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가 보지 않은 길

담마다사 이병욱 2020. 2. 11. 08:56

 

가 보지 않은 길

 

 

가 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사무실에 명상공간을 만들어 놓은 이래 매일 앉아 있다. 확실히 환경이 중요하다. 자리를 마련해 놓으니 앉아 있는 것이다. 아직 가 보지 않은 길이다.

 

오래 전의 일이다. 처음 앉았을 때 5분 버티기도 힘들었다. 오죽했으면 ‘5분명상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명상은 나와 관련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명상은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명상은 그저 눈만 감고 앉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을 감고 앉아 있으면 온갖 생각이 밀려온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어 집을 짓는다. 지었다가 허물고 또 지었다가 허물곤 한다. 내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잠시도 앉아 있을 수 없는 이유이다.

 

대상에 집중해야 한다. 일을 할 때 일에 집중하는 것과 같고 공부할 때 공부에 집중하는 것과 같다. 내버려 두면 감각가관의 문으로 들어오는 생각으로 인하여 번뇌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 앉아 있을 때는 호흡에 집중하게 된다. 눈을 감고 있으면 가장 강력한 대상이 호흡이기 때문이다. 특히 배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호흡에 따라 부풂과 꺼짐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하면 일어나면 일어난 것을 알고 꺼지면 꺼지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일이십분 따라가다 보면 고요해짐을 알 수 있다. 포갠손은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앉는 느낌도 나지 않는다. 단지 아는 마음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는 마음만 남게 되었을 때 기분이 상쾌해진다. 몸도 마음도 편안한 것이 안식처에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멍때리고 앉아 있다거나 잠을 자는 것과는 다르다. 눈 앞이 환할 정도로 강력하게 깨어 있는 것이다.

 

꼼짝도 하지 앉고 앉아 있는다. 앉아 있는 것 외에 달리 할 것이 없다. 하는 것이라고는 관찰하는 마음 밖에 없다. 아는 마음을 말한다. 그때 손을 올려 보려 하지만 손을 올릴 수가 없다. 손을 올리려는 의도가 없는 한 손을 올릴 수가 없다.

 

몸은 의도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일상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움직인다. 길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자주 사용하다보니 길이 난 것이다. 그러나 좌선 중에는 의도가 없다면 꼼짝할 수가 없다. 이때 몸은 나무토막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기능이 있는 자루와도 같은 것이다.

 

정신 기능이 없는 몸은 나무토막과 같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정신 기능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팔을 올리려면 먼저 팔을 올리려는 암시가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팔을 올리려는 의도를 내야 한다. 그래야 팔이 올라간다. 정신과 물질이 한덩어리가 아니라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좌선을 통하여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지혜(nāmarūpa pariccheda ñāna)’를 알 수 있다.

 

살아 있는 몸은 생명기능을 가지고 있다. 세포가 분열하여 뼈와 살이 되는 등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생명유지 기능이 작동된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는 것은 의도에 따른다. 행선을 하면 알 수 있다.

 

왼발 오른발 걷는 것 자체가 의도에 따른 것이다. 천천히 움직여 보면 알 수 있다. 발을 올리려는 의도를 가졌을 때 발이 움직여진다. 움직이려는 의도가 없다면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다. 의도가 원인이고 움직임은 결과이다. 행선을 통하여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paccaya pariggha ñāna)’가 생겨난다. 그럼에도 아무생각없이 걸음을 걷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걷는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습관대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작을 빨리하면 무의식적으로 움직인다고 볼 수 있다. 아무 생각없이 걸어도 집을 찾아 가는 것도 자주 해 보아서 길이 났기 때문이다. 길을 잘 모른다면 더듬더듬 갈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생활의 달인들은 눈감고 던져도 바구니에 넣는다. 자주하다보니 길이 생겼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자주 하다보면 길이 생긴다. 좌선도 그럴 것이다. 처음에는 5분도 앉아 있기 힘들었으나 자주 앉아 있다 보면 시간이 점차 늘어난다. 그리고 집중하는 요령도 생긴다. 한번 맛보면 그 맛을 못잊어 찾게 되듯이, 한번 앉아 있는 맛을 들이면 자주 앉게 된다.

 

앉아 있는 것이 편안할 때가 있다. 번거롭게 돌아다니는 것보다 눈감고 앉아 있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이 들 때 자주 앉아 있게 될 것이다. 앉는 것에 길들여진 것이다. 새로운 길이 난 것이다. 전에 가보지 않았던 길이다. 어쩌면 앉아 있는 것이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2020-02-10

담마다사 이병욱

 


'수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촛불이 타는 것을 보면  (0) 2020.02.16
진실로 새로운 하루가 되기를  (0) 2020.02.12
사마타로 먹기  (0) 2020.02.06
앉는 즐거움  (0) 2020.02.04
잡담은 불선업을 짓는 것  (0) 2020.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