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수행은 즐거워야, 담마마마까 수행기19

담마다사 이병욱 2019. 2. 2. 11:07

 

수행은 즐거워야, 담마마마까 수행기19

 

 

2019 1 7일 오전

 

물 한모금 마시는 것이 편안하다. 숙소에서 약 15분 가량 행선하고 난 다음 갈증을 느껴 패트병 하나를 땄다. 사띠가 유지가 된 상태라고 나름대로 판단했다. 패트병 마개를 돌리는 것도 물을 한모금 한모금 천천히 마시는 것도 알고 있다. 이렇게 글 쓰고 있는 마음 상태도 편안하다. 침상에 등받이를 하고 다리를 쭉 뻗은 상태에서 글을 써 가고 있다. 자동기술하는 것처럼 술술 나간다. 오전 8시 좌선을 마치고 난 상태이다.

 

오전 8시 좌선시간에

 

오전 8시에 좌선을 했다. 선원에서는 짝수시간에는 좌선을 하고 홀수시간에는 행선을 한다. 각각 한시간 할 수 있도록 시간표가 짜여져 있다. 가급적 시간을 준수하라고 한다. 어떤 이는 반대로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유로이 하고 있다. 좌선이 잘 된다고 하여 그냥 계속 앉아 있는 요기도 있다. 그러나 시간표 대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오전 8시 좌선시간에 맞추어 대법당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사야도는 새벽법문에서 한국의 수행자들의 행태에 대하여 질책하는 듯한 말을 했기 때문에 옆에 가는 사람이 있어도 못 본 척하고 걸었다. 인사도 없이 오로지 앞으로 천천히 한걸음한걸음 걸어갈 뿐이었다.

 

오늘 오전 8시 좌선은 왠지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록 쌀죽이긴 하지만 아침식사를 배부르지 않을 정도로 채웠다. 식사 후에 선원 정원을 산책해서인지 컨디션도 좋은 상태이다.

 

대법당에 도착하니 부지런한 요기들은 개인용 모기장을 치고 좌선에 들어가 있다. 천천히 모기장을 내리고 삼배를 했다. 두 손을 모으고 코까지 서서히 들어 올려서 멈추었다.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해 보았다. 여기 앉아 있기에는 부처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또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고 승가가 전승되어 왔기 때문이다. 비록 머나 먼 이국이지만 잘 전승된 삼보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어느 때 보다 좋은 컨디션이다. 왼쪽 다리를 접어서 발 뒤꿈치를 사타구니에 바싹 붙였다. 오른쪽 다리는 왼쪽 다리에 붙여 평좌 자세를 가졌다. 평좌에서는 늘 오른쪽 다리에서 통증이 발생한다. 너무 바싹 붙이면 통증이 심하기 때문에 가볍게 붙였다. 두 손은 가지런히 모아 왼손 위에 오른손을 놓고 위로 향하게 했다. 두 엄지는 붙이지 않고 닿을락 말락 하게 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지만 눈을 뜬 것처럼 감았다. 그대로 가만 있었다. 억지로 배의 움직임을 보려 한다면 그 마음은 탐심일 것이다. 그저 앉아 있을 뿐이다. 서서히 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하시방법은 배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호흡과 배의 움직임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호흡과 배의 움직임과의 관계는

 

담마마마까 법요집에 따르면 숨을 들이 쉴 때와 숨을 내쉴 때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마음을 코의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배의 움직임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코의 호흡에 집중하면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 되어 사마타의 길로 가게 되지만, 배의 움직임에 집중하면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되어 위빠사나의 길로 가게 된다.

 

배의 움직임은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설명된다. 마음을 배에 집중하면 숨을 들이 쉴 때 점점 불러지는 양식을 일어남이라고 하고, 반대로 숨을 숨을 내쉴 때 배가 점점 꺼져 가는 양식을 사라짐이라 한다. 배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때 마음이 밖으로 달아나지 않도록 마음을 배에 밀착하여 꿰뚫어 보듯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움직임을 끝까지 관찰하라고 한다.

 

배의 움직임을 관찰할 때에는 배의 겉모양은 무시하라고 한다. 배속의 공기가 움직이는 느낌을 관찰하라고 한다. 움직임이 강하면 강함을 싸띠해야 하고, 약하면 약함을 싸띠해야 하고, 불분명하면 불분명한 것을 싸띠하라고 한다. 길면 긴 것을, 짧으면 짧은 것을 싸띠하라고 한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실제 성품(Paramatha)’을 관찰하라는 것이다.

 

배속에서 움직이는 느낌이 실제성품이라 한다. 이는 다름 아닌 풍대를 말한다. 지수화풍 사대에서 바람의 요소를 말한다. 배의 일어남과 사라짐은, 배속에서 변화하는 성품, 흔들리는 성품, 점점 줄어 드는 성품, 거친 성품, 부드러운 성품 등이다. 이와 같은 생멸의 성품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마음을 밀착해서 관찰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성성(惺惺)하게 사띠하라고 한다.

 

배의 일어나고 사라짐에 마음을 집중했다. 숨을 들이 쉴 때 배의 일어남을 관찰하고, 숨을 내쉴 때에는 꺼짐을 관찰했다. 이렇게 계속 관찰하면 자연스럽게 집중이 된다. 그렇다고 배의 움직임을 인위적으로 만들지 말라고 한다. 있는 그대로 관찰하라는 것이다. 호흡과 배의 움직임이 함께 가게 되자 감았던 눈도 밝아지는 것 같다. 평소와 다르게 다리저림 등 통증도 없다. 포갠 두 손의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 앞이 밝아지면서 몸도 마음도 평안해짐을 느꼈다.

 

수행은 즐거워야

 

수행은 즐거워야 한다고 말한다. 수행이 괴로운 것이라면 앉아 있을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통증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새벽 사야도의 법문에 따르면 통증도 훌륭한 수행주제에 속한다. 나이가 들어 중병에 걸린 사람도 자신의 통증을 보면서 정진하면 도와 과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노년에 힘이 빠져 수행을 포기하는 것도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매일매일 하는 것이 수행이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습관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이라는 말 대신 수습(修習)이라 한다.

 

생업을 하면서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 앉아 있는 습관을 들여야 하나 언제나 마음뿐이다. 이럴 경우 집중수행이 요청된다. 주말에 가까운 선원에 앉아 있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좌선 시간을 갖는다면 습관 들이는 것이 된다. 그러고 보면 집중수행 만한 것이 없다. 해외여행 가는 것 대신에 집중수행하러 가는 사람도 있다. 오감을 즐기는 여행보다는 내면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다. 마음이 집중 되어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을 때 오감으로 즐기는 것 보다 훨씬 더 났다는 것이다.

 

도중에 자세를 바꾸었다. 삼십분 가량 지나자 다리저림이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린 다리를 세워서 피가 돌게 했다. 그리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가급적 움직이지 말라고 한다. 종칠 때까지 자세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통증이 오면 통증을 관찰하라는 것이다. 배의 움직임이 주된 관찰 대상이지만 그것 보다 더 강력한 대상이 나타나면 그곳으로 가라는 것이다. 통증이 대표적 케이스이다.

 

자세를 한번 바꾸긴 했으나 집중은 그대로 유지 되었다. 한번 붙잡은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배의 움직임이 감지 되지 않았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새소리가 들렸다. 귀가 열려 있으니 듣지 않을 수 없다. 음악소리도 들려 오고 사람소리도 들려 온다. 단지 들림으로 그쳤다. 미약하게나마 집중이 유지되고 있었고 사띠도 있었기 때문에 소리로 인하여 깨뜨려지지 않았다. 들려 오는 소리도 일어나는 생각도 알아차림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에는 힘을 쓰지 못한다. 단지 그런 줄 아는 마음만 있을 뿐이다.

 

선원에 온지 일주일째 되는 날 처음으로 기분 좋은 좌선을 가졌다. 이런 기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다. 아마도 심, , , , 정이라는 선정의 요소가 조금씩은 있는 것 같다. 종소리에 좌선을 멈추었다. 모기장을 제치고 두 손을 합장했다. 두 손을 이마에 까지 올리고 천천히 삼배를 올렸다.

 

좌선이 끝나고 경행을 대법당에서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법당을 빠져 나와 숙소로 향했다. 이 기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인사를 해야 하지만 말을 하는 순간 이 기분이 깨질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숙소로 이동 중에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속소로 돌아와서 경행을 했다. 그리고 느낌을 약 50분 가량 노트에 적어 두었다. 쓰는 것도 집중이 잘 되어서인지 매우 빠른 속도로 자동기술하듯이 써 내려 갔다. 이 글은 노트에 기록한 것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수행은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 그렇다고 즐거움을 즐긴다면 거기서 머물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음을 보라고 한다. 즐거운 마음이라고 생각되는 마음도 무상함을 말한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는 열 가지 경계를 말한다.

 

열 가지 통찰의 경계적 오염

 

위빠사나 수행자에게 나타나는 열 가지 경계가 있다. 이는  , , 희열, 안온, 행복, 확신, 분발, 확립, 평정, 욕구를 말한다. 이와 같은 열 가지에 대하여 열 가지 통찰의 경계적 오염이라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났을 때에는 즐기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온이 생겨 났다면 “나에게 이러한 안온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것은 무상한 것이고, 유위적인 것이고, 조건적으로 생겨난 것이고, 파괴되기 마련이고, 괴멸되기 마련이고, 사라지기 마련이고, 소멸되기 마련이다.(Vism.20.126)라고 지혜로써 판별하고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 가지 경계적 오염은 명상주제를 놓아 버린 게으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오직 올바른 행도를 닦고 이치에 맞게 노력하고 통찰을 시작한 훌륭한 가문의 아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다.”(Vism.20.105)라 한다. 노력하지 않는 자, 정진 하지 않는 자에게는 열 가지 경계가 나타나지 않음을 말한다. 반면 열심히 정진하는 자에게 열 가지 경계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다고 열 가지 경계를 즐기며 앉아 있지 말라고 했다. 길이 아닌 길을 가지 말라는 것이다.

 

열 가지 경계는 도의 길에 있어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는열 가지 경계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올바로 관찰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말은 부처님이 말씀 하신 갈애와 자만과 견해에 대한 것으로 초기경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오온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온은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느낌도 나의 것이 아니다. 명상이 끝난 후에 기분 좋은 상태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2019-02-0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