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좀더 젊었을 때 좀더 건강할 때

담마다사 이병욱 2019. 12. 31. 11:55

 

좀더 젊었을 때 좀더 건강할 때

 

 

노인은 매우 쓸쓸해 보였다. 구부정한 자세로 망연히 앉아 있는 모습이 몹시 초라해 보였다. 머리는 백발이고 얼굴은 쭈굴쭈굴하고 몸은 바싹 말라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오래 못 살 것처럼 보였다. 노인은 사람들에게 형님보다 먼저 갈 줄 알았는데 늦게 가서 다행이야.”라고 말했다. 명성산이 보이는 곳에 있는 가족 납골묘역에서 본 것이다.

 




명성산은 처가쪽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이곳 포천 사람들은 명성산에 대하여 울음산이라고 한다. 궁예가 왕건군에게 쫓기고 쫓기다가 명성산에서 목 놓아 울었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일까 함성을 지르면 메아리가 울려 퍼진다고 한다.

 

스리랑카 성지순례를 앞두고

 

스리랑카 성지순례 떠나기 전날 장인이 쓰러졌다. 근육마비와 치매 등 노환으로 인하여 요양원에서 산지 육개월만이다. 쓰러진 다음 날 사망했다. 산소호흡기를 달았으므로 최소한 일주일 이상 갈 줄 알았다. 성지순례를 취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리랑카는 십년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테라와다불교 종주국 또는 종가집이라 불리우는 스리랑카는 불교의 원형이 그대로 전승되어 내려온 곳이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빠알리삼장의 고향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내년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을 겪고 나서 느낀 것은 여행이라는 것이 반드시 시간과 돈만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흔히 여행은 시간이 맞아야 갈 수 있고, 시간이 있더라도 돈이 있어야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더 있다. 그것은 여건이다.

 

여행은 시간은 철철 넘쳐나지만 돈이 없으면 가기 힘들다. 시간도 되고 돈도 된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것이 여행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행이라는 것이 시간도 없고 돈도 없다고 해도 가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간은 내면 되는 것이고, 돈은 만들면 되는 것이다. 일인사업자에게 있어서 시간은 낼 수 있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미리 당겨쓰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과 돈을 만들어 놓고 크리스마스날 저녁에 떠날 준비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일로 알게 된 것은 여행이라는 것이 시간과 돈과 함께 플러스 알파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건강문제일 수도 있고 가족 문제일 수도 있다. 독감 등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있으면 떠 날수 없는 것이다. 가족 중에 사망자가 있다면 역시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여행은 여건이 맞아야 한다. 그래서 여행은 시간과 돈과 함께 플러스 알파가 충족되어야 한다. 자신의 건강과 주변환경이 좋아야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일이 일어났을 때는

 

즐거운 날이 있으면 슬픈 날도 있다. 살아 가면서 애경사는 있기 마련이다. 특히 애사일 때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일까 법구경에서는 일이 일어났을 때는 벗이 행복이다.”(Dhp.331)라고 했다.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 일을 성취할 수 있게 도와주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친구이다. 친구는 동네친구나 학교친구일 수도 있지만 사회친구일수도 있다. 흔히 말하기를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사회에서는 친구가 되기 힘들다고 한다. 실제로 그렇다. 수많은 회사를 전전했지만 지금까지 소통하고 지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는 사람이 있다. 요즘말로 지인(知人)이라고 한다. 지인과 친구는 다른 것이다. 단지 아는 사람과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이다. 지인이 친구사이로 발전하려면 단계를 거쳐야 할 것이다. 일이 일어났을 때 도움을 준다면 지인이 아니라 친구라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인간(人間)이라면

 

아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활동 저런 활동하면서 안면을 익힌 사람들이 꽤 된다. 가상공간에까지 확대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아는 사람은 단지 아는 사람일 뿐이다. 친소관계로 따지면 먼 사람들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일이 애경사가 있을 때 가까운 사람은 찾아 가지만 먼 사람은 찾아 가지 않는 것 같다.

 

모임에서는 애경사를 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때 스스로 판단한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 간다. 그러나 나와 무관한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무시한다. 또 하나 있다. 유교적 관습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처가쪽 장인이나 장모가 상을 당했을 때 가지 않은 것 같다. 예전에는 실제로 이렇게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런 행위는 대단히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처가의 부모도 친가의 부모와 똑같이 동등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나홀로 살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지 관계를 맺고 살아 간다. 나홀로 살아 간다면 그는 고립을 자처한다고 볼 수 있다. 스스로 고립을 자처한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人間)이란 문자 그대로 사람과 사람사이를 말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다름 아닌 관계이다. 그래서 사람은 서로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관계를 끊어 버리고 나홀로 살아 간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단지 사람일뿐이다.

 

물에 빠진 자가 있는데

 

사람이 인간이 되려면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 단지 알고 지내는 지인에서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친구가 되어야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나 지인과 친구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일이 닥쳐 보아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가르침이 있다.

 


대왕이여, 그들이 견고한지는 재난을 만났을 때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오랫동안 재난을 만났을 때 알지 짧은 동안에는 알 수 없습니다. 정신활동을 기울여야 알지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지혜로워야 알지 우둔하면 알 수 없습니다.”(S3.11)

 

 

경에 따르면 사람을 판단하는데 네 가지 방식이 있다. 그가 계행을 잘 지키는지는 함께 오랫동안 생활해 보아야 알 수 있고, 그가 정직한지는 대화를 통해 한입으로 두 말하는지를 보고 알 수 있고, 그가 지혜로운지는 토론을 통하여 심오한 질문과 대답을 하는지를 보고 알 수 있다고 했다.

 

물에 빠진 자가 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손길이다. 물에 빠진 자에게 손을 내미는 자가 진정한 친구일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그 사람이 얼마나 지혜로운 지는 재난에 빠졌을 때 알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지인과 친구의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문제에 대한 것이다.

 

저 높은 산 위에 있는 바위처럼

 

보통사람은 어려울 때 손 내밀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라면 손 내밀기를 바라는 기대는 접어야 한다. 그 대신 견고해져야 한다. 어떻게 견고해져야 하는가?

 

그 사람이 견고한지는 재난을 겪어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재난을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본 것이다. 지인이 아닌 친구라면 손을 내밀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손을 내밀든지 내밀지 않든지 신경쓰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 견고한자라고 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견고한 자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그러나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어떤 사람은 친지의 상실을 겪고 재물의 상실을 겪고 건강의 상실을 겪으면서, 이와 같이 세상의 삶은 이러하고 존재의 획득은 이러하다. 이러한 삶을 취하고 이러한 존재를 획득하여 여덟 가지 세상의 원리가 세상을 돌게 만들고 세상이 여덟 가지 원리를 돌게 만든다. 그것은 곧 획득과 손실, 명성과 악명, 칭송과 비난, 즐거움과 괴로움이다.’라고 성찰한다. 그는 친지의 상실을 겪고 재물의 상실을 겪고 건강의 상실을 겪더라도, 슬퍼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비탄해하지 않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지 않고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 견고한지는 재난을 만났을 때 알 수 있다. 그것도 오랫동안 재난을 만났을 때 알지, 짧은 동안에는 알 수 없다. 정신활동을 기울여야 알지,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지혜로워야 알지, 우둔하면 알 수 없다.”(A4.192)

 

 

경에서는 세속팔풍(世俗八風)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살다보면 이익과 손해,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그리고 행복과 불행은 늘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바람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팔랑개비가 부는 바람에 따라 방향을 바꾸는 것과 같다. 슬픈일을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친지가 죽거나 재산을 읽었을 때, 건강이 악화되어 중병에 걸렸을 때 울부짖는 다면 세속팔풍에 휘둘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바람부는 대로 살지 않는다. 어떤 바람이 불어도 저 높은 산 위에 있는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견고한 자라고 했다.

 

썰렁한 장례식장에서

 

일을 당했을 때는 주변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관계를 맺고 사는 인간이라면 관계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장례식장은 썰렁할 것이다. 대개 장례식장은 썰렁하기 마련이다. 특히 소시민의 장례식장이 그렇다. 더구나 형제도 많지 않고 현직에 있는 것도 아니라면 더욱 더 그렇다. 그래서 그 사이즈에 맞게 식장을 고른다.

 

장례식장에서 화환이 없으면 더욱 썰렁해 보인다. 명사들이나 권력자, 부자의 장례식장에 가 보면 화환으로 넘쳐난다. 대개 교통이 좋은 시내 중심가 큰 병원이기 쉽다. 이런 곳에서 화환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 같다. 또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 것 같다.

 

줄을 지어 조문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위상을 알 수 있다. 또 그 자손들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농이주민으로 살아온 서민이나 소시민의 장례식장은 초라하다. 그래서 화환을 하나 들였다. 일인사업자 명의로 된 일종의 셀프화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모임의 연락담당에게 이왕이면 조의금 내는 대신에 화환으로 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몇 개의 화환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찾아왔을 때

 

나이가 들수록 애경사에 참석하려고 노력한다. 이때 꼭 따지는 것이 친소관계이다. 친하면 가고 멀면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가면 지인이 친구가 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된다는 것이다. 대체로 장례식장은 무겁고 칙칙한 분위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즐거움으로 가득한 혼례식과 같은 경사에는 기꺼이 참석하려 하지만 분위기가 어두운 장례식장에 가려 하는 것은 꺼려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일부로 찾아 간다면 매우 돋보일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것도 혼자 온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 찾아왔을 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준다. 나중에 만났을 때 반갑게 인사할 것이다.

 

어떤 이는 부고를 받았을 때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일이 바쁘기 때문에 잠시 시간 내서 참석하는 것이다.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찾는 사람도 있고 밤 늦은 시간에 오는 사람도 있다. 찾아와서 돈만 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잠시 앉아서 식사라도 하고 가는 사람이다.

 

뜻밖의 사람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서운한 사람도 있다. 꼭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얼굴을 보이지 않았을 때 서운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견고한 자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자라고 했다.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고맙다. 그렇다고 무관심한 사람을 원망할 필요는 없다. 지혜로운 자라면 어느 경우에서든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세상을 살다보면 다반사로 일어나는 획득과 손실, 명성과 악명, 칭송과 비난,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하여 초연한 사람이 견고한 사람이라고 했다.

 

석화(石火) 같은 빛속에서

 

작은 장례식장에서 멋진 문구를 보았다. 커다란 액자에 붓글씨로 석화 같은 빛속에서 길고 짧음을 다툰들 그 세월이 얼마나 되며 달팽이 뿔 위에서 승패를 겨룬들 그 세계가 얼마나 크겠는가라고 쓰여 있다. 채근담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여기서 인생을 석화(石火) 같은 빛이라고 했다. 돌을 서로 부딪쳤을 때 볼 수 있는 매우 짧은 순간적인 빛을 말한다. 또한 달팽이가 서로 뿔자랑 하듯이 다투는 세상은 좁디 좁다는 것이다.

 




인생은 짧다. 사람들은 길어야 백년을 산다. 천상에서 하루는 인간의 백년에 해당된다고 한다. 시간을 더욱 확장하면 인간의 백년은 잠시 번쩍하다 사라지는 빛과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백년도 못사는 사람들은 마치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시간을 헛되이 허비하며 살아간다. 또 그 짧은 기간동안 바람 부는 대로 살아가면서 업을 짓고 살아간다.

 

인생은 석화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또 인생은 일출시의 이슬방울과도 같다고 했다. 그래서 번개처럼, 잠시 지속하는 것으로 나타나거나, 환술, 아지랑이, , 선화륜, 신기루, 파초 등처럼 견실하지 않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Vism.20.103)라고 했다.

 

좀더 젊었을 때 좀더 건강할 때

 

요즘 백세시대를 말하지만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어느 누구도 기대수명을 보장해 주지 않음을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삶과 죽음의 힘겨루기는 계속되고 있다. 늙고 병들어 장기가 망가지고 기능이 약해지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 있어서 지나간 과거는 어떤 것일까? 누군가 참 잘 살았다.”라고 생각한다면 웰다잉(Well Dying)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후회할 것이다. 어떤 이는 내가 십년만 젊었더라면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세월타령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런 세월이 주어져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사는 사람들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을 것이다.

 

울음산 아래 가족 납골 묘역에서 지팡이 의지한채 머리가 하얕게 세고 기운이 없어 보이는 노인을 보았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천사(天使)이다. 늙음을 보여주는 하늘의 전령사이다.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하여 죽어 가는 사람을 보았다. 이는 다름 아는 죽음의 천사이다. 중병에 걸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사람을 보면 천사보듯 해야 한다. 천사는 이런 저런 모습으로 모양을 달리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기를 밥 먹을 힘만 있으면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요양병원에 가 보니 일어나 걸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중환자실에 가보니 산소호흡기를 떼 버리고 스스로 호흡만 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물며 스스로 걸어 다니고 스스로 호흡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좀더 젊었을 때, 좀더 건강할 때 하고자 하는 일을 성취해 내야 하는 것이다.

 

 

2019-12-3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