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사마타로 먹기

담마다사 이병욱 2020. 2. 6. 11:24

 

사마타로 먹기

 

 

매일 먹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쉬지 않고 먹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탐욕으로 먹고, 분노로 먹고, 어리석음으로 먹었다.

 

이 몸은 먹어야 지탱한다. 하루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보라! 저 많은 사람들은 매일 먹는다. 부자나 가난한자나, 귀한자나 천한자나, 현명한 자나 어리석은 자나 매일 먹는다. 부자라고 해서 많이 먹고 가난한 자라고해서 적게 먹는 것이 아니다. 평균적으로 세 끼 먹는다. 다만 음식의 질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잘 먹은 자는 때깔도 좋다. 살이라고 하여 같은 살이 아니다. 기름기가 있고 부드러운 살이 있는가 하면 메마르고 거친 살도 있다. 먹는 것에도 차별이 있다.

 

밥 먹는 것을 식사(食事)라고 한다. 식사는 중요한 일상중의 하나이다.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이 있다. 밥 먹고 차 마시는 것은 일상이라는 말이다. 하루일과 중에 식사는 중요한 행사중의 하나이다.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 치루는 행사를 빠뜨리지 않는다. 한끼라도 빼먹으면 허기가 져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일을 할 수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먹어 주어야 한다. 가능하면 양껏 배불리 먹고자 한다.

 

식사를 할 때 허겁지겁 먹는다. 허기가져서일까 숫가락과 젓가락을 부지런히 놀리며 입에 넣기에 바쁘다. 한입 가득 물고 입질하는 모습이 잔뜩 화가 난 사람처럼 보인다. 아무 말없이 먹기에만 열중하는 모습이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둔 포식자처럼 보인다.

 

먹어야 산다. 먹지 못하면 죽는다. 먹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먹이가 있을 때 양껏 먹어 두어야 한다. 언제 또 먹이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먹기 위해서 살기도 하고 살기 위해서 먹기도 한다. 인간도 동물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먹기위해 살고 살기 위해 먹는다. 먹는 것은 일상이고 먹는 것은 생활이다. 동물들은 하루종일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도 역시 하루종일 먹는다. 삼시세끼라고 하지만 간식도 먹고 야식도 먹고 군것질도 한다. 그래서 종일 먹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포식자는 배고플때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있을때 줏어먹어라.”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장사나 사업을 하는 사람은 기회가 있을 때 줏어먹어야함을 말한다. 올해는 이만큼 먹고 내년에는 저만큼 먹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생존경쟁의 현장에서는 기회가 왔을때 다 먹어야 함을 말한다.

 

먹는다고 하여 반드시 음식만을 말하지 않는다. 인간사회에서는 먹이의 대상이 많다. 기업을 인수합병 할 때도 먹는다고 말한다. 싸움을 하여 승리했을때 먹었다고 말한다. 무엇이든지 먹어치우기만 하면 어떻게 될까?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에서 보는 것처럼 가오나시가 될지 모른다. 닥치는대로 먹다보면 부끄러움과 창피함도 모를 것이다. 얼굴이 두꺼워지다 못해 얼굴이 없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얼굴로 살아간다.얼굴이 없으면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서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다. 익명을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 댓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가면을 썻을때 도덕적으로 금하는 어떤 것도 서슴없이 자행할 것이다. 동물들은 얼굴이 없어서 체면을 가리지 않는다. 오로지 생존본능과 종족보존본능만 남아 있는 축생의 세계에서는 있을 때 많이 먹어 두어야한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른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안다는 것이다. 오계를 지키는 것도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알기 때문이다. 오계를 어긴다면 동물적 삶이나 다름없다. 오계를 지키자는 것은 인간적 삶을 살자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오로지 먹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동물적 삶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잘 먹을 수 있을까?

 

선원에서 늘 하는 말이 있다. 먹는 것도 수행이라는 것이다. 먹는 것이 어떻게 수행이 될 수 있을까? 세 가지로 설명된다. 계율로 먹기, 사마타로 먹기, 위빠사나로 먹기를 말한다. 식사할 때 허겁지겁 퍼 넣는 것이 아니라 이 음식은 어디서 왔는가?”라며 먹거리를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살피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몸을 기름칠하는 정도로 음식절제를 하여 적당량을 먹는 것에 대하여 계율로 먹는다고 말하고, 이 음식이 여기로 오기까지 여러사람들의 노고에 대하여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에 대하여 사마타로 먹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음식을 집어서 입에 넣고 목구멍으로 넘길 때까지 전과정을 알아차림하는 것에 대하여 위빠사나로 먹는다고 말한다.

 

세 가지 먹기 중에서 가장 와 닿는 것은 사마타로 먹기일 것이다. 사마타로 먹기는 이미 익숙해져 있다. 어렸을적부터 감사히 먹겠습니다.”라고 교육받아 왔기 때문이다. 군대에서도 이 밥은 국민의 피와 땀으로..”라 하여 짧은 의식을 행한후에 먹는다. 신심 있는 종교인들은 밥 먹기전에 간단한 기도를 한다. 사마타로 먹는 것이다.

 

작년 1월 미얀마에 있었다. 약 보름간 짧은 일정으로 선원에 있었다. 선원에서는 밥 먹을 때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긴 의식을 행했다. 미얀마어로 베이양 낀짜바세라며 노래 형식으로 부르는 자비관 게송이다. 자애경을 바탕으로 하여 선원에서 만든 게송이다. 그래서 선원에서는 팔계에다 자비관을 하나 더하여 구계를 매일 새벽예불할 때 받아지녔다.

 

밥 먹을 때 자비관 게송을 합송하면 장엄했다. 밥 한끼 먹는데 오분가량 긴 의식을 행하는 것은 음식이 여기까지 오기까지 감사의 마음을 내는 것이다. 실제로 감사의 마음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선원의 비구들은 아침 8시가 되면 탁발을 나간다. 이십여명이 줄을 지어 나가는데 한시간가량 걸린다. 탁발나가면 주로 밥을 얻어 온다. 탁발이 끝나면 바루에 가득 담긴 밥을 한곳에 모은다. 점심식사때 선원대중과 함께 나누어 먹기 위한 것이다.

 

탁발한 밥은 선원에서 만든 밥과 합쳐진다. 선원에서는 한끼공양이라 하여 보시자가 선원 전체대중을 위하여 밥 한끼를 제공한다. 합친 밥은 찜기로 다시 찐다. 점심 때 이런 밥을 먹는다. 눈물겨운 밥이다. 배고프다고 하여 아무생각없이 허겁지겁 퍼먹을 수 없다.

 

사마타로 먹기란 무엇일까? 선원 공양게송을 보면 네 가지로 설명되어 있다. 가장 먼저 선원장과 상가에 감사하고, 선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사부대중에게 감사하고, 한끼 공양을 제공한 음료보시자에게 감사하고, 마지막으로 음료를 만들어 준 봉사자들에게 감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원에서는 이들 네 부류의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공양게송을 다음과 같이 네 번 합송한다.

 

 

우주의 모든 생명들이

위험과 해악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마음의 마음의 근심이

소멸하여 행복하기를!

몸의 고통이 소멸하여 건강하기를!

몸과 마음이 건강하여 행복하게

자신의 책임을 잘 완수하게 되기를!

 

 

이 게송은 사무량심을 바탕으로 구성된 자애관 게송이다. 이렇게 선원에서는 사마타로 먹는다.

 

오늘도 내일도 먹는다. 매번 밥 먹을 때 아무생각 없이 먹었다. 때로는 탐욕으로 먹고 때로는 분노로 먹었다. 어리석음으로 먹은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인간이라 하여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과 수행하지 않는 사람으로 구별할 수 있다. 밥 먹는 것 하나만 보아도 그가 수행자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계율로 먹고, 사마타로 먹고, 위빠사나로 먹으면 수행자이다.

 

이제까지 아무생각없이 먹었다. 최소한 사마타먹기정도는 해야 한다. 내돈 주고 밥 사먹는다고 하지만 이 음식이 여기에 있기까지 사람들의 노고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사마타로 먹으면 탐욕도 줄어들고 음식절제도 이루어진다. 더 나아가 환경과 기후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을 때 이는 다름아닌 자애수행에 해당된다. 자애관은 40가지 사마타 명상주제 중의 하나이다. 먹는 것도 수행인 것이다.

 

 

2020-02-0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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