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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직지사 사띠빳타나 위빠사나 집중수행기

담마다사 이병욱 2019. 8. 16. 10:01

 

4권 직지사 사띠빳타나 위빠사나 집중수행기 

 

왜 위빠사나 수행공덕이 가장 수승한가?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한다. 불확실하다는 것은 결정되어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본다. 아마도 물리학자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른 것인지 모른다. 미시적 양자의 세계에서는 결정된 것이 하나도 없다. 관찰하는 순간 비로서 확정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책을 하나 썼다. 2019 7 2일부터 7일까지 직지사에서 사띠빳타나위빠사나 집중수행을 하고 후기를 썼는데 이를 한파일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출판사에 의뢰하여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은 아니다. 사는 곳 가까이에 있는 문구점에 인쇄와 제본을 의뢰하여 몇 권 갖는 것이다. 일종의 소장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인터넷시대에 모든 정보는 오픈되고 공유된다. 이번 집중수행에 대하여 수행기를 18편 썼다. 집중수행이 끝나고 바로 다음 날인 7 8일부터 쓰기 시작하여 마지막 18편은 8 15일 완성했으므로 37일 걸린 것이다. 거의 이틀에 한번 꼴로 썼다. 나름대로 강행군 했다. 한번 쓰면 보통 4-5시간 걸렸다.

 

 

 

있는 그대로 쓰고자 노력했다. 보고 듣고 느낀 그대로 쓰고자 한 것이다. 먼저 노트한 것을 대강 훑어 보았다. 사야도의 법문과 인터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하려고 노력했다. 노트한 것을 보고서 쓰고자 하는 줄기를 잡는다. 머리 속에 가상의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하루 정도 품어 둔다. 곧바로 쓰지 않고 다음날 오전 정신이 맑을 때 쓰는 것이다. 이렇게 한편 두편 쓰다 보니 어느덧 18편이 되었다. 그리고 한권으로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번 집중수행은 5 6일 동안 진행되었다. 보통 위빠사나 집중수행은 10일 코스인데 반으로 압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수련회에 대단한 각오로 임했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해보자는 것이었다. 특히 행선에 대해서 그랬다. 어떤 이는 오로지 수행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필기 같은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띠가 깨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법문하는 것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겨 두고 싶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인터뷰하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타인이 인터뷰한 것을 보고 간접적으로 아는 것이 많았다. 이런 이유로 노트에 꼼꼼하게 기록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수행기를 작성하면서 또다시 배우게 되었다. 수행기를 쓰다 보면 그때 상황을 떠 올릴 수밖에 없는데 노트해 놓은 것을 보면 강조사항이 있다. 이런 것은 기억해 놓아야 한다. 기억으로 그쳐서는 안되고 새기고 사유해야 한다. 사유로 그쳐서는 안되고 실천해야 한다.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번 듣고 잊어 버린다면 너무나 아까운 것이다. 잠시 생업을 중단하고 귀중한 시간 내서 참가했는데 헛되이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힘이 소진 될 때까지 이루어 내고자 했다.

 

 

 

이번 집중수행에서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 비록 기초단계에 불과하지만 수행은 이렇게 하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좌선과 행선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은 사야도가 법문에 늘 강조하는 실재하는 성품(paramattha)’에 대한 것이다.

 

 

 

수행이라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성품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법에는 성품이 있다는 것이다. 크게 고유한 성품과 일반적 성품이 있다. 고유한 성품 하나를 든다면 풍대(風大)이다.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은 지수화풍 사대 중에서 풍대를 관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품의 일반적 특징은 생멸한다는 사실이다.

 

 

 

수행자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서 사라지는 성품을 관찰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무상에 대한 지각이다. 그래서 부처님은“단지 손가락 튕기는 순간만이라도 무상에 대한 지각을 닦는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A9.20)라고 말씀했다. 이는 다름 아닌 위빠사나 수행공덕을 말한다. 보시공덕, 지계공덕, 사마타수행공덕, 위빠사나 수행공덕이 있지만 이 중에서 가장 수승한 것이 위빠사나수행공덕이라는 것이다.

 

 

 

금강경에서는 칠보로 삼천대천세계를 보시해도 사구게 한구절 알려 주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그런데 앙굿따라니까야 벨라마의 경에 따르면 무상에 대한 지각을 하면 사구게를 알려 주는 것 보다 훨씬 더 수승하다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천문학적 보시를 하고, 승원을 지어 승가에 보시하고, 삼보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내는 것 보다 오계를 지키는 것이 더 수승하다고 했다. 보시공덕보다는 지계공덕이 비할 바 없이 수승함을 말한다.

 

 

 

지계공덕 보다 더 수승한 것은 사마타수행공덕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학습계율을 갖추는 것보다, 단지 스치는 향기처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닦는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A9.20)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아무리 보시와 지계를 해도 잠시나마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 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보시와 지계로 태어날 수 있는 곳은 욕계천상이나 수승한 인간일 것이다. 그러나 자애를 닦으면 이는 사마타수행을 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범천(색계와 무색계)에 태어나게 된다. 욕계천상과 범천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부처님은 사마타수행보다 더 수승한 것이 위빠사나수행공덕이라고 했다. 그래서 단지 스치는 향기처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닦는 것보다, 단지 손가락 튕기는 순간만이라도 무상에 대한 지각을 닦는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A9.20)라고 말씀했다. 그렇다면 무상에 대한 지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오온의 생멸에 대한 통찰을 말한다. 우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통찰하면 삼계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주 잠시나마, 즉 손가락 튕기는 순간만이라도 무상을 지각한다면 그 과보는 엄청나게 클 것이라고 했다. 무상에 대한 지각을 하면 할수록 해탈하여 열반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는 것은 단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열반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실재하는 성품을 보아야 한다. 좌선을 하면서 복부 관찰하는 것도 성품을 보기 위한 것이고, 통증을 관찰하는 것도 성품을 보기 위한 것이다. 행선할 때도 발의 움직임을 통하여 성품을 볼 수 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늘 사띠(sati)하라고 말한다. 이 말은 늘 주의 깊게 관찰하라는 말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제3자가 보듯이 객관적으로 관찰하라는 말이다. 그렇게 관찰하면 일어나고 사라지는 실재성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어느 것 하나 정해진 것이 없다.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만 있을 뿐이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다. 밥을 먹으면 음식을 자양으로 하여 세포분열이 일어난다.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여 피와 살이 되고 장기가 되고 뼈가 된다. 생각도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끊임 없이 일어난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단지 지켜 볼 뿐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죽음이다. 그래서 나의 삶은 불확실하지만 나의 죽음은 확실하다.”라고 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이라면 지금 여기에서 지켜 보아야 할 것이다. 실재하는 성품을 확실히 보는 것이다.

 

4권 직지사사띠빳타나위빠사나집중수행기_19081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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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