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인생의 목적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은 사람에게는 걱정이 없기를 바란다. 그래서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다면 걱정이 없어서 좋겠네.”라는 말이 있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 없기를 바란다고 해서 걱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걱정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욕망이다. 욕망으로 불선법을 제거할 수 없다.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행복해지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일까?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에서
유튜브에서 ‘5분뚝딱철학’을 보았다.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에 대한 것이다. 셀리그만에 따르면 행복한 삶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고 했다. 즐거운 삶, 좋은 삶, 의미 있는 삶을 말한다.
‘즐거운 삶’은 단지 즐기는 삶을 말한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쾌락을 즐기는 삶이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즐거움에 대한 삶이다. 그런데 즐기는 삶은 쉽게 질린다는 것이다. 매일 맛있는 것을 먹으면 식상할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색다른 맛을 찾아 간다. 식도락가 맛집을 찾아 다니는 것과 같다. 이처럼 감각을 즐기는 삶도 행복한 삶이다.
‘좋은 삶’은 착하고 건전한 삶을 말한다. 일을 한다든가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 등이다. 가정을 꾸려서 아이를 양육하는 삶도 해당된다. 좋은 삶의 특징은 몰입이다. 일이나 취미에 집중하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감각적으로 즐기는 것과는 또 다른 행복이다. 선정삼매에 드는 것도 좋은 삶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몰입을 자주할수록 오래할수록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은 봉사하는 삶을 말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장점이 있는데 이 점을 이용하여 남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 좋은 삶이 자리행이라고 본다면 의미 있는 삶은 이타행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일이든지 의미를 부여하면 거룩하고 숭고한 삶이 된다. 청소부가 거리를 청소할 때 단지 생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세상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청소한다.”라고 의미를 부여하면 가치 있는 삶이 된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즐기는 삶에 만족은 없다
행복에 대한 스펙트럼은 광범위하다. 감각을 즐기는 것도 행복이고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행복이다. 그렇다면 행복하다고 하여 모두 만족하는 것일까?
감각을 즐기는 삶을 사는 사람은 좀처럼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감각적 행복이 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포만감이 생겨나면 더 먹을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파 지는데 또 먹어야 한다. 맛에 대한 갈애가 생겨나면 맛집을 찾아 전전하게 되는데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즐기는 삶에 만족은 없다. 아무리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은 것이다. 그래서 더욱 더 감각적인 즐거움을 찾는다. 예산에 있어서 한도가 없는 사람들은 더 높여 갈 것이다. 재벌 이세나 삼세가 마약에 중독되는 이유라고 본다.
즐거운 삶이라 하여 만족스러운 삶이라 볼 수 없다. 재물에 대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하늘에서 황금비가 쏘아져도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반면 좋은 삶과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은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 어떤 대상에 몰입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면 일시적으로 번뇌에서 해방될 것이다. 정신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육체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 보다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간다. 육체적인 행복은 거치른 것이지만 정신적인 행복은 부드러운 것이다. 감각을 즐기는 것보다 정신적 희열을 즐기는 것이 훨씬 더 수승하다.
더욱 더 만족스러운 삶은 의미 있는 삶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삶이다. 누구나 타고난 장점이 있다. 장점을 살려서 주변과 이웃에 봉사하는 삶을 산다면 가장 만족스러운 삶이 된다. 육체적 즐거움에 따른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해서 불만이고, 몰입하여 얻은 희열은 오래 간다. 그러나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가길에 마음에서 일어나는 행복은 꽤 오래 지속된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일까?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지금 불행한 자는 이 괴로움이 하루빨리 끝나서 행복하기를 바란다. 지금 행복한 자는 이 행복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행복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을까?
한때 방송에서는 행복에 대하여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행복특강이라 하여 연사들이 행복에 대하여 강연했다. 스님들도 행복에 대한 법문을 했다. 즉문즉설로 유명한 스님은 전국투어를 하며 행복특강을 했다. 그러나 어느 행복전도사는 자살했다. 행복전도사의 죽음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는 행복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행복이라는 말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 자리를 힐링이라는 말이 채웠다. 이제 사람들은 힐링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행복이라는 말은 목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행복은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행복은 인간을 움직이는 심리적 메커니즘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다. 산속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두려운 마음이 들 것이다. 만약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게 될 것이다. 호랑이를 보면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살아 남기 위한 것이다. 이때 두려움은 살아 남기 위한 수단이다. 여기 맛 있는 음식이 있다. 목구멍으로 음식이 넘어 갈 때 식도락가는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행복감이 있어야 다음에 또 맛있는 음식을 찾게 된다. 이때 행복감은 음식을 먹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몰입하여 일을 할 때 느끼는 정신적 희열이나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잔잔한 행복감 역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두려움이나 행복감과 같은 심리적인 메커니즘은 인간이 어떤 행위를 만드는 동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두려움이나 행복이 목적이 될 수 없다. 행복을 위하여 맛있는 것을 먹고, 행복을 위하여 몰입하고, 행복을 위하여 봉사활동을 하지 않음을 말한다. 두려움이나 행복은 다만 동기를 유발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려움이나 행복은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해지겠다는 것은 목표가 될 수 없다. 수단이 목표가 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야 할까? 이에 대하여 5분뚝딱철학에서 김필영선생은 “인간은 그냥 사는 거에요.”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왜 꼭 행복해야 하죠?”라고 말한다. 그냥 살아도 됨을 말한다. 그냥 살다가 행복이 부수적으로 따라오면 된다는 것이다.
행복은 행복해지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데 행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행복하지 않아서 스트레스 받을 것이다.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행복해지지 않을 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다면 걱정이 없어서 좋을 것이다. 행복해지려고 노력을 해서 행복해진다면 정말 좋겠다. 그러나 욕망이 개입되어 있는 한 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고 행복해질 수 없다.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삶에는 만족이 없다. 가장 좋은 것은 욕망을 놓아 버리는 것이다. 걱정하는 마음도 놓아 버리고 행복해지려고 하는 마음도 놓아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놓아 버렸을 때 평온이 찾아올 것이다. 이 세상에 평온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괴로워하는 자는 즐거움을 원하고
즐거워하는 자는 더욱 즐거움을 원한다.
그리고 평정은 적정인 까닭에
마찬가지로 즐거움이라고 말한다.”(Vism.17.238)
2020-01-13
담마다사 이병욱
'진흙속의연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실을 수행공간으로 (0) | 2020.01.14 |
---|---|
상대방을 타자화(他者化) 하면 (0) | 2020.01.14 |
광화문을 지나면서 (0) | 2020.01.12 |
긁힌 마음 (0) | 2020.01.12 |
두려움과 전율과 감동에 빠졌을 때 (0) | 2020.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