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시 예익타 명상센터, 미얀마 성지순례기8
2019년 1월 12일 오전
마하시라는 말을 알게 된 것은 2009년도의 일이다. 한국명상원 법문교재가 ‘빠띳짜사뭅빠다’였는데 저자가 마하시사야도였다. 법문집은 니까야와 아비담마를 근거로 하여 설한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처음 접하는 용어는 생소했고 내용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각주가 잘 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이 법문집으로 인하여 초기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마하시(Mahāsi)는 무슨 뜻일까?
위빠사나 수행자에게 ‘마하시’라는 말은 익숙하다. 그것은 마하시사야도에 의하여 위빠사나가 대중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하시는 무슨 뜻일까? 영문판 위키백과에 따르면“U Sobhāna first taught Vipassana meditation in his home village in 1938, at a monastery named for its massive drum 'Mahāsi'. He became known in the region as Mahāsi Sayādaw.”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마하시(Mahāsi)라는 말은 ‘큰북(massive drum)’이라는 뜻이다. 마하시사야도라는 말은 ‘우 소바나(U Sobhāna)’ 빅쿠가 1938년에 마하시라 불리우는 승원에서 처음으로 위빠사나 명상을 지도했기 붙여진 이름이다. 마하시센터의 초대원장이기 때문에 ‘마하시 선원의 큰스님’이라는 뜻으로 마하시사야도라 하는 것이다.
마하시 사사나 예익타 명상센터
2019년 1월 12일 오전 양곤 시내에 있는 마하시 수행센터에 갔다. 모곡 수행센터에서 출발하여 갔는데 몇 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그 동안 말로만 듣던 수행센터이다. 수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된 수행센터이기도 하다. 마치 위빠사나 명상하러 간다고 하면 마하시 센터에 가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 같다. 황금색 치장을 한 대문을 보니 ‘이곳이 그 유명한 마하시센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문에는 영어로 ‘MAHASI SASANA YEIKTHA – MEDITATION CENTRE’라고 황금색 글자로 쓰여 있다. 우리말로 ‘마하시사사나 예익타 선원’이라는 뜻이다. 선원명칭에 대한 유래가 영문판 위키백과에 실려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the Prime Minister of Burma, U Nu, invited Mahāsi Sayādaw to be resident teacher at a newly established meditation center in Yangon, which came to be called the Mahāsi Sāsana Yeiktha.”라는 설명문이 보인다. 미얀마의 ‘우 누(U Nu)’ 수상이 1947년에 양곤에 새로 설립된 ‘마하시 사사나 예익타’라 불리우는 명상센터에 마하시시야도를 초대한 것이다. 마하시선원의 초대원장이 된 것이다.
양곤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마하시수행센터는 양곤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구글위성지도를 찾아 보았다. 쉐다곤파고다에서 4.7키로미터 거리로 약 10분 가량 걸린다. 모곡 수행센터에서도 약 10분 가량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마하시선원은 도심에 있지만 공원처럼 잘 가꾸여져 있다. 그리고 부지가 매우 넓다. 약 2만 5천평의 대지에 명상홀, 식당홀, 숙소, 기념관 등 각종 다양한 건물이 있어서 하나의 명상타운을 이루고 있다.
외국인 수행자들에게 많은 배려를
안내자 툰툰님과 운전자 윈뮌님과 함께 셋이서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다. 가장 먼저 식당홀에 가 보았다. 식당홀에서는 점심공양준비를 하고 있었다. 담마마마까에서처럼 둥근 상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 수행한 바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 따르면 음식이 좋다고 했다. 식사를 하고 나면 후식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먹을 것이 풍족한 것은 보시자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 마하시선원은 한끼공양 보시자가 수개월 예약되어 있다고 한다.
마하시선원은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해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외국인 수행자들에게 많은 배려를 하고 있다고 한다. 수행기간 동안에 숙식이 무료로 제공되는가 하면 수행지도도 특별하게 배려되고 있다고 한다.
여성수행자 구역에서
선원은 여성구역과 남성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여성명상홀을 들여다 보았다. 개인모기장은 보이지 않는다. 점심공양시간이 가까워서일까 자리가 비어있다. 중앙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좌우에는 사야도의 초상화 사진이 붙어 있다.
마하시사야도 거처에 가보니
안내자 툰툰님은 마하시사야도가 집무실과 침실로 사용했던 건물로 안내해 주었다. 정문으로 들어가자 마자 왼쪽에 있는 건물로 마치 마하시사야도 박물관 같다. 가장 먼저 본 것은 일층에 있는 커다란 접견실이다. 접견실에는 마치 사야도가 살아 있는 듯 밀랍으로 실물형상의 인형이 있다.
이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이층 전체공간은 마하시사야도가 생전에 살았던 곳이다. 가장 먼저 본 것은 작은 접견실이다. 마하시사야도가 1982년에 입적했으니 그 이전에 사용되었던 의자나 가구들이라 볼 수 있다.
이층에는 나무로 된 복도를 따라 우측에 여러 개의 방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집무실이다. 명성에 비하여 공간이 그다지 넓지는 않다. 소박한 분위기라 볼 수 있다. 집무실 책상에는 집필할 때 쓰던 필기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집무실 바로 뒤에는 간이 침대가 있는데 오후에 잠시 쉬었던 곳이라 한다.
집무실 다음 공간은 침실이다. 침실 역시 소박하다. 작은 침대 하나가 놓여 있다. 침실에도 책상이 있는데 이곳에서 책을 보거나 집필 했을 것이다. 바닥은 마루로 되어 있어서 안정감 있게 보인다.
침실 바로 옆에는 경행대가 있다. 나무로 된 복도식으로 되어 있다. 길이는 십오륙미터 가량 되는 것 같다. 개인 경행 공간이라 볼 수 있다. 부처님도 경행 했다고 한다. 이는 초기경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율장대품을 보면 “그때 세존께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노천에서 경행하고 있었다.”(Vin.I,15) 라는 문구가 등장하고 있다. 또 초기경전에는 “수행승들이여, 깨어있음에 철저한 것이라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수행승은 낮에는 거닐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것들로부터 마음을 정화시킨다.”(A3.16) 라는 문구가 있다. 깨어 있음에 철저한 것으로 경행을 말하고 있다. 수행처에서는 늘 사띠를 강조하는데 좌선할 때나 경행 할 때나 일상에서 늘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한국어로된 공지 게시판
마하시수행센터 본원은 도심에 있지만 매우 넓다. 도심에 있어서인지 크고 작은 건물이 이곳저곳에 많이 있다. 나무도 있고 숲도 있어서 마치 공원처럼 쾌적한 분위기이다. 이번에는 숙소동으로 가 보았다.
숙소는 오래 되고 낡아 보였다. 양곤 외곽에 있는 숲속의 명상센터와 비교가 되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 설립된 숙소와 여러모로 비교된다. 그러나 도심에 있어서 누구나 찾기 쉽고 누구나 쉽게 머물다 갈 수 있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숙소 게시판을 보니 한국인 수행자 이름도 보인다. 게시판에는 한국어로 공지가 붙어 있다. 한국인 수행자들이 여러 명 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 수행자들이 자주 왕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숙소 이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이층에는 명상홀도 있다. 이십명 가량 수용할 수 있는 작은 명상홀이다. 개인 모기장도 보인다. 점심공양시간이 가까워서인지 수행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명상홀 옆에는 별도의 경행공간이 있다. 나무로 되어 있어서 발바닥의 감촉이 좋을 것 같다. 숙소는 낡았지만 마치 손 때 묻은 책을 보는 것 같다. 수 많은 수행자들이 이곳을 거쳐 갔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무불상시대에 보리수는
싱그러운 날씨이다. 미얀마에서 1월은 건기로서 기온이 18도에서 30도에 이른다. 오전의 날씨는 25도 가량 되어서 한국의 오뉴월 날씨와 같다. 무엇보다 녹음이 우거져서 보기에 좋다. 일요일 오전의 날씨는 온도와 습도가 적합하여 싱그럽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특히 보리수나무를 보니 더욱 더 싱그러운 느낌이다.
보리수를 깨달음의 나무라 한다. 그래서일까 남방 테라와다불교 국가에서는 보리수신앙이 있다. 특히 스리랑카가 그렇다. 스리랑카에서는 어느 사원이든지 보리수가 심어져 있다고 한다. 웨삭일에 스리랑카 불자들은 보리수를 돈다고 하는데 마치 한국불자들이 탑돌이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오백년 무불상시대에는 보리수가 신앙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곳 미얀마 선원에서도 보리수를 볼 수 있다.
마하시사야도 기념관
미얀마는 위빠사나 수행의 종주국이라 볼 수 있다. 수많은 위빠사나 수행방법이 있고 수많은 수행센터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마하시방법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위빠사나 명상하면 바로 마하시사야도가 떠 올려질 정도이다. 이곳 예익타 수행센터에 마하시사야도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에 들어가 보았다. 카페트가 깔린 너른 홀에는 마하시사야도 밀랍인형이 있다. 인형 옆에는 두 개의 일산이 펼쳐져 있다. 미얀마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릴 때 일산이 등장한다. 사야도가 입장할 때나 퇴장할 때 불교도기 대열이 앞서고 일산 두 개로 호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념관 벽면에는 글씨로 가득하다. 백색의 옥돌에 새겨 놓은 것이다. 마하시사야도가 생전에 썼던 책에 대한 내용이다. 사야도는 생전에 수많은 책을 썼는데 주로 대념처경과 청정도론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한다. 이밖에도 수많은 법문집이 있는데 한국불자들에게 알려진 것으로는 ‘십이연기’와 ‘초전법륜경’을 들 수 있다. 한국의 위빠사나 수행센터에서는 마하시사야도의 법문집을 교재로 하여 법문하기도 한다.
마하시 사야도는 1904년부터 1982년까지 78년 동안 살았다. 영문판 위키백과에 실려 있는 일대기를 보면 1954년 제6차 결집을 주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때 당시 질문자(questioner)이자 최종편집자(final editor)였다고 한다.
미하시사야도는 6차 결집당시에 밍군사야도와 함께 단상에 마주 앉았다고 한다. 마하시사야도가 질문하면 밍군사야도가 답변하는 형식으로 결집이 진행된 것이다. 마하시사야도는 삼장법사이자 결집의 총책임자 밍군사야도와 함께 6차 결집을 주도한 것이다.
세존께서는 오직 금생만을 가르치셨다고?
마하시사야도의 수많은 법문집 중에 초전법륜경이 있다. 책의 서문을 보면 1962년에 설한 것으로 되어 있다. 법문집에서 눈의 띈 것은 사견(邪見)에 대한 것이다. 사견 중에서도 단멸론이 있다. 몸이 무너져 죽으면 정신도 흩어져서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견해를 말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견을 가진 자들이 부처님 당시는 물론 마하시사야도가 법문할 당시에도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사야도는 “세존께서는 오직 금생만을 가르치셨지 내생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셨다.”고 주장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윤회를 부정하는 말과 같다.
어떤 이는 부처님은 “고와 고소멸만을 이야기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성제 하나로 족하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설한 것은 불교도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오로지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만을 설하였다고 말하면서 다른 것을 배척한다면, 이는 “세존께서는 오직 금생만을 가르치셨지 내생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셨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사야도는 법문집에서 윤회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단멸론자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마하시사야도의 법문집을 보면 여러모로 새겨 둘 만한 것이 많이 있다. 한국불자들이 좀처럼 접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는 주석에 있기 때문이다. 빠알리니까야를 보면 각주라 하여 작은 글씨로 설명문이 보이는데 이는 주석을 소개한 것이다. 그런데 소개 되지 않은 내용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수천년 동안 쌓이고 쌓인 주석의 양은 방대하지만 실제로 소개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마하시사야도는 전승된 주석을 법문형식으로 설해 놓았다는 것이다. 이를 나중에 책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오늘날 보는 법문집이다.
종가집 같은 위빠사나성지
예익타 마하시 수행센터는 본부와 같고, 종가집과도 같은 위빠사나 성지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물론 전세계 수행자들이 찾는 위빠사나 수행처일번지와 같은 곳이다. 이곳을 다녀 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말로만 듣던 곳을 와 본 것이다.
점심공양시간을 맞이 하여 수많은 수행자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전에 이곳에 온 수행자들도 이렇게 줄을 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하시사야도의 행적을 엿볼 수 있게 된 것이 깊게 남는다. 접견실과 집무실, 침실, 경행대를 보면 생생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밀랍인형이다. 실물형상 그대로 만들어 놓은 형상을 보았을 때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으로 인해 역사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 마하시사야도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다. 탄탄한 교학적 토대 위에 수행까지 겸비한 사야도는 20세기 최고의 수행자라 볼 수 있다. 사야도가 이룩한 성과는 오늘날 미얀마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저 멀리 한국에서도 매년 수많은 수행자들이 미얀마를 찾는다. 그것은 마하시전통이라는 수행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선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어 보이는 보리수가 우뚝 서 있다. 하트모양에 긴 꼬리를 특징으로 하는 보리수 잎파리 하나가 싱그런 아침에 돋보였다.
2019-02-2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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