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잠 잘 때는 송장처럼

담마다사 이병욱 2020. 6. 11. 09:57

 

잠 잘 때는 송장처럼

 

 

벌써 열대야인가? 끈적끈적한 것이 불쾌하다. 이틀 된 것 같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되었다. 처음으로 선풍기 신세를 졌다. 올 여름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잠이 깨니 잠이 달아나서 잠을 이룰 수 없다. 잠은 잠이 와야 자는 것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글쓰기만한 것이 없다. 한땀한땀 똑똑 치다보면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잠못 이루는 밤에 떠 오르는 말이 있다. 송장처럼 뒤척이지 말고 자라는 것이다. 이 말은 담마마마까 법요집에 있는 말이다. 선원생활수칙에 있는 말이다. 참고로 미얀마 담마마마까 선원생활수칙은 다음과 같다.

 

1) 그대의 눈이 밝을지라도 장님처럼 행동하라.

2) 그대의 귀가 밝을지라도 귀머거리처럼 행동하라.

3) 그대의 말이 웅변일지라도 벙어리처럼 행동하라.

4) 그대의 몸이 건강할지라도 환자와 같이 행동하라.

5) 잠자리에 들어서도 뒤척이지 말고 송장처럼 가만히 관찰하면서 잠들어라.

 

담마마마까는 양곤 외곽에 있는 국제선원이다. 4만평이 넘는 대지에 정원처럼 잘 가꾸어져 있어서 공원같다. 숙소는 일인일실일욕실을 특징으로 한다. 혜송스님의 원력으로 이루어진 한국선원이기도 하다.

 

 

선원에서는 새벽 3시 반이 되면 종소리가 난다. 4시에 시작되는 좌선에 참여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도 3시경에 눈이 떠지면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것 같다. 더 이상 자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에는 선원생활수칙 5번째 항목 영향도 있다. 잠 잘 때는 송장처럼 뒤척이지 말고 자라는 말 때문이다.

 

송장처럼 자라고 했다. 송장은 시체를 말한다. 시체는 죽은 것이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 송장처럼 자라는 것은 죽은듯이 자라는 것과 같다. 또 꿈꾸지 말고 자라는 말과 같다.

 

잠 자리에 들 때도 사띠해야 한다. 늘 깨어 있음을 말한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잠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죽음보다 더 깊은 잠을 자게 될 것이다. 또 꿈을 꾸지 않게 될 것이다. 잠에서 깰 때도 사띠하며 깰 것이기 때문에 송장처럼 뒤척이지 말고 자라고 했을 것이다.

 

송장처럼 잔다는 것은 깨어있음과 관련이 있다. 잠 자는 때를 제외하고는 늘 깨어 있는 것이다. 깨어 있음에 전념하는 것이다. 그래서 열반을 지향하는 불퇴전의 수행자라면 “계행을 갖추는 것과 감각능력의 문을 수호하는 것과 음식을 먹을 때 알맞은 분량을 아는 것과 깨어 있음에 전념하는 것이다.”(A4.37)라고 했다.

 

깨어있음에 전념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경에서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깨어 있음에 전념하는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수행승들은 낮에는 거닐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것들로부터 마음을 정화시킨다. 밤의 초야에도 거닐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것들로부터 마음을 정화시킨다. 밤의 중야에는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여 사자의 형상을 취한 채, 한 발을 다른 발에 포개고 새김을 확립하여 올바로 알아차리며 다시 일어남에 주의를 기울여 눕는다. 밤의 후야에는 일어나 거닐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것들로부터 마음을 정화시킨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승은 깨어 있음에 전념한다.”(A4.37)

 

 

깨어있음에 전념한다는 것은 행주좌와와 어묵동정간에도 적용된다. 잠 잘 때를 제외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잠 잘 때는 잠을 자야 한다. 다만 시체처럼 죽은 듯이 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잠들 때와 잠에서 깰 때도 깨어 있어야 한다. 간격이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새김을 확립하여 올바로 알아차리며 다시 일어남에 주의를 기울여 눕는다.”(A4.37)라고 했다. 잠 들 때는 일어 날 때 알아차림하며 깰 것을 염두에 두고 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꿈이 있을 수 없다.

 

부처님 가르침에 꿈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수만개나 되는 경에서 꿈과 관련된 경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반면 깨어 있음을 뜻하는 사띠에 대한 가르침은 수도 없이 많다. 대개 “새김을 확립하여 올바로 알아차리며(sato sampajāno)”라고 표현된다.

 

하루 종일 깨어 있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감각기관을 수호해야 할 것이다. 눈과 귀 등 여섯 감각기관의 문을 수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깨어 있음에 전념하는 것은 “감각능력의 문을 수호하는 것”과 항상 함께 한다.

 

여섯 감각능력 중에서 시각과 청각에 대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일까 선원생활수칙에서도 눈과 귀에 관련된 것이 있다. 눈이 있어도 장님처럼 행동하고,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처럼 행동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눈감고 귀막고 살아야 할 것이다.

 

깨어 있음에 대한 최대의 적은 아마 텔레비젼일 것이다. 드라마에 몰두하고 있다면 영혼을 털리는 것과 같다. 요즘은 유튜브시대이다. 유튜브를 즐긴다면 역시 영혼이 털리는 것과 같다. 말을 해도 깨어 있음에 방해가 된다. 말을 한다는 것은 사고작용에 해당되기 때문에 현재를 놓칠 수 있다. 그래서 “그대의 말이 웅변일지라도 벙어리처럼 행동하라.”라고 했을 것이다.

 

깨어 있음에 방해 되는 것은 모든 언어적 행위에도 해당된다. 말 하는 것, 독서하는 것, 글 쓰는 것도 해당된다. 일 하는 것도 깨어 있음에 당연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수행승에게 일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잠시도 가만 있지 않는다. 끊임없이 즐길거리를 찾는다. 눈으로는 매혹적인 형상을 찾는다. 귀로는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다. 또 끊임없이 먹는다. 그것도 오감으로 먹는 것이다. 또 끊임없이 떠들어 댄다. 가만 있으면 심심해서 견딜 수 없어 한다. 잠 잘 때는 꿈속에서 해멘다.

 

대상에 몰 할 때 자신을 잊어 버린다. 대상에 혼을 빼앗겨 버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감각의 문을 수호하고, 음식에 적당량을 알고, 항상 깨어 있음에 전념하라고 했을 것이다.

 

미얀마 담마마마까 선원생활수칙 다섯 가지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테라가타에 이런 게송이 있다.

 

 

“눈 있는 자는 오히려 눈먼 자와 같고, 귀 있는 자는 오히려 귀먹은 자와 같아야 한다. 지혜가 있는 자는 오히려 바보와 같고 힘센 자는 오히려 허약한 자와 같아야 한다. 생각건대 의취가 성취되었을 때 죽음의 침상에 누워야 하기 때문이다.”(Thag.501)

 

 

선원생활수칙과 비교해보면 마지막 문구가 다르다. 선원에서는 ‘잠 잘 때는 송장처럼 뒤척이지 말고 자라’고 했다. 테라가타서는 ‘의취가 성취되었을 때 죽음의 침상에 눕는다’고 했다. 송장처럼 자는 것과 열반이 동일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잠 못 이루는 열대의 밤이 시작되었다. 억지로 잠을 청하면 잠은 더 멀리 달아나 버린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글을 쓰면 좋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관찰하는 것이다. 가장 강한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다. 뚜렷하게 관찰할 것이 없다면 호흡을 관찰하는 것이다. 편하게 누워서 배에서 일아남과 사라짐을 관찰하는 것이다. 와선하는 것이다. 관찰하다 보면 잠 들게 될지 모른다. 송장처럼 자는 것이다.

 

 

2020-06-1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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