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현스님의 스끼다시불교론
자현스님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자연스님의 강연을 들어 보면 거침이 없다. 박사가 네 개라고도 한다. 스님이면서 동시에 학자인 것이다. 이를 양수겸장이라 해야 할 것이다. 마치 가창력도 뛰어나고 용모도 준수한 가수를 보는 것 같다.
조건을 갖춘 스님은 달변을 자랑한다.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청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한다. 유튜브 강연을 듣는 이로 하여금 미소짓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스님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직까지 대중 앞에 선 적이 없다. 사람들 앞에서 강의나 강연한 적이 없다. 평생 남 앞에 서 본적이 없기에 강연이나 법문을 요청하면 무조건 거절한다. 그대신 글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10년 이상 늘 해 오던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각자 잘 하는 것이 있다. 말하기와 관련된 것이라면, 강연을 잘 하는 사람, 좌담을 잘 하는 사람, 웅변을 잘 하는 사람이 있다. 해당분야에서 오랫동안 갈고 닦았기 때문으로 본다.
교사나 교수처럼 가르치는 입장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중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운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평생 앞에 서 보지 못한 자가 마이크를 잡았을 때 횡설수설하기 쉽다. 평생 기계 앞에서 기계와 대화하듯이 살아온 자에게 있어서 말 잘하는 사람은 부럽다. 자현스님이 대표적이다.
자현스님이 뜨고 있다. 아니 이미 떴다고 보고 있다. 새로운 ‘스타스님’이 탄생한 것이다.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스님의 존재를 잘 몰랐다. 봉은사에서 강연한 것이 유튜브에 알려진 것이 신호탄이 된 것 같다. 마치 스카우트된 것처럼 불교TV(BTN)에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스님은 BTN에서 승승장구했다. 마치 날개를 단 것처럼 보였다. 유튜브 불교관련 콘텐츠를 보면 스님 것으로 도배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유튜브 에이아이(A.I)시스템이 작동한 결과이기도 하다.
스님의 BTN강연을 보면 몰랐던 사실을 알게 해준다. 박사 타이틀이 네 개이어서일까 박학다식한 강연을 듣고 있으면 넋이 빠질 정도이다. 그런데 종종 자신감을 넘어 자만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 자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스님의 유튜브 강연을 많이 듣다 보니 스님의 자신감에 대한 근거가 되는 말을 발견했다. 그것은 ‘개무시’에 대한 것이다. 스님은 청중을 대할 때 개무시하는 자세로 대하라고 말했다. 강사가 우물쭈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청중을 두려워하면 할 말도 못한다고 했다. 청중을 휘어 잡아야한다고 했다. 청중을 장악하려면 개무시전략으로 나가야한다는 것이다. 청중은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로 간주하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정말 스님이 청중을 개무시하며 강연하는 것으로 비추어졌다.
강연을 할 때 강사보다 많이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강사가 자신감을 갖는 주된 이유가 된다. 만일 자신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이 앞에 서 있다면 주눅 들것이다. 그러나 일반 재가불자들을 상대로한 강연이라면 스님처럼 많이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박사가 네 개까지 된다. 스님에다 박사타이 까지 갖추었으니 권위에 권위가 더해진 것과 같다. 어떤 말을 해도 믿고 따를 것이다.
자현스님을 오프라인에서 본 적이 있다. 8년전 조계종 종회가 열리는 공간에서 보았다. ‘종단출범 50주년과 한국불교 계율의식의 재고’라는 세미나에서 보았다. 스님은 니까야를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각묵스님에게 “진짜 범천이나 제석천이 있다고 믿으세요?”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에 니까야 번역자로서 각묵스님은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스님은 갑자기 청중을 향해서 “여기 있는 분 중에서 범천이나 제석천을 본 사람 있으면 저에게 문자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스님은 니까야를 불신했다. 아니 테라와다불교 자체를 하찮게 보는 듯했다. 소승이라는 말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그래서일까 각묵스님과 언쟁이 붙기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님은 ‘서상수계(瑞祥受戒)’를 말하는 것이었다. 범천이나 제석천 같은 초월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몽중수계는 인정한 것이다. 그때 스님은 자신감이 넘쳤고 말을 거침없이 했다. 좌충우돌하는 모습에서 자만을 보았다. 이런 것들을 블로그에 기록해 놓았다.
스님의 강연을 들으면 자신감이 넘친다. 때로 자만심도 엿보인다. 스님이 말했듯이 청중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가르쳐야 하는 입장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청중을 개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감과 자만심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자만심이 지나치면 적대적인 사람들도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스님은 본래 선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선학으로 박사학위도 받았다고 하니 선불교에 대한 프라이드도 있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중국불교와 대승불교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다. 반면 기타불교에 대해서는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테라와다불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최근 BTN에서 그런 모습을 보았다.
최근 유튜브에 올려져 있는 동영상이 있다. 제목은 ‘스끼다시 불교, 인도의 아류들 - 자현스님의 붓다로드 53회’이다. 강연을 들어 보면 테라와다불교를 폄하하는 것으로 가득하다. 테라와다불교가 정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불교의 종갓집도 아니라고 했다. 인도 서북지방에 있는 변방불교의 잔해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스끼다시불교라고 했다.
회집이나 일식집에 가면 스끼다시가 나온다. 본요리와 함께 나오는 것으로 구색용이다. 같은 어류이기는 하지만 격이 떨어지는 음식을 스끼다시라고 한다. 꽁치구이나 청어구이 같은 것이다. 스님은 동남아불교와 티벳불교를 스끼다시불교라고 했다. 그러나 대승불교인 중국불교에는 그런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당연히 선불교에도 사용하지 않았다.
스님에 따르면 인도에서 불교가 망했기 때문에 종가집은 없다고 했다. 있다면 아류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아류를 스끼다시불교라고 했다. 인도에서 망한 불교는 중국에서 대승불교로 꽃피웠다고 한다. 인도에서 망한 불교는 중국에서 대승불교로 정통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을 가지다보니 테라와다불교를 깍아내리기에 바쁜 것 같다.
시소가 있다.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은 내려 간다. 자현스님의 스끼다시불교론을 보면 시소타기를 연상케한다. 테라와다불교를 깍아 내려야 중국불교가 올라 가는 것처럼 보인다. 구전되어 온 니까야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구전 과정에서 오류가 있거나 후대 삽입된 것이라고 말한다. 기록된 것으로 보아서는 한역 아함경이 오류가 적다고 주장한다. 중앙에서는 쉽게 바꾸지만 변방에서는 원칙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님의 강연을 듣고 있다 보면 그럴싸하다. 불교에 대하여 잘 모르는 청중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들으면 “저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마치 중국불교를 살리기 위해 테라와다불교를 깍아내리는 것 같다. 마치 시소타듯이 테라와다불교를 깍아 내리면 중국불교가 올라 가는 것처럼 보인다.
테라와다불교는 스님이 말한대로 정말 스끼다시불교일까? 아함경이 니까야 보다 더 권위 있는 것일까?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강연했을 때 먹혀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 밖에 없는 교계 TV에서 한 말이다. 스님에다 박사가 네 개나 되는 사람이 말 했을 때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현스님의 유튜브 강연을 접하면서 내내 불편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왜곡한 것이기 때문이다. 스끼다시불교에 대해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지만 스님의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근거도 갖지 않는다. 열등감에 따른 뇌피셜이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개무시당한 느낌이다.
2020-06-1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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