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은 성(城)을 쌓지 않는다
노마드, 유목민 또는 방랑자라는 뜻이다. 2006년도의 일이다. 그때 당시 작은 벤처회사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젊은 사장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다. 어느날 그는 “우리는 디지털유목민입니다.”라고 말 했다.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세계시장을 무대로 첨단상품을 수출하려 했기 때문에 한 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필드테스트 해야만 하는데 이는 노트북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노트북 한대 들고 세계시장을 누비는 것에 대하여 ‘디지털유목민’이라고 한 것이다.
요즘 노마드(nomad)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인사동에는 노마드라는 이름을 가진 음식점도 있다. 유목민 또는 방랑자를 뜻하는 이 말이 왜 유행하는 것일까? 인터넷사전에 따르면 21세기 디지털문명과 관련이 있다.
정보통신과 인터넷시대에 네트워크만 깔려 있으면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같은 정보기기를 잘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이는 정보가 일방적으로 흐른 과거와는 다른 것이다.
산업화시대 때는 모든 것이 획일적이었다. 국가에서 통제하고 주도하는 단일체제 또는 절대체제를 말한다. 이를 모나드(monad)라 한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마치 유목민처럼, 방랑자처럼 정보의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시대가 되었다.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대, 기존 질서의 성벽을 타고 넘어버리는 디지털유목민 시대가 된 것이다.
최근 유튜브에서 ‘인문학노마드’채널을 줄겨보고 있다. 채널 소유자의 필명은 ‘노마드’이다. 주로 초원의 유목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농경민이 아닌 유목민의 입장에서 역사를 다루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어제는 해킹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유튜브채널이 해킹당했다는 것이다. 메일이 와서 급한 마음에 눌렀더니 주인이 바뀌어 버렸음을 말했다. 자신이 구축해 놓은 하나의 성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해커가 약점을 잡아 공략한 것이라고 했다. 공성하는데 있어서 헛점을 공략하는 것과 같다. 마치 보이스피싱 당하듯이 메일을 열어 본 것이 화근이었다는 것이다. 당장 조치하지 않으면 성을 빼앗길 것 같아서 다급한 마음에 눌렀는데 그결과 성을 통째로 빼앗기고 말았다는 것이다.
유목민은 성을 쌓지 않는다. 농경민이 성을 쌓는다. 왜 성을 쌓는가? 지키기 위해 성을 쌓는다. 한곳에 정착해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견고한 성을 쌓는다. 재산이 많을수록 담장은 더욱더 높아져 간다.
최고권력자의 성은 거대하다. 역사적으로 만리장성만한 성은 없다. 유목민족으로부터 농경민족을 지키기 위해 쌓은 것이다. 그러나 성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유목민이 성을 타고 넘어온 것이다. 성밖의 사람들을 타자화(他者化)하여 내편과 네편으로 갈랐을 때 성밖의 사람들은 악마화 된다. 악마화된 유목민이 성을 타고 넘어왔을 때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도자기는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성은 함락되기 위해 있는지 모른다. 타자를 악마화하여 성을 쌓았을 때 타자는 반드시 타고 넘어온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담을 쌓지 않으면 타고 넘어올 일도 없을 것이다. 유목민의 삶이 그렇다.
유목민들은 이동하며 살아간다. 유목민에게는 담이 없다. 유목민들에게 성이 있을 수 없다. 오늘날 노마드라 하는 것은 경계가 허물어진 것을 말한다. 성 쌓기를 하지 않음을 말한다. 초원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듯이, 현대판 유목민들은 사이버세상에서 국가나 권력자에게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 집을 지어 놓고 살고 있다. 블로그는 일종의 홈페이지 같은 것이다. 집에는 재산이 가득하다. 십여년동안 쓴 글이 수천개 있다. 모두 공개하고 있다. 마음껏 퍼가도록 해 놓았다. 담마(Dhamma)에 대한 저작권은 부처님에게 있기 때문에 경전을 인용한 글에 대하여 소유권을 주장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블로그에는 담이 없다. 물론 사이버상에도 담을 쌓아 놓은 곳도 있다. 이를 사이버 농경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와 남을 가르는 성 쌓기를 하지 않았다. 디지털시대에 모든 정보는 오픈되고 공유된다. 어쩌면 블로그는 디지털유목민이라고 볼 수 있다. 유목민은 성을 쌓지 않는다. 담마를 따르는 사람은 자신만의 견고한 성을 쌓지 않는다.
2020-01-2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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