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사진은 폭력이다

담마다사 이병욱 2020. 6. 22. 10:55

 

사진은 폭력이다

 

 

페이스북에 사진만 덜렁 올려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아무런 설명 없이 사진만 올려 놓았을 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것이 경치에 대한 것이라면 여행자랑을 하는 것이 되고, 그것이 먹거리에 대한 것이라면 식도락 자랑이 된다.

 

흔히 “사진은 진실이다.”라고 말한다. 열마디 백마디 말보다도 한장의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사진은 진실이라기 보다는 폭력에 가깝다.

 

 

왜 사진이 폭력일까? 그것은 한순간에 포착된 것이 모든 것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순간만 포착하여 이것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과도 같다는 것이다. 마치 조선일보에서 따옴표 처리하여 프레임에 가두는 것과 같다.

 

노무현정부때의 일이다. 그때 종이신문을 보았다. 무료로 넣어 준 보수신문에는 대통령을 희화화 했다. 마치 개구리를 연상케 하듯이 입이 튀어 나온 뾰로퉁한 모습을 일면에 실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 한장의 사진이 대통령의 현재 모습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사진은 폭력이다.

 

페이스북 한지 4년 되었다. 이전에는 블로그만 집중했다. 그런데 페이스북과 불로그에 큰 차이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반드시 실명을 써야 했다. 블로그에서는 필명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시되어서 필명으로만 소통했다. 그러나 페이스북에서는 실명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런 것 때문에 오랫동안 페이스북 주변에서 머물렀다.

 

페이스북에서는 실명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출신지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출신학교도 밝히라고 했다. 모두 거절했다. 처음 페북할 때는 실명만 밝히고 얼굴을 숨겼다. 그랬더니 어떤 분이 “무엇이 두려워 얼굴을 공개하지 않습니까?”라며, 얼굴을 숨기면 친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페이스북에서 얼굴을 공개한 것은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 6개월 되었을 때이다. 처음에는 사진관에서 찍은 것을 공개하려고 했다. 이왕이면 잘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 두었다. 오히려 자연스런 모습이 보기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절에서 샘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선택했다. 얼굴 부위만 커팅하여 올려 놓은 것이다.

 

페이북에 한번 공개하자 카톡에도 문자메세지에도 공개하고 되었다. 공개 도미노가 일어난 것이다. 아직까지 블로그에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프로필 사진은 2년 된 것이다. 절 앞에서 잠시 포즈를 잡은 것을 프로필 사진으로 활용하고 있다. 과연 이 모습이 정말 내모습일까? 매순간 변화하고 있음에도 어느 날 한순간 포착한 것을 나라고 들이대민다면 이것이 진실일까?

 

사진은 진실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불교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진실이 아니다. 매순간 변하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불교에서 한순간 순간포착된 것을 진실이라고 말한다면 이를 진실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 더구나 사진에 이른바 뽀샵를 했다면 더욱 더 진실일 수 없다. 자신을 예쁘게 보이기 위해 눈을 더 크게 포토샵한다든가, 유혹하기 위해 신체의 특정 부위를 강조한다면 진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언어는 폭력이라는 말이 있다. 언어로 표현된 것은 진실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짤막한 구호는 더욱 진실이 될 수 없다. 정치구호 같은 것이다. 더구나 구호를 외친다면 사실상 폭력과도 같다. 길거리 전도사들이 외치는 “예수천국! 불신지옥!”같은 것이다. 사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근 유튜브에서 사진을 보고서 앞날을 예측하는 사람을 보았다. 일종의 정치채널인데 정치인들의 사진을 올려 마치 예언하는 역술가를 말한다. 역술가는 사진만 보아도 그 사람의 운명을 아는 것 같다. 표정만 보고서도 그 사람의 심리상태를 아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런 행위도 폭력에 해당될 것이다.

 

사진 한장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사진이 그 사람의 현재 상태를 말해 주는 것이긴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하여 다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유튜브에서 본 역술가는 현재 심리상태를 말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만일 사진이 최근 것이 아니라 5년전이나 10년 전의 것이라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영어에 “I am not what I was.”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나는 옛날의 내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의 나도 현재의 내가 아니다. 나의 몸과 마음은 자꾸 변한다. 오온은 어느 것도 가만 있지 않는다. 다발을 이루어 변해 간다. 하물며 5년전의 나와 10년 전의 나는 같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사진 한장 놓고 그사람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폭언이고 폭력이다. 한순간만을 순간포착하여 그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보는 것은 폭력이다. 사진은 폭력이다.

 

 

2020-06-2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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