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인작은법회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2. 20. 10:52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일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일을 손에 잡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마치 밭을 매는 것 같다. 마우스를 수천, 수만번 클릭하는 것은 너른 밭을 호미질 하는 것과 같다.

 

일요일 오전이다. 눈만 뜨면 해만 뜨면 집을 나와야 한다. 일터로 달려 가는 것이다. 일이 있든 없든, 평일이든 주말이든 가리지 않는다. 일감이 있으면 주말작업을 한다. 고객사에서 주말에 일할 일감을 주었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

 

일감이 있어도 글을 쓰고 일감이 없어도 글을 쓴다. 일을 하는 도중에 글을 쓰면 짜릿하다. 월급생활자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내일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어 놓고 글을 쓴다. 마치 밭을 가는 농부가 잠시 호미를 놓고 딴 짓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속으로는 든든하다. 글쓰기가 끝나면 바로 일로 복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사무실에서 물건을 찾다가 오래전 앨범을 발견했다. 그것은 불교입문에 대한 것이다. 2004년 불교교양대학 문을 두드렸는데, 4개월 과정을 수료하자 졸업증을 주었다. 그것은 능인불교대학 37기 교리과정을 이수한 것에 대한 증명서라고 볼 수 있다. 능인선원 지광스님이 준 것이다.

 

졸업장에는 법명이 적혀 있다. 성공(聖供)이라는 법명이다. 졸업에 앞서 수계의식을 가졌는데 그때 부여받은 것이다. 불자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받은 법명이다. 성인을 공양하라는 뜻으로 본다.

 

2004년 당시 4백명 가까이 수계 받았다. 아마 그때 당시가 전성기였던 것 같다. 작은 학교 운동장만큼 너른 법당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역별로 구분해서 앉았다. 수도권지역은 성남권과 안양권지역으로 나뉘어 앉았다.

 

교육은 일주일에 두 번 있었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였다. 동일한 기수가 낮반도 있었다. 저녁반은 직장 다니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앉아서 들어보자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들었다. 그런데 들어 보니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원장스님의 말에 매료되었다. 마치 원맨쇼하듯이 때로 웃겼다가 심각하게 했다가 하는 것이었다. 이십년 이상 도심포교 했으니 포교의 달인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부터 하루도, 한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했다.

 

4개월 교육 과정 중에는 교류의 시간도 있었다. 이는 조직화 과정이기도 하다. 지역별로 모임을 갖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너른 법당에서 동그랗게 앉았다. 안양권지역은 세 개 지역으로 또 세분화되었다. 안양시에 사는 법우님들은 약 15명가량 되었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는 등 안면을 트는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되자 자연스럽게 카풀조가 형성되었다. 개포동 선원에서 안양까지 세 명을 태운 것이다.

 

카풀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 친밀해지자 치맥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동안 고립되다시피 하면서 살다시피 했는데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았다. 친구가 생겨난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 앨범용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지역별로 찍었다. 안양에 사는 법우님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2004년에 찍었으니 이제 16년전의 일이 되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사람의 모습도 변한다. 늙어 가는 것이다. 16년 전 사진을 보니 지금보다 훨씬 젊다. 40대 중반때의 사진이다. 상당수가 아마 비슷한 연령대이었던 것 같다. 수능을 앞두고 들어온 사람도 있고, IMF때문에 들어온 사람도 있었고, 큰 돈을 떼여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 성당다니다 온 사람도 있었고, 교회다니다 온 사람도 있었다.

 

세월은 가고 사진만 한장 달랑 남았다. 그러나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일생일대의 대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날 의무적 글쓰기 하면서 사는 것도 불교와의 인연 때문이다. ‘왜 이리 인생이 풀리지 않을까?’라며 문을 두드렸다. 이제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는다. 가르침에 안에 다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법우모임이 있다. 서로 인연맺은지 16년이 흘렀음에도 변함없이 모이는 사람들이 있다. 함께 법회하고 함께 순례 다녔다. 경사와 조사에도 함께 하고 연말에는 송년회를 가졌다. 그러나 올해는 예외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카톡방에서 안부를 주고받을 뿐이다.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인연이 선연이 되도록 노력한다. 그때 당시 사람들은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먼저 세상을 뜬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변함없이 만나는 법우님들이 있다. 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만나면 늘 반갑고 기쁜 사람들이다.

 

 

2020-12-2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