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분노를 보고
오늘 위안부할머니와 관련된 기사를 보고 판이 크게 기울었음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당선자 워크숍에서 기자들과 한말이 그것이다. 우 의원이 말하기를 “할머니의 분노는 ‘내가 정치를 하고 싶었는데 나를 못하게 하고 네가 하느냐, 이 배신자야’로 요약할 수 있다.”(한겨레, 2020-05-27)라고 했다.
이용수할머니는 2차 기자회견장에서 분노했다. 그리고 배신자라는 말을 했다. 왜 이렇게 할머니가 분노하는지, 그리고 왜 배신자라는 말을 하는지에 대하여 잘 몰랐다. 유튜브로 기자회견 전과정을 본 바에 따르면 할머니는 몹시 격앙되어 있었다. 말도 또박또박 잘 했고, 92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기억력도 좋았다. 그래서일까 활동가로도 알려졌다. 그런 할머니가 2012년 국회의원출마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2012년에 할머니가 국회의원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MB정부 시절이다. 아마도 큰 파장을 일으켰을 것임에 틀림없다. 피해 당사자가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때 당시 윤미향이 말렸다는 것이다. 나이도 많고 다른 할머니들이 싫어 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2020년이 되었다. 이번에는 윤미향이 국회의원이 되었다. 누구 추천으로 되었을까? 이에 대하여 28일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우희종 교수는 시민당에서 추천했다고 했다. 그것도 불과 이삼일만에 결정된 것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이용수할머니와 협의는 없었다고 했다. 그럴만한 시간도 없었고 경황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졸속으로 결정된 것이 화근이 되었다. 할머니의 동의를 얻지 않고 기회가 오자 시급하게 수락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문이 밝혀지고 있다. 할머니가 분노한 것도, 할머니가 배신자라고 한 것도 기자회견 다음날에 드러났다. 할머니는 분노할만했고 할머니는 배신자라고 소리칠만한 했다. 한일간 위안부문제 당사자인 할머니가 출마하고자 할 때는 말렸던 윤미향이 막상 자신에게 기회가 오자 덥석 물어 버린 셈이 된 것이다. 할머니는 안되고 자신은 된다는 것으로 오해될 수밖에 없다. 이를 ‘내로남불식’이라고 볼 수 있다.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윤로남불’이 될 것이다.
이번 윤미향 당선자와 이용수 할머니의 갈등은 우상호 의원이 말한대로 국회의원 출마와 크게 관련이 있다. 이런 갈등에 대하여 민주진보진영의 열성지지자들 중의 상당수는 윤미향을 살리고자 하고 있다. 문제는 윤미향을 살리고자 이용수 할머니를 깍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매우 바보 같은 짓이다. 세상에 불쌍한 사람을 깍아 내리는 것이다. 피해 당사자에 대하여 ‘노욕’부린다고 말하고, ‘왜구의 앞잡이’라고 한다. 심지어 ‘매춘부’라고까지 말했다. 이런 비난은 결코 국민들의 동의를 받지 못한다. 비난하려거든 할머니를 배후에서 조정하는 사람들을 비난해야 한다. 할머니를 비난하는 것은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고 패륜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윤미향을 살리기 위해서 할머니를 깍아 내리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최민희 전의원이 대담하는 것을 유튜브로 들었다. 말을 조리 있게 잘 하는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토론가이다. 그녀는 2012년 할머니의 출마를 문제 삼았다. 할머니도 출마하려 했는데 윤미향이 출마한 것 가지고 문제 삼는 것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할머니는 되고 윤미향은 안된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민주진보진영의 열성지지자들의 댓글을 보면 할머니의 노욕과 시기-질투를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27일 노컷뉴스에 따르면 윤미향은 8년전 할머니의 출마를 만류했다는 것이다. 최민희 전의원이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어떻게 말했을까? 아마도 윤미향살리기는 포기했을 것이다.
할머니가 분노하는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배신자로 한 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민주진보진영 일부사람들은 여전히 윤미향 살리기에 기대를 거는 것 같다. 그러나 대세는 기울어졌다. 여론 조사에서 전국민의 70% 가량 윤미향이 사퇴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또 민주당 내의 여론조사에서도 반 이상이 사퇴에 찬성했다. 이렇게 본다면 윤미향 살리기에 올인 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윤미향살리기에 올인한다면 수십만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유튜버의 영향이 클 것이다.
이번 4.15총선에서 패배한 미통당 국회의원들 일부는 보수우익 유튜버와 선을 긋고 있다. 이렇게 손절하다시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짜뉴스의 온상일 뿐만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진보진영에도 여론의 향방을 좌우하는 유튜버가 있다는 것이다. 막말과 욕설을 하며 음모론을 주장하는가 하면 때로 꼼수를 부리는 빅스피커를 말한다.
빅스피커는 4.15총선에서 ‘몰빵론’을 말했다. 위기론으로 만들어진 위성정당에게 표를 몰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묻지마’ 투표를 말했다. 유권자를 대상으로 몰빵투표나 묻지마투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위협이 될만한 당에 대해서는 ‘제2국민당’이 될 것이라 하여 네거티브전략을 썼다. 그런 위기론과 몰빵론, 제2국민당론은 먹혀 들어 갔다. 그 결과 민주당의 위성정당은 19석을 얻게 되었다. 그 중에 하나가 윤미향이다.
윤미향은 지난 30년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하여 헌신적인 활동을 해 왔다. 차라리 정치판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더 열심히 활동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급조된 위성정당에서 역시 급조된 후보자가 된 것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여기에 윤미향 당선자의 권력욕도 작용했을 것이다.
윤미향사건으로 인하여 대통령지지도는 떨어지고 민주당 지지율도 하락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앞으로 있게 될 보궐선거에서 지게 될지 모른다. 패스트랙 사건 등으로 약 15개의 보궐선거가 예정되어 있는데 윤미향 살리기에 올인한다면 민심을 잃어서 완패하게 될지도 모른다. 막말과 욕설, 꼼수로 특징지워지는 빅마우스의 말만 듣고 정치를 한다면 지난 총선때 폭망한 미통당처럼 될지 모른다.
시민단체 활동가는 도덕적이어야 한다. 조그마한 의혹이 있어도 일을 하기 힘들다. 도덕적 덕목이 생명인 활동가에게 있어서 의혹이 있다면 국회의원이 되었어도 일을 하기 힘들 것이다. 더구나 비토하는 할머니가 살아 있는 한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윤미향을 살리려고 하다가는 모두 다 망할 수 있다.
승패는 이미 결정됐다. 윤미향이 기자회견을 하여 대응하려 하지만 민심만 더욱 악화될 뿐이다. 작년 서초동과 여의도에서 수호하려던 조국과 다르다. 조국도 의혹만으로도 3개월도 안되어서 사퇴했다. 하물며 도덕적 가치를 생명으로 삼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에게 의혹이 있다면 국민정서법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이번 사건은 이미 결론이 난 것이나 다름없다. 윤미향을 살리기 위하여 할머니를 깍아 내리는 것은 폭망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대단히 어리석은 행위이다. 윤미향의 사퇴기자회견을 기대해 본다.
2020-05-2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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