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문화와 기증관, 담마마마까 수행기7
2019년 1월 3일
담마마마까는 4만평이 넘는 너른 부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개발 된 곳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나머지 공간은 미래를 위해서 확보해 놓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개발된 공간은 마치 정원처럼, 공원처럼, 식물원처럼 잘 가꾸어져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수 많은 나무와 식물이 있다.
대나무류 종류만 해도 사오종 되는 것 같다. 야자수 종류도 역시 사오종 된다. 이외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수종이 있다. 1월의 날씨임에도 꽃이 피는 나무도 있다. 선원에는 온대나 한대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소나무 같은 침엽수도 있다.
온갖 수종으로 가득하고 무성한 선원은 한가롭고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오뉴월을 연상케 하는 포근한 날씨이다. 아침에는 약 20도 가량으로 상쾌하다. 낮에는 30도 가량 치솟는데 햇살이 강렬하다. 그러나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다. 우리나라 겨울날씨와 비교하면 마치 천상에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낮에는 사람 보기 힘들다.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음의 밭을 가는 일일 것이다.
한국어 이름을 가진 거리와 건물
담마마마까에는 여러 개의 건물이 있다. 가장 많은 것은 꾸띠라 불리우는 숙소이다. 87번 까지 있으니 일인일실일욕실 숙소가 87개 일 것이다. 그러나 2층 짜리 건물도 3층 짜리 건물도 있어서 방은 더 많이 있다. 참고로 현재 선원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150명 가량 된다고 한다.
선원은 하나의 작은 타운과 같은 것이다. 격자형으로 도로가 나 있는데 도로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다. 가장 중앙에 있는 도로이름은 ‘대법당로’이다. 도로마다 도로명이 부여 되어 있는데 한국이름도 많다. 그 중의 하나가 ‘덕운화길 DEOK UN HWA STREET’이다. 아마 큰 보시자를 기리기 위하여 이름을 붙여준 것이라 볼 수 있다.
선원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이 오피스이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종무소 같은 곳이다. 그런데 간판을 보면 미얀마와 한글 그리고 영어로 되어 있다. 정문 아치에도 ‘담마마마까 고려사 국제선원’이라 쓰여 있다. 미얀마 국제선원에서 이렇게 한글명칭을 가지고 있는 곳은 이곳 담마마마까가 유일할 것이다.
담마마마까의 랜드마크 기증관
아침이나 점심공양을 먹고 나면 산책을 한다. 소화도 시킬 겸 선원을 한바퀴 둘러 보는 것이다. 그런데 선원이 크다 보니 가 보지 못한 곳이 많다. 이곳저곳 둘러 보다 최종적으로 가게 되는 곳이 있다. 그곳은 기증관이다. 조감도를 보면 영어로 ‘Donor’s Record Plate’라 되어 있다.
어느 도시이든지 랜드마크(Land Mark)가 있다. 지역이나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물을 말한다. 대게 커다란 빌딩을 말한다. 담마마마까에서 랜드마크는 어떤 것일까? 아마도 기증관이라 볼 수 있다. 가장 크고 가장 큰 건물이기 때문이다. 함께 한 선생에 따르면 미얀마의 재벌이 기부한 것이라 한다.
기증관은 담마마마까 모서리 한켠에 있다. 나중에 건립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조감도를 보면 모서리 한쪽이 튀어나 보인 곳에 있다. 그러나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 큰 행사가 있을 때 사용할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기증관은 얼마나 큰 건물일까?
기증관은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1층과 2층에는 툭터진 너른 홀로 되어 있다. 들어가 보면 마치 작은 학교 운동장처럼 넓다. 현재 대법당으로 사용되는 공간도 무척 넓은데 다 들어가면 천명 가량될 것이다. 그런데 기증관의 실내 공간은 이 보다 두 배는 넓은 것 같다.
현재 150명 가량 사는 선원에서 수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증관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사용될까? 미얀마에서는 4월달에 축제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설과 같은 것이다. 그때 수 많은 사람들이 선원을 찾는다고 한다. 수천명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그때 필요한 것이다.
미얀마 불자들의 기증문화
선원은 수많은 기증자들의 보시로 이루어져 있다. 꾸띠라 불리우는 개인숙소 역시 기증자들이 지어 준 것이 많다.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숙소가 있다. 모든 숙소의 사이즈는 모두 같지만 시설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침대가 두 개에다 냉장고, 온수기, 세탁기 등이 설치되어 있는 숙소를 말한다. 이런 숙소는 장기 체류자에게 우선 배정된다. 그런데 시설이 좋은 숙소는 미얀마 재벌이 기증한 것이라 한다.
미얀마에서는 대다수가 불교를 신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불자들은 선원에 들어가서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기증한 숙소에서 머물며 수행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콘도를 분양받아 쉬러 가는 것과 대비된다. 미얀마 불자들은 선원에서 8계를 지키며 틈만 나면 선원에서 수행을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불자들이 절에 가서 기도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한국의 콘도처럼 숙소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선원에 수행하러 온 사람들이 사용한다. 그래서일까 기증자의 열쇠가 채워져 있는 사물함을 볼 수 있다.
미얀마의 기부문화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탁발의 전통이 살아 있는 것도 기부문화가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자들이 선원에 커다란 기증관을 지어 기부하는 것이나 숙소를 지어 기부하는 것이나 오랜 전통에 따른 것이다. 이와 같은 부자들의 기부문화는 부처님 당시부터 있어 온 것이다.
사방승가에 보시한 대부호
초기경전을 보면 부처님이 머물던 벨루바나(죽림정사)와 제따바나(기원정사)가 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사원이 있는데 모두 신심 있는 불자들이 기부한 것이다. 벨루바나와 관련하여 율장을 보면 빔비사라왕이 기증한 것으로 되어 있다. 부처님을 존경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된 빔비사라왕은 “세존이시여, 나는 이 벨루바나 숲을 부처님을 비롯한 참모임에 기증하겠습니다.” (Vin.I.39)라 했다. 빔비사라왕은 부처님 개인에게 숲을 기증한 것이 아니라 상가에 기증한 것이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빔비사라왕이 기증한 숲에서 살았다. 그렇다고 지붕이 있는 집에서 산 것은 아니다. 율장소품 ‘처소의 다발’에 실려 있는 ‘정사건립의 인연’ 이야기가 있다. 율장에 따르면 “그런데 그때 세존께서는 수행승들에게 와좌처를 마련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수행승들은 여기저기 숲속이나, 나무밑이나, 산중이나, 산협이나, 산굴이나, 무덤이나, 우거진 숲이나, 노천이나, 짚더미에서 지냈다.”(Vin.II.146)라 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라자가하에 대부호가 있었다. 그는 아침 일찍 공원에 나갔는데 부처님의 제자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눈을 아래로 하고 위의를 갖춘 모습에 감동 받았다. 그는 부처님 제자들의 보습을 보고나자 마음이 기쁘고 청정해졌다. 이에 대부호는 “제가 정사를 짓는다면 저의 정사에 거주하시겠습니까?” (Vin.II.146)라고 수행승들에게 제안했다. 수행승들이 이런 사실을 부처님에게 알리자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다섯 가지 방사, 즉, 정사, 평부옥, 전루, 누옥, 동굴을 허용한다.”(Vin.II.146) 라 했다. 이렇게 해서 최초로 지붕이 있는 집이 지어졌다.
율장소품에 따르면 라자가하 시의 부호는 단 하루 만에 예순 개의 정사를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정사는 비바람 정도 막을 수 있는 작은 거처를 말한다. 그런데 기증하려 하다 보니 누구의 소유로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대부부호는 부처님에게 “세존이시여, 그 정사들을 제가 어떻게 조치하면 됩니까?” (Vin.II.146) 라며 물어 보았다. 이에 부처님은 “장자여, 그렇다면, 그 예순 개의 정사는 현재와 미래의 사방승가에 봉헌하십시오.” (Vin.II.146)라 말씀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기증한 모든 것들은 상가의 소유임을 알 수 있다.
담마마마까에서 볼 수 있는 멋진 건물은 미얀마 재벌이 기증한 것이라 한다. 마치 부처님 당시 벨루바나에 정사를 지어 기증한 대부호를 보는 것 같고 제따와나를 건립하여 기증한 아나타삔디까를 보는 것 같다. 이들 부호들은 공통적으로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청정함’을 보았을 것이다. 그에 따라 자신도 청정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신도 청정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사원을 만들어 상가에 보시한 것이다.
나눔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동산
담마마마까 기증관은 산책코스 마지막 장소이다. 막혀서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선원에서 몰려 다니며 대화하는 것은 지적사항이 된다. 가급적 조용히 홀로 사띠 하며 산책하는 것이다.
기증관 주변은 야자수가 잘 가꾸어져 있다. 시원스럽게 죽죽 뻗어 나간 커다란 가지에는 아이 머리통 만한 야자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사람들은 미얀마를 우리 보다 못사는 후진국이라 한다. 그러나 반드시 물질적으로 가룰 수 없다. 미얀마불교를 접해 보니 그들은 우리 보다 훨씬 더 앞서 가 있는 불교선진국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기부문화가 발달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탁발의 전통이 살아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담마마마까의 모든 것은 불자들의 기부에 의한 것이다. 재벌은 재산 규모에 맞는 커다란 기증관을 만들어 승가에 기부했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기부가 이어져서 오늘날 담마마마까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거기에는 한국인들도 있다. 보시와 보시, 나눔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동산을 보았다.
2019-01-22
담마다사 이병욱
'수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담마마마까 수행기9 (0) | 2019.01.24 |
---|---|
불사리탑, 담마마마까 수행기8 (0) | 2019.01.23 |
통증관찰하기, 담마마마까 수행기6 (0) | 2019.01.21 |
아침식사, 담마마마까 수행기5 (0) | 2019.01.20 |
오리엔테이션, 담마마마까 수행기4 (0) | 2019.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