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렇군요." 겸청(兼聽)의 리더십
처세학책을 많이 보지는 않았다. 아주 오래전에 몇 권 보았다. 내용은 거의 기억에 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체험한 것은 구구절절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네, 그렇군요.”화법이다. 일종의 긍정화법이다.
대화를 할 때 맞장구 쳐 주면 분위가 살아난다. “응, 그래서?”라든가, “그래서 어땠는데?”라고 응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상대방은 신이 나서 대화에 몰입할 것이다. 말을 하면 정보가 줄줄 새나간다. 그러나 말을 잘 들어주면 힘들이지 않고 상대방으로부터 정보를 술술 빼낼 수 있다.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술술 불게하는 것이 남는 장사라고 말한다.
대화하는 것도 기술이라고 한다. 요즘은 유튜브에서도 대화기술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공통적으로 잘 경청하는 것을 강조한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대화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대화를 잘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침묵도 일종의 대화라고 했다. 사람들은 침묵에 대하여 어색해하지만 말이 잠시 끊어진 것도 대화로 보는 것이다. 눈으로 말하기도 한다. 눈빛만 보아도 아는 것이다.
종종 TV에서 토론하는 장면을 본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해서 말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전문분야가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는 자신이 프로페셔널이다. 밤새도록 말 할 자신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한 것이다. 그럴경우 경청하는 것이 낫다. 전문가한테 들음으로서 몰랐던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요즘 유튜브는 지식의 보고와 같다. 편안한 자세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 되기 때문이다.
지식을 나열하는 사람이 있다. 책에 있는 것을 말 하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검색만 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면 그럴듯한 강연이 된다. 그러나 자신의 소박한 체험을 말하는 것만 못하다. 어느 강연이든지 체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는 가슴을 울린다. 최악의 강연자는 준비된 자료를 줄줄 읽는 사람이다. 단지 지식을 나열하는 것에는 아무런 감동이 없다.
대화를 독점하는 사람이 있다. 주로 술자리에서 볼 수 있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마치 무용담처럼 말 하는 것이다. 대개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자신만만해 하는 것이다. 왕년을 회상하며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 하는 것 같다. 대화를 독점하면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술자리에서 술을 못하는 사람이 대화에서 마저 소외되었을 때 “내가 왜 이 자리에 있어야 할까?”라며 어서 끝나기 만을 바랄 것이다. 이럴 경우 현명한 리더가 있다면 골고루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참가자로 하여금 대화에 끼게 하여서 자존감을 높여 주는 것이다.
현명한 리더는 잘 경청하는 사람이다. 어리석은 리더는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다. 잘 듣다 보면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할 수 있다. 대화를 독점하면 아이디어도 차단된다. 유연한 조직이 될 것인지 경직된 조직이 될 것인지는 리더에게 달려 있다. 리더를 잘 뽑아야 하는 이유라고 본다.
변화는 항상 외부에서 시작된다. 외부는 주변이라고 말 할 수 있고 변방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중앙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중앙에서는 기득권을 지켜 내려 하기 때문이다. 변방에서 외곽을 때릴 때 비로서 변화의 움직임을 감지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변화의 조짐은 먼 곳, 변방에서부터 시작된다. 불만이나 불만족하게 되면 불평하게 되는데 이도 변화를 요구하는 조짐으로 받아 들어야한다. 그럴때 중앙기득권층에서는 두 가지 대응이 목격된다. 하나는 변화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묵살하는 것이다.
변화를 수용하면 크게 발전할 수 있다.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기 때문이다. 유능하고 현명한 지도자는 변화를 수용한다. 그러나 대부분 기득권자들은 변화를 불온시한다. 심지어 반대하는 사람을 집어 내고 변화를 요구하는 세력을 탄압한다. 기득권자들은 지금 이대로가 좋기 때문이다.
변화를 수용하면 유연한 조직이고 변화를 불온시하면 경직된 조직이다. 노자 도덕경을 보면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했다. 물처럼 유연한 조직은 살아 있다. 반면 막대기처럼 경직된 조직은 죽어 있다. 조직이 활력을 잃었을 때 죽은 목숨과 다를 바 없다.
최근 유튜브에서 ‘정치합시다’를 보았다. KBS에서 만든 것이다. 유시민은 영남고립에 대하여 역사적 사실을 들어 설명했다. 1990년 3당이 합당한 이후 호남은 고립되었다. 선거만 하면 ‘섬’이 되는 것이다. 이에 공포를 느낀 호남사람들은 탈호남을 추구하게 된다. 호남출신이 아닌 영남출신 대통령후보자를 전략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그결과 영남을 제외한 전지역에서 진보벨트를 형성했다. 탈호남화가 성공한 것이다. 반면 영남후보만 낸 영남에서는 이제 섬이 되었다. 왜 영남이 보수의 섬이 되었을까?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이다. 영남에만 머물고 외연확장을 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출신의 대통령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이다. 무엇보다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것이다. 기득권에 안주하다 섬이 된 것이다.
변화는 변방으로부터 시작된다. 변화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면 발전된다. 그런데 모든 변화는 소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깨어 있는 소수가 역사를 움직인 것이다. 소수가 다수가 되었을 때 역사는 발전하게 된다. 더 발전하려면 다수에서 소수가 나와야 한다. 이렇게 소수가 다수가 되고, 다수에서 또 소수가 나와 다수가 된다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계속 전진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역량있는 리더를 필요로 한다. 리더에게는 여러 덕목이 있지만 그 중의 하나가 겸청(兼聽)이다. 리더는 겸손과 배려로 겸청해야 된다는 것이다. 소수의 의견이라도 “네, 그렇군요.”라며 겸청하는 것이다.
2020-01-2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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