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에서 쑥을 뜯으며
신록의 계절이다. 일요일 오후 집을 나섰다. 가까이에 있는 뒷산에 가고자 함이다. 관악대로 건너편에 있는 반야선원 뒷길은 관악산 산림욕장까지 이어져 있다. 평소 사시사철 다니는 길이다. 5월 3일 본격적으로 신록이 시작되는 때에 산행을 했다.
숲은 묘한 마력이 있다. 일단 들어 가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온갖 인공물 투성이에서 자연스러운 것을 접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생명이다. 나무마다 새순이 올라올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연두색의 신록은 생명으로 가득하다.
숲에 들어가면 힘이 나는 것 같다. 시들시들한 식물에 물을 주면 펴지듯이, 무거운 몸이 개운해진다. 으슬으슬 한기가 들어 누워 있었으나 점점 가라 앉는 듯한 기분이 들어 자리를 박찬 것이다. 숲에 들어오니 극적인 변화가 일어 났다. 그것도 즉각적이다.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여섯 가지 세계가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정신의 감역을 말한다. 숲에 들어오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시각적으로는 온통 초록뿐이다. 청각적으로는 새소리뿐이다. 후각적으로는 향내뿐이다. 일상에서 접하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다. 전혀 새로운 세계에 온 것이다.
멀리 가지 않았다. 무덤 가에 자리 잡았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이다. 새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최소한 다섯 종류 이상의 새소리가 들린다. 소리도 다양하다. 큰 새는 소리가 크고 우렁차지만 작은 새는 여리지만 날카롭다. 여기저기서 서로 노래 자랑하는 것 같다.
저 새들은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 새들에게 “왜 사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 “사는 데 이유가 있나요? 그냥 사는 거지요.”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사는 데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산다면 축생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사는 데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이루려고 하는 것보다는 불교인이라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거룩한 삶을 살다보면 거룩한 존재가 될 것이다. 삶은 목적 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사람들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 간다. 이 세상에는 사람만 있는 것 같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미워하고 살아간다. 그런데 세상은 사람들만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람들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지만 이 세상에는 사람들만의 세상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도 있다. 숲에 가만 앉아 있어도 심심하지 않은 것이다. 자연인이 사는 삶의 방식일 것이다.
부처님은 숲에서 살았다. 어느 날 하늘사람이 “한적한 숲속에서 살면서 고요하고 청정한 수행자는 하루 한 끼만 들면서도 어떻게 얼굴빛이 맑고 깨끗합니까?”라며 물었다. 이에 부처님은 이렇게 답했다.
“지나간 일을 슬퍼하지 하지 않고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지 않으며
현재의 삶을 지켜 나가면
얼굴빛은 맑고 깨끗하리.
지나간 일을 슬퍼하고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때문에 시든다네.
낫에 잘린 푸른 갈대처럼.”(S1.10)
무덤가에는 쑥이 가득하다. 손톱을 이용하여 키가 작은 쑥을 뜯었다. 쑥은 따도 또 나오는 것이다. 뿌리를 뽑지 않는 한 또 순이 나오기 때문에 채취하는데 있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본래 주지 않는 것을 가져서는 안된다.
오계에서 불투도에 대한 것을 보면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삼가하는 학습계율을 지키겠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쑥을 뜯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주지 않는 것을 가져 가는 것이기 때문에 불투도죄에 해당된다. 그래서일까 출가한 수행승들은 함부로 초목을 꺽지 않는다. 배고프다고 하여 과일도 채취하지 않는다. 과일이 먹고 싶으면 과일 나무 아래 앉아 있으면 된다. 재가자가 그 모습을 보고서 과일을 따서 공양하는 것이다.
2020-05-0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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