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가르침에 기뻐하라

담마다사 이병욱 2020. 3. 5. 12:31

 

가르침에 기뻐하라

 

 

재가불교단체에서 소임을 맡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회비를 걷는 것이다. 가능하면 매월 만원 이상 자동이체를 요청하고 있다. 누군가 한번에 백만원 내는 것 보다 만원 내는 백명이 훨씬 더 낫다. 대부분 실명으로 회비를 보낸다. 익명도 여러 명 있다. 자신의 실명을 밝히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익명 중에 가르침에 기뻐하라라가 있다.

 

그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했다. 매달 꼬박꼬박 만원씩 입금하는 가르침에 기뻐하라가 누구일까? 그러나 어떤 정보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알게 되었다.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왜 가르침에 기뻐하라는 익명을 썼을까?

 

테라가타를 넘기다가 가르침에 기뻐하라와 관련된 게송을 발견했다. 게송은 다음과 같다.

 

 

가르침에 기뻐하고 가르침을 즐기고

가르침을 사유하고

가르침에 새김을 확립하는 수행승은

올바른 가르침에서 퇴전하지 않는다.”(Thag.1038)

 

 

이 게송은 아난다장로가 읊은 것이다. 부처님의 시자인 아난다존자를 말한다. 테라가타에는 아난다장로의 삼십련 시집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이다.

 

게송에서 첫 구절을 보면 가르침에 기뻐하고라고 했다. 이 말은 빠알리어로 담마라모(dhammārāmo)’ 이다. 담마라모는 영어로 ‘One who dwells in the Law’의 뜻이다. 가르침에 머무는 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라모는 ‘Joy, delight’의 뜻이 있기 때문에 가르침을 기뻐하고로 번역했을 것이다. 이는 주석에서 멈춤과 통찰의 가르침을 기뻐하고, 그러한 것을 즐기고, 그러한 것을 거듭해서 사유하며 회피하지 않고, 정신활동을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Thag.III.1109)라고 설명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아난다는 부처님의 시자였다. 그것도 25년 동안 시봉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루고 난 다음 부처님에게는 시자가 없었다. 20년 뒤 부처님 제자들이 부처님을 시봉하기를 원했을 때 부처님은 말없이 앉아 있는 아난다를 시자로 택했다.

 

테라가타에서 아난다와 관련된 인연담에 따르면, 아난다는 시자로서 부처님의 가사와 잠자리를 마련하고 방문객을 맞거나 여행을 준비하는 등의 일을 맡았다. 그런데 아난다는 시자가 되는 조건으로 부처님에게 특별하게 한 가지를 요청했다. 그것은 자신의 부재중에 한 설법을 자신에게 반복해 주기를 요청한 것이다. 이후 25년 동안 아난다는 부처님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씻을 물을 준비하고 발을 씻어 드리고 방청소를 하고 모든 곳으로 따라다녔다.

 

아난다는 스승의 손이 닿는 곳에 있다가 스승에게 필요한 것을 미리 알아서 조치했다. 밤에는 단단한 지팡이와 커다란 등불을 들고 부처님의 향실(Gandhakuti) 주변을 아홉 번이나 돌았다. 그 이유는 필요하면 부처님을 깨우고 때로 주무시는데 장애가 되는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아난다에게 별칭이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십대제자 중의 한사람으로 다문제일(多聞第一)’로 알려져 있다. 니까야에서는 네 가지 별칭이 있다. 앙굿따라니까야(A1.228-231)에 따르면 1)많이 배운자 가운데 제일(bahusutta aggo), 2)새김 있는 님 가운데 제일(satimantana aggo), 3)행동거취가 분명한 님 가운데 제일(dhitimantana aggo), 4)의지가 확고한 님 가운데 제일(upaṭṭhākāna aggo)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많이 배운자 가운데 제일을 한자어로 다문제일이라고 한다.

 

시자로서 아난다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승되어 왔다. 그래서 테라가타 삼십련게송 중에는 부처님에게서 팔만이천, 수행승들에게서 이천을 받아 팔만사천 법문을 나는 담지하고 있다.”(Thag.1030)라는 게송이 있다. 오늘날 부처님 법문을 팔만사천 법문이라고 하는데 유래가 아난다의 게송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팔만사천 법문 중에는 제자들의 법문이 2천개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의 직접법문은 82천 법문인 셈이다.

 

아난다는 마하깟싸빠존자와 함께 결집을 주도했다. 그래서일까 중국 용문석굴 불상을 보면 두 명의 제자가 협시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부처님에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라는 두 명의 상수제자가 있었지만 부처님 보다 먼저 열반에 들었기 때문에 불상에서는 두 상수제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결집을 주도한 마하깟싸빠와 아난다는 마치 상수제자처럼, 협시보살처럼 부처님 좌우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무려 네 개의 별칭을 가지고 있는 아난다는 테라가타에 삼십련 시집을 남겼다. 그 중에 배움에 대한 기쁨을 노래한 게송은 다음과 같다.

 

 

배우지 못한 사람은

황소처럼 늙어간다.

그의 살은 뚱뚱해지지만

그의 지혜는 자라지 않는다.”(Thag.1031)

 

많이 배운 사람이 학식 때문에

적게 배운 사람을 경멸한다면,

등불을 들고 있는 장님과 같다고,

그렇게 나는 분명히 생각한다.”(Thag.1032)

 

많이 배운 사람을 섬겨야 하고,

배운 것을 파괴해서는 안되리.

그것은 청정한 삶의 뿌리이니,

가르침을 수호하는 자가 되어야 하리.(Thag.1033)

 

 

마음이 심란 할 때 언제든지 경전을 펼쳐지면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몇 줄 읽지 않아서 마음이 바뀌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초기경전은 치료제나 다름없다. 약을 먹지 않아도 극적인 반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가르침의 힘이다. 그 중에서도 테라가타와 테리가타는 부처님 직제자들이 해탈과 열반의 기쁨을 노래한 것으로 가득하다.

 

어떤 분이 가르침에 기뻐하라라는 이름으로 회비를 냈는데, 그 출처를 알게 되어서 기쁘다. 무엇보다 그 사람인 것을 알아서 기쁘다.

 

 

2020-03-0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