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 평화의 시대를 위하여, 정평불 펀치볼 추모제
“꽃피는 봄날, DMZ로 소풍가자” 한달 전부터 듣던 말이다. 분단의 상징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은 휴전선으로 소풍가자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작년 이맘때 4.27남북정상회담과 관련이 있다. 4.27 일주년을 맞이하여 민간단체에서는 디엠지 소풍을 추진했다. 이를 ‘디엠지(DMZ) 평화인간띠잇기운동’이라 한다.
디엠지(DMZ)로 소풍 가는 날
그날을 맞았다. 2019년 4월 28일 아침 8시 조계사 앞에서 전세버스가 출발했다. 정의평화불교연대 회원과 초대받은 참가자들이 함께 했다. 목적지는 저 멀리 강원도 양구에 있는 ‘펀치볼(Punch Bowl)전적지’이다. 전적지에서 추모행사를 하고 두타연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인간띠잇기 운동을 하기로 되어 있다.
DMZ인간띠잇기 운동은 순수하게 민간단체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DMZ평화인간띠운동본부에서 기획한 것으로 강화에서 고성까지 수백키로미터를 사람으로 띠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철책선 모두를 손 잡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거점을 만들어 그곳에서 행사하는 것이다. 정의평화불교연대(정평불)에 할당된 곳은 펀치볼과 두타연이다.
이번 행사에는 전국적으로 수많은 단체가 참가했다. 공동추진단체는 13개 단체이다.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가 주축이다. 종교계에서는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이렇게 네 개 종단이 참여했다. 그렇다고 주류단체는 아니다. 단체명을 보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실천불교전국승가회(실승회), 정의평화불교연대(정평불), 원불교 평화행동 이렇게 5개 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계 5개 단체 중에 불교는 정평불과 실천승가회 두 곳이다. 정평불은 재가불교단체이고 실승회는 개혁적인 승가단체이다. 그런데 두 불교단체의 목적지는 달랐다.
본래 4대 종단 목적지가 정해져 있었다. 원불교의 경우 파주 임진강변 전선이고, 개신교는 철원백마고지이고, 천주교는 철원 화살머리고지이고, 불교는 양구펀치볼고지이다. 이렇게 본다면 불교계는 펀치볼 전적지로 모여야 한다. 그러나 실천승가회는 펀치볼로 향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갔다.
종교단체는 민간단체와는 달리 추모제가 포함 되어 있다. 한국전쟁에서 희생당한 전몰자를 추모하는 것이다. 민간단체에서는 띠잇기 행사 하나만 하지만, 종교계에서는 1부에서 추모행사를 하고 2부에서 인간띠잇기 운동을 하는 것이다. 각 종단에서는 종단에 맞는 의식을 행하면 된다. 정평불에서는 불교를 대표 하여 불교식으로 추모행사를 갖는다. 펀치볼 전적지에서 동출스님을 모시고 추모행사를 하기로 되어 있다.
펀치볼 전적지에 도착하니
버스가 출발했다. DMZ로 소풍가는 날 날씨는 맑고 쾌청했다. 이틀간 내린 비로 인하여 공기는 깨끗해졌고 이제 갓 새순이 나오기 시작한 신록은 생명의 계절이 왔음을 알리는 것 같다. 회원들은 마치 소풍가는 것처럼 약간 들떠 있는 것 같다. 각자 준비해 온 간식을 나누어 먹었다. 따뜻한 커피를 제공하는 법우님도 있었다.
전세버스는 서울 시내를 벗어나서 경춘고속도로 진입했다. 다시 국도를 따라 강원도 내륙 깊숙이 들어갔다. 마침내 양구 펀치볼 전적 기념비가 있는 ‘양구 통일관’에 이르렀다.
전적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커다란 인간조형물이다. 벌거벗은 인간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마치 백화점에 가면 점원이 허리를 깊숙이 숙여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왜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 분지 저멀리에는 산봉우리가 연이어 파노파마처럼 펼쳐져 있다. 남한 최북단이어서일까 봉우리 북사면에는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다.
펀치볼은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펀치볼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구글 위성지도를 찾아 보았다. 키워드를 ‘펀치볼’로 검색하면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이 나온다. 지도를 보니 분지형이다. 그것도 온통산으로 둘러쌓여 있는데 마치 분화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펀치볼(Punch Bowl)이라는 말은 화채그릇처럼 생긴 지형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는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타원형으로 생긴 지형을 보면 복싱 연습할 때 사용되는 펀치볼이 연상되기도 한다.
펀치볼 분지는 조금 높은 곳에서 보면 움푹패인 것이 과일을 담는 화채 그릇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일까 한국전쟁당시 종군기자가 ‘펀치볼’이라 명명했다. 이후 이 말이 널리 퍼졌다. 한국식 지명은 ‘해안분지’라 한다. 양구군 해안면에 있는 분지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독특한 지형이다. 이곳에서 격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수많은 병사들이 죽었다.
68년 전에 어떤 일이
전적지에는 커다란 기념비가 있다. 이를 ‘양구 도솔산 펀치볼 지구 전투전적비’라 한다. 뒤로 가서 보니 1999년에 세워졌다. 명문을 보면 “한국 전쟁사에 길이 빛날 양구 도솔산-펀치볼지구 전투를 승리로 이끈 한-미 해병대와 육군의 전공을 영원히 기리고자 온 군민의 정성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라고 쓰여 있다. 승리에 대한 기록이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68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펀치볼전투는 한마디로 펀치볼(해안분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투라 볼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미국군의 정예부대라 볼 수 있는 미해병 제1사단과 한국군의 정예부대인 한국해병 제1연대가 1951년 8월 30일부터 9월 20일까지 약 21일간 전투를 하여 해안분지(펀치볼)를 확보한 것이다.
작전결과로서 해안분지는 남한땅이 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북한 인민군이 2,799명이 사망했고, 국군 183명과 미군 245명이 사망했다. 이 전투로 실종자를 포함하여 사망자가 4,256명에 달했다.
전적지 입간판에 소개 되어 있는 전과를 보면 빛나는 승리라 했다. 그리고 전투장면이 철판에 새겨져 있다. 제1단계 작전을 보면 해안분지에서 주둔하고 있던 미해병 제1사단과 한국해병연대의 공격루트가 있다. 미해병사단은 1,056미터에 달하는 ‘모택동고지’이고, 한국해병연대는 926미터에 달하는 ‘김일성고지’이다.
인터넷 백과사전에 따르면 해안분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두 고지를 점령해야 했다. 이와 관련하여 “국군 해병과 미 해병은 해안분지 북쪽과 동쪽의 고지군을 탈취하고 해안분지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상자를 내고 특히 이 전투에서 국군 해병은 지형의 특징상 기동로가 없어 정면으로는 공격하지 못하고 측방으로 우회하여 좁은 공간에서 목표를 공격, 해안분지 확보에 가장 중요한 고지인 1026고지(모택동고지)와 926고지(김일성고지)를 점령하였다.”(펀치볼전투)라고 설명되어 있다.
한국전쟁은 고지전이 특징이었다.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고지를 점령하면 땅이 확보 되는 것이었다. 휴전협정이 조인 되기 전까지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전선에서는 소모적인 고지전이 펼쳐졌다.
펀치볼 전투도 고지전이다. 모택동고지와 김일성고지를 점령함으로 인하여 해안분지가 확보된 것이다. 이런 기세를 몰아 2단계 작전(1951.9.11-9.20)이 펼쳐졌다. 미해병제1사단은 현재의 휴전선 이북의 749고지를 점령할 목적으로 작전을 재개한 것이다. 이 두번째 작전으로 해안분지에서 5키로 북쪽까지 탈취한 것이다. 이로써 해안분지가 완전히 남한 손에 들어 오게 된 것이다.
유주무주 고혼을 위하여
추모행사가 열렸다. 정의평화불교연대 회원과 행사 참석자들은 전적기념비 앞에 제단을 마련했다. 준비해 온 떡과 과일 등을 공양물로 올렸다. 동출스님은 커다란 위패를 준비했다. 위패에는 ‘펀치볼전투 당시 전몰 장병 유주무주 고혼영가’라 되어 있다. 그리고 빨간 글씨로 사경되어 있는 커다란 금강경탑문을 붙였다. 장례식할 때 관에 넣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식순에 따라 개회를 선언하고 이어서 펀치볼 전투 상황소개를 했다. 참석자 일동 묵념과 분향 및 헌화 순으로 진행되었다. 가장 중요한 제문을 이번 인간띠행사 주관자 중의 한사람인 정의평화불교연대 박병기 선생이 낭독했다. 제문은 다음과 같다.
추모 및 평화 발원문(제문)
2019년 4월 27일 정오, 저희 불교인들은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해안서화로 35번지에 자리한 ‘도솔산 펀치볼지구 전투전적비’ 앞에 엎드려, 68년 전인 1951년 8월 31일부터 9월 20일까지 21일간 펼쳐졌던 비극의 전투에서 희생된 영가들께 깊은 마음의 위로와 극락왕생의 축원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전쟁으로 기억될 ‘6.25 한국전쟁’이 정전(停戰)으로 다가서는 끝 무렵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양측에서 무려 5.000여명에 달하는 분들이 죽음에 이르렀고, 부상자도 수천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비극은 이제 이 땅 한반도에서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남과 북은 서로 만나 그 정전체제의 불안을 떨쳐버리고 온전한 평화가 정착될 수 있는 길을 향해 한 발짝씩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테지만, 우리 자신과 후세의 미래를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길입니다. 국군과 인민군, 연합군 등으로 나뉘어 목숨을 걸고 싸우신 영령들께서는 이제 그 원한과 원망의 눈길을 멈추시고 저희들의 추모를 기꺼이 받아주시기를 감히 빌어봅니다. 모든 것들 다 내려놓고 극락의 땅으로 건너가시기를 빌고 또 빕니다.
그 용서와 화해의 마음을 바탕으로 삼아 저희들은 한반도 평화의 길을 굳건히 걸어가고자 합니다. 남과 북이 서로 손을 잡고 걸어간다면 주변국들 또한 우리의 염원이 지니는 힘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들을 모아 휴전선 500킬로미터를 잇는 ‘디엠지평화인간띠잇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모아진 손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이어지고, 다시 그 마음은 이 땅과 세계의 모든 중생들의 마음속에 평화로 새겨질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2019년 4월 27일(토) 12:00
양구 ‘도솔산펀치볼지구 전투전적비’ 앞에 엎드려
정의평화불교연대 회원 외 추모제 참가자 일동
제문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오로지 희생자만 있을 뿐이다. 이는 유주무주 고혼에 해당된다. 68년전 한반도 중심지에 위치한 양구 해안분지(펀치볼)에서 산화한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천도재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눈물을 흘린 이도
불자들은 부모가 죽으면 천도재를 지내준다. 보통 일곱 번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두세 번으로 그치는 경우도 있다. 또 해마다 여러 번 지내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천도재는 산 자들의 몫이다. 죽은 자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다. 그것이 억울한 죽음이라면 특히 더욱 더 기억해 주어야 한다. 천도재는 죽은 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 보다 산 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제문낭독에 이어 지장기도와 상용열반 순으로 추모행사가 진행되었다. 동출스님이 이십여분간 집전 했다. 참석자들은 합장하며 스님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누구나 한번쯤 겪어 보았을 부모나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천도재를 떠 올렸을 것이다. 비록 68년 전에 일어 났던 비극적 사건이지만 느낌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긴 천도의식이 진행되었다. 절에서 하던 의식 그대로이다. 스님은 끝나갈 무렵에 “다함께 아미타불 염불합시다.”라고 말했다. 천도재 마지막 의식이다. 천도재의 절정이라 볼 수 있다. 유주무주 고혼의 왕생극락을 바라는 것이다. 모두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며 염불했다. 그 순간만큼은 장엄했다. 부모님 천도재 하듯이 했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들은 눈물을 흘렸다.
제사는 큰 공덕
천도재를 보면 무상게(無常偈)가 나온다. 무상게는 대승불교에서나 테라와다불교에서나 추모의식을 할 때 사용된다. 그것은 “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이라는 게송이다. 우리말로 “모든 조건지어진 것은 무상하니, 생겨나고 소멸하는 법이네. 생겨나고 또한 소멸하는 것, 그것을 그치는 것이 행복이네.”(S15.20)라는 뜻이다. 설산동자의 투신설화로도 잘 알려져 있는 게송이다.
천도재할 때 무상게를 하는 이유는 유주무주 고혼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려 주고자 함이다. 그러나 테라와다불교에서는 아귀가 되어 죽은 조상에게 알려 주는 것으로 본다. 육도윤회에서 아귀계의 존재는 인간과 감응할 수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제사를 부정하지 않는다. 제사를 잘 지내 주면 커다란 공덕이 될 것이라고 부처님은 말씀 했다. 이와 같이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불교도들에 의해 거행되는 장례의식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에 놓인 철학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러한 이해가 없이 단지 형식적으로 치루는 것은 가신 님에게나 장례를 치루는 자에게나 유익하지 않다. 그 가르침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사후에 서른 한 가지 존재의 세계에 다시 태어나며 윤회한다. 그의 윤회는 현재의 삶 혹은 전생의 삶에서 행한 선악의 행위에 조건지어져있다. 즉, 그의 삶은 이 생이나 과거의 생에 행한 선악에 달려 있어, 그가 이 생에서의 삶 동안에 도덕적으로 선행을 했다면, 천상세계에 태어나 안락한 삶을 보낼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가 악한 삶을 살았다면, 네 가지 악처인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귀계나 아수라계에 태어날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고문이나 기아나 갈증 등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업사상에 따르면, 선행을 행한 자도 그가 보다 높은 세계에 태어날지 아니면 악처에 태어날지, 그가 어디에 태어날 지를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만약에 과거생에서 행한 악업이 영향을 끼치면, 그는 악처에 태어날 수 있다. 만약 그가 천상계에 태어났다면, 우리는 그의 삶을 위해 도울 것이 없다. 또한 그가 지옥이나 축생계나 아수라계에 태어났다면, 우리가 그를 도울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아귀계에 태어났다면, 우리는 그를 도울 수 있다. 아귀계에서는 충분히 먹을 것, 마실 것과 입을 것이 없어서 항상 굶주리고 기갈이 있고 생필품은 모자란다. 이때에 장례후 의례를 통해 그러한 존재를 도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가신 님이 어디에 태어났는지 모르므로 죽음이 일어날 때, 장례를 치루어, 만약에 그가 아귀계에 태어났다면, 우리는 적어도 우리 자신의 공덕을 쌓을 수 있다. 따라서 임종자의 죽음에 임박해서 수행승들을 초대하여, 임종자의 귀에 예경지송을 들려 주는 것이 중요하다.”(예경지송 추모경송품 해제)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발간된 예경지송 해제에 실려 있는 글을 옮긴 것이다. 죽은 자를 추모하는 것은 산 자로서의 아름다운 행위이자 의무에 해당된다. 특히 아귀가 되어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 주면 커다란 공덕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부처님 가르침이다. 아귀계와 감응이 된다면 무상게를 들려 주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추모할 때는 대승불교와 테라와다불교를 막론하고 무상게가 빠지지 않는다.
역사의 수레 바퀴에 치이어
시작을 알 수 없는 윤회에서 한시대를 살다 간다. 펀치볼 전투에서 죽은 자들은 역사의 희생자들이다. 전쟁광들이 증오심과 적개심을 부추김에 따라 전장에 끌려 나와 억울하게 죽은 것이다. 좋지 않은 시대에 태어난 것이다. 전쟁의 시대에 태어나 이십대 젊은 나이에 피워 보지도 못하고 죽은 것이다.
“일겁의 세월만 윤회하더라도
한 사람이 남겨놓는 유골의 양은
그 더미가 큰 산과 같이 되리라고
위대한 선인께서는 말씀 하셨네.
그런데 큰 산은 이처럼
베뿔라 산이라고 불리우니
깃자꾸따 산의 북쪽에 놓여 있고
그곳에 마가다의 산성이 있네.
올바른 지혜를 가지고 거룩한 진리,
괴로움과 괴로움의 발생과
괴로움을 뛰어넘는 괴로움을 종식으로 이끄는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을 보는 자가 있으니,
그는 많이 잡아 일곱 번을
더 윤회하더라도
모든 속박을 부수고
괴로움을 소멸시킬 것이다.” (S15.10
펀치볼에서 죽은 자들은 역사의 수레 바퀴에 치이어 죽은 것이다. 후대 사람들은 이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면 전쟁없는 평화의 시대가 될 수 있다.
즐거운 점심시간에
추모행사가 모두 끝났다. 다음 시간은 즐거운 점심시간이다. 점심은 준비한 김밥으로 해결했다. 전적지 잔디 밭에 앉았다. 마치 소풍 나온 것 같다. 풀밭에는 노랑민들레와 하얀 들꽃이 지천에 피어 있다. 참가자들은 떡과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자유시간을 가졌다. 전적지 주변 풀밭에는 쑥이 무성하다. 풀반 쑥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쑥을 캐기 시작했다. 손으로 뜯으면 된다. 이제 갓 나온 쑥은 작고 여리다. 된장국 끊여 먹을 정도로 뽑았다. 쑥은 뜯어도 또 난다. 살생하는 것과는 다르다. 민들레와 할미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동산에서 사람들은 쑥 캐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양구는 청정지역이다. 특히 휴전선 부근이 그렇다. 강원도 깊숙한 곳에는 공장도 없고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곳도 없다. 청정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있다. 이곳 특산물이라 볼 수 있는 시레기말린 것이 그것이다. 500그램 한박스에 8천원 한다. 1키로 한박스는 만오천원이다.
시레기 1키로 한박스를 샀다. 그리고 드룹나물도 한팩 샀다. 지금 제철인 드룹은 한팩에 만원한다. 이렇게 산 것은 먹거리가 좋아서 산 것도 있지만 농촌돕기에도 해당된다. 지역에 가면 특산품이 있기 마련인데 구매하면 서로가 좋다. 구매자는 물건을 사서 좋은 것이고 판매자는 직거래 해서 좋은 것이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전쟁없는 평화의 시대를 위하여
전세버스는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평화인간띠잇기 행사가 있는 ‘두타연’이다. 그곳에서 2부 행사가 진행된다. 전국에서 온 단체와 함께 인간띠 행사를 하는 것이다. 해안면 펀치볼 전적지에서 차로 이삼십분 거리에 있다.
펀치볼 전적지에는 탱크와 장갑차, 대포가 전시되어 있다. 육중한 포는 저 멀리 연이어 있는 산봉우리를 향하고 있다. 그러나 그다지 긴장감이 감돌지 않는다. 다만 생명의 계절에 만물은 꿈틀거리고 있다. 따사로운 햇볕과 함께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정말 전쟁없는 평화의 시대는 오는 것일까?
2019-04-2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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