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모곡수행센터, 미얀마 성지순례기7

담마다사 이병욱 2019. 2. 24. 12:08

 

모곡수행센터, 미얀마 성지순례기7

 

 

2019 1 12일 오전

 

쉐다곤파고다를 본 후에 다음 행선지 모곡수행센터(Mogok Meditation center)로 향했다. 어제는 양곤 외곽에 있는 숲속의 명상센터를 찾았다면 이번에는 양곤시내에 있는 수행센터를 찾아 간 것이다. 그런데 쉐다곤파고다를 떠난지 불과 몇 분만에 도착한 것 같다. 도심 한 가운데 명상센터가 있는 것이다. 금빛으로 장식된 첨탑이 있어서 이곳이 불교명상센터임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삼세양중인과도표

 

모곡선원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모곡센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그것은 원형으로 되어 있는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도표이다. 삼세양중인과는 과거, 현재, 미래 삼세에 걸쳐 인과를 두 번 받는 것을 말한다. 주로 십이연기를 설명하는데 사용된다.

 

삼세양중인과 도표는 매우 유명하다. 초기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보았을 것이다. 2009년 한국명상원에 처음 갔었을 때도 보았다. 그래서일까 선원에 들어가자 마자 담벼락에 삼세양중인과 도표가 먼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삼세양중인과 원형도표는 미얀마글자로 쓰여 있다. 그러나 워낙 유명한 도표이기 때문에 검색만 하면 영어나 한글로 된 것도 찾아 낼 수 있다. 한국명상원 묘원선생은 이 삼세양중인과 도표를 이용하여 법문했다. 묘원선생에 따르면 모곡선원에서도 수행했었다고 한다.

 

모곡사야도는 누구인가?

 

모곡선원은 여러 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안내자 툰툰님에 따르면 미얀마에서 모곡선원이 가장 많다고 했다. 마하시선원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모곡선원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역사가 가장 오래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모곡선원은 어떻게 시작 되었을까? 먼저 모곡사야도가 누구인지터 알아야 한다.

 




영문판 위키백과에 따르면, 모곡사야도는 1899년 생이다. 이는 마하시시야도의 출생연도 보다 더 빠른 것이다. 마하시사야도는 1938년부터 위빠사나 지도를 시작했고 본격적으로는 1949년부터 첫 안거에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백과사전에 따르면 모곡수행센터는 1924년부터 시작 된 것으로 나와 있다. 모곡사야도의 법명은 위말라(U Vimala)’이다. 모곡사야도라 하는 것은 모곡센터의 초대원장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메인 명상홀에서

 

모곡선원 본원은 위빠사나 수행의 본가라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여기저기서 정진하는 수행자들을 볼 수 있다. 안내자 툰툰님과 함께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다. 여러 건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본관에 들어가 보았다. 명상홀과 식당홀이 함께 있는 건물이다. 오전 9 45분 한 여성 수행자가 수행복을 단정하게 입고 좌선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여러 채의 건물이 복도로 모두 통하게 되어 있어서 미로처럼 보이지만 동선을 최소화 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도심에 있는 선원이기 때문에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메인 명상홀에 이르렀다. 일층에는 재가수행자들이 좌선 중에 있었다. 흰수행복에 밤색 어깨띠를 두른 수행자들은 대부분 여성수행자들이다. 중년이상으로 나이 든 사람이 더 많다. 안내자 툰툰님에 따르면 미얀마에서는 명상이 생활화 되어 있다고 한다. 직장인들은 출근하기 전에 한시간 앉아 있다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나서는 한시간 앉아 있다가 집에 간다는 것이다.

 




명상홀에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는 것에 놀랐다. 명상홀 중앙에는 모곡선원의 상징이라 볼 수 있는 십이연기의 삼세양중인과 도표가 걸려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초대원장인 모곡사야도의 사진이 걸려 있다.

 

메인 명상홀 이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일층에는 재가수행자들의 공간이라면, 이층에는 출가수행자의 공간이라 볼 수 있다. 너른 홀에는 어깨를 드러낸 가사를 입은 빅쿠 약 육칠십명 가량이 앉아 있다. 중앙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데 빅쿠들과 똑 같은 가사를 입은 모습이다. 좌우에는 모곡사야도의 영정이 있는데 마치 후광처럼 십이연기삼세양중인과 도표가 있다.

 

 



모곡선원 본원은 어디에 있을까?

 

모곡선원 본원은 어디에 있을까? 인터넷검색을 해보았다. 구글위성지도로 찾아 보니 쉐다곤파고다에서 2.2키로미터 떨어진 거리로 7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바로 아래는 커다란 호수공원이 있다. 도심에 있지만 입지조건은 매우 좋은 편이라 볼 수 있다.

 



 



 

느낌을 알아 차려야

 

모곡선원의 상징은 십이연기도표이다. 삼세양중인과를 원형으로 표시한 것이다. 한국명상원에서 묘원선생으로부터 수없이 들은 말은 느낌에 대한 것이다.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 갈 때 루비콘 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 갔을 때, 느낌을 조건으로 집착이 일어나는데, 집착이 일어나면 달라 붙어 떼어 낼 수 없기 때문에 업()을 짓는 것이라 했다.

 

업을 짓게 되면 새로 태어나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 가지 않도록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원형도표에도 화살표로 출구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알아차린다는 것은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구와도 같은 것이다. 특히 느낌을 알아차리면 업을 짖지 않기 때문에 해탈과 열반으로 가는 길과 같다는 것이다.

 

모곡선원의 수행방식은 어떤 것일까?

 

미얀마에는 수많은 명상센터가 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수행방법은 마하시선원의 위빠사나 명상방법이다. 그런데 미얀마에는 마하시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승에 따라 수많은 위빠사나 수행전통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모곡사야도 방식이다. 그렇다면 모곡선원의 수행방식은 어떤 것일까? 한국명상원 묘원선생은 모곡선원의 집중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써 놓았다.

 

 

레디사야도의 전통을 이어받은 모곡수행센터의 특징은 12연기 중심의 튼튼한 교학을 바탕으로 수행을 한다. 마하시가 수행을 강조한다면 모곡은 교학적인 이해를 전제조건으로 한다.

 

그래서 수행자나 일반 재가자에게 먼저 난해한 12연기를 알기 쉽게 도표로 만들어  가르친다. 수행자들은 12연기 법문을 통해 괴로움의 진리와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를 이해하고, 지금 경험하는 괴로움을 조건에 의해 일어난 법으로 수용하는 힘을 키운다.

 

수행자가 연기법을 이해하면 오온 안에 자아나 실체가 없으며, 모든 괴로움을 조건에 의한 법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당위성을 인식한다. 일단 괴로움을 수용하면 마음이 가라앉기 때문에 다시 현재의 대상에 마음을 집중할 수가 있다.


실제 수행은 연기의 중심에 있는 무명과 갈애를 제거하기 위해 입출식념으로 집중을 만들고 이어서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 처음에 10분에서 15분 정도 입출식념을 해서 마음이 호흡에 집중되면 그 다음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

 

먼저 심념처로 유신견, 상견, 단견을 제거하고, 그 다음 수념처로 느낌을 사띠하는 훈련을 통해서 느낌의 사라짐을 통찰한다. 이는 느낌과 갈애의  소멸로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곡센터는 수행을 하기 전에 먼저 법문을 한 시간 한다. 12연기 교리를 익히는 것으로 수행자의 마음을 열고, 입출식념으로 마음을 집중하여 그 바탕에서 심념처와 수념처로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디사야도계열의 수행법이므로 경행이 없다.”(모곡수행센터의 집중방법, 2014-02-19)





묘원선생에 따르면 마하시계통의 선원과는 수행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십이연기 법문을 하는 것이 다르다. 십이연기에 대한 교학적 토대 위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것이다. 아마 가장 핵심은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라 본다.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지 않도록 알아차리는 것이다.

 

모곡방식이 마하시전통과 가장 크게 차이 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경행이 없다는 사실이다. 어느 위빠사나 수행처이든지 경행도 행선이라 하여 중시한다. 그런데 한국의 선방에서 경행 하는 것에 대하여 단지 몸푸는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마하시전통에서는 경행을 좌선과 동등하게 취급한다. 담마마마까에서는 짝수시간에 좌선하고 홀수시간에는 행선을 한다. 좌선과 행선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이것이 마하시계열의 전통이다. 그런데 모곡선원에서는 행선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레디사야도(Ledi Sayadaw)의 전통을 따른 것이라 한다.

 

레디사야도는 제5차 아비담마 결집을 이끈 장본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비담마 교학과 관련하여 당시에 사용되던 교재의 잘못된 부분을 많이 지적했는데, 이런 지적은 오늘날 미얀마 사야도들의 법문집에서 각주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근세 가장 위대한 주석가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레디사야도는 1846년에 태어나 1923년에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삼세양중인과를 부정하는 사람들

 

아비담마 논장에서는 십이연기를 삼세양중인과로 설명한다. 그럼에도 삼세양중인과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어느 교수는 부처님 가르침을 중론으로 해석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체계를 만들었다. 유튜브에 올려져 있는 그 교수의 강연을 들어 보면 아비담마 논장을 부정한다. 특히 삼세양중인과를 부정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이론을 지켜 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모든 것을 중론으로 해석했을 때 중도체계로 설명이 되는데, 이렇게 설명하면 아비담마 논장과 상충될 것이다. 따라서 그 교수는 강연 때 마다 아비담마와 청정도론을 극렬하게 비판한다. 기존 논장을 부정해야만 자신의 이론이 성립되기 때문일 것이다.

 

십이연기는 삼세양중인과로 설명해야 들어 맞는다. 그래서일까 부처님 제자들은 이를 체계화 시켰다. 오늘날 전승되어 온 아비담마 논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은 아비담마 논장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실려 있는 니까야와 계율이 실려 있는 비나야와 함께 빠알리삼장을 이루고 있다. 테라와다불교는 빠알리삼장을 근거로 하여 성립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미얀마의 스승들은 빠알리삼장에 근거한 법문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어느 테라와다 빅쿠는 제2차 결집본 이외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논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그 빅쿠는 독특한 자신만의 이론을 주장하다 한국테라와다불교에서 떠나 있다. 그 빅쿠는 니까야를 자신만의 독특한 논리로 해석하여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앞서 언급된 교수처럼 삼세양중인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세운 이론과 상충되기 때문일 것이다.

 




모르면 가만 있는 것이 낫다

 

십이연기는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다. 후대 부처님 제자들이 삼세양중인과로 체계화 했다. 부처님 제자들은 가르침을 근거로 하여 이해 하기 쉽게 설명해 놓은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를 세워서 부정한다면 빠알리 삼장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일까 청정도론에서 붓다고사는 “진리, 뭇삶, 결생, 조건의 유형인 네 가지 사실은 보기도 어렵고 설하기도 극히 어렵다.(Vism.17.25)라고 했다. 또한 붓다고사는 “성전을 통달한 자가 아니면 연기의 해석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Vism.17.25)라고 했다.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부정한다면 부처님 가르침을 일부만 받아 들이게 된다. 또 부처님 제자들이 이루어낸 성과를 전면 부정하게 된다. 이런 현상을 종종 보게 된다. 차라리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 낫다. 청정도론의 저자 붓다고사에 따르면, 부처님의 경지이거나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깨달음에 이른 자이거나 빠알리 삼장에 통달한 자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네 가지 법을 보고 설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감각적 인지에 따른 깜냥(感量)으로 재단하려 하거나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았다고 부정한다면 가르침을 크게 훼손하고 구업을 짓게 된다. 모르면 판단을 유보하든가 차라리 가만 있는 것이 낫다. 모르면서 자신의 이론을 세운다면 그 이론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다.

 

삼세양중인과 게송

 

삼세양중인과는 청정도론을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청정도론 제17지혜의 지평을 보면 십이연기에 대하여 설명되어 있다. 무려 139페이지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참고로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2018년 발간된 청정도론 교정을 본 바 있다. 전재성 선생이 완역한 것을 교정작업 했는데 두 번 읽어 보았다. 이전에도 초기불전연구원의 번역서를 읽어 본 바 있다. 또한 마하시사야도의 십이연기 법문집 빠띳짜사뭅빠다도 여러 번 읽어 보았다. 그리고 묘원선생으로부터도 십이연기 법문을 들었다.

 

십이연기는 삼세양중인과의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를 이해야만 부처님 가르침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청정도론에 삼세양중인과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그것은 무명과 갈애를 근본으로 하고

과거 등의 삼세를 지니고

그 가운데 둘과 여덟과

그들 가운데 둘이 고유한 본성에 따른다.”(Vism.17.284)

 

 

 

2019-02-2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