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동기송년모임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한다. 목도리도 없이 가볍게 입고 나갔다가 혼쭐났다. 이럴 때는 모자가 달린 두꺼운 외투가 최고일 것 같다. 여기에 마스크까지 갖추면 중무장한 것이 된다.
양재역 사거리에서 약속장소까지는 걸어서 오백미터 거리에 있다. 날씨가 차가워서일까 밤하늘에 보는 고층빌딩의 불빛도 차갑게 느껴진다. 강추위에 잔뜩 움추린채 총총걸음으로 송년회장에 도착했다.
불교교양대학 동기송년모임이다. 일년에 한번 있어서일까 그동안 오프라인 모임에서 못보았던 법우님들 얼굴 모습도 보였다. 일년만에 보는 사람도 있고 몇년만에 보는 사람도 있다. 모두 밝고 건강한 얼굴이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이다. 만나자마자 하이파이브 하듯이 반겨준다. 바깥은 차갑지만 안은 훈훈했다.
모두 23명이 모였다. 송년회이기 때문에 이렇게 많이 모였을 것이다. 어느 모임이든지 아무리 바빠도 송년모임은 빠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년에 한번 열리는 연중행사이기 때문이다. 어떤 모임이든지 한번 빠지면 계속 빠진다. 모임이 있으면 될 수 있으면 참석하는 것이 좋다. 나가서 밥 한끼 같이 먹는다고 가볍게 생각하면 부담없다. 그러나 모임에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 실망하기 쉽다.
모임에 가는 것에 대하여 이득을 따지면 가기가 쉽지 않다. 어느 모임이든지 시간과 돈과 정력을 필요로 한다. 모임에 나가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면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모임에 나가면 시간도 깨지고 돈도 들고 힘도 들지만 그래도 나가는 것은 얼굴 보러 가는 것이다. 백번 온라인에서 보는 것보다 오프라인에서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
벌써 15년 된 모임이다. 일년에 서너차례는 만났다. 그렇게 십년이상 만났으니 친숙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낯설다고 말한다. 자주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주 만나서 얘기를 하지 않은 것이 큰 이유라고 본다. 어떻게 해야 친숙해질 수 있을까? 그것은 고락을 함께 하면 된다. 일박이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백번 당일치기 순례법회 가는 것보다 한번 일박이일 순례만 못하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사람들은 함께 늙어 가는 것 같다. 동기모임이기 때문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 한번 나이가 많은 사람은 계속 나이가 많은 사람이 된다. 한번 나이가 적으면 계속 나이가 적은 채로 남아 있다. 동기모임에서 나이로 서열을 정한다면 나이가 적은 사람은 억울할 것이다. 동기모임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대접받는다면 불공평한 것이 된다.
동기모임에는 동급생도 있다. 너댓명 되는 것 같다. 같은 또래로서 같은 학년이면 심정적으로 동류의식을 가진다. 그러나 동기모임에서는 나이와 관계없이 모두 동등한 입장이 되어야 한다. 또 동기모임에서는 나이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단지 한때 함께 배웠다는 동기의식이 더 강한 것이다. 동기모임에서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가량 모임을 가졌다. 코스요리와 함께 대화를 즐겼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과 말한 것이 아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곳저곳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웃음이 터지지만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동기모임에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다만 만나서 밥 한끼 먹고 얼굴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당일치기 순례 보다도 식당 송년회보다도 더 기다려지는 것은 일박이일 순례가는 것이다. 총무법우님이 내년에는 두 번 시행하겠다고 하니 기대해 볼만 하다.
다시 양재역으로 향했다. 양재역 사거리에서 강남대로 방향을 보면 커다란 바위에 ‘말죽거리’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옛날 이곳이 말죽거리였음을 알리는 것이다. 말죽거리라는 말은 친숙하다. 어렸을 적 이곳에 와 본적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처음 기억은 강렬하다. 서울에 온지 몇 달 되지 않을 때인 국민학교3학년 때의 일이다. 말죽거리에 외가 친척이 살고 있었다. 친척은 본래 남도에 살았는데 어떻게 해서 거기에서 살았는지 알 수 없다. 그때 엄마를 따라 친척을 찾아 갔다. 지금은 상상이 가지 않지만 배 타고 갔다. 차량도 탈 수 있어서 요즘으로 말하면 페리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크고 화려한 것은 아니다. 작고 허름한 것이다. 차라리 뗏목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나루터는 지금의 한남대교 자리에 있었다. 한남대교를 건설하기 위하여 콘크리트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강을 건넜다. 나루터에서 버스를 탔다. 산을 넘어 한참 달렸다. 주변을 보니 개발열풍이 불어서일까 택지조성중인 곳도 있었다. 마침내 어느 지점에선가 내렸다. 야트막한 산등성이 아래 외딴 가옥이 있었다. 주변은 논과 밭이 있어서 농촌과 다를 바 없었다. 대체 그곳은 어디쯤일까?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고 뒤에 산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서초구청자리일수도 있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단한번 보았을 뿐이고 지금은 상전벽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양재역사거리가 본래 말죽거리였다는 것을 안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양재역에 가면 늘 떠오르는 것은 늘 ‘말죽거리’라는 약간은 촌스런 말이 떠올려진다. 또 말죽거리 하면 외가친척집에 간 것이 떠 올려진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기억은 없다. 다만 한여름날 뭉게구름 핀 가운데 한가로운 농촌풍경이 떠 올려진다.
양재역사거리라는 말보다 ‘말죽거리사거리’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 어렸을 적 추억도 있지만 순수한 우리말 이름이 더 정감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련된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지명도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 같다. 다시 옛날 이름으로 되돌아 갈수는 없는 것일까?
영하의 날씨에 잔뜩 움추리다가 안양 가는 버스를 탔다. 올 한 해도 또 이렇게 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 잊어버리는 한해가 되어서는 안된다. 세월의 흐름에 떠 밀려 갈 수 없어서 나름대로 몸부림쳤다. 그것에 대한 결실은 글로 남아 있다. 강남개발로 부자가 된 사람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 재산은 삶의 흔적을 남긴 것에 있다. 버스속에 들어가니 춥지 않고 안은 했다.
2019-12-0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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