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좌선은 강력한 삶의 방식, 담마마마까 수행기11

담마다사 이병욱 2019. 1. 25. 14:51

 

좌선은 강력한 삶의 방식, 담마마마까 수행기11

 

 

2019 1 5일 오전

 

잠결에 타종소리를 들었다. 대략 3 20분대이다. 새벽 4시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잠시 시간이 있다. 짧은 시간을 이용하여 글을 썼다.

 

사위가 고요하다. 짐승도 잠자는 시간인가? 잠자기 전에 ,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철문을 드르륵, 드르륵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양이의 울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새벽 3시대는 고요하다. 자동차소리도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선원에서는 수행자들이 깨어나는 시간이다.

 



또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선원에서 토요일과 일요일은 없다. 매일매일 같은 일과가 반복된다. 선원에서는 주말이 없는 것이다. 이곳이야말로 부처님 가르침이 살아 있는 곳이다. 이곳이야말로 불국토이다. 혜송스님은 오리엔테이션에서 미얀마야말로 세상에 단 하나 남아 있는 불국토입니다.”라 했다.

 

좌선은 강력한 삶의 방식

 

비교적 잠을 잘 잤다. 꿈도 생각 나지 않는다. 마치 일을 많이 한 것처럼 피곤해서 일 것이다. 수행하는 것도 일이다. 좌선하는 것이야말로 큰 일이다. 그래서일까 2009년 한국명상원에서 묘원선생은 좌선하는 것에 대하여 좌선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삶의 방식입니다.”라 했다. 5분만 앉아 있어도 온갖 망상이 치고 들어 오고 점차 다리저림 등 통증이 심해지는데 한시간을 참고 견딘다는 것은 어떤 삶의 방식 보다도 강력하다는 것이다.

 

선원에서는 하루에 네 차례, 다섯 차례, 많으면 그 이상도 좌선을 한다. 물론 경행도 병행한다. 좌선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일보다도 강도가 높다. 세상에 일이 힘들다고 하지만 이만큼 힘든 일, 이만큼 고된 일이 있을까? 가만히 앉아서 자기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켜 보는 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고된 일이다. 수행자는 매일매일 마음의 밭을 가는 농부와 같다.

 

바라문 까씨가 부처님에게 물었다. 바라문은 그대는 밭을 가는 자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대가 밭을 가는 것을 보지 못했네. 밭을 가는 자라면, 묻건대 대답하시오. 어떻게 그대가 경작하는 것을 알 수 있는가?”(Stn.76)라고 물었다.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답했다.

 

 

믿음이 씨앗이고, 감관의 수호가 비며,

지혜가 나의 멍에와 쟁기입니다. 

부끄러움이 자루이고, 정신이 끈입니다.

그리고 새김이 나의 쟁기 날과 몰이막대입니다.(Stn77)

 

“몸을 수호하고, 말을 수호하고,

배에 맞는 음식의 양을 알고,

나는 진실을 잡초를 제거하는 낫으로 삼고,

나에게는 온화함이 멍에를 내려 놓는 것입니다.(Stn78)

 

“속박에서 평온으로 이끄는

정진이 내게는 짐을 싣는 황소입니다.

슬픔이 없는 곳으로

도달해서 가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Stn79)

 

“이와 같이 밭을 갈면

불사의 열매를 거두며,

이렇게 밭을 갈고 나면

모든 고통에서 해탈합니다.(Stn80)

 

 

농부가 된 바라문은 농사철이 되면 밭을 간다. 그러나 마음의 밭을 가는 수행자는 농사철이 따로 없다. 매일매일 마음의 밭을 갈기 때문이다. 수행자가 겉으로는 놀고 먹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치열하게 사는 자이다.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삶의 방식인 것이다.

 

잠 잘 때는 송장처럼

 

담마마마까 교재에서 인상적인 문구를 하나 발견 했다. 그것은 잠 잘 때는 송장처럼 자라는 것이다. 이는 마하가전연존자의 게송 중에 실려 있는 말이다. 정확하게 표현 하면 잠 잘 때에도 뒤척이지 말고 송장처럼 가만히 싸띠 하면서 잠들어라.”라는 말이다. 잠 자리에 누웠을 때도 자세를 바꾸지 말라는 것이다. 잠 들 때까지 사띠해야 함을 말한다. 사띠가 멈추어질 때는 잠잘 때뿐이라는 것이다. 잠 잘 때를 제외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함을 말한다.

 

잠에서 깨면 사띠도 깬다. 깨는 순간 일거수일투족을 알아차려야 한다. 내가 얼마나 욕심으로 가득찬 존재인지 알아 차려야 한다. 밥 먹을 때 탐심으로 먹는 것 아닌지, 성냄으로 먹는 건 아닌지 알아차리는 말이다. 이렇게 일주일, 한달, 일년, 이년, 십년, 아니 평생 사띠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연스럽게 실천 될 것이다.

 

새벽 음악 소리 때문에

 

새벽 4시에 좌선에 임했다. 그런데 평상시와 달랐다. 좌선이 시작되자 마자 음악소리가 들려 왔다. 선원 밖에서 나는 소리이다. 그것도 스피커를 크게 틀어 놓고 미얀마 특유의 노래를 틀어 주는 것이다. 음악은 좌선이 끝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여성 가수가 여러 곡을 이어서 부르는 메들리음악이다. 앉아 있었지만 온통 들리는 것은 시끄러운 음악소리뿐이었다. 집중도 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토요일이다.

 

미얀마에서는 토요일날 음악을 틀어 주민들을 일찍 깨우는 모양이다. 그것도 새벽 4시대이다. 마치 한국에서 칠십년대 상황을 보는 것 같다. 그때 당시 산동네달동네에 살았는데 일요일 아침만 되면 교회에서 찬송가를 틀었다. 그것도 스피커 볼륨을 최대한 높였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스피커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심지어 크리스마스날 새벽송도 사라졌다. 공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얀마에서는 우리나라 칠십년대에나 있을 법한 음악소리를 새벽부터 틀어 주고 있는 것이다.

 

음악소리는 새벽 5시가 되자 딱 멈추었다. 좌선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멈춘 것이다. 대체 저 소리는 어디서 나는 것일까? 불교사원에서 나는 음악일까? 아니면 이슬람 사원에서 나는 소리일까? 음조로 보아 이슬람 사원에서 나는 소리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동회에서 내는 소리일까? 마치 담마마마까를 방해하려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어제 법문축제 끝나고서도 인근 마을에서 법문방송이 밤 늦게 까지 들려 왔는데 이것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음악 소리 때문에 새벽 좌선을 망쳤다는 것이다.

 

그저 가만 있으면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한시간동안 좌선을 했다. 좌선이 끝나고 후기를 썼다. 사띠와 관련하여 생각해 보았다. 한국인 수행자 중에는 이번에 함께 온 14명 외에 여러 명의 수행자가 있다. 그 중에 어떤 분은 사띠의 위력에 대하여 말했다. 감기에 걸렸는데 사띠의 힘으로 극복했다고 한다. 목 부위에 사띠 했는데 사띠로 조져서 감기를 잡았다라 했다. 혜송스님에 따르면 두드러기가 났을 때 단지 사띠 하는 것만으로도 며칠 만에 없어졌다고 했다. 지켜 보고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가능함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명상하면 치유효과도 있다고 말한다.

 




사띠하는 것의 일차적 목표는 생멸의 지혜를 얻는 것이라 본다. 감기이든 두드러기이든 생길 만해서 일어난 것이다. 조건이 다하면 소멸할 것이다. 이와 같이 생멸을 관찰하면 궁극적으로 도와 과를 이룰 것이라 한다. 그러나 초보자에게는 언감생심이다. 앉았을 때 통증 없는 것만 해도 다행이기 때문이다.

 

앉는 방법을 개선하니 통증이 많이 완화 되었다. 평좌할 때 왼쪽 발 뒤꿈치를 사타구니 안쪽으로 바싹 붙이는 것은 엉덩이에 가해지는 힘을 분산시키는 효과도 있다.  엉덩이와 포갠 두 다리가 안정적인 삼각대를 형성했을 때 허리도 펴지고 자세도 바르게 된다. 다음으로 사띠하는 것이다.

 

선원에서는 배를 관찰하라고 한다. 호흡에 따라 배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다. 만일 코의 호흡을 관찰한다면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사마타의 길로 가게 된다. 그러나 배의 일어남과 꺼짐을 관찰하 움직이는 느낌을 보는 것이 되기 때문에 위빠사나가 된다.

 

배의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엉덩이로 가라고 한다. 엉덩이의 닿는 느낌을 관찰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관찰이 되었으면 다시 배로 오라고 한다. 그러나 보려고 하면 할수록 보이지 않는다. 그럴 경우는 내버려 두는 것이 차라리 낫다.

 

잠을 자려 할 때 억지로 청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럴 때는 잠이 오면 잠을 자지.”라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잠을 자려는 생각을 내려 놓았을 때 잠이 온다는 것이다. 배의 일어남과 사라짐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만들어 볼 수 없다. 그저 가만 있으면 아주 작은 움직임이 감지된다. 마치 볼레로를 듣는 것과 같다.

 

유튜브에서 볼레로를 즐겨 듣는다. 처음에는 들릴락말락하게 아주 작은 소리가 난다. 그러다가 점차로 소리가 커져 간다. 마침내 모든 악기가 총동원 되면 천둥치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난다. 배의 느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느낄락말락 하지만 호흡과 함께 움직임을 지켜 보면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이 점차 분명해질 때 볼레로 음악이 커져 가는 것 같다.

 

생각의 무게

 

1 5일 토요일에는 좌선을 다섯 번 가졌다. 새벽 4, 오전 8, 오전 10, 오후 12 30, 오후 4시 시간대이다. 짧게는 30분짜리도 있다. 오후 7시에 법문축제 세 번째 날이기 때문에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오후 좌선은 최악이다. 그래서일까 오후 2시가 되면 법문시간을 갖는 모양이다. 미얀마사람들은 대법당에 모여 사야도의 녹음법문을 듣는다. 한국수행자들은 한국관에 모여 혜송스님의 스마트폰 법문을 듣는다. 사야도의 법문을 통역한 것이다.

 

 




 

좌선하면서 사띠를 수 없이 놓친다. 다름 아닌 생각이 치고 들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집중된 상태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알아차리면 그뿐이다. 그러나 집중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생각을 따라가기 쉽다. 그런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부담스럽다는 사실이다. 이럴 때 생각의 무게를 느낀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를 빨아 들이는 것이다. 생각에 끄달려 가지 않고 단지 알아차리기만 하면 마음이 가볍다. 생각에도 무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2019-01-2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