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빠르게 법을 성취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조건, 직지사 위빠사나 집중수행11

담마다사 이병욱 2019. 7. 31. 10:47

 

빠르게 법을 성취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조건, 직지사 위빠사나 집중수행11

 

 

4일차 2019 7 5일 새벽, 우 에인다까 사야도 새벽법문

 

이 세상은 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학문이든 사업이든 어떤 것이든 노력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어떤 일이든지 장애가 없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일이든지 장애를 이겨내고 노력해야 성취할 수 있다. 수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안되면 될 때까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을 이루려거든 노력해야 한다. 장애를 이겨내고 될 때까지 해야 한다. 이 말은 우 에인다까 사야도가 새벽법문에서 한 말이다.

 




2019 7 5일 새벽이 되었다. 새벽 5시에 새벽법문이 시작되었다. 직지사템플스테이 위빠사나집중수행 4일차 되는 날이다. 새벽법문에서 사야도는 될 때까지 노력하라고 했다.

 

어떻게 해야 될 때까지 할 수 있을까? 사야도는 어떤 일이든지 쉽게 되는 일은 없다고 했다. 고생하지 않고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고생 안하고 쉽게 도와 과를 이루는 일은 없고 깨닫는 일도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이 법문을 듣고 실천수행하여 성과를 얻기 바란다는 뜻으로 말했다.

 




부처님 고행에 대하여

 

사야도는 부처님의 고행에 대하여 말했다. 출가하여 스승을 찾아 다니고 고행한것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다. 삼장에는 고행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어떤 고행자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뼈와 가죽만 남은 고행상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맛지마니까야 사자후에 대한 큰 경’(M12)를 보면 부처님이 고행을 회상하는 장면이 있다. 그 중의 한대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사리뿟따여, 그 가운데 나의 고통스런 삶은 이와 같았다. 나는 벌거벗고, 편의를 거부하고, 손가락을 빨고, 오라는 초대를 거부하고, 머물라는 환대도 거부하고, 제공된 음식을 거부하고, 할당된 음식을 거부하고, 식사의 초대도 거부했다.

 

나는 옹기에서 떠주는 것을 받지 않고, 냄비에서 떠주는 것을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가서 받지 않고, 지팡이를 가로질러 받지 않고, 공이로 찧고 있는 것을 받지 않고, 둘이 함께 식사할 때에 받지 않고, 임신부에게 받지 않고, 젖먹이는 여자에게 받지 않고, 남자에게 안긴 여자에게 받지 않고, 모여 있는 곳에서 받지 않고, 베풀어지는 곳에서 받지 않고, 개가 기다리는 곳에서 받지 않고, 파리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받지 않고, 물고기를 받지 않고, 고기를 받지 않고, 곡주를 마시지 않고, 과일주를 마시지 않고, 발효된 차를 마시지 않았다.

 

나는 한 끼를 위해 한 집에 머물렀고, 두 끼를 위해 두 집에 머물렀고, 세 끼를 위해 세 집에 머물렀고, 네 끼를 위해 네 집에 머물렀고, 다섯 끼를 위해 다섯 집에 머물렀고, 여섯 끼를 위해 여섯 집에 머물렀고, 일곱 끼를 위해 일곱 집에 머물렀다.

 

나는 한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두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세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네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다섯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여섯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고, 일곱 번 주어진 것만으로 살았다.

 

나는 하루 한 번 식사를 했고, 이틀에 한 번 식사를 했고, 사흘에 한 번 식사를 했고, 나흘에 한 번 식사를 했고, 닷새에 한 번 식사를 했고, 엿새에 한 번 식사를 했고, 이레에 한 번 식사를 했다. 이와 같이 해서 보름에 한 번 하는 정기적인 식사를 실천했다.

 

나는 오로지 야채만을 먹거나, 기장만을 먹거나, 생쌀만을 먹거나, 다둘라쌀만을 먹거나, 하타초만을 먹거나, 쌀겨만을 먹거나, 반즙만을 먹거나, 참깨가루만을 먹거나, 풀만을 먹거나, 쇠똥만을 먹었다. 또한 나는 숲 속의 나무뿌리나 열매로 연명하거나, 자연적으로 떨어진 열매로 연명했다.

 

나는 삼베옷을 입고, 삼베와 섞어 짠 옷을 입고, 시체에 입혀진 옷을 입고, 누더기옷을 입고, 띠리따 나무의 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검은 영양의 가죽옷을 입고, 영양의 가죽실로 짠 옷을 입고, 길상초로 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짠 옷을 입고, 나뭇조각으로 만든 옷을 입고,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짠 옷을 입고, 말의 털로 짠 옷을 입고, 새털로 짠 옷을 입었다.

 

나는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을 추구하는 자로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아버렸다. 나는 앉는 것을 거부하고 계속 서 있는 자로서 앉는 것을 거부하고 계속 서 있었다. 나는 웅크리고 앉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자로서 계속 웅크리고 앉았다.

 

나는 못이 박힌 침대를 잠자리로 사용하는 자로서 못이 박힌 침대를 사용했다. 나는 저녁까지 하루 세 번 목욕재계하는 자로서 하루 세 번 목욕을 실천하며 살았다. 이러한 다양한 방법으로 나는 몸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것을 추구했다. 나의 고행은 이와 같았다.”(M12.28)

 

 

부처님은 6년동안 이렇게 고행했다. 보통사람이라면 죽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야도는 여기 모인 분들은 복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편안하게 알려주고 지도해 주는 스승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복은 갖추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야도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부처님의 하루일과

 

사야도는 4일 전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음을 상기 시켰다. 수행을 시작하기 앞서 혜송스님이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더구나 아침저녁으로 법문을 해주고 또한 오전오후로 인터뷰 지도를 해 주니 복이 있다는 것이다. 만일 부처님이 출현하지 않았다면 부처님처럼 목숨을 건 고행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르침을 전달하는 스승이 있기 때문에 이런 고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사야도에 따르면 부처님은 매일 대중을 위하여 법문했다고 한다. 새벽 일어나서부터 잠들 때까지 쉬지 않고 교화하고 지도하고 법문했는데 무려 45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았음을 말한다. 이와 같은 부처님 법문 핵심에 대하여 한마디로 알아차림이라고 했다. 건성건성 보지 말고 주의깊게 관찰하는 것이다.

 

사야도는 부처님의 하루일과를 소개했다. 새벽에 선정에 들고 난 다음 오늘 법문해 주어야 할 사람을 찾는 것이다. 깨달음이 무르익은 사람에게 찾아가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천안으로 보는 것이다. 주로 탁발을 통하여 찾아 간다고 했다.

 

부처님은 오후 2시부터는 출가자들을 대상으로 법문했고, 오후 6시 부터는 재가자를 중심으로 법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심야에는 천인을 대상으로 법문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하루일과를 보면 초인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참고로 부처님의 하루일과에 대한 것이 주석에 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는 오전 6시에서 12시까지는 하늘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여 뭇삶을 도와주고 탁발하고 대중들에게 설법을 하였다.

 

그리고 12시에서 오후 6시까지는 대자비삼매(大慈非三昧mahākaruā samā-patti)에 들어 수행승이나 뭇삶들의 괴로움을 살피고 그들을 돕거나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오후의 수면에 들기도 하고 일반사람들을 제도하거나 신도들에게 가르침을 설했다.

 

초저녁인 오후 6시에서 밤 10시까지는 수행승들이 방문하면 친견을 허락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한밤중인 밤 10시에서 새벽 2시까지는 하늘사람이나 악마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제도했다.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경행(經行)을 하였으며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는 마음새김을 하며 취침했다.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에는 열반에 들어 아라한의 경지에 들었다. 그리고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에는 대자비삼매에 들어 뭇삶들의 괴로움을 살펴보았다.”(구 상윳따니까야 1권 해제, 전재성역)

 

 

부처님도 우리와 같이 24시간을 먹고 자고 활동했다. 하루일과 중에 행선도 보인다. 새벽 2시부터 3시까지 1시간 동안 행선한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일과를 보면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잠을 많이 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정식수면 시간은 고작 1시간 밖에 지나지 않는다. 부처님은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중생제도 했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은 매일같이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수행자들이 부처님과 같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도와 과를 성취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승가에서 출가자에게 스파르타식 정진을 요청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이에 대하여 사야도는 빨리 도와 과를 성취하여 세상의 스승이 되라는 뜻입니다.”라고 말했다. 부처님의 길을 따라 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야도는 빠르게 법을 성취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조건을 말했다. 4일차 새벽법문 주제이다.

 

왜 업과 업보가 신심에 들어갔을까?

 

빠르게 법을 성취할 수 있는 조건 첫 번째는 신심이다. 어떤 신심을 말하는 것일까? 사야도는 5가지 신심을 들었다. 붓다, 담마, 상가, 그리고 업과 업의 과보에 대한 신심을 말한다. 삼보에 대한 신심의 중요성은 불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그런데 왜 업과 업보가 신심에 들어갔을까? 이에 대하여 사야도는 나의 행위를 믿는 것이라고 했다. 또 나의 행위의 결과에 대해 믿는 것이라고 했다.

 

선업을 했으면 선업이 뒤따를 것이다. 업과 업보가 신심인 것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알아 보았다. 우 에인다까 사야도와 혜송스님의 스승인 우 꾼달라 사야도가 지은 위빠사나 수행자의 근기를 돕는 아홉요인에 업과 업보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우 꾼달라 사야도는 책에서 업의 존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게송의 형태로 써 놓았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만져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선업은 선업을 쌓은 사람의 것이고,

지금 그 선업의 대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항상 그 사람의 것이다.”(62)

 

 

행위를 하면 업으로 남는다. 육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행위를 하면 반드시 흔적이 남는다. 그것은 정신적 흔적이다. 이것을 업(kamma)이라고 한다. 그런데 업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나중에 과보로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없다고 볼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업은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업을 쌓으면 선과보를 받는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물론 악업을 지으면 악과보를 받는다.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것은 믿음이라기 보다는 법칙이다. 마치 뉴턴의 법칙과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업과 업의 과보를 부정한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외도들은 업과 업보를 부정했다. 그래서 무작자(akiriya)라고 한다. 특히 단멸론자들이 그렇다. 단멸론자들은 보시하는 것에 대하여 어리석은 행위라고 말한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보시하고 현자는 취한다.”라고 말한다. 돈을 빌려도 갚지 않는다든가, 은행에서 거액을 대출받아 이민 가버리는 행위를 해도 전혀 게의치 않는 것이다.

 

우 꾼달라 사야도에 따르면 업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선업 지었을 때이다. 이에 대하여 선업을 쌓았을 때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62)라고 했다. 수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좌선이나 행선을 하여 마음이 집중되어 고요해진다. 수행이라는 행위를 하여 수행공덕이라는 업을 쌓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건강이 되어야

 

빠르게 법을 성취할 수 있는 조건 두 번째는 건강이다. 건강이 어느 정도 되어야 법을 성취할 수 있음을 말한다. 법문을 들어도 잊어 버리면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까? 몸과 정신이 어느 정도 온전해야 수행할 수 있음을 말한다.

 

지금 앉아 있을 힘도 없는 사람은 한시간 좌선에 한시간 행선 하기가 어렵다. 병이 나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은 수행하기 어렵다. 건강이 좋지 않으면 도와 과는 요원한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법문 들을 힘만 있어도 된다는 것이다. 될 때까지 노력하면 된다고 했다. 정진력이 있으면 법을 성취할 수 있다고 했다.

 

정직하고 솔직하고 분명해야

 

빠르게 법을 성취할 수 있는 조건 세 번째는 정직이다. 마음이 정직하고 솔직하고 분명해야 빠르게 법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수행보고에 대한 것이다. 인터뷰할 때 몸에서 일어난 변화에 대하여 정직하게, 솔직하게, 분명하게 보고해야 빠르다는 것이다. 그대로 보고 느낀 것에 대하여 보고해야 그에 맞는 법문을 들을 수 있음을 말한다.

 

보고 할 때는 안되면 안된다고 보고하고, ‘놓쳤으면 놓쳤다고 보고 해야 한다. 보고의 핵심은 솔직, 분명, 단순, 명확이다. 이런 보고 자세가 있어야 빠르게 법을 성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처님의 용맹정진에 대한 가르침

 

빠르게 법을 성취할 수 있는 조건 네 번째는 노력이다. 노력이 충분해야 도와 과를 성취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이와 같은 노력에는 네 가지가 있다. 초기경전에서 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정형구이다.

 

 

1) 아직 생겨나지 않은 불건전한 악하고 불건전 것들은 생겨나지 않도록, 의욕을 일으켜 정진하고 정근하고 마음을 책려하고 노력하고,

2) 이미 생겨난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은 버리도록, 의욕을 일으켜 정진하고 정근하고 마음을 책려하고 노력하고,

3)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건전한 상태를 일으키도록, 의욕을 일으켜 정진하고 정근하고 마음을 책려하고 노력하고,

4) 이미 생겨난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여 잊어버리지 않고 증가시키고 확대시키고 계발시키고 충만하도록, 의욕을 일으켜 정진하고 정근하고 마음을 책려하고 노력한다면,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올바른 정진이라고 한다.”(S45.8)

 

 

불선법은 버리고 선법은 증장시키는 것이 정진이다. 그런데 사야도에 따르면 이와 같은 네 가지 외에 더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처님의 고행에 대한 것이다. 가죽과 뼈만 남을 정도로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앙굿따라니까야 다음과 같은 정진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그는 이와 같이 참으로 가죽과 힘줄과 뼈가 바싹마르고 몸 안의 살과 피가 고갈되리라. 사람의 힘으로 사람의 정진력으로 사람의 용맹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곳에 도달하지 못하면, 정진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라는 생각을 가지고 정진을 도모한다.”(A8.13)

 

 

부처님의 용맹정진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와 같은 정형구는 맛지마니까야 에서도볼 수 있다. 맛지마니까야 끼따기리 설법의 경에서는 기꺼이 내 몸에서 나의 가죽, 힘줄, 뼈만 남아도 좋다. 살과 피는 말라버려라. 그러나 참사람의 인내, 참사람의 정진, 참사람의 용맹으로써 성취해야 할 것을 성취하지 못하는 한, 나의 정진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M70)라고 표현되어 있다.

 

부처님의 용맹정진에 대한 가르침은 니까야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숫따니빠따 정진의 경’(Sn.3.2)에서는 이러한 정진에서 나오는 바람은 흐르는 강물조차 마르게 할 것이다. 이처럼 용맹을 기울이는 나에게 피가 어찌 마르지 않겠는가!”(Stn.433)라고 했다. 또 마라의 군대에 대하여 차라리 나는 문자풀을 걸치겠다. 이 세상의 삶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 내게는 패해서 사는 것보다는 싸워서 죽는 편이 오히려 낫다.”(Stn.440)라고 했다.

 

부처님이 용맹정진 할 때 가죽, 힘줄, 뼈 만 남았다. 이시대에 가르침을 듣고 이처럼 수행할 사람이 있을까? 사야도는 안되면 될 때까지 하라고 했다. 한번 앉으면 자세를 바꾸지 않고 쉬지 않고 노력하리라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되더라도 될 때까지 정진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게송으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게송을 미얀마어로 읊었다.

 

 

엇예빠-따 이칸다- 짠까-쭈인바세

엇쪼-미아-따 이칸다- 짠까-쭈인바세

엇요-마아따 이칸다- 짠까-쭈인바세

엇뚜에 엇따- -ㅅ롱미아 칸또이-인레 카인바세

--머야욱 랫머먀욱 따욱샤욱찐맷레.”

 

이몸이 말라서 가죽만 남을지라도,

이몸이 말라서 힘줄만 남을지라도,

이몸이 말라서 뼈만 남을지라도,

피와 살이 모두 마를려면 말라라.

길 끝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수행하리라.”

 



 

팔정도 지혜가 있어야

 

빠르게 법을 성취할 수 있는 조건 다섯 번째는 지혜이다. 지혜가 있어야 도와 과를 성취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팔정도 지혜라고 했다. 그런데 팔정도 지혜는 경전에서 설해져 있는 것과는 다르다.

 

수행처에서 말하는 팔정도의 지혜는 호흡과 관련되어 있다. 호흡과 관련된 복부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관찰했을 때 이를 정견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음이 밖으로 달아났을 때 주관찰 대상으로 순발력 있게 복귀하는 것에 대하여 정사유라고 한다.

 

위빠사나수행에서 말하는 지혜는 현재 이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아는 것에 대한 지혜이다. 이는 다름 아닌 정신-물질의 작용에 대하여 아는 것이다. 오로지 정신적 작용과 물질적 작용만 있을 뿐 나라든가 너, 사람, 중생 등 개념이 있을 수 없음을 아는 것이다.

 




이 법문을 듣고 완벽하게 실천수행하면

 

사야도는 빠르게 법을 성취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조건에 대하여 설했다. 요지는 신심이 충만해야 하고, 건강이 되어야 하고, 성격은 솔직하고 분명해야 하고, 가절히 노력해야 하고, 일어나는 것에 대하여 한 개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야도는 이 법문을 듣고 완벽하게 실천수행하면 분명히 도와 과를 성취할 수 있다고 했다. 법문이 끝나자 축원해 주었다. 그리고 수행자들은 이 모든 공덕을 부모님, 스승님, 권속, 그리고 31세계 모든 행복한 존재, 불행한 존재 등에게 회향했다.

 

 

2019-07-3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