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사미계와 빅쿠계 수계식, 담마마마까 수행기22

담마다사 이병욱 2019. 2. 6. 12:54

 

사미계와 빅쿠계 수계식, 담마마마까 수행기22

 

 

2019 1 9일 오전

 

담마마마까에 온지 십일 되었다. 모레가 되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 111금요일 아침에 출발하여 1 2일 선원투어와 양곤성지순례가 예정되어 있다. 선원투어는 양곤과 근교 국제선원을 가이드와 함께 순례하는 일정이다. 김진태선생이 강력하게 추천해서 일정을 잡았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가 보아야 할 곳이라 한다. 투어가 끝나면 1 13일 새벽에 인천공항에 입국하기로 되어 되어 있다.

 

어제와 그제 이틀간 비가 내렸다. 건기에 이렇게 비가 오래 내리는 경우는 드문 일이라 한다. 미얀마에서 1월 날씨가 가장 기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기온이 높아졌다고 하는데 이렇게 비가 종일 내리다시피 한 것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이곳에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섯 명이 머리를 깍았는데

 

함께 온 동료수행자가 머리를 깍았다. 빅쿠가 되기 위해 삭발을 한 것이다. 모두 열 네명이 왔는데 그 중에 다섯 명이 아침에 머리를 깍았다. 이를 지켜 보기 위해 사야도실 바로 옆에 있는 수돗가로 모였다. 삭발한 요기는 김도이선생을 비롯하여 김기성, 민선홍, 이학종, 지성스님 이렇게 다섯 명이다.

 

불자라면 누구나 계를 받는다. 삼귀의하고 오계를 받으면 누구나 불자가 된다. 그런데 빅쿠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사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숙생의 선근공덕에 따른 것인지 모른다.

 

머리를 깍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용기 있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미얀마에서는 누구나 일생에 한번쯤 머리를 깍는다고 하는데, 한국불자들이 머나 먼 이국땅, 부처님 정법이 살아 있는 불교의 나라에서서 머리를 깍는 다는 것은 커다란 불연이 아니고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달 이상 장기 체류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삭발은 오전 7 55분부터 30분 가량 진행되었다. 삭발자는 먼저 머리에 물을 묻히고 거품이 있는 비누칠을 한다. 면도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삭발을 도와 주는 빅쿠가 있었다. 첫날 양곤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중 나왔던 빅쿠이다. 새벽예불시간에 집전하는 것도 보았다. 사야도를 돕는 시자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배려와 자비심이 넘쳐난다.  

 

삭발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사람당 평균 5분 가량 걸렸다. 면도기는 날이 양옆에 있어서 옛날 도루코 면도기를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삭발하는 것이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면도기로 슥슥 밀면 그만이다.

 

순식간에 긴 머리가 민머리가 되었다. 민머리를 보니 모두 두상이 좋다. 삭발한 모습을 보니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일반재가자의 옷에 삭발한 모습은 영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이 취미로 삭발한다고 하는데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다. 빨리 가사를 입어야 할 것이다.

 

저를 연민히 여기시어 가사를 입혀주십시오.”

 

삭발이 끝난 다섯 명은 사미계를 받기 위해 사야도실에 들어 갔다. 동료들도 따라 들어갔다. 빅쿠가 되려면 먼저 사미계를 받아야 한다. 그 다음에 빅쿠계를 받는다. 사미계까지는 따라가서 볼 수 있다. 그러나 곧이어 수계관에서 열리는 빅쿠계 장면은 볼 수 없다.

 

사미계는 오전 8 50  부터 약 50분 가량 진행되었다. 사미계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보았다. 그리고 한켠에 앉아 노트에 기록해 두었다. 먼저 다섯 명의 삭발자는 사야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바로 앞에는 가사가 놓여 있다. 가사를 입기 전에 의식을 치루어야 한다.

 

다섯 명의 삭발자는 사야도에게 가사를 입혀 달라고 요청한다. 그것도 세 번 요청한다. 모두 빠알리어로 말한다. 혜송스님이 중간에서 통역했다. 사야도가 선창하면 따라 하는 것이다. 이때 빠알리어 발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잘 듣고 잘 따라 해야 하는 것이다.

 

다섯 명의 삭발자는 사야도에게생사윤회를 벗어나고자 가사를 입고자 합니다. 스님께서는 가사를 입혀주십시오.”라는 취지로 요청한다. 이어서 저를 연민히 여기시고 저를 사미로 만들어 주십시오.”라는 취지로 사미계를 요청한다.

 

사야도는 다섯 명에게 가사와 출가에 대한 이야기를 짤막하게 해 주었다. 누군가 스스로 가사를 입고 스스로 빅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스스로 머리를 깍고 스스로 가사를 입는다면 부처님 제자가 아니라고 했다. 반드시 스승이 입혀준 가사를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승에게 찾아가서 삼계윤회를 벗어나 도와 과를 이루어 열반에 도달 할 수 있도록 저를 연민히 여기시어 가사를 입혀주십시오.”라고 간청해야 함을 말한다. 그것도 세 번 간청하는 것이다.

 

마침내 다섯 명의 삭발자에게 가사가 입혀졌다. 사야도를 비롯하여 네 명의 빅쿠가 가사 입는 것을 도와 주었다. 특히 사야도가 일일이 챙겨 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가사는 모두 세 벌이다. 아래가사, 윗가사, 그리고 대가사이다. 가사는 모두 네 모난 커다란 천으로 되어 있다. 아래가사 수하는 방법, 윗가사 수하는 방법이 다르다. 커다란 천으로 몸을 두르거나 감싼다고 볼 수 있다. 가사를 입는다고 말하기 보다 두른다또는 걸친다’ ‘감싼다라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가사를 두르고 나면 팬티마저 벗어 버린다.

 

다섯 명이 가사를 두르니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바로 조금 전에는 민머리에 재가의 옷을 입으니 영 어울리지 않았으나 가사를 수하니 사람이 달라 보인다. 그러나 아직 계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재가불자에 지나지 않는다.

 

사야도는 가사를 수한 다섯 명에게 축원 해 주었다. 통역한 말을 들어 보니 새벽예불시간 사야도축원문과 유사하다. 일부를 보면 안전하고 평화로우며 장수하고 용모가 아름답고 몸이 건강하여 마음이 행복하여 좋은 에너지와 출중한 지혜를 얻으십시오.”라는 축원이다. 마무리는 도와 과를 이루어 열반을 성취하기를 바랍니다.”라는 취지로 축원해 주었다.

 

사미십계에서 금과 은

 

계는 요청해야 주는 것이다. 가사를 수한 다섯 명은 사야도에게 스승님, 연민히 여기시어 삼계윤회를 벗어나 도와 과를 이루어 열반에 도달할 수 있도록 사미계를 요청합니다.”라는 취지로 세 번 간청했다. 이에 사야도는 가장 먼저 나모 땃사 바가와또~”로 시작 되는 예경문을 세 번 따라하게 했다. 이어서 복당 따라낭 갓씨미로 시작되는 삼귀의문을 세 번 합송하게 했다.

 

삼귀의에 이어 사미십계가 합송되었다. 사미십계를 보면 오계와 팔계를 바탕으로 하여 두 가지가 추가 되어 있다. 아홉 번째 항은높고 편안한 침상을 사용하는 것을 삼가겠습니다.”라고 되어 있고 열 번째 항은 금과 은을 만지거나 가지는 것을 삼가겠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사야도는 사미십계를 설명하면서 열 번째 항목인 금과 은에 대하여 특별하게 길게 이야기했다. 그것은 소유에 대한 것이다. 수행승이 숲속에 살다 보면 도둑이나 강도가 가사를 훔쳐 갈 수 있다고 한다. 부처님 당시에는 옷감이 귀했기 때문에 수행승의 가사도 타겟이 됨을 말한다. 하물며 수행승이 금과 은을 지니고 있다면 목숨을 담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금과 은을 멀리 해야 하는 것은 청정한 삶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면 탁발에 의존하며 무소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청정한 삶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싸끼야의 아들을 따르는 수행승들에게 금과 은은 허용되지 않습니다.(S42.10)”라고 말씀 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금과 은을 허용하지 않았을까? 이는 부처님이 누군가 금과 은을 허용할 수 있다면 그는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도 허용할 수 있습니다.” (S42.10)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어는 큰스님은 스님들이 호주머니에 돈 있으면 공부안해요.”라고 말했다. 출가자가 많은 돈과 재물을 소유하고 있다면 감각적 욕망에 빠지기 쉬움을 말한다. 마치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고, 누워 있으면 음탕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만약 누군가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을 허용한다면 당신은 그를 수행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거나 싸끼야의 아들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고 확실하게 여겨도 좋습니다.”(S42.10)라고 말씀했다.  

 

사미십계에서 금과 은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부처님 당시부터 내려 오는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이 열반하고 난 다음 백년이 지났을 때 금과 은을 포함한 열 가지 계율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를 십사(十事: dasa vatthūni)’라 하는데 베쌀리의 진보적인 수행승들이 어긴 것이다. 이와 같은 십사문제는 결국 제2의 결집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테라와다불교에서는 부처님 가르침 그대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사미계에서 열 번째 항인 금과 은에 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을 붙여 주듯이

 

다섯 명의 사미가 탄생했다. 머리를 깍고 계를 받았으므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야도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름 짓는 방법이 있다. 사야도는 먼저 생년월일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특히 몇월에 태어났는지가 중요하다. 이름 짓는데 참고가 되기 때문이다. 태어난 달 못지 않게 요일도 중요하다.

 

태어난 달과 요일을 기준으로 하여 이름을 짓는다. 임시로 붙이는 이름처럼 보인다. 머리를 깍고 가사를 입고 계를 받았으니 무어라고 이름을 불러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속가의 이름을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태어난 월과 일을 따져 이름 붙이는 것이 가장 일반적 작명법이라고 한다. 그 결과 산사끌라, 신야나, 나야까, 와레인다, 신와야마와 같은 이름이 부여 되었다.

 

이름을 새로 지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에 대하여 혜송스님은 사야도의 말을 통역하여 전했다. 사야도에 따르면 새이름에 대하여 세속 일은 다 놓아 버리십시오. 속가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몸은 이전 몸과 다름 없지만 삭발하고 가사입고 계를 받음에 따라 새롭게 태어났음을 말한다. 이전의 나는 죽고 새로운 나로 태어난 것이다. 마치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을 붙여 주듯이 출가한 사미에게 이름을 새로 지어 준 것이다.

 

수계관에서 빅쿠계를 받고

 

사미계를 받은 다섯 명은 빅쿠계를 받기 위해 수계관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더 이상 따라 들어 갈 수 없다. 수계관에서의 행사는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수계관에서 행사는 9 45분부터 한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수계식이 열리는 동안 밖에는 띨라신들을 비롯한 선원의 재가남자요기와 여자요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마침내 빅쿠수계식을 마친 다섯 명의 빅쿠들 밖으로 나왔다. 바로 아침까지만 해도 같은 동료수행자였으나 그 사이에 두 계단이 뛰어 빅쿠가 된 것이다. 삭발을 하고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든 모습이 틀림 없는 수행승의 모습이다. 사야도 뒤에 새로 빅쿠계를 받은 다섯 명이 따랐다. 그 뒤에는 선원의 빅쿠승이 따라 나왔다. 수계관 입구에서 탁발과 보시가 이루어졌다.

 

 



빅쿠가 되어 상석에서

 

다섯 명의 빅쿠가 탄생했다. 아침 식사 때 까지만 해도 함께 식사 했으나 사미계와 빅쿠계를 받은 다섯 명은 신분이 달라져 있었다. 무려 두 계단이나 상승된 빅쿠의 신분이 된 것이다. 비록 단기출가라 하지만 일생에 있어서 한번 빅쿠가 되어 본다는 것은 커다란 사건일 것이다. 이날 점심 식사 때 다섯 빅쿠는 상석의 빅쿠 자리에서 식사했다.

 




삼배의 예를 받고

 

테라와다불교에서 빅쿠는 존경과 예경의 대상이다. 단지 머리를 깍았다고 해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계행을 지키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아홉 가지 출세간법을 지향하는 삶을 살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한달 또는 두달이라는 단기출가에 불과하지만 빅쿠는 빅쿠인 것이다.

 

단기출가자는 선원에서 나갈 때 빅쿠계를 반납한다. 세상에 나가면 빅쿠계를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선원에 살면 계를 지킬 수 있지만, 세상에서 살면 장애가 된다. 지키지도 못할 계를 지니며 사는 것이 아니라 반납하는 것이다. 빅쿠계를 반납하면 다시 일반 재가불자로 돌아 가는 것이다.

 

선원에서 빅쿠계를 받고 산다면 엄연히 빅쿠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미얀마 어느 재가불자 부부는 빅쿠가 된지 하루 밖에 되지 않은 사람에게 삼배의 예를 올렸다.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이다. 미얀마불자들의 신심을 엿볼 수 있었다.

 

 



 

2019-02-0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