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허리 아픈 환자처럼 천천히, 직지사 위빠사나 집중수행12

담마다사 이병욱 2019. 8. 1. 21:46

 

허리 아픈 환자처럼 천천히, 직지사 위빠사나 집중수행12

 

 

4일차 2019 7 5일 오전 점심 오후, 6단계 행선

 

집중수행 4일째이다. 56일 일정에서 절반이 지났다. 집중수행 4일째라면 무언가 성과를 내야 한다. 이번 집중수행에서는 행선을 위주로 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행선에 집중했다.

 

오전에는 집중이 잘 된다. 좌선도 그렇고 행선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일까 오전 7 15분부터 내리 한시간 동안 행선에 집중했다. 그것도 6단계 행선이다.

 

6단계가 가장 높다. 단계가 높을수록 천천히 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우 꾼달라 사야도의 위빠사나 수행자 근기를 돕는 아홉요인에 따르면 아픈 환자처럼 천천히하라고 했다. 특히 허리가 아픈 환자처럼 행동하라고 했다.

 

위빠사나 수행은 좌선과 행선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사띠해야 한다. 사띠를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에는 천천히 하는 수밖에 없다. 현재를 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만 방심해도 지나가 버린다. 순간포착 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우 꾼달라 사야도는 번개의 비유를 들었다.

 

번개가 치면 순간에 일어났다가 사라져 버린다. 구름이 일어서 번개가 칠 때 지켜 보아야 한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번개를 볼 수 없다. 현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음을 현재에 두지 않으면 과거나 미래에 가 있게 된다. 마음이 현재에 있지 않으면 성품을 볼 수 없다. 번개를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정신적-물질적 현상은 번개와 같은 것이다. 조건이 맞아 떨어졌을 때 일어났다가 곧바로 사라져 버린다. 정신적-물질적 현상은 오로지 일어나는 순간에만 존재한다. 그 순간을 관찰하려면 마음을 항상 현재에 두어야 한다. 사띠를 강화하려면 아픈 환자처럼 천천히 행동하라고 했다.

 

행선도 재미가 있다

 

6단계 행선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의도가 들어간 행선이 있다. 한걸음에 세 번 알아차리는 방식에서 각각 의도를 알아차리는 행선이다. 한걸음 세 단계는  , 나감, 놓음이다. 여기에 의도를 알아차림 하면 들려고 함, ’ ‘나가려 함, 나감’ ‘놓으려 함, 놓음이 된다. 아픈 환자처럼 천천히 주의 깊게 의도를 알아차려야 한다. 그러나 초심자에게는 의도를 알아리기가 쉽지 않다.

 

행선 6단계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스승에 따라 또 다른 방식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한걸음에 , 올림, 나감, 놓음, 닿음, 누름으로 6단계 방식이다. 주로 이 방식으로 행선 했다. 6단계를 모두 알아차림 해야 하기 때문에 천천히 했다. 한걸음에 여섯 번 알아차림 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이 요구된다. 한걸음, 두 걸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끝에 이른다.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행선도 재미가 있는 것임을 알았다.

 

6단계 행선을 할 때는 명칭을 붙여서 했다. 명칭을 붙이면 집중이 더 잘 되기 때문이다. 집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오로지 움직임과 이를 아는 마음만 남아 있게 된다. 그것 외 다른 것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조금만 방심해도 놓치고 만다.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이를 순간집중이라고 한다. 순간집중하면 움직임과 아는 마음만 남게 된다. 움직임은 물질적 현상이고 움직임을 아는 것은 정신적 현상이다. 몸과 마음을 구별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위빠사나 제1단계 정신과 물질을 구별하는 지혜라고 한다. 그런데 일어남은 원인이고 아는 것은 결과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행선을 하면 위빠사나 제2단계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에 이르게 된다. 보통 수행을 하고 나서 3-4일 지나면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현상이든지 알아차림 해야

 

오전 인터뷰시간이 있었다. 오전 9시 반부터 한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모두 13명이 보고했다. 어느 수행자는 수행한지 2년 됐다고 한다. 통증과 아는 마음이 분리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아프다고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삐띠가 일어나면 따라가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사야도는 아주 좋습니다.”라며 칭찬하며 많은 시간 싸띠가 축적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수행자는 최민희 사야도와 혜송스님, 그리고 명상팀의 리더인 최민희 선생에게 감사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에 사야도는 기쁜 일이 있어도 냉정하게 알아차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현상이든지 알아차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야도는 지금 눈물은 기쁨의 눈물입니다.”라고 말하며 울려는 의도를 싸띠하면 눈물이 안납니다.”라고 말했다.

 

최민희 선생이 보고 했다. 이번 집중수행 기간 중에 단체로 참석한 명상팀 영원한 행복을 이끌고 있는 리더라고 볼 수 있다. 최선생은 무엇이든지 쁑하고 사라지는 듯하다고 했다. 그리고 오토매틱하게 사띠가 된다고 했다. 또 걸을 때 풍성터지듯하다고 하자 발의 겉모양은 무시하고 실제성품을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점심시간에

 

점심시간이 되었다. 이번 점심은 푸짐했다. 피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원에서는 채식 위주임에도 피자를 보자 특별식을 먹는 것 같았다. 그런데 피자에 고기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순식물성 피자이다. 매밀국수에다 호박튀김을 곁들였는데 풍성했다. 그러나 하루를 버티기에는 부족하다. 여러모로 미얀마와 비교된다.

 




미얀마에서는 점심식사는 매우 풍성하다. 또한 갖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칼로리가 높은 고단백질 식품이 많다. 생선도 있고 육고기도 있다.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류가 빠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도 탁발 전통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주는 대로 받기 때문이다.

 

탁발나가면 음식을 가려서 받지 않는다. 발우에 떨어진 것을 먹기 때문에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테라가타에서 “문드러진 손으로 그는, 나에게 그의 음식의 일부를 건넸다. 음식의 일부를 발우에 던질 때에 그의 손가락도 그 곳에 떨어졌다.(Thag.1061)라는 게송이 있다. 마하깟싸빠 존자가 읊은 게송이다.

 

마하깟싸빠존자는 나병환자에게 보시공덕 기회를 주고자 했다. 일부로 나병환자가 있는 곳으로 탁발나간 것이다. 나병환자는 존자에게 자신이 먹던 것을 건네 주었다. 그런데 거기에 썩어 문드러진 손가락이 떨어진 것이다. 존자는 게의치 않고 음식을 먹었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미얀마선원에서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주는 대로 먹는 것이다.

 

4일차 대중공양은 손정만-이청련화님이 해 주었다. 이청련화님은 이번 집중수행에 장남 손규범님과 함께 참석했다. 아침과 점심과 오후주스 공양제자로서 양가부모님을 위한 공양이라 한다. 수행자들은 푸짐하고 풍성한 특별식을 먹었다.

 




나른한 오후시간

 

하루종일 만덕전 명상홀에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자 졸음이 쏟아 졌다. 앉아 있어 보았지만 졸음 때문에 버틸 수가 없다. 그렇다고 숙소로 가지 않았다. 가장 편한 자세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상홀 바깥으로 나왔다. 뒷면에는 주스 등 음료 등이 준비 되어 있었다. 의자도 준비 되어 있어서 오후 나른한 시간에 앉아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참으로 평화롭고 한가한 시간이다. 선원에서 먹고 자기 때문에 시간은 철철남는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지루하기도 하고 다급하기도 하다. 며칠 남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다급한 마음이 앞선다. 하나라도 성과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숙소에 들어가서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있을 수 없다. 의자에 앉아서 졸음을 쫓아내는 것이 상책이다.

 




만덕전 명상홀 뒷편에 앉아 있으니 저멀리 황악산이 보인다. 직지사의 주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황악산직지사라고 한다. 해발 1,111미터이다. 일명 황학산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능선만 보이는 것 같다. 마치 무등산을 보는 것 같다. 모든 것을 품어 안을 것 같은 넉넉한 산이다.

 

수행이라기 보다 수습(修習)

 

황악산을 보며 나른한 오후 한때를 보냈다. 기온은 높지만 습도는 적당하다. 쾌적하고 상쾌한 날씨이다. 전국각지에서 온 수행자들은 나름대로 계획이 있어서 왔을 것이다. 놀러 오거나 시간 때우러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귀중한 시간 내서 왔기 때문에 무언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설령 이번 집중수행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다. 습관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수행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 붙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이라는 말 대신에 수습(修習)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고 한다. 이번 집중수행은 수행이 아니라 수습에 가깝다.

 

 

2019-08-0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