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후기

수행자 같은 신사, 신사 같은 수행자

담마다사 이병욱 2020. 2. 29. 12:03

 

수행자 같은 신사(紳士), 신사 같은 수행자


 

신사(紳士)의 조건은 무엇일까? 신사는 무엇인지에 대한 영화를 보았다. 유튜브에서 본 빅 컨트리(The big country, 1958)’이다. 시대적 배경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 1870년대나 80년대 같다. 미국 남서부에 있는 텍사스가 공간적 배경이다.

 




영화를 보면 초반에 강렬한 인상을 준다. 영화는 시작하자 마자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마차를 보여준다. 아마도 시선을 사로잡아 화면에서 떼어놓지 않으려는 것으로 본다.

 

서부영화의 매력은 말타는 장면이다. 말을 타고 거친 황야를 질주 하는 모습은 매우 장쾌해 보인다. 여기에 음악까지 웅장하고 장쾌해서 영화에 빠져 들게 만든다. 거장이라 불리우는 윌리엄 와일러감독이 만든 영화로 그레고리 펙이 주연이다. 여자 주인공은 진 시몬즈이다.

 

신사가 있다면 숙녀가 없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서 종종 신사답게라는 말이 나오는데 또한 종종 숙녀답게라는 말도 종종 나온다. 거친 서부에서 신사와 숙녀를 보기 어려워서일 것이다. 그런 서부는 무법천지나 다름 없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마을은 공권력이 있는 곳으로부터 200마일 떨어져 있다고 했다. 환산해 보니 320키로미터 거리에 있다.

 

영화에서 신사는 2천마일 먼 곳에서 왔다고 한다. 3200키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미국 동부에 해당된다. 그런데 영화자막을 보면 동양이라고 했다. 동부를 동양이라고 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스턴(Eastern)’이라고 했는데 이를 동양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아마 이 영화가 배급된 시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십장이라는 번역도 보았다. 요즘 이런 용어를 서부영화에서 보기 어렵다. 십장이라는 말은 인부들의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서부에서 목동의 대장을 일컫는 말이라 보여진다. 십장이라는 말은 건설현장에서 주로 사용되는 말인데, 열 명의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이처럼 영화 자막에서는 동양이나 십장같은 말이 있어서 옛날 영화임을 알게 해 준다.

 

서부영화는 언제 보아도 장쾌하다. 황야를 달리는 말 타는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현대문명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제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아마 50년대 와 60년대 사람들은 이런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서부는 무법천지와 같다.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는 힘이 곧 정의라고 볼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무장을 한다. 이런 척한 곳에 동부출신 신사가 등장한다.

 

신사의 등장에 마을 사람들은 신기한 눈으로 본다. 특히 목동들이 시기와 질투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주인공의 험난한 여정을 암시하는 것 같다.

 

동부의 신사 제임스는 마을의 세력가 테릴 소령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온 것이다. 딸이 동부에 갔었는데 제임스를 만난 것이 시초가 된다. 이런 구도는 영화 자이언트와 비교된다.

 

자이언트에서는 여자가 남자가 있는 텍사스로 시집을 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와반대로 빅 컨트리에서는 남자가 텍사스로 장가 가는 장면이 나온다. 참고로 영화 자이언트가 개봉된 시점이 1956년이다. 빅 컨트리는 1958년 개봉되었기 때문에 2년의 시차가 있는 것이다.

 

영화 빅 컨트리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수많은 서부영화를 TV에서 보았지만 생소하다. 그러나 언젠가 한번 보았던 것 같다. 이에 반하여 자이언트는 잘 알려져 있다.

 

영화 자이언트를 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다.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 대한극장에서 단체로 관람했었다. 그때 당시 자이언트가 나온지 20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명화는 언제 보아도 감동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한번 도 가본 적도 없고 접한 적도 없는 문화와 만나는 것이다.

 

처음 자이언트를 접한지 이제 44년이 지났다. 지금 자이언트를 보아도 가슴이 울린다. 명화는 언제나 감동을 준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느낌도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여배우의 아름다운 모습만 보았으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이면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캐치 하는 것이다.

 

영화 빅 컨트리는 텍사스 오지 두 가문의 갈등을 다룬 것이다. 무법지대에서 살아 모습을 보면 힘이 곧 정의인 세상이다. 그것은 아수라의 세계와 다름 없다. 두 가문은 사소한 일로 다투고 목숨을 거는 싸움을 한다. 이럴 때 신사가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신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것 같다. 바다와 같이 너른 대평원에서 시골 목동들은 매우 거칠다. 평생 말타고 소모는 것만 해본 그들에게 동부의 신사가 나타탔을 때 고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시기와 질투가 작렬해서일까 신사를 놀려 주려고 한 것이다.

 




시골 목동들은 신사를 골탕 먹인다. 말을 자유자재로 말을 탈 줄 아는 목동들은 야생마 다루듯이 신사를 다룬다. 올가미를 던져서 포박하고 끌고 다니는 등 놀려 준 것이다. 일종의 신고식이라 볼 수 있다.





신부감은 남편감이 모욕 당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지나친 장난을 넘어 자신의 가문을 모욕한 것이라 본 것이다. 또 남편감을 겁쟁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신사는 그들은 위험하기 보다 그저 취한 것뿐이오. 온 세상 항구에는 그런 사람들로 넘쳐 나죠.”라고 말한다. 과연 신사는 겁쟁이일까?

 

영화를 보면서 신사는 어쩌면 아라한과 같은 수행자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아라한은 그 어떤 경우에서라도 화를 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번뇌가 소멸된 아라한이 화를 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신사는 목동들이 지나치다 못해 모욕적인 장난을 쳐도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시골목동들이 시기와 질투로 인하여 과도하게 논 것이라고 본 것이다. 세상 뒷골목에는 그런 사람들로 넘쳐 나는데 그렇다고 그들과 싸움을 벌인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에 지나지 않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겁쟁이라는 소리를 들었을지는 몰라도 그런 일에 목숨 거는 일은 하지 않은 것이다.

 

영화에서는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 같다. 서로 앙숙지간인 두 가문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주인공은 결정적 순간에 목숨을 건다. 모두를 위해 나서야 할 때 나서는 것이다. 자신이 양아치들에게 모역당했다고 하여 하찮은 일에 복수하는 것이 아니다. 대의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수행자답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점잖은 모습이다. 목동들처럼 빠릿빠릿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항상 진중한 모습이다. 말을 탈 때에도 몸을 날려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오른다. 모든 행동거지가 느릿느릿하다. 빨리 하기 보다는 천천히 한다. 이런 것들이 수행자 모습답다는 것이다.

 




수행자는 모든 동작을 느릿느릿 천천히 한다. 경행을 할 때도 느릿느릿 천천히 한다. 경행을 빨리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한시간 경행하는데 빠른 걸음은 있을 수 없다. 한동작 한동작 알아차림 하는데 있어서 빨리빨리 할 수 없는 것이다.

 

수행자는 옷을 입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느릿느릿 천천히 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느릿느릿 천천히 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의 행위를 알아차릴 수 있다. 심지어 염처경에서는 대변보고 소변보는 것을 올바로 알아차리고”(M10)라고 했다. 오줌 싸고 똥 누는 것도 관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수행자는 느릿느릿 천천히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수행자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수행자가 화내는 모습 역시 상상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신사는 느릿느릿 천천히 하고 화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사소한 일에 목숨걸지 않았다. 그러나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가만 있지 않았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신사와 수행자는 비슷하다.

 

수행자는 세상사람들과 다르다. 세상사람들은 이득과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지만 수행자는 초연하다. 세상사람들의 흐름과는 반대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역류하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마치 연어가 물살을 거슬러 가는 것처럼 흐름을 거슬러 가면 아픔이 따른다.

 

역류의 삶을 살면 세상에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흔히 듣는 말이 도 닦는다는 사람이라든가 수행한다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세상사람들에게 절대로 도를 닦는다라든가 ,‘수행한다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와 같이 역류도를 실천하는 수행자에 대하여 “수행승들이여, 흐름을 거슬러 올라 가는 사람이란 누구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빠지지 않고, 악한 업을 저지르지 않고, 고통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완전한 청정한 삶을 실천한다면, 수행승들이여, 그를 두고 흐름을 거슬러 올라 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A4.5)라고 했다.

 

역류도의 삶을 살면 힘겹고 눈물까지 흘릴 수 있다. 세상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심지어 겁쟁이라는 소리를 듣고 모욕까지 당할 수 있다. 그러나 수행자는 용감한 사람이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그러나 대의에는 아끼지 않는다. 수행자는 여법한 삶에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테라가타에서 본 고닷타존자와 같은 사람이다. 수행자는 세속의 여덟 가지 바람(世俗八風)’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소한 것에 목숨을 걸지 않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이득도 여의고 불익도 여의고

명성도 여의고 명예도 여의고

비난도 여의고 칭찬도 여의고

괴로움도 여의고 줄거움도 여읜다. (Thag.664)

 

“연꽃 위의 물방울처럼,

영웅들은 모든 곳에서 더럽혀지지 않고

모든 곳에서 안락을 얻고,

모든 곳에서 패배하지 않는다. (Thag.665)

 

“정법으로 불익을 보기도 하고

비법으로 이익을 보기도 한다.

정법으로 불익을 보는 것이,

비법으로 이익을 보는 것보다 낫다. (Thag.666)

 

“무지한 자가 명예를 얻기도 하고

양식있는 자가 불명예를 얻기도 한다.

양식있는 자가 불명예를 얻는 것이

무지한 자가 명예를 얻는 것보다 낫다. (Thag.667)

 

“어리석은 자로부터 칭찬이 있고,

양식있는 자로부터 비난이 있는데,

양식있는 자로부터의 비난이

어리석은 자의 칭찬보다 낫다. (Thag.668)

 

“감각적 욕망에서 생겨나는 즐거움이 있고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괴로움이 있는데,

멀리여읨에서 생겨나는 괴로움이

감각적 욕망에서 생겨나는 즐거움보다 낫다. (Thag.669)

 

“여법하지 못한 삶과

여법한 죽음이 있다.

여법한 죽음이,

여법하지 못한 삶보다 낫다. (Thag.670)

 

 

2020-02-2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