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인터뷰와 수행자의 밥값, 담마마마까 수행기21

담마다사 이병욱 2019. 2. 4. 11:32

 

인터뷰와 수행자의 밥값, 담마마마까 수행기21

 

 

2019 1 8

 

사야도실에서 오후 4시부터 인터뷰가 있었다. 선원에 온지 9일만이다. 이번에 함께 미얀마에 온 한국요기 칠팔명이 함께 했다. 이미 인터뷰를 마친 요기들도 있었다. 인터뷰는 시간표상으로 오전 9시와 오후 3시 하루 두 차례 있다. 에인다까 사야도가 점검해주고 혜송스님이 통역해 준다.

 

위빠사나 수행처에서 인터뷰는 필수적 과정이다. 한국의 선원에서도 법문, 경행, 좌선, 인터뷰 순으로 진행된다. 누구나 자신이 체험한 것을 어느 것이나 얘기 할 수 있다. 들어 보면 대개 느낌에 대한 것이다. 어느 여자수행자는 빠지지 않아 보고를 하는데 주로 느낌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법사는 느낌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보고할 때는

 

에인다까 사야도는 1 7일 새벽법문에서 보고의 중요성에 대하여 얘기한 바 있다. 수행자는 자신이 체험한 것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정직하게 보고 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스승의 능력과 제자의 노력에 대해 얘기했다. 단지 선원에 산다고 하여 도와 과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력을 해야 이루어짐을 말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진이다. 노력하는 자, 정진하는 자만이 보고를 할 수 있음을 말한다.

 

사야도는 보고를 받기 전에 먼저 기록을 했다. 이름과 나이와 사는 지역을 물어 본다. 그리고 수행경력을 물어 보고 종교가 무엇인지도 파악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수행을 통하여 무엇을 얻을 것인지에 대하여 물어 본다. 이와 같은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보고를 받는다. 보고요령은 담마마마까 법요집에도 실려 있다.

 

법요집에 따르면 인터뷰 요령이라는 항목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간단명료하고 솔직분명하게 자신이 관찰한 것만을 스승에게 보고 해야 된다는 것이다. 전후사정, 수식어,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말 등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오직 자신이 관찰한 내용만 있는 그대로 보고해야 함을 말한다. 수행인터뷰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요기들도 있고 시간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임할 때에는 먼저 스승께 삼배를 올려야 한다. 앉은 자세로 테라와다식삼배의 예를 올리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칠 때에도 삼배의 예를 올려야 한다. 제자는 예의 바르게 있는 그대로 보고하고 스승은 점검해 준다. 이런 전통은 매우 오래 된 것이다. 그래서 인터뷰 없는 수행을 상상할 수 없다.

 


 

 

다른 것 다 내려 놓고 일어나고 사라짐만 관찰하십시오.”

 

M선생은 통증에 대해 보고 했다. 좌선할 때에는 종 칠 때까지 참고 견디었다고한다. 그 결과 이틀만에 통증이 잡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하여 사야도는 칭찬해 주었다. 어떤 사람은 통증을 극복하는데 몇 달 걸린다고 말해 주었다. 사야도는 정진력이 매우 좋다고 말하며 이대로 열심히 하면 빨리 발전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법요집에 따르면 주요 보고 내용은 호흡, 가려움 관찰, 무릎통증관찰, 망상에 대한 것이 많다. 어느 것이든지 관찰대상이고 보고대상임을 알 수 있다.

 

면담자들은 주로 통증에 대해 이야기 했다.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면 제대로 보고가 되지 않는 것이다. 보고는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중간에서 통역하는 혜송스님은 꼬치꼬치 캐묻듯이 구체적인 느낌을 말해 달라고 했다. 무릎에 통증이 있다면 쑤시는지, 찌르는지, 따가운지 자세히 말하라는 것이다.

 

사야도는 있는 그대로 느낌을 보고한 수행자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격려해 주었다. 특히  참는 것이 제일 잘하는 일입니다.”라며 노력을 강조했다. 또 참고 관찰하면 집중력이 생겨날 것이라 했다.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자에게는 한국말로 열심히 하세요.”라며 격려했다.

 

차례가 되어서 호흡과 관련해서 이야기 했다. 지난주에는 통증이 심했는데 이번주에는 약해져서 호흡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리저림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좌선 중에 생각과 관련해서 보고 했다. 망상이 아닌 가르침과 관련된 것은 괜찮은지 물어 보았다. 경전을 많이 보고 글도 많이 쓰기 때문에 좌선 중에 이럴 때는 이런 것이 아닐까?’라며 경전문구나 들었던 법문이 떠오르는 것이다. 망상이 아니라 건전한 것이기 때문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사야도는 망상이나 생각도 알아차려야 할 대상이라 말하며 다른 것 다 내려 놓고 일어나고 사라짐만 관찰하십시오.”라고 말했다.

 

경청과 배려의 리더십

 

사야도는 말을 잘 들어 주는 사람 같았다. 인터뷰하면서 경청과 배려, 그리고 겸손함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리더의 조건일 것이다.

 

리더의 조건과 관련하여 앙굿따라니까야에 핫타까 알라바까의 경’ (A8.23)이 있다. 경에 따르면 재가신도 알라바까에게는 오백명이 따랐다. 그래서 부처님은 핫타까 알라바까에게 부처님의 청신사 가운데 네 가지 섭수의 토대로 대중을 돕는 님 가운데 제일(catūhi sagahavatthūhi parisa sagahantāna agga)’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

 

청신사 핫타까 알라바까에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 오백명의 대중이 따랐을까? 경에 따르면 핫타까는 리더가 될 만한 덕목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부처님이 칭찬하신 말씀으로 알 수 있다. 부처님은 대중 들에게 핫타까 알라바까는 믿음이 있고, 핫타까 알라바까는 계행을 지키고,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부끄러움을 알고,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창피함을 알고,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많이 배우고,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관대하고,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지혜를 갖추었다.” (A8.23)라고 말씀 했다.

 

핫타까 알라바까에게는 믿음, 계행, 부끄러움, 창피함, 배움, 관대함, 지혜 이렇게 일곱가지 덕목을 갖추었다. 그런데 부처님은 하나 더 덧붙였다. 부처님은 그 훌륭한 가문의 아들은 겸손하다. 자신에게 있는 착하고 건전한 것들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그러므로 핫타까 알라바까가 여덟 번째 아주 놀랍고 경이로운 원리 즉 겸손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라.”(A8.23)라고 말했다. 일곱 가지에다 겸손이 하나 더 추가 되어 핫타까 알라바까는 여덟 가지 덕목을 갖춘 것이다.

 

사람들은 장점은 드러내려고 하고 공적을 알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오백명이 따르는 핫타까 알라바까는 선업공덕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부처님은 이에 대하여 겸손하다고 칭찬한다. 리더의 일곱 가지 조건에다 겸손까지 갖추었기 때문에 오백명이 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앙굿따라니까야를 보면 리더의 조건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사섭법이다.

 

핫타까 알라바까가 오백명을 섭수한 또 하나의 이유는 사섭법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경에 따르면, 핫타까는 부처님에게 세존이시여, 저는 이 대중을 세존께서 가르쳐주신 네 가지 섭수의 토대로 이 대중을 섭수합니다. 저는 ‘이 사람은 보시를 베풀어 섭수해야 한다.’라고 알면, 그 사람을 보시를 베풀어 섭수합니다. 저는 ‘이 사람은 사랑스런 말로 섭수해야 한다.’ 라고 알면, 그 사람을 사랑스런 말로 섭수합니다. 저는 ‘이 사람은 도움을 주는 일로 섭수해야 한다.’ 라고 알면, 그 사람을 도움을 주는 일로 섭수합니다. 저는 ‘이 사람은 동등한 배려로 섭수해야 한다.’ 라고 알면, 그 사람을 동등한 배려로 섭수합니다.(A8.24) 라고 말했다.

 

흔히 사섭법에 대하여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라 한다. 그런데 한국불교에서는 동사(同事)에 대하여 고락을 함께 하는 것정도로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초기경전에 따르면 이 사람은 동등한 배려로 섭수해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부처님은 동사에 대하여 동등한 배려(samānattatāya)’라고 말씀 했다.

 

사야도가 잘 경청하고 잘 배려 하는 것을 보니 핫타까 알라바까의 리더십이 생각났다. 리더의 조건은 믿음, 계행, 부끄러움, 창피함, 배움, 관대함, 지혜, 겸손과 함께 보시, 애어, 이행, 배려 임을 알 수 있다. 두 가지로 요약해서 말한다면 경청과 배려일 것이다. 리더는 잘 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마치 인터뷰의 모범이 될 만한 사례가 청정도론에 실려 있다.

 

거듭해서 정신활동을 일으켜라.”

 

청정도론에 따르면, 어떤 수행승이 니밋따(nimitta)를 보았다. 이럴 때 스승은 어떻게 말해 주어야 할까? 제자가 현상을 보고할 때 스승은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스승의 입장에서 말해 주는 요령이 청정도론에 실려 있다. 먼저 제자가 스승에게 보고한다. 니밋따가 나타났을 때 제자는 궤범사(스승)에게 존자여, 제게 이와 같은 것이 나타났습니다.”라고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스승은 이와 같은 보고를 받았을 때, 청정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대응하라고 했다.

 

 

그때 궤범사는 이것이 인상(nimitta)이다.’ 혹은 이것은 인상이 아니다.’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벗이여, 이와 같은 것이 있다.’라고 말하고, ‘거듭해서 정신활동을 일으켜라.’라고 말해야 한다. ‘인상이다.’라고 말하면 종결해 버릴 것이고, ‘인상이 아니다.’라고 말하면 절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양자를 말하지 말고 정신활동을 일으킬 수 있도록 고무 시켜야 한다.”(Vism.8.218)

 

 

제자가 수행중에 빛을 보았다고 보고 했다면 스승은 거듭해서 정신활동을 일으켜라.”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빛이라고 하면 더 이상 수행하려 않을 것이고, 그것이 빛이 아니라고 말하면 실망할 것이기 때문이라 한다. 따라서 딱 끊어서 양자를 말하지 말고 더욱 열심히 노력해라.”라는 식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활동을 고무시킬 수 있는 말이다. 마치 사야도가 통증에 대한 보고를 받고 격려하는 말과 같다.

 

수행자의 밥값

 

수행자의 밥값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선원에서는 잠 잘 곳을 마련해 주고 먹을 것을 준다. 모두 누군가의 보시에 의한 것이다. 선원에서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수행 이외에 달리 할 것이 없다. 시간표 대로 좌선을 하고 행선을 하고, 숙소로 돌아 와서는 일상사띠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요기(수행자)의 일과이다. 주말도 없어서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다. 물론 명절도 없다. 매일매일 똑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어떻게 보면 먹고 명상하는 것이 일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요기가 수행에 전념하지 않고 게으른 모습을 보인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한마디로 밥값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의 어느 큰스님은 해제날에 밥값 내놓아라라며 다그쳤다는 얘기가 있다. 정진하지 않는 수좌스님을 질타하는 말이다. 선종에서는 백장청규라하여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라 했다. 초기경전식으로 따지면 수행자는 마음의 밭을 갈아야 한다. 농부는 한철만 갈면 되지만 수행자는 매일매일 마음의 밭을 갈아야 한다.

 

부처님 당시에도 수행자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테리가타에서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에 따르면, 로히니가 소녀시절이었을 때 아버지가 그들은 일하기 싫어해서 게으르고 남들이 보시한 것으로 살고 잔뜩 기대하며 맛있는 것만을 원하는데, , 네게 수행자가 사랑스러운가?(Thig.273)라고 말했다. 이에 로히니는 “일하기 좋아하며 게으르지 않고 최상의 일을 행하는 자로서 그들은 탐욕과 성냄을 버립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Thig.275)라고 답했다.

 

마음의 밭을 간다면 열심히 일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 제거하는 마음의 밭갈기라 볼 수 있다. 수행자는 밥값을 해야 한다. 어떻게 밥값을 해야 하는가? 테라가타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Tādisa kamma katvāna

bahu duggatigāmina

Phuṭṭho kammavipākena

anao bhuñjāmi bhojana.

 

“이와 같이 나쁜 곳으로 이끄는

많은 악업을 짓고

아직 그 업보에 맞닥뜨리지만

부채 없이 음식을 즐긴다.(Thag.882)

 

 

이 게송은 맛지마니까야 ‘앙굴리말라의 경(M86)’의 게송과도 병행한다. 게송에서 “부채 없이 음식을 즐긴다.(anao bhuñjāmi bhojana)”라 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주석에 따르면 네 가지 음식을 즐기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첫 번째는 도둑질 한 음식을 즐기는 자이다. 수행자가 수행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맛있는 것만 찾는 것을 말한다. 계행이 나쁜 자가 승가 가운데 버젓이 밥 먹는 것을 말한다. 밥 먹을 자격이 없음에도 밥을 얻어 먹는 밥도둑과 같은 것이다.

 

두 번째는 빚진 음식을 즐기는 자이다. 계를 지닌 자가 음식을 반조하지 않고 먹는 것을 말한다. 이때 음식은 빚으로 먹는 것이다.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다. 열심히 정진하여 도와 과를 이룬다면 빚을 갚게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유산으로 음식을 즐기는 자이다. 승단에 출가하면 기본적으로 잠 잘 곳과 입을 것과 먹을 것이 제공된다. 사향사과와 열반이라는 아홉 가지 출세간법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빚진 음식을 먹는 자이다. 그러나 아라한 과를 제외한 일곱 가지 부류의 유학(sekkha)이 되면 유산으로 음식을 먹게 된다. 부처님의 유산이다. 도와 과를 이룬 유학은 부처님의 공덕으로 음식을 즐기는 것이다.

 

네 번째는 자기 것으로 음식을 즐기는 자이다. 마치 주인이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번뇌다한 아라한이 이에 해당된다. 게송에서는 부채 없이 음식을 즐긴다.”라고 했다. 이는 앙굴리말라가 비록 연쇄살인자였지만 부처님의 교단으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기 때문에 부채없이 음식을 즐긴다고 했다. 아라한이 되면 주인으로서 먹기 때문에 자기의 음식을 즐기며 먹는 자라 한다. 아라한은 복밭 puññakkhetta)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인으로서 음식을 수용하는 자에 대하여 공양받을만하고 대접받을만하고 보시받을만하고 존경받을만하며 세상에 위없는 복밭이다.”(S11.3)라고 말한다.

 

선원에서는 아침식사와 점심식사가 제공된다. 누군가 선원대중 전체를 위하여 한끼 공양을 제공한 것이다. 또 빅쿠들이 매일 여덟 시가 되면 탁발 나가서 얻어 온 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으름핀다면 네 가지 음식의 수용 중에서 도둑질로 음식을 수용하는 것과 같으며 빚으로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그래서일까 에인다까 사야도는 늘 정진을 강조한다. 정진하면 사띠는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라 한다. 수행결과를 잘 보고 하는 것도 밥값하는 것이라 본다.

 


2019-02-0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