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생활과 하루일과, 직지사 위빠사나 집중수행5
2일차 2019년 7월 3일 낮, 직지사 참배와 인터뷰
선원에서는 특별히 할 것이 없다. 오로지 수행만 하면 된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선원에 들어 오는 순간 일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선원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먹는 것도 해결된다. 자는 것, 입는 것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시간표대로 수행만 하면 되는 것이다.
선원 하루 일과는
선원에서의 하루 일과는 어떤 것일까? 이번 7.2-7.7 직지사 템플스테이에서는 시간표대로 생활했다. 먼저 기상시간은 3시 30분이다. 스마트폰 알람을 설정해 놓으면 마음 놓고 자도 된다.
새벽 4시부터 5시까지는 새벽 좌선시간이다. 5시부터 예불시간인데 사야도 새벽법문과 병행한다. 아침공양시간은 6시 30분이다. 미얀마에서는 5시 50분에서 6시에 시작된다. 점심공양시간은 11시 30분인데 미얀마에서는 10시 50분에서 11시에 시작된다. 한국보다는 30분 가량 빠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시간표를 보면 아침공양이 끝난 후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행선-청소가 있다. 행선시간에 청소도 하고 세수도 하고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하는 것이다.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 행선이기 때문에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알아차림 대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전 8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오전 좌선시간이다. 오전인터뷰는 9시 30분부터 11시로 되어 있다. 11시 30분에 점심공양을 한다. 점심공양을 하고 나면 나른하고 졸리워서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12시 30분부터 1시까지 행선시간으로 정해 놓았다. 오후 좌선은 1시부터 2시까지이다. 2시부터 3시까지는 행선-인터뷰로 되어 있다.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오후 마지막 좌선시간이다.
오후불식이기 때문에 저녁밥은 먹지 않는다. 그러나 허약한 사람이나 밥을 꼭 먹어야 할 사람은 식사를 한다. 5시 반부터 저녁밥 먹는 시간이다. 저녁밥을 먹지 않는 사람은 주스타임이라 해서 준비된 주스나 우유 등을 마신다.
오후 6시부터 7시까지 저녁 좌선시간이다. 저녁좌선이 끝나면 7시부터 8시까지
사야도 저녁법문이 있다. 보통 1시간 반 가량 진행 되기
때문에 저녁 8시 반에 끝난다. 저녁 법문이 끝나면 오후 9시부터는 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숙소에 들어간다. 그러나 명상홀에
남아서 개인적으로 수행을 하는 사람도 많다. 이렇게 하루 일과를 보낸다.
왜 새벽좌선을 빠져서는 안되는가
시간표대로 한다면 좌선은 6번 있고, 행선은 4번 있다. 그러나 제대로 지키기 힘들다. 다 못 지켜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새벽 좌선시간이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새벽좌선이야말로 집중수행의 꽃이라고 볼 수 있다.
새벽에 좌선을 하면 효과가 매우 좋다. 잠을 자고 난 상태이기 때문에 마음이 가장 안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새벽예불이 시작되는데 9계를 받아 지닌다. 매일 9계를 받아 지님으로 인하여 하루를 청정하게 사는 것이다.
새벽예불시간에 사야도법문을 병행한다. 새벽법문을 들으면 의식이 고양된다. 왜 수행을 해야 되는지, 수행을 하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를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새벽좌선과 새벽예불을 빠져서는 안된다.
직지사를 참배했는데
낯선 곳에서 자면 잠을 설치는 경향이 있다. 첫날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자는둥마는둥하며 보내다 새벽 3시 반을 맞이했다. 그럼에도 시간표대로 해 보고자 했다. 숙소에는 들어가지 않고자 했다. 숙소에 들어가면 들어 눕게 되고 나태해질 것 같았다. 명상홀에 있는 것이 상책이다.
7시 20분부터 행선했다. 그러나 졸리고 중심이 잘 잡히지 않았다. 행선을 포기하고 7시 40분부터 좌선을 했다. 20분 가량 앉아 있었는데 졸음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 이럴 때는 산책하는 것이 좋다. 8시부터 직지사 경내로 산책 나갔다.
직지사는 크게 직지사경내구역과 템플스테이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경내는 고색창연한 골동품과 같은 전각이 많다. 반면 템플스테이구역은 새로 지은 건물이 많아서 대조적이다. 대양문을 지나 금강문 등 여러 개의 문을 통과했다.
평일 이른 아침임에도 신심 깊은 어느 노보살이 사천왕상에 극진히 예경하는 모습을 보았다. 노보살은 가는 곳 마다 지극한 정성으로 예경했다. 두 손을 합장하고 허리를 거의 90도 가량 꺽었다. 노보살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직지사는 매우 아름다운 절이다. 이제까지 백 곳 이상 사찰순례 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절은 보지 못했다. 그것은 조화와 균형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펼쳐진 전각은 적재적소에 있다. 석탑도 있어야 할 곳에 서 있다. 무엇보다 잘 가꾸어져 있다. 아름다운 정원을 보는 듯하다. 미얀마 담마마마까도 아름답지만 이곳 직지사 경내만 못한 것 같다.
수국철인가보다. 직지사경내에 수국이 한창이다. 해마다 6월말에서 7월초에 수국이 핀다. 빨강색, 노랑색, 분홍색 등 색깔도 가지가지이다. 둥근 다발을 이루어 핀 수국을 보노라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대웅전에 들어갔다. 요즘 새로 지은 법당과 달라서 마치 오래된 골동품을 보는 듯 하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2년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1735년에 중창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꽤 큰 법당이다. 천정에는 갖가지 모양의 공포가 겹쳐 있다. 용 등 상상속의 동물도 보인다. 바닥은 삐걱거린다. 발을 움직일 때마다 삐걱 거리는데 싫지 않은 느낌이다. 그래서 조심조심 살살 걸어야 한다. 법당에서 아까 보았던 노보살이 또 허리를 거의 90도 굽혀서 부처님전에 지극한 정성으로 예경올리고 있다.
법당에 앉아 보았다. 청량한 느낌이다. 집중이 잘 되는 것 같다. 졸음도 싹 달아 났다. 잠시 입정했다. 그대로 계속 앉아 있으면 좋을 듯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법당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부처님이고 들리는 것은 새소리뿐이다. 코로는 향내를 맡는다. 오감이 모두 청정해지니 마음이 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천상이나 극락이 있다면 아마 이런 곳이라 볼 수 있다.
직지사는 잘 꾸며진 공원같다. 요소 요소에 배치된 가람을 보면 직지사 경내 전체가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을 들라면 박물관이 있는 ‘청풍료’ 부근일 것이다. 마당 한켠에는 갖가지 석조 유물이 널려 있다. 한때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저 멀리 보이는 황적산은 알고 있을 것이다.
참고 관찰했더니
졸음 때문에 직지사 경내를 돌았다. 경내를 돌아다니자 졸음은 싹 가시고 새로운 기분이 되었다. 다시 만덕전 명상홀에 앉았다. 포행을 하고 나니 기분도 산뜻했다. 8시 50분에 시작하여 10시 15분까지 앉아 있었다.
새벽 좌선 시간에는 다리가 저려서 자세를 바꾸었으나 자세 한번 바꾸지 않고 앉아 있었다. 재채기 나려 했으나 참고 관찰하자 사라졌다. 갑자기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내버려 두었더니 그쳤다. 다리에 통증이 와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으나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자세를 바꾸지 않고 1시간 25분 가량 앉아 있었다. 한마디로 ‘좋았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점심을 대중공양한 미얀마사람들
2일차 점심공양은 푸짐했다. 특별식을 먹었기 때문이다. 떡과 만두, 그리고 바나나 등이 특별식으로 제공되었다. 그러나 선원에서 고기를 보지 못했다. 모두 채식위주이다. 오후불식하기 때문에 단백질이 공급되어야 한다. 최소한 계란프라이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단백질을 찾아 볼 수 없다. 완전 채식위주여서 장기간 오후불식한다면 체력이 받침 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미얀마와 다르다.
미얀마 선원에서는 고기가 끊이지 않는다. 생선을 포함하여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류가 한가지는 꼭 나온다. 탁발하면 주는 대로 먹기 때문에 가리지 않는 전통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후불식이기 때문에 점심만큼은 제대로 먹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오후불식 전통이 없는 한국선원에서는 고기가 보이지 않는다. 채식만 먹고 오후불식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국 선원에서는 저녁식사를 하는가 보다.
선원대중을 위하여 미얀마 사람들이 대중공양 했다. 이번 집중수행 기간 중에 미얀마 사람들 네 명이 참여했는데 그 중에 일부가 공양한 것이다. 미얀마 선원에서는 한끼공양이라고 하여 선원 전대중을 위한 대중공양을 올린다. 그런 전통이 있어서일까 미얀마 사람들은 이번 집중수행에 참가한 수행자를 위하여 푸짐한 대중공양을 올린 것이다.
인터뷰할 때에는
오전과 오후에 인터뷰가 있었다. 오전 인터뷰는 9시 20분부터 10시 30분까지 1시간 10분 동안 진행되었다. 오후 인터뷰는 오후 4시부터 1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이후 매일 오전과 오후에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인터뷰는 왜 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수행점검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수행보고라고 볼 수 있다. 좌선과 행선을 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난 현상에 대하여 솔직하게 보고하는 것이다.
인터뷰는 만덕전 명상홀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되었다. 인터뷰시간에 모두 모여서 인터뷰를 경청하는 것이다. 먼저 인터뷰를 원하는 수행자는 앞으로 가서 앉는다. 사야도에게 삼배를 올린 후에 이름을 이야기한다. 사야도는 이름을 메모한다. 인터뷰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질문자는 몸의 변화나 느낌 등을 보고한다. 이를 혜송스님이 사야도에게 알려 주면 사야도는 해법을 제시해 준다. 그런데 인터뷰할 때 몸의 변화와 관련 없는 자신의 이야기나 경전문구 등 개념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호흡과 관련된 복부의 일어남과 사라짐, 또는 다리 저림 등 통증과 관련된 보고를 하는 것이 좋다.
갖가지 인터뷰 장면을 보면
때로 개념에 대한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커트 당하기 쉽다. 그러나 사야도는 모두 이야기 해 준다. 어느 수행자가 여자생각이 나서 힘들다고 했다. 이에 사야도는 계행으로 극복하는 방법, 사마타로 극복하는 방법, 위빠사나로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계속된다면 출가해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출가라 하여 평생출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미얀마에서는 단기출가도 출가라고 하기 때문이다.
어느 수행자가 다리 통증에 대하여 호소했다. 사야도는 통증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좌선 중에 통증이 와도 가급적 자세를 바꾸지 말라고 했다. 종칠 때까지 자세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통증을 관찰하라고 했다. 통증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보라는 것이다. 평좌할 때 통증은 거의 99프로가 바깥쪽 다리에서 발생한다고 했다.
어느 수행자는 왜 눈을 감는지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한국불교에서는 눈을 반개하라고 하는데 위빠사나 할 때는 눈을 감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보이는 것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번뇌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가급적 사람이 없는 조용한 빈집이나 숲속이 명상하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좌선을 할 때는 눈을 감는데 눈으로 들어 오는 정보가 가장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좌선중에는 눈을 뜨지 말라고 한다. 눈을 뜨면 사띠가 깨져서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수행자는 나이가 83세이다. 분당에 산다는 노수행자는 나이 70세에 위빠사나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들이 어머니를 떠 밀듯이 선원에 보낸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래서 담마마마까 초창기 때부터 지금까지 13년 동안 수행을 해 오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 1월 미얀마에 갔을 때 본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어서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어느 수행자는 사야도 법문을 들었을 때 행복하다라고 했다. 그것은 아마 법문하는 음성일 것이다. 법문 내용도 좋지만 무엇보다 사야도는 목소리가 좋다. 목소리에 힘이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박력이 있어서 좋다. 법문 내용은 몰라도 목소리에 표상(nimitta)을 취하면 충만 되는 듯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왜 보고를 철저히 해야 할까
인터뷰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집중수행 하러 들어 왔다면 인터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인터뷰를 기피한다면 직무유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상사가 일을 시켰는데 진행과정을 보고하지 않는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어느 상사도 그런 부하직원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보고를 철저하게 하는 부하를 좋아할 것이다. 그것도 있는 그대로 정직하고 솔직하게 보고 하는 것이다. 수행보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행자가 수행보고를 게을리 한다면 어느 상태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야도는 “1년에 한번 인터뷰하는 사람은 하루에 한번 인터뷰하는 사람과 진도가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매일 보고 하는 사람은 그만큼 진척이 빠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기 전까지는 스승에게 물어야 하고 알고 난 뒤에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선원 수행자 생활지침서
선원에서는 특별히 할 것이 없다. 하는 일이라고는 좌선하고 행선하고 법문 듣는 일이다. 여기에 보고를 철저하게 하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러나 함이 없는 함이 있다. 그것은 마음이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항상 싸띠하라는 것이다. 수행은 명상홀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해야 함을 말한다. 일상에서 싸띠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찰 대상이 된다.
사야도는 “도반들과 선원에 왔지만 항상 홀로 있는 것처럼 지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혜송스님은 가전연 존자 게송을 하나 소개 했다. 담마마마까 법요집에도 실려 있는데 예불문중의 하나이다. 이를 ‘땃담마란디(Saddhammaransi) 게송’이라고도 한다. 우 에인다까 사야도와 혜송스님이 함께 수행했던 선원이다. 일종의 ‘선원 수행자 생활지침서’라 볼 수 있는 게송은 다음과 같다.
“그대의 눈이 밝을지라도 장님처럼 행동하라.
그대의 귀가 밝을지라도 귀머거리처럼 행동하라.
그대의 말이 웅변일지라도 벙어리처럼 행동하라.
그대의 몸이 건강할지라도 환자와 같이 행동하라.
잠자리에 들어서도 뒤척이지 말고 송장처럼 가만히 관찰하면서 잠들어라.”
(담마마마까 법요집, 56쪽)
이 게송의 출처는 테라가타에 있다. 2016년 전재성 선생이 완역한 테라가타 교정작업에 참여한 바 있는데 그때 접한 것이다. 원문 번역한 것을 보면 “눈 있는 자는 오히려 눈먼 자와 같고, 귀 있는 자는 오히려 귀먹은 자와 같아야 한다. 지혜가 있는 자는 오히려 바보와 같고 힘센 자는 오히려 허약한 자와 같아야 한다. 생각건대 의취가 성취되었을 때 죽음의 침상에 누워야 하기 때문이다.”(Thag.501)라고 되어 있다. 마하 깟짜야나 장로가 읊은 게송이다. 선원에서 사용되는 게송과 약간 차이가 있지만 의미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
혜송스님이 강조하고자 한 것은 묵언에 대한 것이다. 동료와 함께 선원에 왔다고 하여도 혼자 있는 것처럼 살라는 것이다. 그래서 눈이 있어도 장님처럼,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처럼, 입이 있어도 벙어리처럼, 건강해도 환자처럼 알아차림 하며 살라는 것이다. 특히 감명 깊은 구절은 “잠자리에 들어서도 뒤척이지 말고 송장처럼 가만히 관찰하면서 잠들어라.”라는 구절이다.
새벽 3시 반에 숙소를 나서서 다시 숙소로 들어 갈 때는 저녁 10시가 넘는다. 명상홀에서 하는 일 없이 좌선, 행선, 일상사띠만 하지만 숙소에 들어가면 녹초가 된다. 잠 잘 때는 뒤척이지 않고 송장처럼 잔다는 말이 실감난다.
2019-07-1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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