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자신만의 방을 만들어야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 24. 09:55

 

자신만의 방을 만들어야

 

 

아침 일곱시에 일터로 향했다. 한겨울이라 밤이 길다. 컴컴할 때 집을 나선 것이다.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거나 집을 나서면 매우 상쾌하다. 남들은 잠을 자는 시간에 깨어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무엇보다 게으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다. 하루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교용어 중에 사띠(sati)가 있다. 한국전통불교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말이다. 초기불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술어중의 하나이다. 매사에 깨어 있음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새벽의 비유를 들 수 있다. 이는“수행승들이여, 태양이 떠 오를 때 그 선구이자 전조가 되는 것은 바로 새벽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 생겨날 때 그 선구이자 전조가 되는 것은 방일하지 않는 것이다.”(S45.54)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불방일하는 것이 깨달음의 전조가 되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전조가 있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조짐이 있는 것이다. 새벽은 일출의 전조와 같은 것이다. 마치 천신이 나타날 때 빛을 먼저 내는 것과 같다. 불방일, 즉 게으르지 않는 것은 성공의 전조와 같은 것이다.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서는 것 역시 성공을 약속받은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서면 기분이 상쾌하다. 남들 잠 들어 있을 때 깨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나만의 왕국을 건설했는데

 

설날 전날이다. 모든 것이 평온한 것 같다. 나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뉴스를 보면 귀성인파로 인하여 교통체증이 시작되고 있다고 전한다. 정치권 사람들은 서울역이나 용산역에서 환송 퍼포먼스를 갖는다. 그러나 공항은 항상 예외이다. 명절 때만 되면 사상최대의 인파가 공항을 빠져나가는데 공항소식은 좀처럼 보도하지 않는다. 대부분 여유 있는 사람들이 해외로 놀러 간다. 아마도 국민정서를 생각해서 보도를 자제하는 것이라고 본다. 국민정서법이 무섭긴 무서운가보다.

 

설날이라고 해서 특별한 날이 아니다. 멀리 가는 것도 아니다. 차례지내며 밥한끼 먹는 날에 지나지 않는다. 설날 당일날 모든 상황은 종료된다. 빨간 날이 세 번 있지만 당일날을 빼면 시간이 철철 남아 돈다. 이런 날 집에 있어서는 안된다. 게을러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다행히도 갈 곳이 있다. 집 가까이에 있는 사무실이다.

 

작은 임대사무실은 제2의 집과 같은 곳이다. 일하는 공간도 되지만 쉼터이기도 하다. 또한 글 쓰는 장소이기도 하다. 집에 있는 시간 보다도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하루 일과중의 대부분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주말에도 사무실로 출근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예외 없이 사무실로 가는 것이다. 그것도 일찍 간다. 동트기 전 새벽에 가는 것이다.

 

사무실은 일인사업자에게 있어서 아지트와도 같다. 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글도 쓰고 인터넷에서 유튜브도 보고 일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어쩌면 자신만의 왕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잘 꾸미려고 노력한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식물을 키우는 것이다.

 

사무실에는 이십개가량의 화분이 있다. 주로 열대식물이다. 행운목, 크루시아, 홍콩대엽야자, 뱅갈고무나무, 인도고무나무 등 갖가지 종류의 식물로 가득하다. 처음 와 본 사람들은 화원 같다고 한다. 화원에서 하나 둘 사와서 키우다 보니 사무실 가득 된 것이다.

 

사무실에는 두 가지로 가득하다. 하나는 책이고 또 하나는 식물이다. 초기경전은 모두 갖추었다. 한국에는 두 종류의 니까야 번역서가 있는데 출간된 것은 모두 갖춘 것이다. 의자를 돌리기만 책을 꺼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글쓰기 하는데 있어서 동선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이다.

 

홀로 있음에 대하여

 

최근 사무실을 다시 꾸몄다. 그동안 공유하던 사람이 다른 곳으로 가는 바람에 공간이 생겨 난 것이다.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하여 고민했다. 다시 공유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이제는 자신만의 온전한 공간을 갖고 싶었다. 이제까지 반쪽짜리 공간을 가졌다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진정한 자신만의 공간을 말한다. 그래서 칸막이를 이용하여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2.8평의 공간이 생겼다. 이를 수행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일인사업자로 살면서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일주일에서 이주일 정도는 큰 마음 내서 비울 수 있지만 한달 이상 비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것은 내려 놓고 미얀마에 가서 몇 달 수행센터에 있고 싶으나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현재 공간을 수행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수행공간이 되는 것이다. 일종의 꾸띠(kuti)라고 볼 수 있다. 본래 수행은 홀로 하는 것이다.

 

선원에 가면 커다란 명상홀이 있다. 또 선원에는 개인 꾸띠가 있다. 그런데 좌선이나 행선할 때 명상홀에서 함께 한다는 것이다. 시간표가 있어서 짝수시간은 좌선을 하고 홀수시간은 행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수행은 개별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초기경전에서는 홀로있음을 칭찬했다. 이는 곧 스승께서 홀로 멀리 떠나 계실 때에 제자들은 홀로 있음을 배웁니다. 이 한 가지로 새내기 수행승들은 칭찬받아야 합니다.”(M3)라고 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렇게 수행은 본래 홀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 배우는 단계에서 함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원에 가면 개인숙소가 주어진다. 시설이 좋은 곳이라면 목욕시설도 갖추어져 있어서 일인일실일욕실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일인실이 주어지는 것은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좌선도 하고 행선도 하고 일상사띠도 하지만 병이 날 수도 있다. 또 개인적인 고민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남이 도와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 숙소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것도 개인적인 문제를 푸는 기간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수행은 홀로 하는 것

 

니까야강독모임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 당시에는 수행승들이 모여서 함께 수행했다는 이야기가 보이지 않음을 말한다. 수행승들이 모였을 때는 부처님의 설법이 있었을 때이다. 또 포살일이나 갈마행사가 있었을 때이다. 그 외 시간은 개인처소에서 개인수행을 하거나 개인의 문제를 풀었다는 것이다. 이는 어느 저도 타당하다. 오래된 큰 절의 가람 배치를 보면 알 수 있다.

 

황룡사터를 보면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금당이라 불리우는 대웅전 뒤에 커다란 강당이 있었다는 것이다. 강당은 설법을 하고 법문을 듣는 장소이다. 강당에 모여 함께 좌선하고 함께 경행하는 공간은 아니라고 본다. 그럼에도 오늘날 선원을 보면 커다란 홀이 있어서 명상홀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선원에서도 볼 수 있고 미얀마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미얀마 명상홀은 수행공간 뿐만 아니라 대중법문하는 장소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본래 취지에 맞다고 볼 수 있다.

 

본래 수행은 개인처소에서 홀로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이것들이 나무 밑이다. 이것들이 텅 빈 집이다. 선정을 닦아라. 방일하지 말라.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라.(S43.1)라고 하여 개인수행을 강조했다. 또 초기경전에서는 존자 바라드와자는 구족계를 받은지 얼마되지 않아 홀로 떨어져서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였다.”(M7)라고 하여 홀로수행을 말했다.

 

홀로 수행에 대한 이야기는 초기경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서 저는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홀로 떨어져서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S22.64)”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홀로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옛날에는 빈집이나 오두막, 초막, 동굴 같은 곳이었으나 현대는 욕실을 갖춘 일인일실일욕실인 숙소도 있다.

 

자신만의 방을 만들어야

 

사무실은 도심속에 있다. 그러나 마치 숲에 있는 것처럼 꾸며 놓았다. 화원에서 하나 둘 사온 식물이 이십개가량 되다보니 마치 열대 숲에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별도의 공간을 수행공간을 만들었다. 집에 있는 카페트를 가져와서 깔았다. 또 식물중의 일부를 옮겨 놓았다. 또 명상관련 싱잉볼도 가져 놓았다. 인터넷으로 등잔세트도 구입했다. 나만의 작은 명상공간이 생긴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남자들은 자신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은퇴한 사람들에게 절실하게 필요로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집에 있는 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집 바깥에다 방을 하나 마련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작은 사무실을 마련하는 것이다. 마치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왕래한다면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사무실은 2007년에 마련한 것이다. 임대이긴 하지만 내 것처럼 사용하고 있다. 나만의 공간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집보다 더 편한안 곳이 사무실이다. 마치 나의 왕국처럼 갖가지 식물을 키우며 꾸며 놓았다. 여기에다 수행공간까지 갖추었으니 이제 실천할 일만 남았다.

 

나만의 공간에서 수많은 글을 썼다. 이런 공간이 없었다면 오천개 이상 글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여류작가가 남자작가에 비하여 많지 않은 것에 대하여 자신만의 공간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의 유명한 여류작가는 왜 여성작가가 이렇게 없을까?”라며 의문을 품고 조사해 보았다고 한다. 결론은 여성만의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인사업자로 살면서 나만의 공간을 확보한 것은 행운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일 크고 안정된 직장이 있어서 정년때까지 다녔다면 이런 행운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사십대 중반에 퇴출된 것이 지금 생각해 보니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

 

이제 또 하나의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작은 수행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를 꾸며만 놓는다면 멋진 집을 지어 놓고 감상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부처님 당시에 수행승들이 나무 밑이나 빈집, 동굴에서 개인수행 했듯이 활용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하루에 최소한 30분은 앉아 있어야 한다. 매일 글쓰기 하는 것처럼 습관을 들여야 한다.

 

개인수행공간이 확보되어 있다면 사실상 선원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반드시 커다란 명상홀에서 좌선이나 행선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다. 일상에 늘 깨어 있는 것이 진정한 수행이다. 집에서도 할 수 있지만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현대인들에게는 자신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2020-01-2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