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사년만에 행운목 꽃대가

담마다사 이병욱 2020. 4. 26. 13:58

 

사년만에 행운목 꽃대가

 

 

아침해가 찬란하다. 변화무쌍한 것이 날씨라고 하지만 오늘따라 세상이 유난히 밝고 환한 것 같다. 최근 며칠간의 우중충한 날씨와 비교되어서 일 것이다. 일요일 아침인 영향도 있을 것이다.

 

일요일 아침은 평온한 분위기이다. 더구나 사월도 끝자락으로 치닫고 있다. 예년과 다르게 신록이 일찍 시작된 것 같다. 싱그러운 사월의 아침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일요일 아침에도 불구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일터인 사무실은 제2의 집과 같다. 하루 일과 대부분을 보내는 곳이다. 남들은 주말에 집에서 쉰다고 하지만 일인사업자에게 주말이 있을 수 없다. 일이 있든 없든 사무실로 향한다. 어서 빨리 가서 써야 되기 때문이다. 의무적 글쓰기를 말한다.

 




오랜만에 걸었다. 아침햇살을 듬뿍 안고 학의천 길을 따라 갔다. 중간지점은 쌍개울이다. 학의천과 안양천이 만나는 곳이다. 쌍개울은 일종의 쉼터와 같은 역할도 한다. 오늘이 일요일이어서일까 싸이클링 동호회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다. 쌍개울에서 북쪽으로 가면 한강에 이르고, 동쪽으로 가면 강남에 이르고, 남쪽으로 가면 수원에 이르는 교차점에 있다.

 




학의천에 물새들이 평화롭게 노닐고 있다. 마치 가마우지처럼 보이는 검은 물새도 있고 컬러풀한 청둥오리도 보인다. 싱그로운 신록의 아침에 보는 학의천 물새들을 보니 사람만 사는 세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쌍개울 무지개 다리를 건너 일터로 향했다. 도중에 굴다리를 지나야 한다. 전철이 지나는 곳이다. 목적지인 사무실에 도착했다. 한시바삐 해야 할 일이 있다. 행운목에 물주는 것이다. 오랜만에 꽃대가 보였기 때문이다.

 

꽃대가 보이면 꽃이 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물을 많이 필요로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화분 가득 물을 주었다. 행운목만 주기만 미안해서 20개 가까이 되는 화분에 모두 주었다. 식물은 물만 주어도 잘 자란다.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것이 많다. 식물도 그 중의 하나이다. 물만 주는 것임에도 자라는 것이다.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번 정도 생각날 때 물을 준다. 어떻게 물만 먹고도 싹이 나고 줄기가 커지고 꽃을 피워 내는 것일까?

 

행운목은 13년 된 것이다. 2007년 말에 사무실 입주와 함께 화원에서 사온 것이다. 그때 4만원 정도 주었던 것 같다. 자동차에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그러나 13년이 지난 현재 천정에 닿았다. 천정을 쳐서 더 이상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그곳에서 꽃대가 나온 것이다.

 




이제 이삼일 지나면 행운목꽃이 필 것이다. 그런데 행운목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섯 번 정도 핀 것 같다.

 

행운목꽃이 처음 핀 것은 2010년도의 일이다. 행운목을 사온지 3년만에 핀 것이다. 그때 감격을 에만 피는 행운목꽃은 어떻게 생겼을까’(2010-12-19)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다. 그때 행운목꽃을 처음 보았고 그것도 밤에만 피는 야행성임을 알았다.

 

행운목꽃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사무실에 식물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사 온 것이다. 어느 날 사무실을 방문한 법우님이 “아직 꽃이 피지 않았느냐”고 물어 보았다. 행운목의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행운목에 꽃이 핀다는 것은 나와 관계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꽃대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단지 물만 주었을 뿐인데 행운목 특유의 향내와 함께 독특한 꽃모양을 드러낸 것이다.

 

행운목꽃은 꽃보다 향기라고 볼 수 있다. 처음 향기를 접했을 때 이른 아침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향내가 진동한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엘리베이터의 공기를 정화하기 위하여 향수를 뿌려 놓을 때가 있는데 그런‘상큼한’ 향내와 매우 비슷하였다.”라고 적어 놓았다. 향내가 너무 강렬하여 환기를 시키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던 것이다.

 

처음 접하는 행운목꽃은 신기했다. 행운목꽃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에 수많은 덩어리로 된 꽃다발 달고 있었다. 원형으로 된 꽃 다발 내부에는 수많은 꽃이 뭉쳐있다.”라고 묘사했다. 특히 처음 접하는 꽃의 독특한 특징에 대하여 밤이 되었다. 밤이 되자 행운목의 꽃이 일제히 피었다. 낮에 오무리고 있던 꽃잎이 날씨가 껌껌 해지자 꽃잎을 펼쳐서 마치 밤송이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향내 또한 매우 강렬하게 진동한다. 이런 특징으로 보아 행운목의 꽃은 밤에 꽃이 피는 야행성으로 보인다.”라고 써 놓았다.

 

행운목은 사무실의 역사와도 같다. 사무실 오픈과 함께 지금까지 늘 함께 해 오고 있다. 비록 말이 없는 식물이라고는 하지만 지난 13년의 과정을 다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또 꽃이 핀 것이다.

 

행운목꽃이 매년 피는 것은 아니다. 처음 꽃이 피고 다음해에도 연속으로 피었고, 그 다음해에는 두 번이나 피었다. 한동안 뜸하다가 또 피기도 했다. 이번에 핀다면 사년만에 핀다.

 

행운목꽃이 필 때마다 기록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핀 것은 2016년의 일이다. 그때 물에도 격() 있다, 또다시 만개한 행운목꽃을 보며’(2016-11-26)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다. 글에서 해 핀 행운목꽃을 보니 두 개의 가지에서 피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한 개의 가지에서 피면 다른 가지는 쉬는 것이 보통입니다. 가지마다 번갈아 가며 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의 경우 가지 두 개에서 피었습니다.”라고 적어 놓았다.

 

사년만에 꽃대가 나왔다. 다시는 피지 않을 것 같았었는데 꽃대를 보니 너무 반가웠다. 마치 고목나무에 꽃이 핀 것 같다. 천정을 쳐서 수명이 다한 것 같았는데 또다시 꽃대가 나온 것이다. 마치 아기가 태어나면 출산준비를 하는 것처럼 사무실에 오자마자 물부터 흠뻑 주었다. 며칠 지나면 사무실에 행운목꽃 특유의 향내가 진동할 것이다.

 

 

2020-04-2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