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들기

9권 진흙속의연꽃 2007 II

담마다사 이병욱 2020. 3. 13. 10:10

 

9권 진흙속의연꽃-2007 II

 

매일매일 글을 쓰다보니

 

 

 

 

 

며칠에 걸쳐 파일을 하나 완성했다. 2007년도에 쓴 글을 정리한 것이다. 그해 쓴 생활잡문에 대한 것이다. 이를 pdf와 책으로 낸다. 제목은 진흙속의연꽃 2007’라고 이미 정해져 있다. 문구점에 인쇄-제본 의뢰하면 책의 형태로 된다. 종이는 B5사이즈에 폰트는 10사이즈, 그리고 명조체로 했다. 또 하나의 삶의 결실이다.

 

 

 

파일작업을 하면서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린 것은 목차만들기이다. 2008 1년 동안 쓴 글이 165개이다. 150개가 넘는다. 사진을 곁들인 글은 5백페이지가량된다.

 

 

 

 

9권 진흙속의연꽃-2007 II_220524.pdf
16.10MB

 

 

 

글 제목에 넘버링 작업하는 것이 가장 힘든 작업이다. 블로그에 올려진 것을 긁어서 하나의 파일에 옮기는 것도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눈에 볼 수 있는 목차가 있어야 한다. 책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또 하나 필요한 것은 서문이다. 책을 열면 서문이 있는데 비록 개인문집 성격을 갖는 책에도 서문이 있어야 완성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서문을 쓴다.

 

 

 

편집작업을 하면서 2007년 당시로 돌아 갔다. 2006년도 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므로 글쓰기 2년차에 해당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글은 제대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의미와 형식을 갖춘 글을 말한다. 한마디로 함부로 글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책을 낼 것을 염두에 두고 썼기 때문이다. 그때가 언제 될지 알 수 없었지만 남이 보건 보지않건 자신만의 방식대로 거의 매일 쓴 것이다.

 

 

 

글을 마칠 때는 반드시 연월일과 함께 필명 진흙속의연꽃을 서명했다. 나름대로 글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이다. 마침내 12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책의 형태로 나오게 되었다.

 

 

 

2007년도의 글을 보니 지금과 비교하여 길이가 짧다. A4로 두 장 분량이다. 그날 있었던 가장 강렬한 사건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그때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글이 종종 있다. 그런 글 중에는 김진태선생관련 글도 있다.

 

 

 

김진태선생은 그때 당시 능인선원 금강회에서 강연을 했다. 김진태선생을 초빙하여 한달에 한번 강연을 들은 것이다. 선생은 구수한 입담으로 청중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그렇다고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반드시 기억에 남을 만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김진태선생은 반야심경을 강연했다. 초기불교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90년대 초반부터 미얀마를 왕래해 왔기 때문에 수행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다. 이를 놓치지 않았다. 노트한 것을 바탕으로 후기를 작성하여 불로그에 올려 놓았기 때문이다.

 

 

 

인상에 남았던 것은 반야심경 마지막 후렴구이다. 이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를 말한다. 산스크리트어로는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이다. 김진태선생은 이를 가자! 가자! 저 언덕으로! 우리 모두 함께 가자! 깨달음이여 영원하라!”(20071011일자)라고 말 했다.  마지막 문구 모지사바하(Bodhi Svaha)”에 대하여 깨달음이여 영원하라.”라고 번역한 것이다.

 

 

 

노트하는 습관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강연이나 행사에 참석하면 좋은 글쓰기 소재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메모해 놓는다. 심지어 해외여행가면 가이드 옆에 바싹 붙어서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부지런히 메모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듣는 것으로 그치는 것 같다.

 

 

 

노트해 놓은 것을 보면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무엇보다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트한 것을 바탕으로 글을 쓸 때 다시 한번 상황을 떠 올려 보는 것이다. 그래서 연사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런 기록이 쌓이고 쌓이면 내것이 된다. 요즘은 검색할 때 블로그내 검색을 한다. 예전에 써 놓았던 것을 다시 활용하는 것이다. 어쩌면 자기표절일지 모르지만 논문이 아니고 생활잡문이기 때문에 게의치 않는다.

 

 

 

세월이 지나 과거에 쓴 글을 보면 마치 그때 당시로 돌아간 것 같다. 그래서 활자라 하는 것 같다. 글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기록을 해 두면 남아 있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 남겨진 글은 시공을 초월해서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무상하지 않은 것이 없다. 지금은 견고하게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10, 20년 후에는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서두르는지 모른다.

 

 

 

2007년 당시 글을 쓰던 때는 40대 후반이었다. 자영업으로 살아가면서 쉬지 않고 썼다. 마치 인정사정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아 두려는 듯이 흔적을 남겼다. 나중에 지난날을 회상했을 때 나는 헛되이 살지 않았다.”라고 증명하고 싶었던 것도 있다. 법구경에 이런 게송이 있다.

 

 

 

 

 

젊어서 청정한 삶을 살지 않고

 

재산도 모으지 못했으니,

 

쏘아져 버려진 화살처럼,

 

누워서 옛날을 애도한다.(Dhp.156)

 

 

 

 

 

시간과 싸워서 이기는 사람은 없다. 세월에 장사 없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종종 세월타령한다. 세월이 너무 빨리 흐른다는 것이다. 어떤이는 이렇게 늙어 버릴 줄 몰랐다고 말한다. 세상의 흐름대로 살았더니 형편없이 늙어 버린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을 것이다. 마치 날개 부러진 늙은 왜가리가 물이 말라버린 호숫가에 서 있는 것 같을 것이다. 노령의 비참함이다. 그래서 상윳따니까야 늙음의 경을 보면 다음과 같은 늙음에 대한 게송이 있다.

 

 

 

 

 

부끄러워할지어다, 가련한 늙음이여!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늙음이여!

 

잠시 즐겁게 해 주는 영상

 

늙어감에 따라 산산이 부서지네.

 

 

 

백 세를 살더라도 결국

 

죽음을 궁극적인 것으로 할 뿐

 

누구도 예외로 하지 않고

 

그것은 모든 것을 부수어 버리네.”(S48.41)

 

 

 

 

 

노령의 비참함은 마치 쏘아져 버려진 화살과도 같다. 궤적을 그리며 숲에 떨어졌을 때 아무도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리가타에서는 비참한 노령의 그대여, 부끄럽다.”(Thig.106)라고 했다.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늙은이에게 할 일은 없다. 그저 젊었던 시절, 잘 나가던 호시절을 회상하며 보내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또 잘못 산 것을 후회하며 회한으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쏘아져 버려진 화살처럼, 누워서 옛날을 애도한다.(Dhp.156)라고 했을 것이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자 했다. 그래서 글을 썼다. 누가 보건말건 인터넷에 매일 글을 올렸다. 2007년 블로그개설 2주년 되었을 때 다음블로그와 만난지 오늘로 730일째다.”(200783일자)라고 글을 썼다. 이어서 “2주년을 맞이하여 다음에서 제공 하는 통계자료를 보니 이제까지 누적 방문자가 21만명이 넘었고 즐겨찾기에 등록한 사람이 210명이나 되었다.”라고 써 놓았다.

 

 

 

매일매일 쓰다시피한 글은 쌓이고 쌓이다 보니 지난 14년 동안 5천개가 넘었다. 블로그 누적조회수는 640만명에 달했다. 그러나 요즘 같은 유튜브시대에는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교계에서는 아직도 이를 능가하는 블로그를 보지 못했다.

 

 

 

처음부터 넘버원블로그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다. 매일매일 꾸준히 쓰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목적론 보다 방법론이다. 바라밀은 완성의 의미도 있지만 과정의 의미도 있다. 팔정도를 중도로 본다면 목적론으로 볼 수 있지만 실천적으로 본다면 방법론이 된다. 마치 거룩한 자(阿羅漢)가 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삶을 살다보니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과 같다.

 

 

 

글은 생명과도 같다. 활자를 보면 펄펄 살아 있는 것 같다. 이번에 2007년도로 가서 자신과 만났다. 마치 쏘아져 버려진 화살처럼, 물이 마른 호수가에 날개부러진 늙은 왜가리와 같은 처량한 신세가 되지 않고자 글을 쓴다. 글은 한존재의 삶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글은 한존재의 삶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2020-03-1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