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담마마마까 수행기9

담마다사 이병욱 2019. 1. 24. 13:10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담마마마까 수행기9

 

 

2019 1 3일 저녁

 

오늘 하루를 되돌아 보았다. 노트에 시간대별로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후기를 작성하는데 문제는 없다. 좌선을 모두 다섯 번 했다. 새벽 4, 오전8, 오전10, 정오12, 오후 4시 이렇게 모두 다섯번이다.

 

담마마마까에 온지 4일째 되는 날이다. 숙소에는 없는 것이 많다. TV도 없고 라디오도 없다. 인터넷도 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있지만 문자메세지 외에는 카톡이나 페이스북도 되지 않는다. 어쩌다 전화가 걸려 오지만 외국이라 말하면서 짧게 통화한다. 또 하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온수기이다.

 

함께 온 14명 중에 체류일정이 가장 짧다. 그래서일까 온수기가 없는 숙소에 배정 받은 것 같다. 장기체류자의 경우 온수기가 설치 되어 있는 숙소가 많은 것 같다. 온수기는 누군가 체류하면서 설치한 것이다. 놓아 두고 떠난 것이기 때문에 선원에 보시한 것이나 다름 없다. 머리도 감지 못하고 목욕도 하지 못하니 개운 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명상하는 것이 일인 선원에서 머리를 감지 못해도 샤워를 하지 않아도 문제는 없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김도이 선생 숙소에 가서 샤워를 했다. 김도이 선생 숙소는 미얀마 갑부 딸이 기증한 숙소라 한다. 종종 시간 날 때 활용하는 모양이다. 숙소에는 전용사물함이 있는데 자물쇠로 채워져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숙소에는 냉장고도 있고 세탁기도 있고 더구나 침대가 두 개 있어서 럭셔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온수기가 설치 되어서 샤워를 했는데 한국에서 생각하는 뜨거운 물이 아니다. 미지근한 물이다. 그럼에도 나흘 만에 샤워를 했더니 기분이 매우 상쾌 해졌다.

 








소리 때문에

 

어제 잠을 자는데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 현재 숙소가 있는 건물에는 혼자 있다. 숙소건물은 두 명이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방은 따로 사용한다. 장기체류하는 박용식 선생이 다른 숙소로 옮겨 가는 바람에 숙소건물을 홀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바로 옆 숙소 건물은 비어 있다.

 



 


밤이 되자 캄캄 해졌고 사방은 고요해졌다. 숙소가 있는 담 저쪽은 벌판으로 소를 키우는 농장이다. 또 숙소는 87번으로 가장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마치 외딴 곳에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소리가 드르륵, 드르륵마치 바로 옆에서 나는 것처럼 들렸다. 대체 이 소리는 어디서 나는 것일까?  무언가 툭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그 소리가 너무 가까이 나서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내는 소리 같다.

 

숙소 바깥으로 나가서 확인 해 보았다. 어둠 속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주위는 고요하기만 하다. 밤새 종종 나는 소리에 신경이 예민 해졌다. 심야에는 농장 쪽에서 동물의 울음 소리도 들려 왔다. 어디서 나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로 인하여 두렵고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소리의 정체를 밝혀야 할까?

 

그저 들음, 들음으로 그치려 했다. 상윳따니까야 깃발의 경’(S11.3)에 실려 있는 것처럼 부처님과 가르침과 상가의 공덕을 생각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소리도 무상한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주위가 너무 고요하고 조용하기 때문에 멀리서 나는 소리도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처럼 들리고 철문을 여닫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리는 것이라 본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때묻지 않은 연꽃같이,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Stn.71)

 

 

새벽 4시 좌선에서

 

새벽 3 45분에 대법당으로 향했다. 새벽 4시 좌선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컨디션이 몹시 좋지 않았다. 어제 밤 잠을 잘 때 소리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여 잠을 설친 이유도 있지만 속이 안 좋은 이유도 있다.

 

오후불식이라 하여 정말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잠자기 전에 배가 고파 참을 수 없어서 준비 해 간 단호박마차를 찬물에 타서 마셨다. 일시적으로 허기는 가셨지만 찬 것이 들어 가서인지 속이 불편 했다. 이럴 경우 전기포트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준비 부족이었다. 출발할 때 김진태 선생에게 물어 보아야 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온 것이 잘못이다. 전기포트가 있으면 저녁에 가루로 된 것을 타 마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머리 감는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컨디션이 엉망인 상태에서 새벽 4시 좌선에 임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좌선을 하고 나니 컨디션이 정상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좌선을 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아무 생각 없이 호흡만 보려고 노력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새벽이라 그런지 통증이나 망상도 그다지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 선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앉아 있는 것뿐이다. 그래서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고 달리 갈 곳이 없네.”라는 생각이 저절로 났다.

 

효율 좋은 오전 좌선

 

오전 8시 좌선은 효율이 매우 좋은 시간대이다. 아침 식사에 점심 식사 사이에 있어서 마음의 여유도 있고 무엇보다 가장 컨디션이 좋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대부분 사람들이 이 시간대에 효과를 내는 것 같다.

 

그저 앉아 있었다. 갑자기 어디에서인가 향기가 났다. 바람에 타고 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향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 혹시 외부에서 온 사람 중에서 풍기는 화장향기가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밀폐된 공간에서 향수를 뿌린 사람이 들어 왔을 때 그런 강렬한 향기 같은 것이다. 명상홀 전면에 있는 불단의 꽃에서 나는 향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지 못한다는데 향기는 곧바로 사라졌다. 효율이 좋은 8시 시간대의 좌선에서 자세 한번 바꾸지 않았다. 통증도 없었다.

 

오전 10시에도 좌선을 했다. 오후나 저녁 시간대 보다도 오전이 효율이 좋기 때문에 밀어 붙이기로 한 것이다. 점심 공양시간 때문에 30분 좌선했다. 눈을 감았어도 뜬 것처럼 보였다. 집중이 되어서일까 사띠 상태가 유지되었다. 앉아 있는 30분 동안 힘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호흡을 관찰하여 집중이 되었을 때 고요한 상태가 되는데 이를 근접삼매라 한다. 선정의 다섯 가지 요소, 즉 심, , , , 정 상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개 사띠가 성성한 상태라 한다. 이와 같이 사띠가 성성해졌을 때 이런 상태를 유지하라고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묵언 해야 할 것이다. 말하는 순간 성성함이 깨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밥 먹으로 갈 때도 묵언 해야 하는 이유라 본다.

 

목탁새

 

점심식사 후에 산책을 나갔다. 방향은 망고나무길이다. 김도이 선생은 목탁소리가 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목탁소리가 들려 왔다. 미얀마선원에서 목탁소리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 하는 목탁소리가 약간의 간격을 두고 연속으로 들려 왔다. 옆에 있던 김도이 선생은 목탁새소리라고 했다. 마치 목탁을 치는 것 같은 소리이다. 이름 하여 목탁새라 한다.

 








인내와 끈기로

 

정오 12시에 네 번째 좌선을 했다. 점심 식사후 한시간만에 이루어진 좌선이다. 오전 세 번의 좌선과 전혀 다른 양상이 되었다. 앉아 있기가 지루해진 것이다. 온갖 망상이 치고 들어 왔다. 등의 통증이 시작 되었다. 등짝이 쑤시고 아프니 빨리 종쳤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좌선을 하면서 누가 이기는가 보자식으로 인내와 끈기로 버텼다. 김진태 선생의 말이 생각났다. 김선생은 초심자가 선원에 들어와서 처음 일주일 간은 용맹정진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좌선 중에 어디선가 똥냄새가 났다. 아마 바람을 타고 먼 곳에서 왔으리라 생각했다.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너무나 반갑게 들렸다.

 

오후 4시에 다섯 번째 좌선을 했다. 이렇게 좌선을 많이 한 것은 이날 저녁 7시부터 법문축제가 있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모든 대중이 사리탑 앞에 있는 야단법석에 앉아서 사야도의 법문을 듣는 시간이다.

 

결국 생멸을 보자는 것

 

좌선시간 내내 생멸에 대해 생각했다. 좌선이라는 것이 결국 생멸을 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알고 좌선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온의 생멸이다. 이런 사실은 상윳따니까야 3칸다상윳따(S22)’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이른 사념처라 하여 신, , , 법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것도 결국 색, , , , 식이라는 오온의 생멸을 관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좌선을 하면 다리저림 등 통증이 오는데 그런 통증은 느낌인 것이다. 가르침에 따르면 느낌은 나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통증은 일어날 만 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조건발생한 것이다. 좌선이 끝났을 때 불구가 될 것 같은 통증도 깨끗이 사라지고 만다. 통증이라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조건발생하고 조건소멸하는 것이다. 다름 아닌 생멸이다.

 

 

2019-01-2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