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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할머니 깍아내리기를 보며

담마다사 이병욱 2020. 5. 27. 07:46

 

이용수할머니 깍아내리기를 보며

 

 

이번 4.15총선에서 민주진보진영은 대승을 거두었다.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도 한몫했다.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국격의 향상도 작용했다. 또한 진보 스피커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유튜브시대에 빅스피커의 한마디는 투표율에 영향을 준다. 이른바 ‘몰빵론’이 대표적이다. 진보진영의 빅스피커는 비례정당 투표에 대해 ‘묻지마’투표를 유도했다. 급조된 위성정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 달라는 것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몰빵론은 먹혀 들어 갔다. 방송할 때마다 조회수가 백만에 달하는 유튜브의 위력이 발휘된 것이다. 당초 빈그릇 플랫폼 정당을 표방했으나 무려 10명을 채워 넣었다. 불과 2-3일만에 채워 넣었다. 그러다보니 충분히 검증이 되지 않았다. 이번 윤미향 사건은 예고된 참사나 다름없다.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준비된 자가 정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혀 준비되지 않은 시민사회운동 활동가를 정치판으로 끌어 들였을 때 자질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면으로 볼 때 윤미향사건은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또 다시 유사한 사건이 터져 나올 가능성이 있다. 그럴 때마다 빅스피커는 바람막이 역할을 해 줄 것이다. 몰빵론 등으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여론이 악화되어도 지켜 내야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편을 깍아 내려야 한다.

 

이번 윤미향 사건으로 놀라운 현상을 보고 있다. 이용수할머니를 깍아 내리고 있는 민주진보진영 사람들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뉴스나 게시판, 유튜브 댓글을 보면 할머니에 대한 ‘집단 이지메’를 가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할머니의 권이 유린당하고 있다.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전에 볼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용수할머니 깍아내리기는 스피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아군과 적군을 명확히 구분하여 적군이라 판단되면 쳐 내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대상이 할머니가 되었다는 것이다. 할머니 배후에 곽상도 등 미통당 사람들이 있는 것이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윤미향살리기’ 있다고 볼 수 있다. 윤미향 당선자를 살리기 위해 할머니를 깍아내리는 것이다.

 

페이스북이나 카톡 등 에스엔에스(SNS)에서는 할머니에 대한 비난으로 넘쳐난다. 기사나 게시판, 유튜브의 댓글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단지 윤미향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맹폭하는 것이다. 윤미향이 국회의원이 된 것에 대해서는 시기와 질투가 작열하여 ‘노욕을 부린다’고 비난한다. 한일간 친하게 지내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어이가 없다’라며 매수된 것으로 비난한다. 스피커의 말만 듣고 추동하는 것 같다. 기자회견 동영상을 직접 들어 보면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소문만으로 재단하려 한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위안부할머니들이다. 단지 반대편에 서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비난하고 깍아 내리려 한다면 두 번, 세 번 능멸하는 것이 된다. 마치 욕먹은 자를 욕하고, 맞은 자를 또 때리는 것과 같다. 이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분노를 끊어 편안히 잠자고

분노를 끊어 슬프지 않네.

참으로 하늘사람이여,

뿌리엔 독이 있지만

꼭지에 꿀이 있는 분노를

죽이는 것을 성자는 가상히 여기니,

그것을 죽이면 슬프지 않기 때문이네.” (S1.71)

 

 

이 게송은 ‘분노의 가학성(加虐性)’에 대한 것이다. 게송에서 “뿌리엔 독이 있지만 꼭지에 꿀이 있는 분노”라고 했다. 분노의 가학성을 잘 표현한 말이다.

분노하면서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꼭지에 꿀이 있는 분노”라고 했다. 그런데 분노하면 모든 것이 파괴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뿌리엔 독”이라고 했다.

 

분노에는 가학성이 있다. 분노하면서 쾌감을 느끼면 계속 분노하게 된다. 더구나 집단으로 분노하면 그 쾌감은 더욱 더 증대될 것이다. 마치 꿀이 달콤해서 계속 꿀을 찾는 것과 같다. 이는 다름 아닌 가학이다. 욕먹은 자를 욕하고, 매맞은 자를 또 때리며 쾌감을 얻는 것과 같다. 마치 사디스트(sadist)와도 같다.

 

이용수할머니가 뭇매를 맞고 있다. 할머니는 일제 강점시절 꽃다운 나이에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위안부로 끌려 가서 능욕을 당했다. 시대를 잘못 만나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다. 이를 숨기지 않고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투쟁의 세월을 살아왔다. 그런데 단지 윤미향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집단 비난을 받고 있다. 그것도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로부터 갖가지 욕을 먹고 조롱당하고 있다. 마치 욕먹은 자를 욕하고, 맞은 자를 또 때리는 것과 같다. 상당수 민주진보진영의 네티즌 들의 거친말과 조롱을 보면 마치 사디스트적 가학을 보는 것 같은데 나만 그런 것일까?

 

 

분노에는 가학성이 있다고 했다. 분노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에스엔에스나 댓글에서 이용수할머니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사디스트적 가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분노에는 쾌감도 있지만 동시에 독도 있다는 것이다. 그 독은 파멸적으로 작용한다. 분노는 본래 파괴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친구와 말다툼하여 화를 냈다면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배기라고 하지만 버럭 화를 냈을 때 정상으로 돌아오는데는 꽤 오래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부모자식간에도 분노는 파괴적으로 작용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감정이 실린 화를 냈다면 자식은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이다. 하물며 사회생활은 말할 것도 없다. 고객과 싸우면 다시는 주문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화를 냈을 때 그는 다시 만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분노는 모든 면에 있어서 파괴적으로 작용된다. 분노하면 그 순간에 쾌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인간관계는 파탄난다.

 

분노는 양면성이 있다. 그래서 분노는 꼭지에 있는 꿀과 같고, 뿌리에 있는 독과 같다고 했다. 또 분노에는 가학성이 있다고 했다. 욕먹은 자를 욕하고, 맞은 자를 또 때리는 사디스트적 가학성을 말한다. 단지 윤미향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해서 이용수할머니를 비난하는 것은 사디스트적 가학에 지나지 않는다. 윤미향을 살리기 위해 할머니를 깍아 내리는 것은 민주진보진영의 가치에도 맞지 않는다.

 

윤미향과 정의연은 할머니들과 어떤 관계일까? 분명한 사실은 할머니들이 있어서 정의연도 있고 윤미향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할머니들은 ‘고객’과도 같다. 그리고 ‘갑(甲)’과도 같다.

 

사업을 잘 하려면 고객을 감동시켜야 한다. 고객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해 주었을 때 감동할 것이다. 고객을 흡족하게 해 주었을 때 계속 주문할 것이다. 정의연과 할머니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들이 불편해하고 있다. 특히 빅마우스라고 볼 수 있는 이용수할머니가 거칠게 비난하고 있다. 이를 누군가는 ‘갑질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고객관리 차원에서 본다면 정의연과 윤미향이 제대로 역할을 못한 것이다.

 

고객이 불편해하면 들어 주어야 한다. 고객이 있어서 사업을 하는 것이다. 고객없는 사업은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정의연과 윤미향에게는 할머니들이 고객이다. 과연 할머니들 없는 정의연과 윤미향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할머니들이 없는 정의연과 윤미향은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다. 정의연과 윤미향은 할머니들과 함께 있을 때 존재가치가 있다. 할머니들을 떠나 있다면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어서 더 큰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들 곁에 있으면서 일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

 

이용수할머니를 노욕이라고 비난하지만 비난 받아야할 사람은 윤미향이다. 이미 당선자신분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웠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것이다. 진정으로 할머니들을 위해서라면 정치판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정치판에는 윤미향보다 더 훌륭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이용수할머니의 노욕이 아니라 윤미향의 ‘권력욕’에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진보진영의 상당수 사람들은 할머니가 단지 반대편에 섰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할머니를 깍아내리고 있다. 윤미향을 살리기 위해 할머니를 깍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분노에는 쾌감도 있지만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독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할머니에게 분노하며 쾌감을 느낀다면 동시에 민주진보진영을 파멸로 이끌 것이다. 당장 보궐선거 등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기 쉽다. 거대여당이라는 자만이 독()이 되어 내리막길을 걸을 수 있음을 말한다. 윤미향 당선자를 살리고자 할머니를 깍아 내리고자 한다면 반드시 큰 과보를 받게 될 것이다.

 

 

2020-05-27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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