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절친 만들기 프로젝트

담마다사 이병욱 2020. 6. 20. 10:28

 

절친 만들기 프로젝트

 

 

친구의 기준은 무엇일까? 초기경전을 보면 명백하다. 디가니까야 ‘씽갈라까에 대한 훈계의 경’(D31)을 보면 친구의 조건이 있다. 좋은 친구의 조건은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도움을 주는 사람, 괴로우나 즐거우나 한결 같은 사람, 유익한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다.

 

친구도 친구나름이다. 좋은 친구도 있고 악한 친구도 있다. 악한 친구의 조건은 어떤 것일까? 경에 따르면 가져기만 하는 사람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져가기만 하는 사람, 적은 것으로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 두려움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 이익을 챙기기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다.

 

술친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이다. 가져 가기만 하는 사람은 악한 친구이다. 그렇다면 술친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친구를 만날 때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술친구는 기본적으로 악한 친구이기 쉽다. 술은 만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술로서 맺어진 친구는 술이 없으면 매개가 되지 않는다. 취한 상태에서 친구가 된다. 그러다 보면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른다. 도박에 빠질 수도 있다. 늘 취기가 있는 것, 늘 중독적인 것에 끄달리기 때문이다.

 

술친구를 사귀는 것은 위험하다. 악한 친구이기 쉽다. 경에서는 여섯 가지 악한 친구의 위험을 말하고 있다. 즉, 어떤 도박꾼, 어떤 도락가, 어떤 음주가, 어떤 사기꾼, 어떤 협잡꾼, 어떤 폭력배를 말한다. 악한 친구 여섯 가지 조건 중에 음주가가 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락가도 악한 친구에 해당된다. 왜 그런가? 즐기기만 하는 삶에는 발전이 없고 퇴보만 있기 때문이다.

 

도락가에는 네 가지 도락이 있다. 즉, 여자도락, 식도락, 과자도락, 금전도락을 말한다. 도락이라 하여 식도락만 있는 줄 알았으나 여자도락도 도락이고, 금전도락도 도락임을 알 수 있다.

 

술친구라 하여 모두 악한 친구는 아니다. 악하고 불건한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경계 하는 것이다. 늘 취기가 있는 상태에서는 어떤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술친구가 있지만,

친구라고, 친구라고 말만할 뿐입니다.

친구가 필요할 때에

친구가 되어 주는 자가 친구입니다.”(D31.13)

 

 

술친구도 친구이긴 친구이다. 만나기만 하면 술을 사신다면 술친구라 할 것이다. 그런데 취기가 있는 것은 취기를 부른 다는 것이다. 술친구와 사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경에서는 “도박과 여자, 술, 춤과 노래, 낮에 잠자고 때 아닌 때 돌아다니는 것, 악한 친구들이 있는 것, 인색한 것 이러한 여섯 가지는 사람을 파멸시킵니다.”(D31.13)라고 했다. 술친구는 나의 인생을 파멸시킬 가능성이 있음을 말한다.

 

사람을 만날 때 꼭 술을 마셔야 할까? 꼭 술집에서 만나서 술을 마셔야 할까? 찻집에서 차를 마시면 안되는 것일까? 취기가 있어야 진실된 말이 나오는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술로 맺어진 관계는 술이 없으면 이어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맨정신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말한다.

 

술친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다. 술친구를 사귀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 막걸리나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잡담이기 쉽다. 커피집이나 찻집에서 만날 수 있다. 맨정신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진실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지인과 친구의 차이는

 

며칠전 J샘과 카톡을 했다. 모임에서 재무를 담당하고 있는 샘이다.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몰라서 월말 정리를 도와 주기로 했다. 카톡으로 대화 하는 과정에서 절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절친은 어떤 조건일까? 절친의 조건도 초기경전에 분명히 나와 있다. 디가니까야에 따르면 네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비밀을 털어 놓고, 비밀을 지켜 주고, 불행에 처했을 때에 버리지 않고, 목숨도 그를 위해 버립니다.”(D31.16)라고 했다.

 

친구의 네 가지 조건은 ‘도움을 주는 사람, 괴로우나 즐거우나 한결 같은 사람, 유익한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핵심 두 가지를 든다면 도움을 주는 사람과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 둘 중에 하나를 든다면 단연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다.

 

연민할 줄 안다면 친구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연민할 줄 모르면 친구가 아니다. 그냥 아는 사이일 뿐이다. 요즘말로 지인(知人)이라 할 것이다.

 

비밀을 털어 놓을 사람

 

친구와 지인은 차이가 있다. 아는 사이라 하여 모두 친구가 될 수 없다. 친구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친구의 불행에 대하여 ‘나몰라’라 한다면 친구가 아니다. 친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친구이다. 그래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라며 연민해야 친구라는 것이다.

 

J샘에게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 친구라고 말했다. 이어서 절친의 조건에 대해서도 말했다. 절친이 되는데 네 가지 조건이 있다. 그 중에 가장 핵심이 되는 말은 비밀이다.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절친이다. 왜 그럴까?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 못할 비밀을 털어 놓았는데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곤란에 빠질 것이다. 나의 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된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비밀이 약점이 되어 불이익 받는다면 털어 놓지 않음만 못한 것이다.

 

아직까지 절친은 없다. 비밀을 털어 놓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비밀을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말한다. 이를 J샘에게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J샘은 절친이 세 명 있다고 했다.

 

좋은 친구는 삶의 전부

 

이 세상 살면서 비밀을 털어 놓을 만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 대부분 한명도 없을 것이라고 본다. 한명만 있어도 성공적인 인생이다. 절친이 있다는 것은 삶의 전부와도 같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우정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설했다. 부처님이 우정의 가르침을 설한 것은 좋은 친구를 사귀는 자들을 위한 것이지 나쁜 친구를 사귀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부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가르침을 설했다. 그런 부처님의 가르침은 약과 같다. 약은 복용하는 자에게만 효력이 있듯이,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좋은 친구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믿음이 있는 자에게만 실현된다.

 

아난다는 부처님의 우정의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서는 자신의 생각을 부처님에게 말했다. 아난다는 “세존이시여, 이러한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도반을 사귀는 것은 청정한 삶의 절반에 해당됩니다.”(S3.18)라고 말한 것이다.

 

아난다는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하여 인생의 절반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부처님은 이런 말에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라며 두 번이나 부정했다. 부처님은 좋은 친구에 대하여 “청정한 삶의 전부에 해당된다.”(S3.18)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부처님은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하여 인생의 전부와도 같다고 했다.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고, 비밀을 지켜 줄 수 있는 친구, 그리고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절친 하나만 있어도 인생은 성공적이라고 본다.

 

나보다 낫거나 동등하다면

 

부처님이 좋은 친구에 대하여 청정한 삶의 전부라고 본 것은 같은 길을 가기 때문이다. 그 길은 다름 아닌 팔정도의 길이다. 그래서 친구도 가려서 사귀라고 했다. 해탈과 열반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사귀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리석은 자와 길을 가지 말라고 했다. 법구경에 이런 게송이 있다.

 

 

“더 낫거나 자신과 같은 자를

걷다가 만나지 못하면,

단호히 홀로 가야하리라.

어리석은 자와의 우정은 없으니.”(Dhp.61)

 

 

어리석은 자와 우정은 없다고 했다. 어리석은 자와 길을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먹을 것이 떨어졌을 때 함께 담을 넘을지 모른다. 악하고 불건전한 행위가 증장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 보다 낫거나 동등한 자와 함께 길을 가라고 했다. 왜 그런가? 자신보다 나은 자와 길을 가면 계행과 삼매와 지혜가 성장하고, 자신과 동등한 자와 같이 가면 최소한 계행과 삼매와 지혜가 퇴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와 길을 가면 계행과 삼매와 지혜가 퇴락하게 된다. 그렇다고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연민과 연민의 대상으로 삼을 뿐이다. 그래서 사귀지도 말고, 가까이하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아야 한다고 했다.

 

새벽의 여명과 같은 친구

 

부처님은 좋은 벗과 사귀라고 했다. 그것도 청정한 삶의 전부와도 같다고 했다.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고, 비밀을 지켜 줄 수 있고,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친구가 한명만이라도 있다면 성공적인 삶이다. 이와 같은 친구의 중요성에 대하여 부처님은 여명의 비유를 들었다.

 

 

“수행승들이여, 태양이 떠오를 때 그 선구이자 전조가 되는 것은 새벽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 생겨날 때 그 선구이자 전조가 되는 것은 좋은 벗과 사귀는 것이다.”(S45.49)

 

 

부처님은 좋은 친구, 좋은 벗의 중요성에 대하여 새벽의 비유를 들었다. 아침 동이 트면 동녁이 훤하게 밝아 온다. 동이 트는 새벽이 되면 붉은 태양이 떠오를 전조가 되는 것이다. 친구도 그렇다는 것이다. 팔정도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좋은 친구는 새벽의 여명과도 같은 것이다.

 

세존을 벗으로 삼아”

 

훌륭한 우정은 새벽과 같은 것이다. 통찰을 갖춘 고귀한 길은 태양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절친이 있다는 것은 진리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힘이 된다. 그래서 부처님은 좋은 친구를 갖는 것에 대하여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도반과 사귀는 것이 청정한 삶의 전부라고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왜냐하면 세존을 벗으로 삼아, 태어나야 하는 존재가 태어남에서 벗어나고 늙어야 하는 존재가 늙음에서 벗어나고 죽어야 하는 존재가 죽음에서 벗어나며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빠져야 하는 존재가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서 벗어난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도반과 사귀는 것이 청정한 삶의 전부라고 알아야 한다.”(S3.18)

 

 

부처님은 “세존을 벗으로 삼아”라고 말씀했다. 이는 부처님을 친구삼으라는 것이다. 지금 부처님이 계시지 않지만 니까야를 접하면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니까야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가르침을 친구 삼으면 생, 노, 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또 당면하고 있는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과 더불어 절친이 있다면 더욱 더 벗어나기 쉬울 것이다.

 

친구요청을 받았는데

 

친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처가 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다. 그래서 진리의 길을 가는 도반들에 대하여 숭산스님은 ‘감자씻기 비유’로 설명했다. 감자를 하나씩 씻으면 시간이 걸리지만 한바구니 넣고 흔들면 서로가 서로를 씻겨 준다는 것이다.

 

세 사람이 있으면 그 중에는 본 받을만한 점이 있다고 말한다. 진리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좋은 도반이 있다면 그를 본받으려 할 것이다. 그처럼 되고자 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보다 낫거나 최소한 자신과 동등한 자와 사귀라고 했다. 비밀을 털어 놓고 비밀을 지켜 줄 수 있는 절친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J샘에게는 절친이 세 명 있다고 했다.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라고 했다. 이에 “훌륭합니다.”라며 칭찬해 주었다. J샘은 친구하자고 했다. 나이가 다섯 살 더 많고 더구나 여성임에도 친구하자고 했다. 진리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도움이 된다면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모임에서 ‘듣보잡’이 되었을 때

 

모임이나 단체 가면 아는 사람들이 있다. 모임에서는 서로 동등한 의미에서 호칭을 ‘샘’으로 하자고 했다. 선생의 약자라고 볼 수 있다. 쌤이라고도 하지만 샘솟듯 하는 의미에서도 샘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이와 성별에 관계 없이 샘이라고 호칭한다.

 

그러나 나이 든 법우님들에게 샘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어색했다. 그래서 ‘샘님’이라고 불렀다. 그랬더니 어느 법우님이 지적했다. 이중존칭과 같다는 것이다. ‘선생님님’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후 나이와 성별에 관계 없이 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샘이라는 부르는 것은 친구와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 친구라고 볼 수 있을까?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친구라고 했다. 그리고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 친구라고 했다. 특히 연민할 줄 알아야 한다.

 

연민할 줄 알면 모두 친구가 된다. 그러나 친구가 되기 쉽지 않다. 모임에서는 오랫동안 “형”이나“아우” 하며 호칭을 붙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들어 온 사람에 보기에는 소외감을 느낀다. 마치 그들만의 패밀리를 보는 것 같다. 그 패밀리에 속하지 않으면 아무리 나이가 있고 경륜이 있어도 ‘듣보잡’이 되는 것 같다.

 

연민할 줄 알아야

 

요즘 지인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한번이라도 안면이 있거나 말을 섞었다면 지인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지인을 친구라고 하지 않는다. 지인은 단지 알고 지내는 사이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같은 학번 동기들도 지인이 많다. 같은 또래로서 같은 학과를 다녔다고 해서 모두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없다. 모든 것을 귀찮아 하며 피곤해하며 나홀로 삶을 사는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없다. 친구는 모름지기 필요할 때 도움을 주어야 친구라고 볼 수 있다. 애사와 경사에 적극참여 하는 것도 친구의 조건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연민할 줄 알아야 한다.

 

자애와 연민은 아름다운 마음이다. 더 나아가 거룩한 마음이다. 이런 마음은 자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오는 마음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남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에게“행복하기를!”라며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이다.

 

연민의 마음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라는 아름다운 마음이다. 자애보다 더 깊은 마음이다. 슬픔과 고통을 함께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을 친구라고 했을 것이다.

 

지인은 많다. 스마트폰 주소록에 천 개가량 이름이 있다. 이들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없다. 나에 대하여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은 모두 친구가 된다. 그런 친구는 많지 않다. 손으로 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절친 만들기 프로젝트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 친구를 만드는데 반드시 나이가 같거나 또래일 필요는 없다. 나이가 적은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나이가 많은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성별을 떠나서 위로는 일곱여덟살, 아래로는 열대여섯살까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연민할 줄 안다면 상한과 하한은 철폐할 수 있다. 부모뻘 되는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고, 자식뻘 되는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어린 아이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지금부터 친구 만들기를 넘어 절친 만들기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한다.

 

J샘이 친구요청을 했다. 나이가 더 많고 여성이지만 친구로 하려 한다. 친구가 많아지면 그 중에는 절친도 생길 것이다.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 비밀을 지켜줄 수 있는 친구, 이런 친구 하나만 있어도 성공적일 수 있다.

 

 

2020-06-2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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