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시대에 세 가지 자제하는 삶
지난 백년동안 한국은 연평균기온이 1.7도 높아졌다고 한다. 이는 전지구적 현상이다. 현재와 같은 속도라면 2030년에서 2052년 사이에 1.5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2100년이 되면 3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현재 지구는 산업화 시기와 비교하여 1.5도 높아져 있는 상태이다. 환경론자들은여기서 멈추자고 말한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1.5도 이상 상승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이라는 환경서적도 있다. 앞으로 임계점은 10년 남았다고 한다.
임계점이 10년 남았다는데
숫자적으로 1.5도는 큰 위기로 다가오지 않는다. 앞으로 10년 후에 15도가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면 위기를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1.5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1도 차이가 엄청나게 큰 변화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1도 차이는 크다. 여름 무더위철에 1도 차이로 열대야인지 아닌지 구별된다. 여름에 에어컨을 1도만 낮추면 시원하고, 겨울에 보일러를 1도만 높여도 온기가 다르다. 하물며 1.5도가 더 높아진다면 체감하는 온도는 그 이상일 것이다.
환경론자들은 지구온도를 1.5도를 유지하자고 호소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산업화 이전 시기의 기후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 보다 1.5도를 낮추어야 한다. 그러나 한번 성장엔진이 가동되기 시작하면 멈출 줄 모른다. 산업화시기부터 경제성장이 시작되어 가면 갈수록 가파르게 상승했다. 최근 수십년동안은 지수함수적으로 성장했는데 그래프를 보면 곧추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체 언제까지 성장할 것인가?
주식시장에서는 상승과 하락을 거듭한다. 그런데 한번 상승하기 시작하면 상승 탄력을 받아 계속 상승한다는 것이다. 도중에 하락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상승을 유지하는데 이를 ‘대세상승기’라고 한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종목이 있다.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고 또한 미래 가치가 있는 기업이 그렇다. 그래프를 보면 지수함수적인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미래 가치가 없으면 폭락하게 된다. 설령 중간에 호재가 있어도 하락을 멈추지 못한다. 대세하락기에 접어 든 것이다. 그래프를 보면 급격하게 상승했다가 고점에서 시세분출한 다음 급격하게 하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세계경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산업화시기 이후 세계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마치 빅뱅이 일어난 것 같다. 그러나 영원히 성장할 수 없다. 주식도 천정을 치면 하락하듯이, 세계경제도 한계에 이르면 성장을 멈추게 될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아마도 2030년에서 2050년이 될 것이다. 그 시기는 지구온도가 현재보다 1.5도 상승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그 이후는? 아마도 내리막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구온난화가 되면
지구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천재지변 등 재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기후온난화로 인하여 해수면이 높아지면 해안도시는 물에 잠길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이름모를 괴질이 발생할 수 있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보다 더한 역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되면 성장을 멈추게 될 것이다. 이미 조짐은 있다. 현재 세계경제가 불과 일이프로에 지나지 않는 저성장시대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주식시장에서 시세분출한 주식이 정점을 찍은 것 같다. 그 다음은 불을 보듯 뻔하다. 내리막길이기 때문이다.
세계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 그것도 가파르게 내려 갈 때 온갖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자원이 고갈되어 감에 따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는 태평양전쟁이 잘 말해준다. 일본이 석유와 같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전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미래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미래 마이너스성장시대에는 생존하기 위해 전쟁을 할지 모른다. 힘이 센 나라는 힘이 약한 나라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으려 할 것이다. 마치 세렝게티초원에서 보는 것처럼 약육강식의 시대가 도래할지 모른다.
굶주리면 담을 넘는다는 말이 있다. 인구는 많고 먹을 것이 없다면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약육강식의 시대가 될 수 있다. 더구나 윤리가 실종되어 도덕적으로 타락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시대가 될 것이다. 지구온도 상승에 따른 지구온난화가 미래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세 가지를 자제하자고
환경론자들은 지구온도를 낮추자고 호소한다. 최소한 현상유지는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구온도를 2030년까지 현상유지하려면 이산화탄소의 배출양을 최소 45%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론자들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지구온난화를 저지하고자 한다. 이런 노력이 마치 “여러분, 여러분, 지구의 종말이 옵니다.”라고 외치는 것 같다. 지구의 종말이 올지 모르니 자제하는 삶을 살자는 것이다. 타는 것도, 먹는 것도 자제하자는 것이다.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떻게 자제해야 할까? 기후위기를 알리는 서적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에 따르면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사지 않고, 먹지 않고, 입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일상에 대한 것이다.
사지 않는다는 것은 플라스틱으로 된 제품을 사지 않음을 말한다. 온실가스를 내뿜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플라스틱 천지라는 사실이다. 비닐에서부터 온갖 생필품들이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다. 이런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 제품을 사지 않는다면 관련 기업은 ‘폭망’할 것이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플라스틱 제품 사용하지 않기를 실천하자는 것이다. 장에 갈 때 장바구니를 사용한다든지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는 것 등을 말한다. 재활용 제품을 사용하면 지구온난화방지에 기여할 것이다.
먹지 않는다는 것은 고기를 먹지 말자는 것이다. 환경론자들에 따르면 소고기 1키로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250킬로미터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또 1인분의 비프스테이크는 채식식사와 비교하여 화석연료가 16배나 든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함부로 고기를 먹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식탁에서는 고기가 빠지지 않는다. 점심때 수백명이 식사하는 카페테리아에 가면 반드시 고기가 있다. 식당주인에게 물어보니 고기가 없으면 손님이 불평한다는 것이다. 고기가 없으면 손님이 오지 않기 때문에 매일 고기를 올려 놓는다고 했다.
입지 않는다는 것은 화학섬유로 된 옷을 입지말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옷이 폴리에스테르라는 화학소재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패스트패션(fast fashion) 브랜드’를 입지 말자는 것이다. 유행을 타며 한철 입고 버리는 옷을 말한다. 가격이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빠르게 기획하여 생산하여 유통시키는 기획상품을 말한다. 구체적인 예로 유니클로를 들 수 있다. 옷을 한번 사면 오래 입어야 한다. 떨어지면 기워 입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옷을 오래오래 입으면 입을수록 지구온난화 방지에 기여하게 된다.
종말의 전조가 있는데
환경론자들의 주장을 보면 마치 종말론을 대하는 것 같다. 그런데 종말론은 옛날에도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어느 시대나 종말론이 있었다. 흑사병이 돌 때도 종말론이 있었다. 그런데 종말론은 종교의 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이든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기독교에서는 창조론을 이야기한다. 동시에 종말론도 이야기한다. 시작이 있으니 끝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불교에서도 종말론과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불교에서는 생노병사를 말한다. 마음은 생주이멸한다고 말한다. 우주는 성주괴공한다고 말한다. 모두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다. 우주도 마찬가지로 시작과 끝이 있는데, 이를 성주괴공한다고 말한다.
우주의 종말론은 괴겁기라고 볼 수 있다. 괴겁기가 있다면 성겁기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불교에서는 한겁을 주기로 하여 우주가 성주괴공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괴겁기가 되면 하늘에 전조가 나타난다고 했다. 하늘에 태양이 여러 개 뜨는 것이다.
우주 괴겁기가 되면
앙굿따라니까야에 ‘일곱 개의 태양의 경’(A7.66)이 있다. 우주의 종말을 알리는 경이라고 볼 수 있다. 경에 따르면 처음에는 두 개의 태양이 뜬다. 그에 따라 대지는 점점 뜨거워진다. 작은 못은 고갈되고 작은 강은 마르게 된다. 세 번째 태양이 뜨면 더 뜨거워진다. 큰 강이 말라서 고갈되어 존재하지 않게 된다. 네 번째 태양이 뜨면 발원지가 마르게 된다. 다섯 번째 태양이 뜨면 바다의 물이 마른다. 여섯 번째 태양이 뜨면 대지는 불타기 시작한다. 마침내 일곱 번째 태양이 뜨면 모든 것을 남김없이 태워버린다. 경에 따르면 불에 타서 연소되면 “결코 재나 검댕이를 남기지 않는다.”(A7.66)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버터나 참기름이 타면 연소되어 검댕이 하나 남기지 않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하늘에 일곱 개의 태양이 떠서 우주가 파괴되면 검댕이 하나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 지옥에서부터 파괴되기 시작하여 차례로 축생계, 아귀계, 아수라계, 인간계, 욕계천상계까지 파괴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색계초선천까지 파괴되기 때문이다. 공겁기가 되면 지옥에서부터 색계초선천까지 텅텅비어 있게 된다. 비어 있다라기 보다는 형성되어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성겁기가 되면 색계초선천부터 생겨난다. 색계2선천에 있던 천신이 수명이 다하여 바로 아래 세상으로 떨어진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욕계육욕천, 인간, 아수라, 축생, 지옥 순으로 세계가 생겨난다. 괴겁기와 비교하여 역순인 것을 알 수 있다. 마침내 지옥문이 열렸을 때 성겁기는 완성된다. 현재 우리는 주겁기에 살고 있다.
우주는 일겁을 주기로 형성과 파괴를 반복한다. 그렇다면 왜 우주는 파괴될까? 창조주가 파괴하는 것일까? 창조주가 만들었다면 파괴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창조조를 인정하지 않는다. 각자 지은 업에 따라 그 업에 적합한 세계에 형성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성겁기가 되면 색계 초선천에서부터 지옥이 생겨난다.
세장엄(世莊嚴)의 출현
괴겁기가 되면 가장 안전한 곳은 색계 2선천이다. 색계 초선천의 수명이 일겁이기 때문이다. 불에 의한 우주의 파괴는 일겁단위이다. 그래서 색계 초선천까지 검댕이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파괴된다. 그렇다면 색계 2선천 이상에 태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애를 닦아야 한다. 자애를 닦으면 색계 2선천 이상에서 태어나서 괴겁기를 면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천신들은 알고 있었다. 괴겁기가 시작되면 가뭄이 들어 비가 오지 않아 대지가 뜨거워지고 물이 마르게 된다. 천재지변이 생긴 것이다.그때 하늘에서 천신이 나타난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로까뷰하(lokabyūha)라는 천신이다. 한역으로는 세상을 장엄한다고 하여 세장엄(世莊嚴)이라고 한다. 세장엄이 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장엄은 욕계천신을 말한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세장엄은 “상투를 풀고 머리카락을 산발하고 우는 얼굴로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물든 옷을 입고 아주 보기 흉한 모습으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걸으면서”(Vism.13.34) 세상사람들에게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세상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을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메시지다.
“벗들이여, 지금으로부터 10만년이 지난 뒤에 겁이 멸진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은 멸망할 것이고, 광대한 바다도 말라 버릴 것입니다. 이 대지도 수미산 산왕도 불타고 멸망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멸망할 것입니다. 자애를 닦으십시오. 벗들이여, 자애를 닦으십시오. 연민, 기쁨, 평정을 닦으십시오. 어머니를 섬기고, 아버지를 섬기십시오. 집안의 어른을 공경하십시오.”(Vism.13.34)
세장엄은 자애를 닦으라고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10만년이 지나면 괴겁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말이다.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서로서로 사랑의 마음을 내라는 것이다. 자애뿐만 아니라 연민, 기쁨, 평정을 닦으라고 했다. 사무량심을 닦으라는 것이다. 사무량심을 닦아야 색계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색계 2선천 이상은 되어야 세상이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론자들의 호소
세장엄의 호소를 보면 오늘날 환경론자들이 기후변화를 알리는 것 같다. 환경론자들은 앞으로 10년후가 되면 1.5도 상승이 되어 재난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변화로 인하여 농작물 피해는 물론 질병이 확산되면서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연대체를 만들어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사스와 메르스 때도 그랬다. 이렇게 역병이 발생할 때 마다 사람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떤다. 마치 지구에 종말이 올것처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조짐은 이미 파악 되었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이름 모를 괴질이 생겨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환경론자의 호소를 듣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눈물로 호소해도 남의 일처럼 본다면 재난의 길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장엄은 머리를 산발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눈물로 호소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대지가 뜨거워져서 역병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민심이 흉흉해져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약육강식의 시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자애를 닦으라고 했을 것이다.
환경론자가 1.5도를 유지하자는 것도 약육강식의 짐승의 시대를 막자고 한 것인지 모른다. 이대로 내버려 두며 미래는 불을 보듯 미래는 대혼란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론자의 외침이 눈물의 호소처럼 보이는데 나만 그런 것일까?
우주가 다시 열릴 때
세장엄의 호소는 먹혀 들어간 것일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과 대지에 거주하는 천신들은 외경이 생겨나 서로 유연한 마음으로 자애 등의 공덕을 행하고 천상계에 태어난다.”(Vism.13.35)라고 했다. 그러나 천상도 천상 나름이다. 색계천상에 태어나면 괴겁기를 피할 수 있지만 욕계천상에 태어나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욕계천상에 태어나더라도 선정을 닦아서 색계에 태어나고자 한 것이다.
세장엄의 호소가 있은 다음에 하늘에는 태양이 하나 더 떠서 두 개가 되었다. 이후부터 괴겁기가 시작되어서 우주는 모두 타버린다. 검댕이 하나 남기지 않고 타버린다고 했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어느 정도 타당하다. 지구가 영원할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태양은 점차 팽창될 것이다. 태양이 커졌을 때 지구는 불덩어리가 될 것이다. 경에서처럼 버터가 연소되면 검댕이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지듯이 지구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은 세상이 멸망하는 전조라고 볼 수 있다. 먼저 비가 오지 않아 극심한 가뭄이 든다. 농작물은 타버리고 강은 말라 버린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살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다 괴질로 인한 역병이 돌게 되면 여기저기서 사람이 죽어 나갈 것이다. 서로 살기 위하여 서로를 죽이는 세상이 될 것이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약육강식의 짐승의 시대가 되었을 때 세장엄이 나타나서 눈물로서 자애를 닦으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한번 괴겁기가 시작되면 가차없이 진행된다. 마침내 모두 다 타버렸을 때 세상은 텅비게 된다. 공겁기가 된 것이다.
우주는 성주괴공한다고 했다. 공겁기가 한동안 계속되다 어느 시기에 성겁기가 시작된다. 우주가 다시 열리는 것이다. 그런데 경에서는 우주가 열리는 것에 대하여 “수행승들이여, 우주가 파괴될 때에는 그는 빛이 흐르는 신들의 하느님의 세계에 있었다. 우주가 생성될 때에는 텅 빈 하느님의 궁전에 태어났다.”(A7.66)라고 했다.
여기서 ‘빛이 흐르는 신들의 하느님의 세계’는 수명이 8겁인 극광천(abhassara)를 말한다. 또 ‘텅 빈 하느님의 궁전’은 수명이 1겁인 색계초선천, 즉 대범천(mahabrahma)을 말한다.
대범천에 한 존재가 태어났다. 그는 괴겁기가 시작 되기 전에 자애수행을 한 중생이었다. 자애를 닦아 극광천에 태어났는데 수명이 8겁이기 때문에 “칠년간 자애의 마음을 닦고 나서 일곱 파괴의 겁과 생성의 겁 기간 동안 이 세계에 돌아오지 않았다.”(A7.66)라고 했다.
그는 자애를 닦아 극광천에 태어나 8겁을 살았는데 우주가 일곱 번 성주괴공한 것이다. 그는 복과 수명이 다했다. 그는 죽어서 어느 세계에 태어났는데 그곳이 ‘텅 빈 하느님의 궁전’이라고 했다. 태어나 보니 오로지 자신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천상에서 태어남이란 화생을 말한다. 마치 마치 잠에서 깨어나 눈을 번쩍 뜨는 것처럼 죽자마자 즉각적으로 태어남을 말한다.
홀로 태어난 존재는 텅 빈 세계에서 심심했을 것이다. 그래서 경에 따르면 “다른 뭇삶이라도 이곳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D1.39)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새로운 존재들이 하나 둘 그곳에 화생하기 시작했다. 먼저 온 존재는 나중에 온 존재에게 창조주로 불리웠다.
먼저 온 존재는 자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었다. 눈을 번쩍 떠 보니 새로운 세상에 오게 됨을 알았는데 자신이 세상을 창조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더구나 뒤이어 화생한 존재들을 보고서 자신이 창조한 것이라고 믿었다. 이는 “다른 뭇삶이라도 이곳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독백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나중에 온 존재들은 먼저 온 존재에게 창조주이자 하느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중에 온 자는 먼저 온 자에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이 존귀한 존자는 하느님, 위대한 하느님, 정복자, 정복되지 않는 자,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주재자, 작자, 창조주, 최상자, 조물주, 전능자,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다. 우리는 이 존귀한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우리는 여기 먼저 태어난 자를 보았고 우리는 나중에 태어났기 때문이다.”(D1.39)
성겁기가 되면서 우주가 열리기 시작했을 때 최초로 색계초선천이 형성되었다. 색계초선천에 대범천이 있는데 수명이 1겁이다. 최초로 온 자는 수명이 8겁인 극광천에서 수명이 다하여 1겁의 수명을 가진 존재로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온 존재들에 의하여 하느님이라고 불리워졌다. 또 창조주라고 불리워졌다. 윤회를 하다 공덕이 다하여 더 낮은 세계에 태어났음에도 창조주라고 불리운 것이다.
그는 창조주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하느님, 위대한 하느님, 정복자, 정복되지 않는 자,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주재자, 작자, 창조주, 최상자, 조물주, 전능자,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D1.39)라고 불렀다. 이렇게 하여 세상이 시작되었다. 성겁기가 된 것이다.
이후 공덕과 수명이 다하면 아래 세상이 열리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욕계육욕천이 열리고, 인간세계가 열리고, 이어서 아수라, 축생, 지옥이 열렸다. 지옥이 열림으로 인하여 성겁기가 끝나고 주겁기에 들어간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관이다.
세계가 파괴되는 이유
불교의 우주관을 보면 성주괴공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생노병사와 생주이멸과 같은 개념으로 한번 형성된 것은 가만 있지 않고 변화함을 말한다. 그래서 “일체의 형성된 것은 무상하다. (Sabbe saṅkhārā aniccā)”(Dhp.277)라 하여 제행무상이라고 한다.
어느 것 하나 무상한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열반을 제외하고 모두 무상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겁화가 일어날까? 겁화가 일어나서 모든 것을 태워 버릴까?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세계의 파괴 원인에 대하여 악하고 불건전 한 것들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말한다.
청정도론에서는 악하고 불건전한 뿌리가 치성할 때 세계가 파괴된다고 했다. 그래서 “탐욕이 치성할 때는 불로 파괴된다. 성냄이 치성할 때는 물로 파괴된다. 어리석음이 치성할 때는 바람으로 파괴된다.”(Vism.13.64)라고 했다. 불로 파괴될 때는 색계초선천까지 파괴되고, 물로 파괴될 때는 색계2선천, 그리고 바람으로 파괴될 때는 색계 3선천까지 파괴된다. 여기서 불은 탐욕, 물은 성냄, 바람은 어리석음을 상징한다.
가장 안전한 곳은 색계 4선천이다. 정거천이 있는 곳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여 성자의 흐름에 들어 갔을 때 우주의 파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돌아오지 않는자, 즉 아나함이 되면 정거천에 태어나 수명대로 살다가 완전한 열반에 드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이 세계를 떠날 수 있을까?
일곱 개의 태양의 경에서 부처님이 강조한 것이 있다. 태양이 하나 씩 하늘에 떠 오를 때 마다 공통적으로 “수행승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고, 수행승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견고하지 않고, 수행승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불안정하다. 수행승들이여, 그러한 한, 일체의 형성된 것들에서 싫어하여 떠나야 하며, 사라져야 하며, 해탈해야 한다.”(A7.66)라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다시 태어나지 않아야 함을 말한다. 가르침을 실천하여 도와 과를 이루어 완전한 열반에 들면 윤회하지 않게 되어 다시는 성주괴공의 세계에 태어나지 않음을 말한다.
세장엄은 자애를 닦아 색계에 태어나라고 했다. 그러나 색계도 안전하지 않다. 색계 3선천까지 파괴 되기 때문이다. 가장 안전한 곳은 색계 4선천과 무색계천이다. 그러나 공덕과 수명이 다하면 또 다시 윤회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형성된 것에서 싫어하여 떠나라고 했다.
어떻게 해야 이 세계를 완전히 떠날 수 있을까?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고귀한 계행을 깨우쳐서 꿰뚫고, 고귀한 삼매를 깨우쳐서 꿰뚫고, 고귀한 지혜를 깨우쳐서 꿰뚫고, 고귀한 해탈을 깨우쳐서 꿰뚫으면, 존재의 갈애를 끊고 존재의 통로를 끊고,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A7.66)라고 했다.
버리고 멈추는 삶
환경론자들은 지구온난화를 걱정한다. 이대로 가면 지구가 뜨거워져서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환경이 오염되든 말든 자연을 마구 파 헤친다. 자원이 고갈되든 말든 성장을 향하여 질주한다. 나의 일로 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당장 닥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나와 무관한 것으로 본다.
이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산업화시기 이후 성장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무한정 성장할 수 없다. 언젠가 성장엔진은 멈추고 말 것이다. 그것도 인간의 모순 때문에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인간의 탐욕에 기인한다. 오늘날 이렇게 물질문명이 발달된 것도 인간의 탐욕과 편리함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후문제는 오로지 성장만을 추구하는 서양의 가치관도 한몫 했을 것이다. 자연을 정복하고 번식하라는 명령에 따른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계에 부딪쳤다. 인간의 탐욕과 교만이 극에 달했을 때 자연의 역습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멈추고 되돌아보아야 한다. 조금 불편하게 살 필요가 있고 조금 가난하게 살 필요가 있다. 소욕지족의 삶이다.
기후문제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해야 한다. 기존의 성장위주의 패퍼다임으로는 인류가 공멸에 처할 것이다. 자연을 정복하고 성장을 제일로 여기는 패러다임을 이제는 그만 둘 때가 되었다. 그대신 소욕지족의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또 미니멀라이프도 요구된다. 축적하고 쌓기 보다는 버리고 없애는 삶이다. 물질문명을 추구하는 것보다 정신문명을 추구해야 한다. 지금 당장 멈추고 앉아 있어야 한다. 눈을 감고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부처님 가르침에 해법이 있다.
2020-02-0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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