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의무적 글쓰기
만시간의 법칙이 있다. 이 말을 알게 된 것은 지난 대선 때이다. 안철수에 따르면 매일 서너시간씩 십년을 집중하면 누구나 프로페셔널이 된다고 했다. 이런 말이 있는 줄도 몰랐으나 나의 경우에 견주어 보았을 때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쓰기를 하고 있다. 의무적 글쓰기를 말한다. 매일 뭐든지 써야 한다. 주제를 정해 놓고 쓰는 것도 아니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을 쓰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삼일 푹 묵혀 놓은 것도 있다. 닭이 알을 품듯이, 머리 속에 저장해 놓으면 저절로 스토리가 형성된다. 다 익었을 때 쓰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쓰다 보니 14년 되었다. 그것도 매일 쓰다시피 했다. 한번 쓰면 오전이 다 가다시피 했다. 어느 날은 오후까지 연장되기도 했다. 하루 일과의 반을 글쓰기로 보낸 것이다. 이쯤 되면 만시간의 법칙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있다. 이를 무엇으로 구분해야 할까? 화폐로 구분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프로는 돈을 버는 것이고 아마추어는 돈을 쓰는 것이다. 프로는 직업으로 하는 것이고 아마추어는 취미로 하는 것이다. 실력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프로바둑과 아마추어바둑과의 차이가 이를 말해준다.
돈을 버는 사람은 모두 프로페셔널이라고 볼 수 있다. 해당분야의 전문가인 것이다. 음식전문가도 있다. 식당에 종종 ‘전문’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남들이 못하는 비법이 있음을 말한다.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
돈벌기가 쉽지 않다. 남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가져오려면 그에 걸맞는 서비스와 만족이 제공되어야 한다. 식당에 갔는데 맛이 없다면 다시는 찾지 않을 것이다. 일 못하는 직원은 해고당할 것이다. 회사는 자선사업단체가 아니다. 이익이 나야 회사를 유지할 수 있다. 직원은 자신이 가져 가는 월급의 세 배 이상 일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회사가 유지된다.
회사에서는 종종 경력자를 뽑는다. 자격은 해당분야에서 3년이상 경력자가 보통이다. 3년이라면 어느 정도의 숙련도를 말하는 것일까? 만시간의 법칙에 따르면 이미 프로페셔널이다. 매일 8-9시간씩 3년을 일했다면 만시간이 되는 것이다. 3년 경력을 요구하는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반복하여 숙달하면 달인이 된다. TV에서 ‘생활의 달인’을 보면 눈을 감고도 척척 해낸다. 반복하다 보면 도가 트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매번 똑같은 곡을 연주한다. 그러나 연주할 때마다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날그날 미묘한 차이는 있다. 그럼에도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숙달하기 위해서이다.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보면 눈물겨울 정도이다. 한컷을 찍기 위해 똑같은 행위를 수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감독의 마음에 들때까지 반복한다. 감독이 어느 정도 만족했을 때 끝난다.
직장생활을 20년 했다. 셋톱박스 개발자로 20년 산 것이다. 회로설계에서부터 양산에 이르기까지 주로 하드웨어설계를 담당했다. 수많은 모델을 개발했다. 개발해 놓은 것은 기념으로 갖고 있다. 사무실 한켠에 수십대 있다. 물론 혼자 다한 것은 아니다. 협업한 것이다. 하나의 상품이 시장에 나오기까지 디자인, 기구, 회로, 프로그램 등 전문가들이 붙는다. 모두 월급받는 사람들이다. 월급 받는 것 자체가 프로페셔널임을 말한다. 어떤 이는 해당분야에서 20년, 30년 경력을 가지고 있다. 기술에 관한한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장인이다. 이런 사람이 있어서 회사가 유지된다. 어느 분야에서나 전문가는 있기 마련이다.
아직도 현업에서 활동하고 있다. 남들은 정년퇴임하여 놀고 있지만 현업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 기반이 약하다는 말이 된다. 주식 등 불로소득이 되는 투기를 일체 하지 않는다. 경전에 쓰여 있는 가르침대로 살고자 한다.
“디가자누여, 세상에 훌륭한 가문의 아들이 근면한 노력으로 얻고 두 팔의 힘으로 모으고 이마의 땀으로 벌어들이고 정당한 원리로 얻어진 재물을 지니고, ‘이 재물은 왕도 빼앗을 수 없고, 도둑도 빼앗을 수 없고, 불도 태울 수 없고, 물도 휩쓸 수 없고, 악의적인 상속자가 빼앗을 수 없다.’라고 생각하여 그것들을 수호하고 그것들을 보존합니다. 디가자누여, 수호를 갖춤이란 이와 같습니다.”(A8.54)
일인사업자로서 삶을 살고 있다. 경전에서와 같이 ‘팔뚝의 힘’과 ‘이마의 땀’으로 살고자 한다. 올해로 15년째이다. 회사생활 20년, 사업자 15년 합하여 35년 동안 돈을 벌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감히 프로페셔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돈벌기가 쉽지 않다.
직장인이라면 사장이 바라는 것만큼 해 주어야 한다. 사업자라면 고객이 요구하는 것이라면 군말없이 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어느 직장인은 자신이 받은 월급의 반은 욕먹어 가면서 번 것이라고 했다. 갖은 모욕과 수모를 겪어 가면서 욕먹은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 돈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것이다. 눈물로 얼룩진 월급이라고 볼 수 있다.
프로는 돈을 벌지만 아마추어는 돈을 쓴다. 취미활동을 하려면 돈을 필요로 한다. 무언가 배우려고 하면 강습료를 내야 한다. 이때 가르치는 사람은 프로이고, 배우는 사람은 아마추어이다. 프로와 아마추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격차가 크다. 이렇게 본다면 글쓰기는 아마추어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책 한권 내지 못했다. 다만 문구점에 인쇄와 제본을 의뢰하여 보관용으로는 열 권 출간한 바 있다. 그러나 개인문집용에 가깝다. 세상에 내놓을 만한 것은 아니다. 블로그에 올려 놓은 것을 보관용으로 만든 것이다. 그동안 써 놓은 것을 책으로 낸다면 백권가량 될 것 같다. 매달 한두권 내는 것이다. 이것도 어쩌면 취미일 것이다.
글은 취미로 쓰고 있다. 프로페셔널의 글쓰기가 아니다. 학자의 논문도 아니고 스님의 법문도 아니다. 보통불자가 그날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써 놓은 ‘생활잡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루일과 반은 글쓰기로 보낸다. 요즘은 본업과 부업이 뒤바뀐 것 같다. 돈이 되는 본업보다는 돈이 되지 않는 글쓰기에 더 열중하기 때문이다.
매일 쓰다보니 글쓰기도 느는 것 같다. 처음 글쓰기 할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차이를 느낀다. 몇 단계 거쳤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만이 아는 것이다. 마치 운동하는 것과 같다. 운동하면 근육이 생기듯이, 자꾸 쓰다 보니 필력이 생기는 것 같다. 수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꾸준히 하다 보면, 근육이 생기듯이 또는 필력이 생기듯이 수행력이 생겨날 것이다. 매일 서너시간씩 10년을 수행했다면 프로페셔널이 될 것이다. 다른 말로 도사가 되는 것이다.
의무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글을 쓰는데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다. 밥 먹는데 이유를 묻지 않는 것과 같다. 글쓰기는 일상이다. 의무적 글쓰기로 10년 이상 살다 보니 일상이 되었다. 아제 밥 먹는 것과 다름없이 되었다. 수행도 일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매일 세 시간 좌선과 행선을 병행한다면 10년 후에는 도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만시간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글쓰기가 일상이 되듯이 수행도 일상이 되어야 한다. 의무적 글쓰기를 하듯이, 의무적 수행이 되어야 한다. 나도 10년 후에는 도사가 될 수 있을까?
2020-05-0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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