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리탑, 담마마마까 수행기8
2019년 1월 3일 오후
사원을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경우 대웅전이라 볼 수 있다. 대웅전에 있는 불상이 사원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사찰에서는 대웅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로전, 관음전 등 주불에 따라 법당 이름이 다르다. 그런데 한국의 법당에는 반드시 석가모니 부처님만 모셔져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로자나불, 약사여래불, 미륵불 등 여러 불보살중의 한분이 주불로 모셔져 있다. 그러나 미얀마에서는 오로지 석가모니 부처님 한분 뿐이다. 그렇다면 미얀마 사원의 상징은 무엇일까?
무불상시대 오백년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은 많이 있다. 부처님 열반 후 약 오백년 간은 무불상시대였다. 무불상시대 오백년 동안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으로는 사리가 모셔져 있는 ‘스투파’,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그리고 족적을 상징하는 ‘보륜’ 등이었다. 불자들이 부처님을 그리워하면서도 불상을 만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부처님 가르침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부처님은 불상조성을 금지하는 말씀을 암시 하셨다. 그것은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S22.43)”라고 하신 말씀 하신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는 굳이 사람의 형상을 한 불상을 만들어 신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박깔리여, 그만두어라. 나의 부서져 가는 몸을 보아서 무엇하느냐? 박깔리여,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본다. 박깔리여, 참으로 진리를 보면 나를 보고 나를 보면 진리를 본다.”(S22.87)라고 말씀 했기 때문이다. 부처님 가르침이 의지처인 것이다. 무불상시대 오백년은 형상이 아니라 가르침을 의지처로 삼은 것이다.
쉐다곤 파고다를 축소해 놓은 듯한
담마마마까에는 커다란 사리탑이 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탑이다. 선원 중앙에 있지 않고 선원 북쪽 사리탑 구역에 있다. 현재 완공을 앞두고 있는 한국관 바로 옆에 있다. 그쪽으로 가는 길을 ‘SAE TI STREET’라 하는데 한글로 ‘사리탑 길’이라고 명명 되어 있다.
사리탑을 보면 마치 쉐다곤 파고다를 축소해 놓은 것 같다. 높이가 99미터에 달한다는 쉐다곤 파고다는 미얀마의 상징과도 같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파고다는 미얀마의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담마마마까에도 쉐다곤을 닮은 파고다가 있다. 이를 사리탑이라 한다.
사리탑 앞에 섰다. 가장 성스럽고 경건한 장소이다. 그래서일까 주변이 잘 가꾸여져 있다. 특히 키 높은 야자나무가 눈길을 끈다. 남방에서 야쟈나무는 어떤 의미일까? 요즘 한국의 관청이나 고층빌딩, 그리고 고급아파트를 보면 낙락장송을 식재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소나무는 품위의 상징과도 같다. 미얀마에서서는 키높은 야자나무가 품위의 상징이라 볼 수 있다. 담마마마까에도 사야도실이 있는 건물이나 사리탑이 있는 곳에서 키 높은 야자나무를 볼 수 있다.
선원 불사공덕비를 보니
사리탑 앞에 서면 마당 양 옆에는 공덕비가 있다. 담마마마까 선원과 사리탑 불사 시주자 명단이 적혀 있다. 먼저 ‘담마마마까 국제선원 창건 대한민국보시자’공덕비를 보았다. 공덕비를 보면, 미얀마 땅이지만 한글로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명단을 보니 1번으로 ‘혜송스님’이 보인다. 시주한 금액이 우리나라 돈으로 645,288,400원이다. 다음으로 2번이 ‘김병준+덕운화’인데 154,045,470원이다. 다음으로 3번은 현재 담마마마까 선원장 에인다까 사야도로 108,856,000원이다. 4번은 ‘우성스님, 서경숙’으로 101,813,640원이다. 5번은 ‘안필호+윤숙영’, 6번은 ‘운산스님 덕형스님’, 7번은 ‘대성스님, 대연화’ 순으로 되어 있다. 이번 인솔자 김진태 선생도 명단에 올려져 있다.
공덕비에 쓰여 있는 명단에는 모두 59명의 이름이 올려져 있다. 공덕비에는 최하 250만원에서 최고 6억원 대까지 다양하다. 에인다까 사야도를 제외하고 모두 한국인들이다. 특히 담마마마까 선원장 에인다까 사야도의 이름으로 1억원 가량이 적혀져 있는데 이는 한국과 미얀마과 함께 일군 도량임을 말한다.
공덕비에는 총금액이 1,781,472,346원, 미얀마돈으로는 1.686,369,450 짯, 미화로는 1,534,242 달러라고 적혀 있다. 이밖에도 선원에는 수많은 보시자를 기념하여 담벼락 마다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리탑 공덕비
사리탑을 바라보고 우측에는 선원건립 공덕비가 있고, 좌측에는 사리탑 공덕비가 있다. 이번에는 사리탑 공덕비를 보았다. 사리탑 공덕비 역시 한국인들 이름으로 가득하다.
사리탑 공덕비 1번으로는 혜송스님이 404,075,782 짯으로 되어 있다. 미얀마 짯과 한화는 현재 1.5대 1이기 때문에 한화로 2억 6천만원 가량된다. 2번으로는 에인다까 사야도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데 18,236,970 짯이다. 3번으로는 석굴암 종상스님, 4번으로는 운산스님과 덕형스님이다. 인솔자 김진태 선생 이름도 보인다.
담마마마까는 2006년에 창립되었고 사리탑은 2012년에 만들어졌다. 2019년 1월 현재 시점에서 담마마마까는 창립된지 13년 되었고 사리탑은 7년이 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1월 3일부터 5일까지 3일 동안 사리탑 마당에서 야단법석이 예고 되어 있다. 저녁에 사야도 등 법사를 초청하여 법문을 듣는 시간이다.
에인다까 사야도 공덕비
공덕비에는 미얀마와 한글로 빼곡히 내역이 적혀 있다. 그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이 에인다까 사야도 공덕비이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담마마마까 고려사 국제선원 초대원장 에인다까 사야도 공덕비)
에인다까 사야도는 1956년 4월 25일 꺼인주 흘라잉부에묘내 원세인제유아옥수 폐야응옥또 마을에서 부친 우쪼옹과 모친 도무누의 3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970년 3월 19일, 폐야응옥또 사원 옥따마 주지 스님을 계사로 부모님을 후원자로 사미계를 수지하였습니다.
1978년 5월 19일, 흘라잉부에묘내 까모까추제유아옥수 꼬원사 칸닷 계단에서 빠냐싸라 주지스님을 전계사로 부모님을 후원자로 비구계를 수지 하였습니다.
1968년 12세에 폐야응옥또 사원에서 교학을 시작한 이래 바안묘 메바응사 강원, 몰레미아잉 어쉬깐도사 강원, 버고묘 묘마사 강원, 양곤 얼룽묘내 빨리대학 아응밍글라 강원 등지에서 교학을 이수하였습니다.
1996년 양곤 바한묘내 마하시 국제선원에서 결재하여 쪼삔까욱 선사의 지도로 용맹정진하였습니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양곤 마양곤 따담마란디 선원과 홀래구 인다잉케이빠베냐 따담마란디 선원, 버고 냐옹리빙묘 위웨까또야 따담마란디 선원 등지에서 법을 설하고 수행자를 제접하여 지도법사의 소임을 완수하였습니다.
2003년 2월 13일, 후원자인 혜송스님이 선원부지 32,800평을 매입하고 선원불사에 수반되는 모든 재정을 책임지고 보시하여 양곤 홀래구묘내 쭝글레이 마을에 창건불사를 시작한 담마마마까 고려사 선원의 초대원장 취임을 허락하였습니다.
2003년 4월부터 2006년 7월까지 4년간 후원자이고 창건주인 혜송스님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김천, 남양주, 천안, 부산, 대구,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위빠사나 법을 설하고 수행을 지도하였습니다.
2006년 선원을 개원한 이래 지금까지 담마마마까 고려사 국제선원에 주석하면서 끊임없이 법을 설하고 수행자를 제접하여 위빠사나의 세계적 전파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 진정한 법을 전하려는 사야도의 이러한 노력이 큰 공덕을 이루어 온 인류가 사띠빠타나 위빠사나를 실천수행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생각할수록 사야도의 은혜와 원력과 공덕은 끝이 없으니 이에 대한 감복의 마음을 잊지 않고자 돌에 새겨 후세에 길이 남깁니다. (2011년 1월 9일)
에인다까 사야도 공덕비를 보니 담마마마까가 어떻게 설립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공덕비에는 창건주가 혜송스님이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에인다까 사야도의 후원자라 했다. 담마마마까는 혜송스님을 비롯하여 한국인 사부대중이 수행의 나라라 일컬어지는 머나 먼 미얀마에 역사에 길이 남을 큰 불사를 한 것이다.
공덕비에 따르면 에인다까 사야도는 한국을 방문하여 위빠사나 지도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사실은 김진태 선생으로부터도 들었다. 천안 부근에 위빠사나 집중 수행센터인 호두마을이 있다. 에인다까 사야도는 2002년에 호두마을에서 한국인 수행자들을 대상으로 위빠사나 수행지도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한국과 인연이 있어서일까 에인다까 사야도는 숫자 세기나 ‘어서 오세요’와 같은 아주 기초적인 한국말을 할 줄 안다.
석굴암 불상을 그대로
사리탑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리탑은 정방형 건물 위에 파고다가 건립 되어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정방형 건물에 들어가 보면 놀랍게도 한국불상이 모셔져 있다. 미얀마 땅이지만 한국불상이 모셔져 있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아마도 담마마마까가 한국인들의 원력으로 세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숭고해 보이는 석굴암 불상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미얀마에는 미얀마 불상이 있고 태국에는 태국의 불상이 있고 스리랑카에는 스리랑카의 불상이 있다. 중국에는 중국사람 모양의 불상이 있고, 일본에는 일본사람의 모양의 불상이 있다. 세계 각국마다 불상의 모습은 서로 다른 것은 그 나라 그 시대 사람들의 얼굴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석굴암 불상은 걸작이다. 한국 불상 중에서 가장 예술적 가치가 높은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석굴암이 조성된 시기가 8세기 중후반이라는 사실이다. 이때는 통일신라시대로서 신라의 국력이 가장 번성하던 때이다. 어떤 이는 이때가 한국역사에 있어서 불교가 전성기이었고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다고 말한다. 이렇게 가장 풍요로운 전성기 때 조성된 것이 석굴암이라 한다.
석굴암 본존불은 한국을 대표하는 불상이다. 이후 만들어진 돌로 만든 불상을 보면 예술적 가치가 떨어진다.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석굴암 불상을 정점으로 이후 완성도가 떨어지는 불상이 출현했는데 이를 국력과 관련지어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담마마마까 사리탑에 모셔져 있는 불상은 석굴암 불상을 그대로 빼닮아 제작한 것이다.
석굴암 본존불은 매우 단단한 화강암으로 조성된 것이라 한다. 조각의 난이도가 높았음에도 빼어난 예술적 가치를 지닌 것은 그때 당시의 시대상황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담마마마까에서 볼 수 있는 석굴암을 빼닮은 불상의 석재는 어떤 것일까? 김진태선생에 따르면 미얀마 옥(玉)을 사용한 것이라 한다. 석재는 미얀마 것이지만 모습은 한국을 대표하는 석굴암 불상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탑묘에 대하여
사리탑에는 사리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부처님 사리라 볼 수 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사리탑은 가장 성스런 장소이다. 부처님이 입멸할 때 자신의 형상을 만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리탑 이야기는 했다. 디가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여래(부처님), 벽지불, 여래의 제자, 그리고 전륜왕 이렇게 네 종류의 탑묘를 조성할 가치가 있다고 말씀 했다. 부처님 탑묘 조성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아난다여, 어떠한 이유로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은 탑묘를 조성할 가치가 있는 님인가? 아난다여, ‘이것은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의 탑묘이다.’라고 많은 사람이 청정한 믿음을 일으킨다. 그들은 청정한 믿음을 일으켜서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의 세계에 태어난다. 아난다여, 이러한 이유로 이것은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의 탑묘를 조성할 가치 있는 님이다.”(D16.113)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이 부처님의 탑묘이다. 그런데 탑묘를 조성하는 이유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라 했다. 불상을 보고서도 부처님 그분을 생각한다면 청정한 믿음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 믿음을 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사리가 있는 탑묘에 예배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탑묘는 어느 곳에 있어야 할까?
고대인도에서 전륜왕의 탑묘는 도시 한가운데 있었던 것 같다. 부처님은 전륜왕의 탑묘를 예를 들어 “아난다여, 전륜왕의 유체에 대처하듯, 여래의 유체에 대처하고 큰 사거리에 여래의 탑묘를 조성해야 한다.”(D16.112)라고 말씀했다.
부처님은 도시의 사거리에 탑묘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씀했다. 오늘날 산중에 아무도 보지 않은 곳에 진신사리탑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에 탑묘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참배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거기에 향이나 안료를 올리고 경의를 표하고 마음을 정화시킨다면, 사람들은 오랜 세월 안녕과 행복을 누릴 것이다.”(D16.112)라고 말씀 했다.
담마마마까 사리탑에는 부처님 사리가 안치 되어 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마하빠리닙바나경에 따르면 부처님 사리는 팔등분 되어 사리탑이 건립되었다. 그런데 후대 전륜왕이라 일컬어지는 아소까왕이 사리를 전국에 분배 했다는 것이다. 이는 스리랑카 역사서 디빠왕사에서 “부처님께서 온전한 84,000 가지의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기 때문에 나는 매 가르침을 존경하여 한 가지의 가르침에 하나의 승원을 즉 84,000개의 승원을 전국에 세우겠다.”라고 아소까가 발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아소까왕은 여덟 개의 탑묘에 분산되어 있던 사리를 분배하여 인도전역의 84,000곳의 마을에 탑묘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의 사리가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미얀마의 사천왕상
한국의 석굴암에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하여 십대제자와 보살상, 그리고 신장이 조성되어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석굴 입구에 있는 금강역사상이다. 본존불을 지키는 신장이라 볼 수 있는데 근육과 힘줄이 보일 정도로 강인하고 무서운 인상이다. 이와 같은 금강역사상은 야차를 형상화 한 것이다.
금강역사라 불리우는 야차는 부처님 가르침을 지키는 호법신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맛지마니까야 ‘삿짜까에 대한 작은 경’(M35)을 보면 금강저를 든 야차가 등장한다. 경에 따르면 야차에 대하여 “이때에 야차 바지라빠니가 불타고 불꽃이 이글거리고 빛을 방출하는 쇠로 된 금강저를 가지고 니간타의 교도 쌋짜까의 머리 위에 공중에서 서서 말하길 ‘악기베싸나여, 여래가 여법하게 세 번 질문했는데 답변하지 않으면, 내가 여기서 그대의 머리를 일곱 조각으로 터지게 할 것이다.’”(M35)라고 묘사 되어 있다.
초기경전에서 야차는 저급한 신으로서 무서운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야차는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야차에 대하여 동아시아불교에서는 호법신장으로서 금강저를 든 금강역사상으로 묘사 되어 있다.
금강역사상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매우 위압적이고 무시무시한 이미지로 형상화 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절에서는 금강역사상을 좀처럼 볼 수 없다. 설령 볼 수 있더라도 중국이나 일본처럼 무시무시한 형상이 아니다. 약간은 해학적이다. 한국의 절에서는 금강역사상은 보기 힘들어도 사천왕상은 볼 수 있다.
절을 지키는 신장 역할을 하는 사천왕상을 보면 매우 위압적이고 무시무시한 형상이다. 눈은 왕방울만하여 부라리는 모습이다. 갑옷에 칼을 들고 금방이라도 찌를 듯한 자세이다. 발 밑에는 악귀가 짓눌린 채 신음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사천왕상의 이미지는 때로 해학적으로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얀마에서 보는 사천왕상은 전혀 다르다.
담마마마까에도 사천왕상이 있다. 사리탑과 보리수 사이에 하나의 길쭉한 탑이 치솟아 있는데 탑 주변에 네 명의 사천왕상이 금빛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보는 형상과 달리 합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더구나 미소짓는 미남형으로 세련된 모습이다. 사리탑을 수호하는 네 명의 대왕을 형상화 한 것이다.
한국절에서 보는 사천왕상은 무시무시한 이미지이지만 미얀마에서는 전혀 다른 이미지이다. 야차를 형상화한 금강역사상은 위압적이고 무시무시한 이미지일 수 있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야차는 약카(akkha) 음사로서 영어로는 ‘demon’, 한자어로는 야차(夜叉) 또는 귀신(鬼神)으로 번역된다. 야차를 비인간(非人間: amanussㅇ)이라고도 한다.
대체로 야차는 무서운 이미지이다. 그런데 여섯 하늘나라 천신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대왕천의 사천왕상에 대하여 무서운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잘 못 알려진 것 같다. 특히 한국에서는 절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무서운 이미지이다. 그러나 디가니까야 ‘아따나띠야의 경’(D32)을 보면 사천왕의 이미지는 전혀 다르다. 지계와 보시의 공덕으로 천상에 태아난 자들이기 때문에 험악하게 생긴 모습은 아닐 것이다. 경에 따르면 네 하늘나라의 대왕들이 밤에 부처님을 찾아 뵙는 것으로 경이 시작된다.
사대천왕 중에서 북방을 수호하는 벳싸바나 대왕이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다문천왕(多聞天王) 이라 한다. 일본에서는 비사문천(毘沙門天)이라 하여 ‘전쟁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초기경에 따르면 벳싸바나 대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이다. 그래서 인간을 해코지 하는 야차 등과 같은 악귀, 비인간 등으로부터 보호해 주겠다고 한다.
벳싸바나 대왕은 사부대중을 지키는 호법신장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도 가르침을 따르는 야차 등으로 구성된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어서 대장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수행승들과 수행녀들과 재가 남자신도들과 재가의 여자신도들이 수호되고 보호되고 해코지 당하지 않게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세존께서는 아따나띠야 보호주를 수용해주십시오.”(D32.2)라고 간청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에 부처님은 침묵으로 허락한다.
사천왕은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사부대중을 지키는 호법신장이다. 그러나 이곳 담마마마까에서 보는 사천왕상은 한국에서 보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사천왕상은 사리탑과 보리수 사이에 있는데 사리탑과 불상을 수호하고 있다. 아니 이곳에서 수행정진하는 사부대중을 보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보리수에는 하트가
사리탑 뒤편에는 보리수가 한 그루가 있다. 선원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보리수이다. 미얀마는 인도와 위도가 비슷하기 때문에 기후조건 역시 비슷하다. 보리수가 자라기에 알맞은 환경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사리탑 못지 않게 보리수도 예경의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았기 때문에 깨달음의 나무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보리수 주변으로는 항마촉지인 자세를 한 작은 석굴암 불상이 조성되어 있다. 누군가 예경 했는지 화병에 꽃이 공양 되어 있다. 이와 같은 깨달음의 나무에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보리수 잎파리이다. 보리수잎을 자세히 보면 하트형이다. 꼬리는 길게 늘어져 있다. 보리수인지 아닌지 한눈에 구분되는 것이다.
아홉 가지 출세간법
미얀마불교에서 사원의 특징을 들라면 단연 쉐다곤 파고다와 같은 모양일 것이다. 이곳 담마마마까에도 쉐다곤 파고다를 닮은 사리탑이 있다. 그런데 단순히 사리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리탑을 받치고 있는 정방형의 건물안에는 석굴암 본존불을 꼭 빼 닮은 거대한 석불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담마마마까는 미얀마내에 있는 한국절임에 틀림 없다.
담마마마까는 한국인들의 원력에 의해서 건립되었다. 머나 먼 타국, 그것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수행의 나라에 위대한 불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설립된지 불과 13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국인들에게 담마마마까는 마음 포근한 곳이다. 미얀마에 있으면서도 한국에 있는 것 같다.
부처님 가르침은 오래 가지 않는다. 이는 초기경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상윳따니까야 2권을 보면 연기에 대한 가르침이 실려 있는데 과거칠불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주석에 따르면 과거에도 무수한 부처님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25불이니 과거 28불이니 이야기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부처가 출현하여 깨달음을 펼쳤더라도 정법은 오래 가지 못함을 말한다.
부처가 출현하여 정법이 살아 있다면 또 다른 부처가 출현할 일이 없을 것이다. 과거에 부처가 출현했다는 것은 정법의 단절을 의미한다. 정법이 오염되고 변질되어서 사라져 버렸을 때 또 다른 부처가 출현하는 것이다. 부처가 출현 하기 전까지는 세상은 암흑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정법이 살아 있는 시대라 한다. 그렇다면 정법이란 무엇일까?
정법에 대하여 한마디로 말하면 사향사과와 열반이 있는 아홉 가지 출세간법이 살아 있는 시대를 말한다. 이는 팔정도의 가르침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부처님은 열반에 들 때 마지막 제자 쑤밧다에게 “쑤밧다여, 가르침과 계율에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 없다면, 거기에는 수행자가 없고, 거기에는 두 번째 수행자도 없고,…”(D16.121)라 했다.
부처님이 쑤밧다에게 한 말은 무엇을 뜻할까? 부처님 가르침이 실려 있는 니까야(經藏)와 비나야(律藏)가 있어서 팔정도의 수행이 있고, 팔정도의 수행으로 아홉 가지 출세간법이 살아 있을 때 정법의 시대임을 말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른 여러가지 이론에는 수행자가 결여되어 있다. 쑤밧다여, 수행승이 올바로 지낸다면, 세상에는 거룩한 님이 결여 되지 않을 것이다.”(D16.121)라 했다. 여기서 거룩한 님은 아라한을 말한다. 더구나 가르침을 전승하는 스승이 있다면 마치 새끼새가 어미새의 먹이를 부지런히 먹고 폭풍처럼 자라서 둥지를 박차고 나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번뇌를 부수고
음식에 집착하지 않고
텅비고 인상을 여의어
활동영역에서 해탈한 님들,
허공을 나는 새처럼,
그들의 자취는 찾기 어렵다.” (Dhp93)
결국 정법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지금 제아무리 전승된 삼장과 팔정도, 그리고 스승이 있다고 할지라도 가르침은 점점 오염되고 변질 되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는 미륵부처의 출현을 예고 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정법이 사라져 암흑의 세상이 되었을 때 돌로 조성된 불상은 남아 있을 것이다. 머나먼 미얀마 땅에 조성된 한국불상은 어쩌면 미래 타임캡슐 역할을 할지 모른다. 한때 한국인들이 미얀마 땅에서 가르침을 펼쳤노라고.
2019-01-2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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