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난(八亂)에 대하여, 직지사 위빠사나 집중수행7
3일차 2019년 7월 4일 저녁, 우 에인다까 사야도 새벽법문
인신난득(人身難得)이라고 한다. 사람 몸으로 태어나기가 힘들다는 것을 말한다. ‘맹구우목(盲龜遇木)’비유로도 설명한다. 한번 축생의 지위로 떨어지면 다시는 인간 몸 받기 힘들다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그 눈먼 거북이가 백년 마다 한 번씩 떠올라서 그 하나의 구멍이 뚫린 멍에에 목을 끼워 넣는 것이 수행승들이여, 한 번 타락한 어리석은 자가 사람의 지위를 획득 하는 것 보다 빠르다고 나는 말한다.”(S56.47)라고 말씀했다.
부처님은 왜 눈먼 거북이 비유로 인신난득을 설명했을까? 그것은 “수행승들이여, 그곳에는 여법한 삶, 평등한 삶, 선한 삶, 공덕을 짓는 삶이 없다. 수행승들이여, 그곳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삼키는데 강자가 약자를 먹어치운다.”(S56.47)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축생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먹고 먹히는 세계에서 부처님 가르침이 있을 수 없다. 축생으로 사는 한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을 지을 수 없다. 매일 매순간 오계를 어기는 삶이 계속 되었을 때 영원히 축생계를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차라리 이 몸이 악업이 많아도 살아 있을 때 깨달음을 얻는 것이 축생으로 떨어져 인간 몸 받으려고 하는 것보다 더 빠를지 모른다.
새벽 좌선시간에
직지사템플스테이 위빠사나 집중수행 3일차가 시작되었다. 새벽 3시 반에 기상하여 4시부터 시작되는 새벽좌선에 참석했다. 동이 트기 전 캄캄한 새벽임에도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수행자들은 운동장처럼 너른 만덕전 법당에 하나 둘 자신의 자리에 착석한다. 사야도가 일러준대로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수행을 한다.
새벽좌선 시간에는 사야도도 참석한다. 사야도는 교단 위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불상을 마주 보고 좌선한다. 스님들도 다수 참석했다. 하루 일과 중에 시작을 알리는 좌선시간에 빠진다는 것은 스스로 게으르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새벽좌선 시간에 종이 울린다. 직지사 경내에서 울리는 종소리이다. 새벽 4시 반 경에 울리는 것 같다. 수십번 타종 소리가 나고 이어서 운판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복부의 불러옴과 꺼짐을 관찰하는 수행자들에게 가장 강한 대상으로 다가 오는 것이다.
소리가 들릴 때는 ‘들림, 들림’하라고 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모든 소리는 파동으로 들린다고 한다. 파동으로 들리면 말소리인지 새소리인지 북소리인지 구별하기 힘들다고 한다.
정법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새벽 5시부터 3일차 새벽예불이 시작되었다. 하루 중에 가장 맑은 기운이 넘쳐 나는 시간이다. 미얀마 담마마마까 예불의식에 따라 예불문, 삼귀의, 구계 순으로 진행되었다. 사야도축원을 들으면 축복받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미얀마어로 말하지만 듣기만 해도 충만 되는 것 같다.
3일차 새벽법문 주제는 ‘기회가 왔을 때 열심히 정진하세요’에 대한 것이다. 어떤 기회일까? 먼저 사야도는 “수행자 여러분, 이런 기회가 언제나 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법이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사야도는 이 법 만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고 했다. 헤아릴 수 없는 겁동안 바라밀을 닦은 부처가 출현해야 이 법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법이 머무는 기간은 너무나 짧다는 것이다. 정법이 있을 때 수행하지 않으면 다음 부처가 출현할 때까지 기약할 수 없는 한량없는 세월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부처님의 정법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선교(禪敎: 수행과 교학)도 오래가지 않는다고 했다. 사야도는 왜 이렇게 말할까? 그것은 인도불교와 관련이 있다.
사야도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불법이 사라진지 2천년이 넘었다고 한다. 부처님이 출현하여 국왕들이 받들었으나 약 300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증거로서는 성지순례 할 때 남아 있는 유적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불교 쇠퇴에 대하여
사야도는 “한국을 보십시오.”라며 말을 시작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때는 불교가 융성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직지사와 해인사를 예로 들었다. 직지사가 융성했을 때는 천명 가량의 승가가 존속했었고, 해인사에 가면 7백년전에 만들어진 대장경을 볼 수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했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보아 한국에서 얼마나 불교가 화려하게 꽃피었고 얼마나 실천수행하는 수행자들이 많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상들의 신심은 존경할만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불교가 쇠퇴한 것에 대하여 사야도는 ‘부모-자식론’으로 설명했다. 사야도는 “아들이 부모만 못하고, 손자가 아들만 못해서 한국 선교가 약해졌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지도자층도 얇아 졌고 또한 신도가 줄어 들었다고 했다. 나날이 쇠퇴해서 스님 숫자는 줄어들고 신자 저변도 약해져서 수행과 교학 또한 약해졌다고 했다.
직지사에서는 한때 천명이상 승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직지사에는 스님 숫자가 많지 않다. 경내를 돌다 보면 고요하고 적막하기 이를데 없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어느 절이나 마찬가지이다. 예비승려는 거의 없고 나이 든 연세 높은 스님들만 약간 보일 뿐이다. 조상들 후원으로 이루어진 이 훌륭한 선방과 온갖 전각으로 장엄된 도량에 언제 스님들이 사라질지 모른다고 했다.
조건과 기회가 맞아 떨어져야
사야도는 이런 기회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런 모임이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다음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아무리 훌륭한 선방이 있어도 어른 스님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오늘과 같은 이런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어른 스님들이 배려하고 허락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수련회를 열개되었다고 말했다.
수련이나 수행은 쉬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조건과 기회가 되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4난득으로 설명했다. 사람으로 태어나야 하고, 살아 있아야 하고, 불법을 만나야 하고, 실천수행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네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졌을 때 수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사야도에 따르면 불법 한번 만나지 못한 사람도 있고 수행 한번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 있어도 법문도 듣지 못하고 수행도 못한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 앉아 있는 수행자들은 인간으로 태어나 이렇게 법문을 듣고 실천수행 할 수 있는 인연을 만났기 때문에 복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진실하게 수행해서 이 공덕으로 수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공덕회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야도는 새벽법문에서 ‘기회가 왔을 때 정진하세요’라는 주제로 네 가지를 말했다. 그것은 1)불행의 시대 팔난(八亂)을 벗어나는 것, 2)붓다 출현할 때 태어나서 9가지(4도, 4과, 열반)를 성취하는 것, 3)수다원이 되기에 아주 좋은 기회에 대한 것, 4)기회가 왔을 때 가져야 하는 것이다.
팔난(八亂)에 대하여
첫째, 불행의 시대 팔난(八亂)을 벗어나는 것이다. 팔난이란 무엇일까? 사야도는 도와 과를 한 개도 성취할 수 없는 시대라고 했다. 악도에 태어나거나 수행할 수 없는 시기나 조건을 가졌을 때를 말한다. 이에 대하여 앙굿따라니까야에 실려 있는 가르침을 중심으로 하여 설명했다.
사야도에 따르면 팔난은 1)지옥, 2)축생, 3)아귀, 4)무상유정전, 5)무색계, 6)변방에 태어나는 것, 6) 사견을 갖는 것, 7)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 8)부처님 출현 전이나 이후에 태어나는 것을 들었다. 이와 같은 시기에 태어나면 도와 과를 한 개도 성취할 수 없다고 했다.
팔난에 대한 가르침이 앙굿따라니까야 ‘좋지 않은 시간의 경’(A8.29)에 실려 있다. 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청정한 삶을 사는데 여덟 가지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가 있다.”(A8.29)라고 했다. 이 중에서 지옥, 축생, 아귀와 같은 악처가 있고 무상유정천과 무색계천과 같은 선처도 포함되어 있다.
사마타수행으로 색계와 무색계에 태어났어도
왜 악처와 일부 선처에서는 청정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앙굿따라니까야 주석서에서는 “하늘의 신들은 오로지 즐거움만 있기 때문에 새김이 강력하게 발전하지 못하고, 지옥의 뭇삶들은 오로지 괴로움만 있기 때문에 새김이 강력하게 발전하지 못하고, 오직 인간만이 괴로움과 즐거움이 섞여 있기 때문에 새김이 강력하게 발달한다.”(Mrp.III.188)라고 설명되어 있다.
도와 과를 이루는 데 있어서 사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악처에서는 너무 괴롭기 때문에 사띠가 흩어지기 쉽고, 오로지 즐거움만 있는 천상에서는 사띠가 유지 되기 힘들다고 한다. 오로지 인간만이 즐거움과 괴로움이 섞여 있기 때문에 사띠가 강력하게 발달할 수 있다고 한다.
색계 4선천 ‘무상유정천(asaññasatta)’도 팔난에 속한다. 왜 그런가? 사야도에 따르면 ‘몸관찰’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음을 싫어하는 선정을 닦은 과보로 인하여 무상유정천에 태어난 존재는 몸만 있지 정신작용은 없다. 죽은 듯이 사는 것이다. 그래서 법문을 들을 수도 없고, 가르침을 실천수행할 수도 없어서 좋지 않은 시기에 태어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무색계천도 팔난에 속한다. 몸 때문에 고(苦)가 생긴다고 보아 몸을 혐오하는 선정을 닦은 결과 몸이 없고 오로지 정신만 있는 무색계천에 태어난 존재들이 이에 해당된다. 부처가 출현해도 없으니 불법을 볼 수도 없고 법문을 들을 수도 없을 것이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으니 실천수행할 수 없다. 그래서 무색계천에 태어나면 한 개의 도와 과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옥, 축생, 아귀와 같은 악처에 태어나도 도와 과를 한 개도 성취할 수 없다. 사마타 수행을하여 색계4선천 중의 하나인 무상유정천에 태어나거나 네 개의 무색계천에 태어나도 도와 과를 한 개도 성취할 수 없다고 했다.
지혜가 없으면 한 개의 도와 과도
부처가 출현한 시대라면 도와 과의 성취가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부처가 출현해도 도와 과를 한 개도 성취할 수 없는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6)변방에 태어나는 것, 6) 사견을 갖는 것, 7)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도와 과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태어나는 지역도 중요하다. 변방에 무지한 야만인들 사이에 태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불법이 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중앙에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육사외도와 같은 사견을 갖는다면 도와 과를 성취할 수 없다.
부처가 출현하여 중앙에 태어났어도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도와 과를 성취할 수 없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이 사람이 중앙지역에 태어나더라도 지혜가 없어 둔하고 어리석어 잘 설해진 것과 잘못 설해진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A8.29)라고 설명되어 있다. 지혜가 없으면 한 개의 도와 과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 하나의 좋은 시기
중앙에 태어나고 지혜를 갖춘 자가 있다. 그러나 부처가 출현하기 이전이나 이후에 태어났다면 도와 과를 한 개도 성취할 수 없다. 왜 그럴까? 정법이 머무는 시기는 매우 짧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시기란 어떤 것일까?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수행승들이여, 여기 이렇게 오신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길들이시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이신 세존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고요로 이끌고 평화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끌고 바른 길로 잘 가신 님에 의해 선포된 가르침이 설해진다. 그리고 이 사람이 중앙지역에 태어나 지혜를 갖추어 둔하지 않고 어리석지 않아 잘 설해진 것과 잘못 설해진 것을 구분할 줄 안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청정한 삶을 사는데 단 하나 올바른 시간, 올바른 시기이다.”(A8.29)
단 하나의 좋은 시기가 있다. 부처가 출현하고, 가르침이 설해지고, 중앙에 태어나고, 지혜를 갖추었을 때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도와 과를 성취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은 어떤 시대일까? 인간으로 태어났고, 지금 여기서 살아 있고, 정법을 들을 수 있고, 더구나 실천수행할 수 있다면 팔난은 벗어난 것이다. 도와 과를 이룰 수 있는 좋은 시기에 해당된다. 그래서 사야도는 미얀마어로 “멋까웅잉카 싯쿳ㅎ마 룽까-네짯띠”라고 게송을 읊었다. 우리말로 “불행의 시대 8개(팔난)을 벗어난다.”라는 뜻이다.
복 많은 사람이란
둘째, 부처가 출현할 때 태어나서 9가지(4도, 4과, 열반)을 성취함에 대한 것이다. 이는 팔난에 이어 9번째에 해당된다. 시기가 좋은 때를 말한다. 이에 대하여 사야도는 좋은 조건 네 가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이는 경에서 ‘부처가 출현하고, 가르침이 설해지고, 중앙에 태어나고, 지혜를 갖춘 것’을 말한다. 더구나 사념처 수행이 있고, 스승이 있어서 점검해 줄 수 있다면 도와 과를 성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사야도는 ‘복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사향사과와 열반이라는 아홉 가지 출세간법에 대하여 사야도는 미얀마어로 “폐야-뿌잉라 꼬-쿠잉따 얏까-네짯띠”라고 두 번 읊었다. 이 말은 “부처가 출현할 때 태어나서 9가지(4도, 4과, 열반)을 성취한다.”의 뜻이다. 혜송스님은 의미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두 번 더 읊었다. 이에 수행자들은 따라서 합송했다.
셋째, 수다원이 되기에 아주 좋은 기회에 대한 것이다. 사야도는 정법이 있는 시대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스승의 지도아래 실천수행하고있는 수행자들에 대하여 ‘복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야도는 “여러분, 노력하면 누구나 수다원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야도는 미얀마어로 “쏘따빤나 핏폿야- 롱수아 쿠잉따-띠”라고 두 번 게송을 읊었다. 이 말은 “수다원이 되기에 아주 좋은 기회이다.”라는 뜻이다.
넷째, 기회가 왔을 때 가져야 하는 것이다. 팔난을 벗어나서 사난득을 극복한 복(福)있는 수행자들은 오로지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이에 “쿠잉따-카잇ㅎ마- 얏아웅따- 찐바미앗요기”라고 두 번 읊었다. 이 말은 “기회가 왔을 때 가져야 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생활의 달인처럼
사야도 3일차 새벽법문이 모두 끝났다. 새벽 3시 반에 만덕전 법당에 올 때는 컴컴했으나 법문이 끝나 법당 문을 나설 때에는 6시 반이 다 되어서 날이 훤하게 밝았다.
치열한 또 하루가 시작된다. 대중 속에 있어도 홀로 있는 듯 보내는 것이다. 똑 같은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수행은 이해차원이 아니다. 몸에 붙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특히 행선이 그렇다. 반복하다 보면 숙달될 것이다. 마치 눈 감고도 던지면 들어가는 생활의 달인처럼.
2019-07-2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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