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사무실을 수행공간으로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 14. 19:15

 

사무실을 수행공간으로

 

 

요즘 미니멀라이프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줄여서 간소하게 사는 삶일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불필요 물건을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생활방식이라고 되어 있다. 2010년 영미권에서부터 등장한 용어라고 한다. 그러나 버리기 운동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다.

 

오래 전의 일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첫번째로 들어간 회사는 일본풍이 강했다. 회사가 일본의 어느 전자부품회사와 합작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입사했을 때는 합작이 청산되어서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영향력이 남아 있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파이브에스(5S)운동이었다.

 

5S운동은 정리, 정돈 등에 대한 것으로 버리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매주 주말이 되면 청소할 때 버리기 운동을 한 것이다. 5S운동에 대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정리(整理: せいり), 정돈(整頓: せいとん), 청소(淸掃: せいそう), 청결(淸潔: せいけつ), 습관(習慣: しゅうかん)에 대한 것이다. 일본어로 단어가 모두 S로 시작되어서 5S운동이라 한 것이다. 1980년대 중후반의 일이다.

 

사무실 물건 정리를 했다. 사무실을 혼자 사용하게 됨에 따라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하게 버렸다. 작년 12월 그동안 8년동안 함께 사용했던 사람이 새로 사무실을 얻어 감에 따라 정리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버렸다

 

사무실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빈공간을 최대한 확보하여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불필요한 것을 버려야 한다.

 

사무실은 2007년 입주이래 내리 13년동안 사용해왔다. 계절이 수 없이 바뀌었다. 2007년 입주할 때 화원에서 사온 행운목은 천정에 닿았고, 동대문에서 사온 작은 대나무종류는 13년 동안 엄청나게 자라서 사람 키 보다 더 커졌다. 그때 사 온 식물들은 사무실 산 역사와 다름없다. 이렇게 십년 이상 세월이 흐르다보니 안쓰고 쌓아 둔 물건이 많았다.

 

가장 먼저 버린 것은 전자부품이다. 인쇄회로기판설계 일을 하지만 때로 조립을 해 주어야 할 때도 있다. 초창기 때는 납땜도 하는 등 종종 조립이 있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뜸해졌다. 전자부품은 언젠가는 써먹을 기회가 있을 것 같아 잘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애써 모아 놓은 백가지 가까운 전자부품을 모두 버렸다.

 

사용하지 않는 컴퓨터도 버렸다. 거의 삼사년을 주기로 컴퓨터를 바꾸었는데 그대로 두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된 노트북 컴퓨터도 과감하게 버렸다. 그러나 버려서는 안될 것이 있다. 그것은 삶의 이력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과거 회사 다닐 때 개발한 전자제품과 업무노트는 절대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개발제품과 업무노트

 

사무실 공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작은 창고와 같은 공간이 필요했다. 다행이 칸막이가 여러 개 있어서 출입문 벽쪽에 작은 공간을 확보했다. 삶의 이력서와 같은 개발제품과 업무노트를 박스에서 꺼집어 내어서 작업대 책상위에 진열해 놓았다.

 




작업대 위에는 개발제품과 업무노트로 가득하다. 개발제품은 케이블과 위성관련 셋톱박스에 대한 것이다. 회사에 입사하여 20년동안 셋톱박스를 개발했는데 삶의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한때 온 힘을 다하여 밤낮없이, 주말없이 일에 몰두한 결과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개발한 모델은 기념으로 집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 모으다 버니 20개가량 되었다. 실제로 개발한 것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업무용 노트도 모아 두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업무노트를 모으지 않는다. 그러나 업무노트는 일종의 일기와도 같은 것이다. 그날 있었던 것을 빠짐없이 기록한 것이다. 이와 같은 기록습관을 들인 것은 일본고문의 영향이 크다.

 

사원시절 사업부에 일본고문이 있었다. 고문은 노트에 실험결과를 박꼬박 기록했다. 이를 보고 따라 한 것이다. 이후 회의 내용에서부터 실험데이타에 이르기까지 기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기록했다. 다 쓴 업무노트는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 그렇게 모으다 보니 거의 100권 가까이 된다.

 




개발제품과 업무노트를 모은 것은 삶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이다. 세월은 흘러가고 남은 것이 없다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본다면 개발제품과 업무노트는 삶의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다. 남들은 그냥 흘려보내고 버릴지 몰라도 지금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는 것은 세월이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삶의 흔적을 남기고자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다. 회사 다닐 때는 엄두도 내지 못한 것이다. 오로지 집과 회사만 왕래하며 365일을 보내고, 20년을 다닌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었을 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런 글쓰기는 이전에 회사생활 할 때 업무노트를 기록하던 습관의 연장선상이라 볼 수 있다. 일일업무노트가 매일 인터넷에 쓰는 글로 바뀐 것이다.

 

무언가 남기려고 노력한다. 개발했던 제품을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고, 하루하루 기록이라 볼 수 있는 업무노트를 버리지 않고 모두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제품이나 업무노트는 개인에 대한 삶의 흔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공유가 되지 않는다. 다만 나도 한때 이렇게 살았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멋진 집을 가진 사람은 찾아오는 사람에게 집구경을 시켜 준다. 무언가 모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모은 것을 보여줄 것이다. 누군가 찾아오면 개발제품과 업무노트를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나 진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글을 쓴 것을 책으로 만든 것이다. 문구점에 의뢰하여 인쇄와 제본한 책을 말한다. 이 세상에 오로지 한권밖에 없는 책이다. 책장에 가득할 때 나는 이렇게 삶의 흔적을 남겼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무실을 수행공간으로

 

칸막이를 이용하여 사무실을 세 등분했다. 창측에 책상과 책장이 있는 공간, 출입문 쪽에 창고용으로 사용되는 공간, 그리고 중앙에 별도의 커다란 공간이 생겨난 것이다. 새로 생긴 공간은 2.9미터에 3.3미터 된다. 이를 평수로 환산하니 2.8평이다.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김도이선생으로부터 위빠사나 지도를 받을 때 늘 듣던 말이 있다. 하루에 한시간은 앉아 있으라는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한시간은 좌선해야 함을 말한다. 그러나 집에서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수행처에 들어가지 않는 한 습관들이기가 쉽지 않음을 말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사무실을 수행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한 것이다.

 




하루 일과 중에서 사무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주로 일을 하거나 글을 쓰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제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앉아 보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습관이다. 다른 말로 생활화이다. 글을 쓰는 것처럼 앉는 것도 생활화될 수 있을까?

 

 

2020-01-1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