 개처럼 산다면 개로 태어날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 돼지도살업자 쭌다가 있었습니다. 그는 한평생 돼지 도축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가 죽을 때 괴이한 행동을 했습니다. 돼지처럼 꿀꿀거리며 기어다닌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애완견과 함께 사는 사람이 애완견에 빠져 살면 개로 태어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업이 습관화 되었을 때 그 업이나 업의 표상으로 인하여 개로 태어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반면에 수행자로 태어날 것을 서원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 수행자로 태어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무탐, 무진, 무치라는 세 가지 원인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인간은 지혜가 결여된 상태로 태어납니다. 무탐과 무진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자는 지혜가 결여 되어 있기 때문에 이번 생에서 선정에 들 수 없고 도와 과도 이룰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희망도 있습니다. 떼자사미스님에 따르면 “이렇게 아비담마 강좌를 듣기 위해 앉아 있는 것은 세 개의 원인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라 했습니다.
2018-12-25
담마다사(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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