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진실로 새로운 하루가 되기를

담마다사 이병욱 2020. 2. 12. 11:36

 

진실로 새로운 하루가 되기를

 

 

매일 새벽 눈을 뜬다. 다시 잠을 자려 하지 않는다. 다시 자면 꿈자리만 뒤숭숭하다. 저 의식 밑바닥에 있는 것들이 올라오는 것 같다. 회피하고 싶은 것들이다. 더 자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다. 안락에 대한 욕심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 잠 잘 때는 송장처럼 뒤척이지 말고 자라고 했다. 일어날 때는 알아차림 하면서 일어나라고 했다. 이렇게 하면 꿈을 꾸지 않을 것이다.

 

변함없는 일상이다. 종종 파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전화가 걸려 왔을 때이다. 대개 굿뉴스이다. 때로 힘든 전화도 있다. 사랑하지 않은 것과의 만남이라 해야 할 것이다. 관계를 맺고 살다보면 필연적으로 엮이는 것이다. 이를 한자어로 원증회고(怨憎會苦)라 한다.

 

팔고중에 애별리고(愛別離苦)가 있다. 사랑하는 것과 헤어짐에 따른 괴로움을 말한다. 살다보면 애별리고보다는 원증회고가 더 괴로운 것 같다. 사랑하지 않은 것과의 만남이 더 오래 가기 때문이다. 그것도 평생간다면.

 

친구가 찾아왔다. 좀처럼 드문 일이다. 밖에서 집단으로 만나는 경우는 있으나 사무실로 찾아오는 것은 흔치 않다. 백수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백수과로사라는 말이 있다. 퇴직한지 칠팔개월 되었는데 바쁘게 산다고 한다. 가장 신경쓰는 것이 건강이라고 했다. 핼스장을 열심히 다니는 것이 주요한 하루 일과라고 했다.

 

친구가 찾아오는 것도 파란이다. 점심을 함께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살아온 배경이 달라서일까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주로 취미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는 신나기 마련이다. 말을 잘 들어주는 것도 대화를 잘 하는 것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이 있다. 친구가 와서 사진 하나 찍어 달라고 했다. 좌선하는 장면이다. 좌선하는 모습은 혼자 찍을 수 없다. 사진을 찍어 학교친구 카톡방에 올렸다. 명상과 관련된 글도 올렸다. 한 두 명이 반응을 보였다. 나머지는 침묵모드이다. 표현을 잘 하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마치 꼭꼭 숨어 사는 것 같다. 모두 자신만의 세계가 있을 것이다. 자신이 구축한 세계에서 살아간다. 자신만의 성이라고도 볼 수 있고, 자신만의 왕국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마치 껍질속에 갇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으면 더 큰 세상을 볼 수 없다. 우물 바깥 세상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깨야 한다. 그러나 껍질을 깨기가 쉽지 않다. 병아리가 부화하듯이, 자신이 구축한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다. 그러나 하루하루를 새롭게 살고자 한다. 같은 일상이지만 변화를 주고자 한다. 이제까지 글쓰기로 새로움을 찾았지만 최근에는 하나 더 추가되었다. 명상하는 것이다. 앉을 자리를 마련해 놓으니 자주 앉게 된다. 예전에 볼 수 없던 커다란 변화이다.

 

앉아만 있다가 경행을 해 보았다. 카페트 이쪽에서 저쪽까지 십이보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배운대로 발 뒤꿈치를 올린 상태에서 들어서 수평으로 한다음 내 딛었다. 발을 바닥에 디딜때는 발을 수평으로 해서 닿게 한다. 이렇게 왼발 오른발 하며 한발한발 움직이니 집중이 되었다. 새로운 발견이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집중이 된다. 경행도 그렇다. 발을 옮길 때는 먼저 옮기려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의도 없이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임이 빠르면 의도를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래서 달리기나 운전할 때는 알아차림 하지 말고 하는 일에 집중하라고 한다. 천천히 움직일 때 알아차릴 수 있다. 발을 옮기려는 의도 역시 알아차림의 대상이다. 이후 전개되는 과정을 잘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동작을 느리게 해야 한다. 슬로우모션으로 걸어야 한다.

 

무엇이든지 반복하면 숙달된다. 경행을 반복하다 보면 집중된다. 마치 남이 걷는 것처럼 느껴지면 집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시간도 금방 지나간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의미하게 움직여야 한다. 일없이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오로지 움직이는 행위와 이를 알아차림 하는 마음만 있게 된다. 자연스럽게 번뇌가 사라진다. 그래서 경행하는 것을 걷는 수행(步修行) 또는 행선(行禪)이라 했을 것이다.

 

일신일일신우일신(日新日日新又日新 )이라는 말이 있다. 나날이 새로워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본래 구일신일일신우일신(苟日新日日新又日新)’이라는 말이다. ()자가 하나 더 붙은 것이다. 여기서 한자어 구()자는 진실로의 뜻이다. 그래서 진실로 날로 새로워지려면,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라는 뜻이 된다. 뱀이 허물을 벗듯이, 진실로 새로운 하루가 되기를!

 

 

무화과 나무에서 꽃을 찾아도 얻지 못하듯, 존재들 가운데 어떠한 실체도 발견하지 못하는 수행승은,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는 것처럼,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Stn.5)

 

 

2020-02-1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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