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저 편하게 살려고만 한다. 게으르고 나태하고 무기력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부지런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먹는 것이다. 먹는 즐거움을 누리는데 있어서는 게으르지 않는 것이다. 또 하나가 있다. 쾌락을 즐기는 것이다. 음주를 즐기고 흡연을 즐기는 것이다. 눈과 귀, 코, 혀, 몸으로 감각을 즐기는 사람이다. 감각을 즐기기에 바쁜 사람이다.
편안하게 살고 감각을 즐기는 삶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차면 배설하는 것은 동물들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동물들은 하루 종일 먹다시피 하고 있다. 먹는 것이 가장 큰 일인 것이다. 또 하나는 번식하는 것이다. 발정기가 되면 짝을 이루어 새끼를 낳고 기르는 것이다. 편하게 감각적으로 사는 사람들 역시 먹는 것과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에 있어서 동물들과 다를 바 없다.
동물의 왕국을 즐겨본다. 요즘은 자연다큐만을 전문으로 방영하는 채널이 있어서 즐겨찾는다. 초원에서 약육강식의 세계를 보면 인간의 세계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그 중의 BBC자연다큐 ‘펭귄우체국’이 있다. 척박한 남극에서 펭귄이 짝을 이루어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는 것에 대한 자연다큐이다. 알에서 부화한 새끼가 성체가 되기까지 여러 위험이 있다. 어린 새끼가 갈매기에게 통째로 잡아 먹히는 장면도 있다.
초원에서는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자연생태계에 있어서 약육강식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자연에서는 때가 되면 암수가 짝을 이루어 새끼를 낳고 낳은 새끼는 잡아 먹히고, 성체가 되어서도 더 큰 포식자에게 잡아 먹힌다. 운이 좋으면 살아 남고 운이 없으면 먹이가 된다. 운이 좋아 조금 더 사는 자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한번 태어난 이상 죽어야 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자연다큐를 보면 태어나서 죽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잡아 먹혔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다. 잡아먹었다고 해서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인간만이 슬퍼하고 가책을 느낀다. 그것은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각적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옅게 나타날 것이다. 오로지 감각적 즐거움으로 사는 사람은 동물적 속성이 강하게 남아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편안하게 감각적으로 살고자 한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것을 회피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즐기려고만 한다. 그래서인지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자신만의 왕국을 이루며 살아간다.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안되는 것도 없다. 인생의 방향이 없으니 해 뜨면 일어나 먹고 마시고 해지면 자는 것이 일인 것이다.
오로지 감각을 즐기면서 편안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공동체의식이 없다. 오로지 자신 한몸 편안하면 그뿐이지 주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향상을 위해서 살지도 않고 타인을 돕고 살지도 않는 사람이다. 이렇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화장용 장작은 양끝이 불타고 중간은 악취가 나기 때문에 마을에서도 장작으로 사용하지 않고 한적한 곳에서도 장작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이와 같다고 말한다.”(A4.95)
화장터에서 타다 만 장작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수행을 하여 성장하는 삶을 살지도 않고 공동체의 발전에 역할을 하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하여 화장터에서 타다 만 장작과 같다는 것이다. 나홀로 편안하게 살며 감각을 즐기는 사람,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2019-12-2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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