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탁발은 일상이다, 담마마마까 수행기24

담마다사 이병욱 2019. 2. 7. 14:55

 

탁발은 일상이다, 담마마마까 수행기24

 

 

2019 1 10

 

다섯 명의 빅쿠가 처음으로 탁발을 나가는 날이다. 어제 머리를 깍고 사미계와 빅쿠계를 연이어 받은 다섯 명의 한국수행자들의 하루는 길었을 것이다. 전날 밤 L선생과 숙소에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L선생은 머리를 깍고보니 그 동안 추구 했던 일들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고 했다. 특히 불교언론계와 관련된 일에 대하여 아쉬움과 회환을 토로했다.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변화와 발전을 추구해 보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머리를 깍은 것은 인생의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출발점이라 보여진다.

 

목까지 칭칭 감싸고

 

탁발은 오전 8시부터 시작된다. 다섯 명의 빅쿠는 정문 바로 옆에 있는 종무소에 모였다. 미얀마 빅쿠들도 탁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처음 탁발 나가는 것을 따라 가 보기로 했다. 그래서 비구니스님 한분을 포함하여 모두 네 명이 따라나갔다.

 

탁발 나가려면 먼저 옷매무새를 다듬어야 한다. 평소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편단우견차림이지만 탁발 나갈 때에는 온몸을 가사로 감싸야 한다. 특히 목을 감싸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가사 수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선배 빅쿠들이 이제 갓 빅쿠가 된 후배 빅쿠들에게 가사 입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마침내 신참 빅쿠들이 옷매무새를 달리 하고 종무소에서 나왔다. 목까지 가사를 칭칭 감고 발우와 부채를 들고 있다. 모두 맨발이다. 탁발은 일렬종대형이다. 신참빅쿠들은 대열의 중간에 끼었다. 모두 이십여명에 이른다.

 



 

땅바닥 보다 높게 지어진 집에서

 

탁발자들이 정문을 나섰다. 네 명의 사람들도 뒤따라 같다. 정문을 나서 고속도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주변을 보니 전형적인 미얀마 사람들의 거주지가 보인다. 공통적으로 땅바닥 보다 높게 지어진 집에서 살고 있다. 날씨 더운 이유도 있고 뱀이나 곤충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함일 것이다.

 






 

양곤-만달레이 하이웨이를 가로질러

 

10여분을 지나자 고속도로에 이르렀다. 양곤과 만달레이를 연결하는 하이웨이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생각하는 그런 고속도로가 아니다. 왕복 6차선이긴 하지만 자유롭게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고속도로이다. 신호등도 없고 차단막도 없기 때문에 횡단할 수 있다. 차가 뜸한 틈을 타서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다.

 

 



탁발승들은 맨발로 고속도로 차선을 걸어 갔다. 차도와 인도가 분리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차선 한 개를 인도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고속도로라고 하지만 저속인 이유는 도로사정도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통시스템도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때문일까 양곤에서 만달레이까지 10시간 가량 걸린다고 한다. 참고로 양곤에서 만달레이까지 거리는 660키로 가량된다.

 

나홀로 탁발하는 사미

 

고속도로에서 걸어 다니는 것은 대단히 위험해 보인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의 일상인 것 같다. 고속도로 주변에는 노점도 있고 생필품 파는 곳도 있다.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하여 생활권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나이 어린 사미가 자기 또래만한 아이와 함께 탁발 나왔다. 나홀로 탁발 또는 둘이서 탁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맨발의 보시자

 

첫 번째 보시자를 만났다. 중년의 여인이 준비된 밥을 들고 서 있다. 맨발이다. 보시할 때에는 맨발이라 한다. 탁발자나 보시자나 맨발이 되는 것이다. 커다란 주걱으로 밥을 퍼서 발우에 넣어 준다. 열 번 가량 푸니 밥이 다 떨어졌다.

 




이번에는 청년이 나타났다. 청년은 치마처럼 보이는 미얀마식 복식차림이다. 스텐레스 주발에는 밥이 가득하다. 몇 번 퍼주다 보니 금방 밥이 떨어졌다. 몇 십미터 지나니 또 다른 청년이 대기하고 있었다. 밥을 퍼주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늘 있는 일인 것 같다. 미얀마에서는 탁발하는 것도 일상이고 보시하는 것도 일상인 것 같다.

 

 





탁발장면을 보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보았다. 청년, 중년여인, 할머니, 어린 소녀 등이다. 특히 할머니와 어린 소녀가 보시하는 장면은 깊 인상에 남았다. 나이 든 노인이 밥을 퍼 주는 장면을 보니 한국의 옛날 시골인심이 연상된다.

 



 

미얀마에서는 한국과 비교하여 가난한 나라이다. 그렇다고 행복지수가 낮은 것은 아닐 것이다. 물질적으로 풍부한 것과 정신적 행복은 반드시 비례 하지 않는다. 없으면 없는대로 사는 것이다. 이때 서로 돕고 산다면 힘이 될 것이다. 출가자는 재가자에 의존하며 살아 간다. 재가자는 기꺼이 출가자에게 밥을 준다. 어린 소녀가 밥을 퍼 주는 장면이 길게 기억에 남는다.

 




 

탁발은 쇼가 아니다

 

출가자는 탁발하고 재가자는 보시한다. 밥을 얻어 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또한 밥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현상을 볼 수 없다. 선진국에서도 볼 수 없다. 무료 급식소에서 볼 수 있지만 탁발문화가 없는 나라에서는 생소한 것이다.

 

탁발 쇼도 아니고 퍼포먼스도 아니다. 마치 관광상품처럼 예고된 것이라면 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얀마에서는 탁발은 늘 있는 일이다. 담마마마까 선원에서도 아침 8시가 되면 당연히 탁발 나가는 것이다. 탁발문화가 실종된 한국과 비교된다.


 



대승불교권에서 탁발을 볼 수 없다. 승가의 위의를 해친다고 하여 탁발을 금지한 것이다. 그 대신 청규가 생겨났다. 백장청규가 대표적이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을 하게 되면 수행 하는데 지장이 있을 것이다. 일하는데 시간을 많이 허비한다면 도와 과를 이루기 힘든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출가한 빅쿠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일하는 대신 탁발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걸인과 걸사는 어떻게 다른가

 

흔히 하는 말 중에 빌어 먹어라!”라는 말이 있다. 상대방을 저주하는 말이다. 빌어 먹는 다는 것은 최악의 삶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빌어 먹는 것이 최상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걸인과 걸사는 다른 것이다.

 

거지와 빅쿠는 얻어 먹는 것에 있어서는 같은 처지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얻어 먹는다고 해서 다 빅쿠는 아니라는 것이다. 거지를 걸인이라 하고 빅쿠를 걸사라 한다.

 

어떤 바라문 걸식자가 있었다. 그는 부처님에게 다가와 존자 고따마여, 저도 걸식자이고 그대도 걸식자입니다. 우리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S7.20)라며 물어 보았다. 바라문 걸식자는 바라문 인생사주기에 있어서 유행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부처님 당시에는 수행자들이 걸식에 의존했는데 그런 부류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부처님은 바라문 걸식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다른 사람에게 걸식을 한다고

그 때문에 걸식자가 아니니

악취가 나는 가르침을 따른다면

걸식 수행자가 아니네.

 

공덕마저 버리고 악함도 버려

청정하게 삶을 살며

지혜롭게 세상을 사는 자가

그야말로 걸식 수행승이네.(S7.20)

 

 

걸식자(bhikkhaka)와 걸식수행승(bhikkhu) 다른 것이다. 똑같이 밥을 빌어 먹고 살지만 행위는 똑 같지 않음을 말한다. 걸식자는 악취 나는 견해를 가진 자로서 단지 얻어 먹는 걸인(乞人)에 지나지 않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는 청정한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밥을 얻어 먹어도 걸사(乞士)라 하는 것이다.

 

탁발 해야 하는 이유는

 

부처님도 탁발에 의존하는 삶을 살았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출가제자라면 부처님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현재 테라와다불교에서는 가급적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탁발일 것이다. 그렇다면 탁발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윳따니까야에 걸식의 경’(S22.80)이 있다. 부처님은 탁발하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했다.

 

 

“수행승들이여, 이 탁발이라는 것은 삶의 끝이다. 세상에는 ‘손에 발우나 들고다녀라!’라고 하는 저주가 있다. 그러나 수행승들이여, 훌륭한 아들들은 타당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 그러한 삶을 선택한 것이다. 결코 왕이 강요한다고 그런 것이 아니고, 강도가 강요한다고 그런 것이 아니고, 빚을 졌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두려움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떨어졌다. 괴로움에 떨어져 괴로움에 둘러싸여 있다. 적어도 괴로움의 다발들이 종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S22.80)

 

 

탁발하는 것에 대하여 삶의 끝이라 한다. 고대인도에서는 손에 발우나 들고다녀라!”라고 하는 저주가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빌어먹어라!”라고 저주의 말을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렇게 본다면 탁발은 삶의 끝이나 다름 없다. 그럼에도 빌어먹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강요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그런 것도 아니라고 했다.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 탁발하는 것이다. 청정하게 살아야 괴로움과 윤회를 종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빅쿠퍼스트(Bhikkhu First)

 

탁발대열은 고속도로 구간을 왕복했다. 고속도로를 터전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고속도로 이편에서 저편으로, 그리고 고속도로 저 아래로 갔다가 다시 저편으로 건너 갔다. 그리고 다시 원래 지점으로 되돌아 가는 일정이다.

 

오전 8시대는 출근시간대라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교통량이 가면 갈수록 늘었다. 고속도로 저편으로 건너가야 한다. 신호등이 없기 때문에 차가 멈추기만을 기다려 한다. 그러나 탁발대열이 지나 갈 때에는 차가 멈춘다. 탁발대열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일은 미얀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빅쿠퍼스트(Bhikkhu First)임을 실감한다.

 

미얀마 대중교통수단이 된 한국의 마을버스

 

양곤-만달레이 하이웨이 주변은 삶의 현장이다. 인도도 없고 신호등도 없지만 나름대로 질서가 잘 유지 되고 있다. 그런데 고속도로 주변을 보면 종종 버려진 차들이나 고장난 차들이 보인다. 그 중에 버스도 있다. 놀랍게도 한글이 쓰여져 있다. 한글로 현대교통’ ‘천연가스버스등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심지어 한글로 된 광고도 부착 되어 있다.

 

 



미얀마에서는 한국에서 중고차를 수입하여 사용하는 모양이다. 대부분 한글을 지우지 않고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고속도로 주변이나 도로를 달리는 버스를 보면 한글이 쓰여 있는 버스를 종종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마을버스로 사용된 버스가 미얀마에서는 YBS(양곤버스시스템)라 하여 대중교통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얀마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니

 

십여일만에 밖에 나와 보니 모든 것이 새롭다. 특히 사람 사는 모습을 보니 미얀마의 현실을 보는 것 같다. 고속도로 바로 옆에서 돼지를 보았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방목하여 키우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가난하고 궁핍한 모습이다. 그렇다고 정신문화가 낮은 것은 아닐 것이다. 미얀마사람들이 물질적으로는 빈궁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선진국이라 볼 수 있다. 틈만 나면 사야도 법문을 듣고, 틈만 나면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담마마마까로 들어 가는 길

 

탁발대열은 고속도로를 왕복했다.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 갔다가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 온 것이다. 담마마마까로 들어 가는 길에 입간판이 보였다. 한글로 고려사담마마마까국제선원이라고 쓰여 있다. 이런 명칭때문일까 이곳 주민들은 담마마마까를 한국절로 알고 있다고 한다.

 














 

 



눈물겨운 밥을 먹으며

 

탁발은 매일 있는 것이다. 매일 오전 8시가 되면 빅쿠들은 탁발을 나간다. 약 한시간 정도 걸리는 탁발에서 빅쿠들은 발우에 가득 밥을 담아 온다. 이십여명 되니 밥의 양도 상당히 많다.

 

빅쿠들은 선원에 도착하면 먼저 식당으로 들어 간다. 발우에 담겨 있는 밥을 커다란 스텐레스 대야에 담는다. 밥을 모두 합해 놓으니 스텐레스 두 개에 가득하다.

 



 

선원에 처음 왔었을 때 밥을 아무 생각 없이 먹었다. 밥이 나오니 먹은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빅쿠들이 탁발해 온 밥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사실을 알았을 때 밥을 남긴다거나 함부로 먹을 수 없었다. 빅쿠들이 일일이 탁발해온 밥이고 신심 있는 보시자들이 시주한 밥이기 때문이다.

 

선원대중이 많으면 탁발해 온 밥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선원에서는 별도로 밥을 한다. 새로 밥한 것과 탁발해온 밥을 합하여 다시 찐다고 한다. 선원에서 매일 먹는 아침 쌀죽과 점식식사는 이렇게 탁발해 온 밥이 섞여 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자 눈물겨운 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네 가지 탁발공덕

 

탁발은 빅쿠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노동을 하지 않는 빅쿠는 탁발에 의존하여 생계를 유지한다. 부처님 당시부터 그렇게 해 왔다. 미얀마불교에서는 이런 전통을 잊지 않고 있다. 빅쿠들이 매일 탁발 나가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런데 탁발은 공덕 짓는 행위라는 것이다. 청정도론에는 열네 가지 탁발공덕이 있다.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출가는 탁발음식만을 먹는 것을 기초수단으로 삼는다.”라는 말씀으로부터기초생활수단에 일치하는 행도가 현존하고,

(2) 두 번째 고귀한 혈통을 확립하고,

(3)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생활을 하고,

(4) “값나가지 않아 얻기 쉽고 또한 그것들의 허물은 없는 것이다.”라고 세존께서 찬탄하신 필수 자구가 존재하고,

(5) 나태를 물리치고,

(6) 청정한 생활을 유지하고,

(7) 중학죄법을 준수하고,

(8) 타인에 의해 연명하지 않고,

(9) 타인을 도와 이롭게 하고,

(10) 자만을 버리고,

(11) 맛에 대한 갈애를 없애고,

(12) 별중으로 식사하는 것과 연속적으로 식사하는 것에 대한 실천의 학습계율을 위반하지 않고,

(13) 탐욕의 여읨 등에 수순하는 삶을 살고,

(14) 올바른 실천을 성숙시키고,

(15) 미래세대에 대한 연민을 갖는다. (Vism.2.29)

 



 

탁발공덕을 보면 눈에 띄는 것 몇 가지가 있다. 그 중에 6번항을 보면 청정한 생활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청정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데 탁발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10번째 항을 보면 자만이 버려진다.’고 했다.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빌어 먹는 자가 자만을 부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탁발할 때에는 눈을 아래로 뜨고 멍에의 길이만큼 보고”(Vism.2.34)라 했다.

 

9번째 항을 보면 타인을 도와 이롭게 한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탁발함으로 인하여 재가불자에게 보시공덕을 쌓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탁발하는 것은 강력한 사회참여라 볼 수 있다.

 

15번째 항을 보면 미래세대에 대한 연민을 갖는다.’라 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상윳따니까야에 늙음의 경’(S16.5)이 있다. 깟싸빠 존자가 두타행을 하는 것에 대하여 부처님에게나 자신의 바로 현세에서의 행복한 삶을 보면서, 그리고 후세의 뭇삶들에 대한 자비를 느끼기 때문입니다.”(S16.5)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깟싸빠 존자가 두타행을 한 것은 개인적 수행만으로 한 것은 아니다. 미래 세대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왜 그런가? 두타행을 하면 분명히 이익과 행복을 가져 온다. 두타행으로 모범을 보이면 후세 사람들도 따라 할 것이다. 후세의 사람들도 이익과 행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세의 중생들에 대한 자비의 마음으로 두타행을 하는 것이라 했다. 탁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래세대에 대한 자비의 마음으로

 

탁발자는 탁발하면 분명히 오랜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임을 알고 있다. 후대에 누군가 따라 한다면 역시 오랜세월 이익과 행복이 될 것이다. 지금 탁발하는 것이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탁발하는 것에 대하여 미래세대에 대한 연민을 갖는다.’라 했을 것이다.

 

 

탁발음식 덩이에 만족하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사방으로 가는 자는

음식에 대한 탐욕을 끊는다.

 

나태한 삶을 제거하고

생활을 정화시킨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탁발행을 경멸하지 말아야 한다.”(Vism.2.30)

 

 

 

2019-02-0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