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그늘막 같은 사람

담마다사 이병욱 2020. 6. 9. 14:59

 

그늘막 같은 사람

 

 

햇살이 강렬하다. 낮 온도는 30도가 넘어 간다. 확실히 계절이 바뀌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온 것이다.

 

봄날 호시절은 지나갔다. 이제 혹독한 계절이 시작된다. 잠 못 이루는 열대야, 그리고 끈적끈적한 무더위가 기다리고 있다.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호시절에는 호시절이 있는 줄조차 모르고 지나간다. 온도와 습도는 적당하고 쾌적해서 호시절이라고 한다. 온갖 꽃들이 앞다투어 피고 연두색의 신록의 계절은 갔다.

 

혹독한 계절이 되어야 좋았던 때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만일 호시절만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다면 자극도 없을 것이다. 자극이 있어서 되돌아보게 된다. 힘들 때 자신의 처지를 보는 것이다. 늙고 병 들었을 때 옛날을 회상한다. 결국 이렇게 되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건강할 때는 병에 대한 교만으로 산다. 젊어서는 수명에 대한 교만으로 산다. 호시절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착각속에 살지만 세월은 내버려 두지 않는다. 중년은 청춘을 내치고, 노년은 중년을 내친다. 죽음의 침상에 누웠을 때 비로소 보인다. “나에게도 호시절이 있었다.”라고.

 

그늘막의 계절이 되었다. 요즘 신호등이 있는 곳이면 볼 수 있는 것이 그늘막이다. 뽈대를 세워 펼쳐져 있는 그늘막을 보면 커다란 우산을 연상케 한다. 아니 양산 역할을 하고 있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있을까?

 

 

겨울에는 대피소가 있다. 정류장에는 투명 비닐로 된 추위 대피소가 있어서 비바람과 강추위로부터 보호한다. 정류소 의자에는 전열장치까지 있다고 하는데 아직 보지 못했다. 정류소에서는 실시간으로 운행정보를 알려 준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있을까?

 

미국에서 약탈이 있었다. 흑인이 경찰에게 목 졸려 죽은 것이 발단이다. 한인 상점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이제까지 미국을 일등국가로 알고 있었다. 미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넘버원이 아니다. 약탈과 방화가 빈번하게 일어 나는 ‘넘버텐’일 뿐이다.

 

그늘막과 대피소를 보면 자연스럽게 ‘국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국뽕이 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그늘막 만한 것이 없다. 폭염에 잠시 양산이 되어 주는 것을 보면 한국은 ‘넘버원’이다. 이제 더이상 미국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늘막과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추울 때 대피소와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이런 사람이 친구일 것이다.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친구란 무엇일까? 친구에도 조건이 있을까? 알고 지낸다고 해서 모두 친구라고 볼 수 있을까? 디가니까야에 우정의 가르침이 있다. 경에 따르면 “1)도움을 주는 사람, 2)즐거우나 괴로우나 한결 같은 사람, 3)유익한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 4)연민할 줄 아는 사람”(D31.16)을 친구라고 했다. 두 가지로 요약하면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사람,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 친구의 조건이다. 과연 나는 그 사람에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학교친구가 있다. 스무살 때부터 함께 했다. 정말 친구라고 볼 수 있을까? 경사와 조사를 함께 했으니 친구라고 볼 수 있다. 필요할 때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럼 연민할 줄 아는가?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손을 내민다면 친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울 때 “나 몰라라.”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침묵만 지킨다면 친구가 아니다. 단지 알고 지내는 사이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말로 ‘지인’이라고 할 것이다. 40년을 함께 했어도 도움을 줄줄 모르고 연민할 줄 모른다면 친구가 아니라 지인이다.

 

친구라 해서 같은 또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이 차이가 나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일곱 살 아이와도 친구 할 수 있다. 이성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 연민할 줄 안다면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친해지면 친구가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나이가 문제가 된다. 한살이라도 많으면 ‘형’ 또는 ‘언니’라고 부른다. 자연스럽게 형과 아우, 언니와 동생 관계가 형성된다.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새로운 패밀리 개념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울타리를 치는 것과 같다. 그 패밀리에 들어 가지 못하면 ‘아웃사이더’가 된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형님 대접을 받지 못한다.

 

재가불교활동을 하면서 아직까지 한번도 ‘형’ 또는 ‘형님’이라고 불러 본 적이 없다. 남들은 자연스럽게 “형!”이라고 말한다. 일이년도 아니고 오륙년도 아니고 이삼십년전 또는 삼사십년전 또는 그 이상 시절부터 형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학생시절 부터 끈끈한 인연이 백발이 되어서도 형이라 하는 것이다. 이른바 ‘듣보잡’이 보기에는 낯설은 것이다. 무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샘’ 또는 ‘선생’이라고 부른다. 나이와 상관없이, 성별과 상관없이 ‘샘’이라 부르면 무난하다. 그렇다고 친구라 할 수 없다. 친구는 여전히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 연민할 줄 알아야 친구이기 때문이다.

 

친구라고 해서 모두 다 똑같지는 않다. 친구중의 친구를 절친이라 해야 할 것이다.

절친(切親), 아주 가깝게 사귀어 정이 두터운 사람을 말한다. 영어로는 ‘best friend’이다. 그런데 한자어를 보면 ‘끊을 절(切)’자가 들어가 있다. 친구를 끊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본어 중에 ‘가이샤쿠(介錯)’를 연상케 한다.

 

가이샤쿠는 목을 쳐 주는 사람을 말한다. 셋푸쿠(切腹) 할복할 때 등 뒤에서 목을 쳐 주는 사람을 ‘가이샤쿠닌(介錯人)’이라고 한다. NHK 대하드라마 ‘신센구미(新選組)’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할복할 때는 배를 가르는 시늉을 한다. 그때 등 뒤에서 목을 쳐 준다. 고통 없이 단번에 죽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할복자는 가이샤쿠닌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개 친한 친구나 선배, 또는 아끼는 후배에 부탁한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절친이라 했을 것이다. 이는 사우(死友)를 뜻한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서로를 져버리지 않는 친구를 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절친은 어떤 케이스일까? 디가니까야에 절친이 언급되어 있다.그래서 “1)비밀을 털어놓고, 2)비밀을 지켜주고, 3)불행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고, 4)목숨도 그를 위해 버린다.”(D31.16)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런 친구가 요즘말로 절친이다. 핵심은 비밀을 털어 놓고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절친이다.

 

비밀을 털어 놓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비밀이 약점이 될 것이다. 비밀이 약점으로 작용해서 불이익 받을 것이다. 그래서 비밀을 털어 놓아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비밀을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이 절친인 것이다. 과연 나는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절친이 있을까?

 

비밀을 털어 놓고 비밀을 지켜주면 절친이다. 아직 절친은 없다. 비밀을 털어 놓을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내가 절친일까? 반드시 그렇지 않다. 부부사이에도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유행가 가사 중에는 “우린 비밀이 없어요.”라고 노래하지만, 비밀을 털어 놓고 사는 부부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부사이만큼 친한 사이는 없다.

 

가장 이상적인 아내는 친구같은 아내이다. 가장 이상적인 남편은 친구같은 남편이다. 왜 친구 같은 아내일까? 앙굿따라니까야 ‘일곱 종류의 아내의 경’에 따르면, 친구같은 아내에 대하여 “친구가 멀리서 오면 친구를 보고 기뻐하듯 여기 아내가 남편을 보고 기뻐한다.”(A7.63)라고 했다. 친구 같은 남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아내, 이런 남편은 절친이라고 볼 수 있다.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고 비밀을 지켜 주기 때문이다.

 

뜨거운 계절이 돌아왔다. 그늘막을 보면서 국뽕이 된다. 그늘막을 보면서 그늘막과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사람,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다. 형이 되어 주거나 선배가 되어 주는 것보다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 더 낫다. 이왕이면 절친이 되어 주는 것이다. 비밀을 말 할 수 있고 비밀을 지켜 주는 것이다. 어디 그런 친구 없나?

 

 

2020-06-0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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